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마켓에서 성냥을 파는 소녀의 이야기
2121년 지구의 해수면은 2021년의 해수면보다 2미터가량 올라와 있었다.
일부 지역은 해안가의 거주민들을 내륙으로 이동시켰고,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의상은 더 가볍고 통기성이 높고, 빨리 흡수하고 마르는 동시에 냉감성이 높은 제품으로 대부분 대체되었다.
재생이나 유기물 기반, 생분해성만큼 중요한 판매 가치가 더위를 견딜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소재였기 때문이었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투자와 정책이 개별 국가별로 진행되어서는 계속 한계와 분쟁에 부딪쳤으며, 친환경 정책을 통해 친환경 제품을 유통시켜서 탄소 중립을 추구하는 선진국의 정책은 개발 도상국 및 후진국 지역에서의 강력한 반발과 마주했다.
친환경 기술이나 친환경 제품 소비를 중심으로 둔 이른바 환경을 기반으로 한 비관세 무역장벽이 구축되었으며 이로 인해 선진국 지역과 그 외의 지역 간의 확연한 경제권역 분리가 이뤄졌다.
습도가 높고 후덥지근한 기후를 가진 지역으로 40~50%의 지구가 변화한 뒤에 가을과 겨울을 가진 지역은 북극과 남극에 인접한 지역만으로 좁아져 있었다. 야외 활동 중에 눈을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순간 부의 척도처럼 여겨졌다.
아무나 추운 기후를 경험할 순 없었다. 적도 근처는 거의 모두 확실한 사막지역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기후 온난화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인류가 입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인구는 기후 변화로 인해 파격적으로 줄진 않았다. 전염병 확진자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치료가 불가능한 정체불명의 질병이 가짓수를 늘려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만큼의 참극은 최근 100여 년간 다행히 오지 않았다.
히터라든가 라디에이터, 난로, 온돌 등 인류 문명이 만들어온 화석 연료를 통해 열을 만들어 내는 제품은 지구에서 점차적으로 찾기 어려운 것이 되어갔다. 불을 만들어 내는 제품의 사용이 어느 순간에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담배도 전자 담배로 대체되고 전열 기구는 계속 있었지만, 가스나 석유, 알코올, 황, 인 등의 화석 연료 화학물로 불을 일으키는 제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석유 화학물의 수출입 자체가 거의 금지되는 추세로 갔을뿐더러 이를 통해 대량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회사나 단체, 공공 기관 등은 인류의 공적으로 몰렸다.
실제로 원자력이나 화석연료가 가진 효율성과 인류에 대한 수혜 효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친환경이라는 기치 아래 펼쳐진 거대한 재난 마케팅과 더불어 실제의 연료 효율성에 대한 고려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무조건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은 인류에게 전력 부족이나 에너지 사용료 급등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친환경 운동에 덧붙은 극단주의나 원리주의 같은 개념을 갖고 일종의 권력 헤게모니를 잡은 글로벌 연합체와 대소비자 브랜드 대기업, 소재 기업 등은 이미 소비자의 친환경 주의에 대한 강박감을 불러일으켜, 없애지 않아도 될 것들조차 리스트업 해서 없앴다. 그런 이벤트를 반복함으로써 공공연히 자신들의 영향력과 정의로움, 휴머니즘, 지속가능성 이념에 대한 투신을 과시하고자 하였다. 누가 불편해지던 가난해지던 한 나라가 이로 인해 붕괴하던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자신들이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지구가 급속도로 사막화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내용이 주로 종말론처럼 포장되어 세계를 휩쓸었다. 심지어 그 같은 내용은 연구 자료 등에서 언급된 적도 없었던 자의적 해석이나 오해가 더불어 있는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내용이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성냥은 이미 그 오래전 시대부터 보기 어려워진 것이 되었지만, 이 시대에는 그것을 갖고 싶어도 쉽게 가질 방안이 없어졌다. 성냥을 만들기 위한 재료의 유통 자체가 힘들어진 것이다. 야외 활동을 통해서 눈이나 얼음을 찾는 것이 어려워진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냥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영화나 드라마, 영상물에서 성냥이란 소품을 고대나 근대, 현대물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영상 제조 업체가 이를 찾아내기가 너무 어려웠으므로, 전기 제품을 통해서 스파크를 일으키는 소품으로 대체하거나 그래픽 처리하는 것이 성냥을 구하는 것보다 비용상 훨씬 더 저렴했다.
그런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필요 없는 제품으로 분류된 성냥은 정식의 제품을 만들어 취급하는 곳에서는 살 수 없었다. 블랙마켓으로 불리는 음성적인 제품을 취급하는 시장에서 마치 마약류나 환각제 류를 취급하는 특별한 곳에서만 몰래 구할 수 있는 희귀 제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갖지 못하게 됨으로써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가치에 높은 인플레이션이 생겼다. 공짜로 주어지던 성냥갑 하나의 가치가 수백만 원대까지 올라갔다. 이것을 가지고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번 그어서 불이 붙고 이를 다른 곳에 붙이던지 다 탈 때까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만큼의 효용을 느낄 수 있는 예상치 못했던 이 시대의 고가 제품이 되었다.
라이터가 대체재로써 있긴 했지만 가내 수공업 형태로 제조하기가 그다지 쉽지 않았고, 라이터 연료를 구하는 것이 이 시대엔 성냥을 만드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성냥은 소규모의 음성 사업자가 가내 수공업 형태로 만들어 블랙마켓에서 음성 거래를 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불을 일으키는 빈티지 도구이자 레트로 제품, 골동품, 앤틱 같은 개념으로 가치를 가진 고가품으로 만들어 알게 모르게 매년 '2021년의 한국 원화 기준으로 '2121년도에 수백억원가량의 성냥이 글로벌 블랙마켓에서 주로 팔렸다.
멋지게 집에서 전자 담배가 아닌 말아 피는 담배에 불을 붙여 본다거나, 오래 전의 서부 영화의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여송연에 불을 붙여 물고 심각한 표정을 지어본다거나, 홍콩 누아르 영화의 주윤발처럼 입에 물고 잰 척한다던가, 일가친척의 생일용 초에 불을 붙일 때 폼나게 하는 일 등에 사용했다. 물론, 초를 사는 것도 불법이었지만, 구하기는 훨씬 수월했다.
물론, 연인끼리 내밀한 공간에서 촛불을 켜고 서로 마주하거나 특정 종교의 의식을 위해서도 쓰였다. 그런 것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 정도 돈을 내고 성냥을 사는 것이 이 시대의 인류에게는 크게 아깝지 않았다. 성냥갑 하나를 사서 20개의 성냥개비를 20년간 사용하기 위해 들이는 수백만 원 정도의 돈은 사실 아주 크게 느껴지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부 기관은 이 정도 수준에서 거래되는 성냥을 대대적으로 단속까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냥 방치하기엔 친환경 운동을 주도하는 국제기구로부터 압박을 당할 수 있으므로 요령껏 간헐적으로 단속하는 시늉만 했다. 언론에서도 성냥에 대해서 굳이 사회 문제 시하여 드러내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성냥을 사용해서 소소한 의식을 행하는 이미 일상화된 즐거움을 잃게 만들면서 분란을 초래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소소하나마 인공지능에 대체당하며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 남아 있는 일종의 인간성의 흔적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암묵적인 분위기마저 있었다.
"제인, 오늘도 성냥 팔러 나갈 시간이 되었다. 일어나 빨리."
"잭, 어차피 몇 개 안 팔아도 사는데 지장 없어요...... 그냥 좀 더 자다 오후 늦게 나가게 해 줘요....... 어제 잠도 못 자고 성냥갑만 만들었던 통에 너무 힘들고 졸려요."
그 전날 20개 들이 성냥갑을 500개가량 주문하고 간 중간 도매업자 때문에 밤새 수작업으로 성냥을 만들었던 "제인"은 2090년부터 시작한 "잭"의 가업인 "성냥 판매 업"을 2117년부터 4년째 같이 하고 있었다.
고아원 등의 보호 시설에서 거주해온 12세 때의 "제인"을 불법적인 방식으로 우격다짐으로 입양하여 데려온 "잭"은 기초적인 교육만 "제인"이 받도록 하고, 성냥을 음성적으로 파는 일을 주로 가르치고 일상적으로 이 판매를 위한 주 80시간 이상의 장기 노동을 강요했다.
혹, "제인"이 경찰에게 잡히더라도 관련성을 갖지 못하도록 "제인"을 정식 입양한 것이 아니라 정부 시설로부터 도망 나온 것으로 해두었다.
"제인"은 자신의 친할머니와 친부모가 폭염 속에서 야외에서 하는 일을 하다 고열과 과로로 인해 죽은 뒤에 강제적으로 고아원에 들어가게 된 비극적인 가정사를 갖고 있었다.
그가 15세가 되던 해에 이미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잭"의 가업인 성냥팔이를 이어가기로 흔쾌히 동의한 것은 어차피 고등 교육을 모두 수료해도 인공지능으로 2090년 기준에서 80%가량의 일자리가 대체된 세상에서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 외에는 제대로 배운 일도 전혀 없었다.
"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났다고 이야기해도 좋을 정도로 영업적이고도 마케팅적인 수완이 충분히 좋았다. 일단 그와 이야기를 한 고객은 성냥 한 개가 되더라도 사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고, 살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했다.
순수하고 가냘파 보이는 외모에 어눌한 말투를 쓰는 그가 성냥갑 하나 당 수익률이 4~500%에 달하는 가격을 불러도 이 가련해 보이는 소녀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것이 전혀 비싸게 여겨지지 않았다. 신비로운 노하우의 상업 화술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설사 성냥이 아니었더라도 그는 잘 팔 수 있었다.
고객은 항상 "제인"에게 연민을 느꼈다. 사실은 그가 그 고객보다 훨씬 더 수익성 높은 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또한 고아라는 그의 신분도 애처로움을 불러일으켰다. 폭염 속에서 과로를 하다 쓰러진 친할머니와 부모의 이야기만 해도 고객의 코인 계정은 그의 계정을 향해 저절로 열렸다.
"제인, 장사란 건 말이다. 잘 될 때 더 열심히 해야 되는 거야. 조금 잘 팔리고 있다고 고객을 기다리게 만들거나 대충 대응을 하면 어느 순간 신뢰를 잃고 매출이 급감하는 일을 겪게 된다. 그때 가서 다시 잘해보겠다고 하면 늦어. 이미 그 기간 중에 경쟁자가 그 고객의 신뢰를 충분히 얻었을 테니까 말이다."
"제인"을 부리고 있는 "잭"은 원래 기계 체조 선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인 "그레고리"는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게임 시스템을 통해 비약적으로 운동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재를 사거나 사용해서 연습할 수 있는 엘리트 체육인 집안도 아닌 자신의 가계에서 훌륭한 운동선수로 "잭"이 인정받으며 자라날 거란 기대를 할 수 없었다.
"잭"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성냥"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밀수하는 법과 국가 간 불법 거래 대상인 성냥의 원료를 정상적인 원료로 등록해서 우회적으로 가져오는 방법, 판매 수량이 갑자기 증가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추가 원료를 구할 수 있는 비상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법 등의 다양한 사업 수완을 모두 물려받으며, 자신의 꿈을 또한 15세쯤에 포기했다.
먹고살 수 있을 수준의 기량으로 국가 대표가 되어 올림픽 등의 대회에서 포상금을 받을만한 운동선수가 되는 것은 몇 천만 분의 1의 확률이었지만, "성냥"을 팔아 세금을 포탈하면서 가업을 이어가는 것은 금전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은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해야겠다고 뛰어드는 사업은 아니었다. 실패할 위험이 크진 않았지만, 단속을 당할 루트는 여러 방면으로 있었고, 혹, 정부의 정책이 좀 더 강력한 "친환경 및 지속 가능성 헤게모니를 쥔 글로벌 권력 집단"의 입김에 휘둘린다면 단숨에 사라질 수 있는 사업이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는 성냥을 켜서 불을 붙이는 것을 유사하게 구현하는 전기 제품이 나올 확률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그 특유의 유황이 타는 냄새를 흉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 못하리란 법도 전혀 없진 않았다. 그러므로 이미 오랫동안 성냥을 팔았던 터줏대감 같은 몇 업체만이 기존에 축적한 자본을 기반으로 곡예를 하면서 버티는 제품이 이것이었다. 나름의 니치 마켓이다.
그는 이미 '2021년도의 한국 원화 기준으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모았다. 그렇지만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도록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고, 월세집에서 "제인"과 나머지 식솔들을 데리고 매달 렌트비를 내며 살았다. 신고해서 내는 세금은 원래 내야 할 돈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모두 성냥을 만들고 파는 일만 하고 있었다. 거래는 모두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암호화 화폐를 통해서 이뤄졌고, 생활비로는 버는 돈의 극히 일부만 사용했다. 경찰에게 번 돈을 모두 들켰다가는 천문학적인 수준의 과징금을 물 수 있었다.
"잭, 난 계속 성장하고 있는 나이거든요...... 잠도 충분히 자고 스트레스도 덜 받아야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서 성냥을 더 많이 팔 수 있지 않을까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그냥 하루에 한 개씩만 낳게 했다면 계속 돈을 벌었을 주인이 거위의 배를 갈랐다가 똥밖에 못 건진 일을 할 필욘 없는 것 같아요. 설마, 이런 이야기도 어렸을 때 읽거나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니죠?
제가 하루 장사를 늦게 시작하면 단골은 일단, 제가 무리했거나 건강에 영향을 받을 만큼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거라 보통 걱정을 할 거고요. 늦게라도 나타나면 제가 몸조리를 잘할 수 있도록 충분한 가격으로 성냥을 사주는 호의를 베푼다고요. 가끔 이렇게 게으름 아닌 게으름을 피워야 더 장사가 잘되는 효과도 있어요."
"잭"은 자신이 충분한 교양을 닦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오로지 기계 체조와 성냥 만드는 일,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걸리지 않고 가업이 계속 진행되도록 만드는 것에 전념을 다해왔으니, 동화책이나 소설, 드라마, 영화를 봤던 기억이 아주 희소하게 떠오른다. 그의 아버지부터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현생 인류가 가상현실 게임을 하면서 게임 내에서의 설정을 통해 발견하는 역사나 문화, 문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학습해온 것이 가진 교양의 전부였다. 그의 이런 열등감을 "제인"이 찌르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는 갑자기 화를 냈다.
"너 지금 고용주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거냐? 당장 일어나서 안 나가면, 옷가지 몇 개랑 가방 몇 개만 들고 집 밖으로 당장 쫓아낼 거야, 응? 성냥 파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아?
이 집과 네가 타는 저 최신의 공중부양 전기차, 네가 가끔 사다 입는 명품 브랜드 옷이나 액세서리 모두 다 내가 반평생 내내 정부의 눈을 피해서 몰래몰래 성냥을 만들어 팔면서 네가 가질 수 있게 된 거야. 이 녀석이 어디서 건방지게 주인을 가르치려고 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제인"은 버럭 화를 내는 "잭"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가 물론 무서운 갱단이나 마피아 같은 일을 직접 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의 친구 중에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갱이라도 불러서 괴롭힌다면 꼼짝없이 '인생 교육'을 당할 수도 있다.
벌떡 일어나 언제나와 같이 온전하게 사람들이 입는 흡한속건 냉감 의류와는 거리가 먼, 타월지 같은 종류의 후줄근하고 후덕 지근해 보이는 이 시대에는 형편없어 보이는 싸구려 옷을 입고, 헤져서 달랑거리는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에 성냥갑을 잔뜩 집어넣어 매고는, "블랙마켓"으로 최신형의 공중부양 자동차를 타고 날아갔다.
“잭”이 이 차를 사준 이유는 어디까지나 더 많이 성냥을 곳곳에 빠른 속도로 더 많이 팔기 위해서였다. 안전 사양은 기본 외에는 갖춰지지 않았고, 등록 정보도 여러 번 세탁을 해서 철저하게 원주인이나 구매자의 정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게끔 해 두었다.
누군가와 마주칠 일이 없을 주차장의 구석에 엄폐라도 하듯이 차를 착륙시켜 놓고는 어두운 조도가 뒤덮고 있는 창고형 건물이 하나의 돔형 지붕 아래 더덕더덕 붙여 있는 "블랙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보는 몇몇의 상인이 인사를 해왔다. 그리고 그를 불러서 성냥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제인, 날이 더우면 더워질수록 몰래 성냥으로 불을 켜면서 쾌감을 느끼는 고객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50갑만 줘. 값은 언제나처럼 그냥 달라는대로 줄게. 시세 같은 건 상관없어. 네가 주는 게 제일 품질이 좋으니까."
"타일러 씨, 50개만 가지고 장사가 되겠어요? 2 유니버설 코인('21년 기준 1천4백만 원 가치) 주시면, 20갑 더 드릴게요.
자주 거래하시니 제가 맘대로 가격을 드리진 못하겠고요. 저랑 경쟁하는 카이저 씨가 만드는 것보단 20%가량 싸게 드리는 거예요."
"고마운 제안이네, 절대 어디 소문내지 않을게 바로 줘. 여기 2 코인은 바로 전송할게. 보이지? 지금 보냈어."
신체와 결합되어 있는 스마트 커넥트 시스템을 통해서 "제인"의 계좌로 2 코인이 입금되었음을 확인한 제인은 유려한 손가락 놀림으로 70개의 성냥갑을 세어서 "타일러"에게 주었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음에도 원래부터 타고난 손솜씨가 있는 "잭"의 "제인"을 포함한 식솔은 성냥갑 하나하나를 꼭 가지고 싶게끔 잘 만들었다.
거래를 마치려는 순간, 잠깐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마켓 골목에서 지역 경찰 한 명이 타일러와 제인을 향해 잰걸음으로 걸어왔다.
"타일러 씨, 이만 가볼게요. 성냥은 빨리 숨겨요."
경찰은 "타일러"가 받은 성냥을 요령 좋게 잘 숨긴 덕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제인"의 뒤를 계속 뒤쫓았다.
"제인"은 마켓의 구석구석으로 다니면서 미로와도 같은 마켓의 방사형 길을 통해 도망쳤다. 잡히면, "성냥"도 빼앗기고 암호화 화폐도 몰수당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잭"은 "제인"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고아를 잡아서 자신과 연결시키려고 한다고 우기면서 모든 죄를 "제인"에게 뒤집어 씌우고 관련성을 부정할 것이다. 그게 성냥 파는 패거리의 매뉴얼이었다. 유능한 변호사와 행정 자치 기관의 유력자도 이들과 결탁되어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 올만큼 힘들어졌을 때, 주차장으로 가까스로 빠져나간 "제인"은 공중부양 자동차를 향해 바쁜 걸음을 옮겼다. 친할머니와 친부모가 다 살아 있었다고 해도 이 차를 살만한 형편은 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는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갖고 있고, 잃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임을 떠올린다. 그러나 경찰은 이미 "제인"이 차문을 열기 전에 그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이런 제길, 이렇게 인생이 또 꼬이는 건가?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쇼크 웨이브 충격 장치를 쓸까? 그러면 공무 집행 방해라는 죄목이 또 추가되겠지?'
"왜 자꾸 도망가는 거야? 여기서 더 도망가면 나도 그냥 순순히 보내줄 순 없잖아."
그는 이 근처에서 여러 가지 불법 물품의 단속 실적을 상당수 일으켜 급속 승진한 케이스의 경찰이었다. 직급은 "경장"까지 올라가 있었고, 주변의 상인은 그가 마켓에 뜰 때마다, 철저하게 불법 제품을 숨기려고 애를 썼다.
그는 실적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든 그런 불법 제품을 찾아서 몰수하고 가게를 폐쇄시켰지만,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면 그냥 놔두었다. 샌드백을 치는 것처럼 그저 꾸준히 필요한 실적을 정기적으로 우수 평가를 받을 수준까지만 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의 삶의 요령이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전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그냥 고아라서 먹고살 길을 찾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에요. 놓아주세요."
"근데 말이야, 이 차는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이 타는 차는 아니잖아. 안 그래?
누가 이런 차를 타는 고아인 줄 알면 동정하겠어. 그동안 자기를 속였다고 화를 내면 몰라도 말이야.
그 가방 이리 내놔. 현행범이라는 단어는 배운 적이 있긴 한지 모르겠네."
"제인"은 만사를 포기한 표정으로 가방을 그에게 건넸다. 그런데 그 가방 안에는 성냥이 하나도 없었다. 소형 손 선풍기만 잔뜩 들어 있었다.
유해 전자파 발생이란 낙인이 찍혀서 백 년 전부터 사라져 온 제품이긴 했지만, 이 정도를 팔고 다닌다고 처벌할 방안은 없다.
"이거 참. 손솜씨가 좋구먼. 언제 바꾼 거야? 달리는 내내 이걸 바꿔치기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제가 뭘 바꿔요. 원래 이것밖에는 팔아본 게 없고요. 이거 오늘 10개 팔아야 오늘 밥 사 먹을 돈과 다음 달 집세 낼 돈이 모여요."
"이 차는 그럼 어떻게 설명할 거야?"
"이거 제차 아니에요. 그냥 달려 나와서 숨으려다가 연 것뿐이라고요."
"허허, 이 맹랑한..... 그럼 이 차 그냥 견인하거나 갖다 버려도 전혀 문제없는 거야?"
"이 차 주인이 누군 줄 알고 그러세요?"
"주인이 네가 아니라고?"
"이 차는 '필라프'씨 집안의 외동딸 '사라'의 차예요. 가끔 태워줘서, 잘 알아요. 하지만 제가 이차를 훔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요. 운전면허가 없어서 몰 생각도 없다고요.
날이 후덥지근할 때 에어컨 틀고 안에 있으라고 가끔 저에게 키를 빌려줘서 주차 중에 타고 있으려고 온 거라고요."
"제인"은 "사라"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팔목에 삽입되어 있는 인터넷과 연결된 통신 장치를 통해서 "사라"와의 영상 통화 기능을 눌렀고, 홀로그램 형식으로 곧 "사라"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공중에 떴다.
"사라, 지금 경찰을 만났는데, 이 차가 내 것이 아니냐고 따져서 말이야. 설명이 필요해. 경찰 아저씨, 여기 사라랑 이야기 좀 나눠 주세요."
"아니. 됐어. 그냥 놔둬. 난 내 길 갈 테니 그냥 바꾸지 말라고."
"됐어. 그냥 간다네. 이따 봐. 끊어."
경찰은 자기의 가슴 위에 있는 명찰을 숨기고 바로 등을 돌려 달아나듯이 다시 마켓 안쪽으로 들어갔다. 당분간 "제인"을 뒤쫓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필라프"는 지역 내 경찰 고위 간부와 연이 닿아 있는 지역 유지다. 그 딸의 친구를 혹 잘못 건드린다면 승진 같은 것이 잘 되지 않게 될 확률이 높다. 눈치 빠른 그가 그냥 도망간 이유다.
그러나 사실 "제인"은 "사라"를 만나본 적도 없고, 그의 연락 가능한 번호나 연결 가능한 웹상의 주소를 알지 못했다. 이것은 비교적 간단한 홀로그램 발생 장치에 녹화되어 있는 가상현실 그래픽 기술로 만든 가짜 영상이다.
통화버튼이나 연결음 모두가 잘 만들어진 그래픽과 장치였고, "잭"이 혹 “제인”이 경찰 등의 단속반에 걸릴 경우에 띄우고, 상황을 수습하고서 유유히 도망가라고 만들어준 것이다. 인공 지능형 대화 기능이 내장되어 있어, 같이 대화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데, 이미 학습시켜둔 시나리오는 사라가 자신이 빌려준 차라고 확인해주는 내용까지다.
구구절절이 열심히 물어보지 않는 이상 이게 사라가 맞는지 아닌지를 단속 중인 경찰 같은 사람이 짧은 문답 속에서 쉽게 파악하긴 어렵게 되어 있다. SNS 등에서 뽑아낸 사진과 목소리를 편집해서 가상의 존재인 사라를 만들어 저장해두었다. 아마 필라프 씨조차도 이 영상과 목소리를 경험하면 자기의 딸이라고 한참 믿고서 대화를 할 것이 뻔하다.
오늘 장사를 망친 "제인"은 어제 팔아치운 500개의 성냥갑 판매고는 금세 잊어버리고, 왜 겨우 70개 밖에 못 팔고 돌아왔냐고 다그칠 "잭"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단속하는 경찰이 있어서 못 팔았다고 말할 변명거리는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우선 경찰을 잘 돌려보냈으면 장사를 계속했어야지 왜 안했냐고 다그치는 것이 "잭"의 사고 회로였다.
우선 입금이 된 2개의 암호화폐 코인이 장사를 한 셈이긴 하다. 그러나 그의 평균 판매고인 4개에는 2개 미치지 못한다. 내부 규정은 주중 5회 연속으로 자신의 평균 판매고를 초과해야만 여기에 대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물론, 이 불법적인 판매 집단이 고용보험이나 건강보험, 실업급여를 챙겨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받는 돈 그 자체만이 "제인"에겐 중요했다. 그것을 모아서 "잭"으로부터 독립해서 살 길을 찾는 것이 "제인"의 꿈이기도 했다.
오늘 평균 판매고를 떨어뜨리는 실적이 나왔기 때문에 "잭"은 인센티브 성격의 주 성과급을 주지 않을 것이고, 주급의 동결이나 인하를 주장할 권리를 갖게 된다. 말로서의 질책보다 열 받는 부분은 여기에 있다. 이상한 규정으로 매일 그 전날까지의 자신과 경쟁해야만 했기에 하루 판매만 잘 안되어도 받는 손해가 상당했다.
성과를 더 냈다고 충분한 칭찬을 받을 일도 없고, 평균 판매고 이상을 냈다는 이유로 받은 성과급도 그 밑으로 가는 순간에는 사라진다.
"잭"이 이런 급여 체계를 만든 이유는 언제든 "제인"을 쫓아내고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사이보그"를 구매해서 "제인"의 영업 및 마케팅 방식을 학습시킨 다음 이 기술과 노하우를 지속 향상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계속 성냥을 더 많이 팔아치우도록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그래픽 기술이 발달한 그 시대에는 어느 누구라도 외모와 목소리, 몸매, 행동거지를 카피해서 똑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에 이것은 실제 하는 위협이었다.
다른 방향으로는 이젠 죽고 없는 사람을 다시 영상으로 되살려 내서 그와 같이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능한 축복의 측면도 있었다.
하루치 장사가 잘 안된 상황에서, "제인"은 많이 우울해졌다. 그동안 인터넷 검색이나 어렸을 때 외부 메모리 장치 등에 저장되어 있었던 친할머니와 친부모의 영상을 한 곳에 모아 가상현실 그래픽 기술을 사용해서 같이 대화할 수 있도록 랜덤으로 인공지능형 대화 시나리오를 짜 보았다.
간단한 앱 몇 개를 다운로드하니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충전을 하지 않고 나온 탓에 장치 내의 전력이 충분치가 않아서 홀로그램 자체의 조도를 밝게 만들기가 어려웠다.
거기에다 선팅을 짙게 한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다 보니, 만들어진 홀로그램 영상이 너무 어두운 곳에서 나타나서인지 잘 보이지가 않았다. 정기 점검이나 수리를 받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내부 조명등마저 안 켜진지도 오래되었다. 차 문을 열고서 방금 차량 밑에 발로 차서 밀어 넣었던 다른 가방 속의 성냥갑을 꺼내서 불을 비추면서 보기로 하였다.
“제인”은 치밀하게 경찰의 단속에 이렇게 대응해온 것이다. 가방 안에 성냥을 담은 가방을 넣는다. 쫓기다 붙잡히면 안 가방을 떨어뜨려서 차 밑이나 다른 구석에 차 넣는다.
첫 번째로 할머니의 홀로그램 가상현실 그래픽 영상을 재생하면서 성냥갑을 열어 첫 번째의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다.
"제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 이 할미가 동화책으로 읽어 주었던 거 잘 기억하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잘하려고 너무 무리하면 네가 어느 조직에 가 있던지 너의 생명력은 짧아지는 거야. 네 배를 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아가야.
또한 네가 일을 시켜야 할 사람의 배를 가르는 일도 하지 않는 게 좋다. 다 네가 오래 살아남기 위함이란다."
"그런데 할머니는 왜 뙤약볕에서 그렇게 과로를 하다 돌아가셔야만 했나요? 거위의 배를 누군가 갈랐던 건가요?"
"할미는 인공지능 같은 것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했던 거야. 그것들은 경사가 지고 굴곡이 많은 인삼 밭에서 인삼을 키우고 캐내는 일을 정확하게 할 순 없었어. 물론, 그때의 기술로는 말이야.
하지만 그다음 해에는 이조차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계가 나오리란 것을 알았지.
너의 아빠와 엄마가 둘 다 세상을 떴기 때문에, 나는 꼭 너를 지키고 잘 키워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인삼밭 주인에게 난 내가 기계와는 다른 자율성과 충성심 같은 게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의 그날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폭염이 있었단다.
그날 일하고 쓰러진 뒤엔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지. 미안하다. 내가 그런 욕심부리지 말고 네 곁에 계속 있었어야 했는데."
"아니요. 할머니 저에게 미안해하실 것은 전혀 없어요. 그냥 할머니가 더 많은 이야기를 저와 나눴으면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슬프고 괴롭진 않았어요.
이렇게 짧게라도 할머니를 보고, 그 목소리를 그대로 들으면서 대화를 할 수 있으니 너무 기뻐요. 사랑해요 할머니."
성냥 하나가 말끔하게 다 타들어간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할머니를 마주한 대화는 "제인"을 기쁘게 해 주었고, 동시에 눈물짓게 해 주었다.
두 번째로 엄마의 영상을 재생하면서 두 번째의 성냥에 불을 붙였다.
"이렇게 오랜만에 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구나. 엄마와 아빠, 할머니 없이 자라느라 고생이 많았지?
이렇게 죽어서도 미안하고 항상 보고 싶고 어루만지고 사랑한다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오늘 이렇게 잠시라도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너무너무 기쁘다."
"엄마, 사랑해요. 이렇게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히잉, 너무너무 기쁘고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요.
흑. 히잉. 근데요. 근데 엄마는 왜 그 뜨거운 여름날에 밖에 나가서 일을 하다 돌아가셔야만 했었나요? 난...... 끄흐윽.... 잉, 이잉...... 이해가 안 돼요."
"미안해. 정말 그 말 밖에는 할 이야기가 없구나. 내가 네가 태어났을 무렵에 일했던 직장은 이른바 사양산업에 속해 있었어. 매년 매월 종사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었지.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매출이 줄어든 회사가 구조 조정을 하고 사람을 정리했었고. 게다가 그전에 네 아빠가 세상을 떠났었다. 너와 어머니를 내가 책임져야만 했었지.
우선 너를 잘 키워야 되고, 높은 수준의 사교육비를 어떻게든 내면서라도 가난하게 살진 않게 만들어야 하고, 남들에게 치이면서 살지 않도록 집 한 채라도 마련해 주려면 열심히 벌어야 한단 생각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인공지능 기계로 대체되어 가는 외부 현장 작업자를 지원했고, 교육을 받으러 나간 그날이 최고의 폭염이 온 날이었다.
기계 수준이 작업성의 기준이었던 그 교육을 야외에서 받다가 어느새 쓰러졌고 그때부터 너를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엄마. 흑흑흑, 엄마. 그냥 집에 계셨어도 좋았을 텐데요. 히잉...... 이잉...... 지금 전 굳이 교육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돈을 모았고요. 이제 독립할 거란 말이에요.
흑흑...... 왜 그렇게 무리를 하셨어요. 히잉..... 크윽..... 큭. 그게 다 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군요. 그랬었군요. 알았어요.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네가 잘 자라리란 기대와 꿈, 계획이 내겐 큰 삶의 이유였단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난 같은 선택을 했었을 것 같아.
미안하다. 그 선택 때문에 오히려 너를 외롭고도 힘들게 자라도록 만들어서. 그런데 이제 그렇게 잘 컸다니 자랑스럽고 정말 뿌듯하구나. 사랑해."
이미 눈물과 한숨 속에 성냥불은 꺼졌지만, 제인은 엄마와의 대화를 쉽사리 끊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중단 버튼을 누르고 얼굴과 옷 위로 흐른 눈물을 닦으며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세 번째로 아빠의 영상을 재생하면서 워낙 이분이 남긴 사진이나 영상, 남긴 글 등이 빈약했기에 짧게 단답형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에 약간의 막막함을 느꼈다. 자세히 보기 위해서 세 번째의 성냥에 불을 붙였다.
"제인, 아빠가 항상 늦게 들어와서 평일 중에는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놀아주지도 못해서 이 아빠 얼굴을 지금 보면서도 기억할지 두렵구나.
항상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직장에서 주눅이 들어왔던 터라, 귀엽고 이쁜 너를 안고 어르고 달래고 놀고 싶었지만, 주말을 빼놓고는 그럴 시간이나 힘이 없었단다.
그냥 잠이 든 너를 한참 쳐다보다가 뽀뽀만 하고 잠자러 갔던 것만 떠오르네. 그래 지금 그렇게 이쁘게 자라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더 바랄 게 없겠구나."
"그렇게 항상 아빠는 바쁘고 힘들고 정신이 없었던 거였군요. 잘 몰랐어요. 그냥 가족보다 소중한 다른 게 많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요. 오해였다면 미안해요. 다행히 낯설지는 않아요.
아빠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제가 깨어 있을 때 안아주고 웃어주고, 까꿍만 해줘도 제가 많이 기쁘고 행복했던 게 떠올라요.
그런데, 아빠. 왜 그 더운 여름에 일하러 갔다가 돌아가시게 된 거였어요? 할머니와 엄마는 인공지능이 뺐어갈 일자리를 지키려고 하다가 그랬다고 했어요. 아빠도 같은 이유였나요?"
"사랑하는 딸아, 그건 말이야. 꼭 같은 건 아니지만, 비슷한 이유였어.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 지금껏 예전의 기술로 하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던 일을 급격하게 잃게 되곤 해.
그런 것을 예상하고 난 퇴근 후에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공부하고 준비해서 혹, 직장을 잃으면 그 일을 하겠다고 심야에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와 너의 엄마, 나의 어머니 모두가 있는 가정을 가능하면 오랫동안 지키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그렇게 잠도 안 자고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느 날 거래처 대표이사와 장시간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갔었는데, 그날이 너무 더운 날이었다.
거래처 사장은 더위를 피할 여러 가지 기재를 챙겨 왔지만, 부랴부랴 새벽에 일어나 골프 가방 하나만 챙겨간 나는 그날의 더위에 무방비했고 동시에 너무 피곤했었다.
9번 홀을 돌면서 파 5 지역을 걸어 올라가다가 그만 어지러움을 느껴 넘어진 뒤로 난 모두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그까짓 골프 한게임 치다가 내가 그렇게 되어서.
하지만, 항상 난 너와 가족의 행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어. 정말로 사랑했다. 부끄러워 잘 못했던 말이지만."
"아빠가 미안해할 게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빠가 그렇게 된 이후에 엄마와 할머니도 무리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 두 분이 아빠의 자리를 메우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리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빠 저 생각보다 잘 자랐어요. 아주 좋은 환경에서 살아왔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도 똑바로 박히고 머리도 나쁘지 않고 능력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다 아빠와 엄마, 할머니로부터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감사하고요. 사랑해요. 아빠, 우리 함께 다 모여서 봐요 이제."
세 번째의 성냥은 뜨겁게 엄지 손가락 위에 덴 자국을 남기면서 꺼졌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을 오가면서 극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던 제인은 그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까맣게 변한 엄지 손가락을 입에 넣어서 빨면서, 잠시 아이로 돌아간 듯이 포근한 감정에 빠졌다.
네 번째로 할머니와 아빠, 엄마가 함께 있는 영상을 띄웠고, 그 안으로 지금의 자신의 영상도 편집해서 같이 넣었다. 그 네 명 모두의 영상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 네 번째의 성냥을 그어서 켰다.
그 영상을 더 보기 위해서 연달아 성냥을 붙였다. 이만큼 행복한 순간이 언제 또올지 모르니까 충분히 보고 싶었다. 할머니와 엄마, 아빠가 하는 이야기는 그럴듯한 편집 기능이 만들어낸 가짜의 시나리오다. 실제로 그런 일 때문에 그들이 죽었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약간의 인공 지능이 마술을 부린 그 내용은 사실처럼 느껴졌다. 단지, 할머니와는 인삼밭이, 어머니와는 직업 훈련소가, 아빠와는 골프가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삶의 스토리도 대신 만들어 주는 시대에 필요하다면 다른 기억도 내부에 흘려 넣을 수 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시나리오를 눈치껏 만들어 준거다.
선명해진 차 안에서 그 네 명이 서로를 얼싸안고 더듬으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볼에 뽀뽀도 하고, 서로를 밀치기도 하고, 다정하게 얼굴을 매만져주고, 머리를 쓰다듬는 영상을 계속 쳐다보았다.
한갑이 넘는 성냥의 불이 완전히 다 꺼질 때까지 제인은 그 영상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못했고, 주고받는 이야기들로부터 다른 곳으로 관심을 전혀 돌릴 수가 없었다.
이 홀로그램 영상을 보기 전까지의 인생과 비교해서 지금의 인생은 천국과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들과 함께 있는 순간을 벗어나서 살아가야 할 현실이 너무도 끔찍했다.에어컨이 돌아가는 차 안은 시원하기 그지없었지만, 차 밖의 폭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그 고온을 뒤로하고 아까 마켓 안에서 70개의 성냥갑을 구입했던 타일러가 제인이 있는 차 가까이로 다가갔다. 아까의 경찰이 들어와서 해준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아 출신으로 열심히 살아남기 위해 가련하게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던 제인에게 최신형의 공중 부양 자동차를 빌려주는 지역 유지의 딸과의 관계가 있다는 등의 그가 제인에게 갖고 있었던 내용과 다른 것들이 있어서 놀랐다.
그 경찰은 제인이 주당 20 유니버설 코인('2021년 한국 원화 기준 1억 4천만 원)을 벌고 있는 중이란 내용도 상인에게 넌지시 일러주었다. 상인과 판매상을 이간질시키고 서로 질투하게 만들어서 관계를 와해시키고 불법 제품 판매 네트워크를 망가뜨리는 공작을 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지역 유지의 딸과 관계가 있다면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다른 이가 제인을 치도록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역시 노련한 경찰이었고, 상인은 그 이야기를 들은 동시에 제인이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믿을 수 없는 성냥 판매상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며 엄청난 돈을 챙기고 있단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차 앞으로 가서 검은색 선팅이 되어 있는 창문 안에서 성냥으로 불을 켜서 눈앞의 홀로그램을 지켜보고 있는 제인의 모습과 그 홀로그램이 비추고 있는 다정한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그 가족의 모습에 제인이 비추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여자가 자신에게 고아라고 거짓말을 하며, 추레한 옷을 입고 폭리를 남기고 있다는 심증이 확증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 비싼 성냥을 켜서 가족과 찍은 영상을 이 최신형 고급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고 웃으면서 보고 있다니, 나는 네가 판 성냥을 간신히 조금 남겨서 팔고 매달 매장 임대료랑 거주지 렌트비랑 생활비 정도나 간신히 빼는 중인데, 넌 누릴 것 다 누리고 살고 있다는 거지? 이 나쁜 것. 네가 다시 여기저기서 성냥이든 뭐든 팔 수 있게 되나 보자.'
타일러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쪽으론 완전 범죄를 구상했다. 최신형 공중부양 자동차는 수소를 연료로 했다. 이 연료의 화학적 반응을 폭발 쪽으로 바꿀 수 있는 용제를 경찰의 말을 들은 뒤에 불현듯 챙겨 나왔었다. 쓸 생각은 없었지만 갑자기 솟아난 분노가 걷잡을 수 없게 그를 사로잡았다.
이것을 수소 연료통에 넣을 때 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한 뒤에 10여분 뒤에 폭파되도록 적정한 수량을 조절하기까지 했다. 그리고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마켓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제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만큼 그는 제인을 동정하고 연민했고, 마치 아버지나 친척이 된 것처럼 도와주고 싶어 했었던 것이다. 그 마음에 대한 배신을 당했다고 오해한 타일러는 극단적으로 돌변했다. 그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자였고, 동시에 이 동네에서 유명한 갱단 소속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밤에 하늘을 날아서 집으로 이동하던 제인의 차는 갑작스러운 폭발로 추락했다. 추락한 잔해 속에서 제인의 얼굴을 본 사고 현장의 관계자들은 대부분 유사한 증언을 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한 사람의 증언을 아래와 같이 적는다.
"너무 행복한 모습이었어요. 마치 사랑에 처음으로 방금 빠진 사람처럼 기쁨과 환희, 열정, 흥분감을 가득히 지닌 정말로 의욕적으로 삶을 제대로 용기 내서 살아가기로 결정한 그런 인상이었어요.
그의 팔에서는 추락한 상태에서도 고장 나지 않은 홀로그램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어요. 그를 포함한 그의 가족이 있는 영상이었죠.
(세부 출처: Photo by Mike Scheid on Unsplash)
물론, 그는 고아였고, 그 영상이 그가 만든 가상현실 영상인 것을 나중에 잘 알게 되고 나서야 그 행복한 얼굴의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참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긴 한데요. 그 현장에서 그의 얼굴을 본 모든 사람들이 가진 의견은 아마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더 이상 그 이상으로 기뻐질 이유가 없는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는 거였어요.
저도 그렇게 느꼈고요. 가족이 나오는 영상을 처음 만들어서 대화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에겐 바깥의 더운 더위도, 차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도, 자신의 엄지 손가락 끝을 데게 만든 성냥불도 아마 자신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드라마에 비하자면 아무런 느낌을 줄 수 없었을 겁니다.
아마도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차량의 폭파를 겪었지만, 숨이 끊기는 그 순간까지 당황하지 않고 계속 행복하고 기쁜 마음을 잃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가족과 만나게 될 수도 있으리란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어요.
보통은 공포나 경악, 당황스러움을 가진 인상이 남을 수도 있는 죽음이었지만, 그만큼 그의 인상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불법적으로 성냥을 팔러 다닌 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사회적으로 정말 나쁜 일을 저지르면서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 외의 전과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냥을 판 것이 그렇게나 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었을까요?”
실적이 필요했던 그 경찰은 "잭"과 "제인"을 조사하면서 "잭"의 조직을 일망타진하려고 시도했으나, "잭"은 "제인"과의 연관성을 철저히 부정했고, "성냥"같은 것은 어려서부터 불을 무서워해서 다뤄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타일러는 뒤늦게 제인을 오해하고 고아인 그를 죽게 만든 자신에게 분노하게 되었다. 근처 바다에 있는 방파제 위에 올라 몸을 던졌으나 주변을 지나던 어선에 의해 구조되어 가까스로 살아났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범죄를 밝히며 자수했다.
"잭"은 나중에야 "제인"의 홀로그램 장치 속의 그와 가족의 영상을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경찰 입회하의 증거물 등을 확인하는 자리였는데, 차갑고도, 매섭고, 거칠고, 무신경하고, 잔인한 그가 5분가량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끼고 나서야, 자신이 "제인"을 가족으로서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
자신의 꿈을 억눌렀듯이 자신의 사랑도 억누르고 살았던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