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Aug 27. 2015

<건축학 개론>-사랑학 개론

사랑은 집을 짓는 것과도 같다

내 나이 무렵의 90년대 학번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내가 건축학 개론을 보고 싶어 한 이유는 

아마도 모든 대학 생활을 보내면서 

이뤄지지 않은 사랑 한두 번 있었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소 장엄해 보이는 스탠더드 팝의 

고급화를 이룬 "기억의 습작"을 

여러 번 사운드 트랙으로 깐 

이 영화는 아주 영리하게도, 


지갑을 수월히 열어 

자신의 아득하고도 다소 초라한 

첫사랑의 추억을 살펴볼 여력이 있는, 

내 나이 무렵의 90년대 학번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그에 합당한 영상과 스토리를 

선사해주었고, 군더더기 없이 

그 기억에 담겨있는 환상을 

이루게 해주고서 


영화는 현실적인 어느 지점에서 

그 마무리를 담담히 해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스토리 

그 자체보다 더 만족스럽게 경험한 것은 

사실 현실로 무사 귀환하도록 해 준 

그 친절함인 것 같았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첫사랑과의 해피엔딩을 만들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리라. 



얼마 되지 않아 그 기억의
그 지점에 있는
감성과 맞닿게 해주었다


김동률 씨는 나와 동갑내기인, 

옆동네 고등학교를 다닌, 

멋진 목소리와, 자기만의 악상과 

재능을 지닌 가수다. 


기억의 습작이 나왔을 무렵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에, 


이 노래는 정확히 그 기억의 지점으로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을 데려가는 

오솔길처럼 편안하게 이끌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그 기억의 그 지점에 있는

감성과 맞닿게 해주었다. 


건축학개론 (2012) 

Architecture 101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한가인이제훈수지조정석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18 분 | 2012-03-22


반면에 이러한 첫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마치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겪어가는 이미 일찍 되바라진듯한 

그 친구, 납득이의 모습은 

또 하나의 영화 속의 친절함이다. 

드라이하게 보자면 

아프고 예민한 상처이자 기억임에도

납득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중화제는 

술 한잔 친구와 함께 나누며 

가벼운 이야기로 

과거의 상처들을 누르는 

과정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우리에게는 

항상 그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랑의 선지자 노릇을 해주고 

어설픈 조언들로

 

첫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부여했던 

엄청난 무게를 다소 가볍게 만들어주는 

마법사이자 광대인 캐릭터가 

너무도 필요하고 물론, 


그런 친구는 우리들 각자에게 

최고의 인기인이 되고는 한다. 


납득이가 너무나도 인기 있는 

캐릭터가 되어버린 것은 

그런 의미에서는 너무 당연하다. 


하필이면 사랑 이야기가 
왜 제목이 건축학 개론이 
되었어야만 했던 것일까? 


하필이면 사랑 이야기가 
왜 제목이 건축학 개론이 
되었어야만 했던 것일까?


사랑이란 개론서 정도의 의미에서 

맞닿아 있을 때야말로 

사실은 전문서만큼의 전문성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첫사랑이란 어떤 의미에서 

사랑의 개론서이기도 하고, 

개론 수준에서 접근했을 때 

그 엄청나게 오랜 시간 

잊히지 않는 

강렬하고 풍부한 사념과 감정을

우리에게 남긴다. 


이것이 전문서가 되면 

이미  그때부터 사랑은 

실상 그 전문성을 잃어버린다.  



너무 사랑에 대해서 잘 알아버린 

우리 중의 누군가에게 

사랑은 더 이상 그와 같은 강렬함을, 

빛날 땐 태양과도 같고, 

어두울 땐 그 깜깜한 밀실에 

갇힌 것과도 같은 절망을 

더 이상 선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첫사랑은 

영원한 개론서이며, 

개론서로 시작했던 

그 사랑에 대한 기억은 

거의 영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실은 잘 잊히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개론서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사랑은 또한 집을 지어가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아가야 할 

마음의 공간과 실제 살아가야 할 공간을 

지어가는 그 행위는 어쩌면 

원초적인 사랑의 본능과도 같다. 


새들이 짝을 이뤄 둥지를 짓고, 

비버가 강을 막아 집을 짓고, 

곰들이 동굴을 찾고 

그런 본능적인 행위로도 비유되듯이 


인간에게 사랑이란 

마음과 현실 속에서 

공간을 지어가는 것과도 닮아 있다. 


그 두 사람이 마음에 지었던 집을 

현실에 지어보려고 하는 그 과정, 

그리고 개론서 수준이지만 

강렬하기 이를 데 없었던 그 사랑. 


건축학 개론이라는 제목은 

명확하게 설명된 문장은 아니더라도 

우리들 각자에게 

그런 이미지를 남겨준  듯하다. 

하지만 개론서 수준에서 덮었던 

그 사랑을 다시 시작해보길 

진심으로 염원하는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실상 거의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없다. 


매번  되풀이하듯 하는 말이지만, 

과거는 과거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과거가 현실로 다가오면 

그 아름다움은 다른 것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이 

더더욱 와 닿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레미제라블>-원작자의 모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