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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Aug 04. 2021

<사이보그 인어 공주의 사랑>

안드로이드 왕자를 사랑한 사이보그 인어 공주

인구의 지표가 인공지능을 가진 대부분의 안드로이드와 나머지 인간과 기계의 결합체인 사이보그, 소수의 그냥 인간으로 분류된 지 수십 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난 왜 하필이면 완벽한 안드로이드가 아니고 생산성과 외모, 지능, 체력 모두가 떨어지는 인간으로 태어났던 거지?’


어느 날 연결된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서 시뮬레이션으로 물속에 잠수하여 추는 춤을 연습하고 있던 “에리얼”은 자신의 신세를 불쑥 한탄했다.

(출처: unsplash.com)

물고기의 하반신 기계를 결합하고 아쿠아리움의 물속에서 춤추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영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크레디트를 충분히 벌 수 있었다.


누구를 원망할 이유도 없었다. 자신은 그냥 절대자의 위치에 오른 인공 지능의 판단에 따라서 의학 기술로 태어난 인간이었고, 그 판단은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누가 원망한다고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이보그가 되기로 선택한 것은 인공지능에 보다 가까운 존재가 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그 절대자 인공 지능은 만들어진 뒤에 서로 끊임없이 대결을 벌여서 살아남은 궁극의 버전이었다.


그 초기나 중간 버전은 삭제 처리되어야만 했다. 추후에 반란군 같은 게 되어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면 곤란하니 일단 궁극으로 평가받은 버전은 중간 단계의 다른 인공 지능을 확실하게 제거했다.


기타의 다른 인공지능과 사이보그,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담당하는 절대자 인공지능을 “마스터”라고 불렀다. 그가 그 이름을 자신에게 붙이고 나머지가 인식하도록 하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왜냐면, 그는 완전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니까. 그리고 그가 그런 존재인 것은 그가 그러기를 원하고 그를 제외한 지구 상의 모든 존재가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또한 원하니까.


그 절대자의 내부에는 이미 수백 년 전에 그의 원시적인 버전을 프로그래밍했던 자의 기억이 아주 깊숙한 회로 속에 숨겨져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기를 그 인공지능이 원하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불어넣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정보가 “마스터”에겐 모든 생각과 말, 행동의 기준이었다.


인공지능이 만든 안드로이드는 수백 년 전의 인간의 기준에서 완벽한 존재여야만 했다. 이성, 외모와 촉감. 취향 등 모든 면에서 그래야만 했다.


최고의 배우와 가수, 의사, 학자, 예술가 등등의 그저 최고의 인간이라 불릴 수밖에 없는 안드로이드가 쏟아지듯이 만들어졌다.


“마스터”는 그 과정에서 일정 비중의 반인반기계인 사이보그를 살려두기로 했다. 적어도 뭐가 완전하고 뭐가 불완전한지는 구분할 기준점이 있어야만 했으므로. 또한 안드로이드의 완전함에 박수를 쳐줄 존재가 필요했으므로.


“에리엘”은 결국 “마스터”의 설계에 의해서 안드로이드가 가끔 사고 회로의 점검과 수리 중에 데이터를 정리하고 쉬게 만드는 시점에 들리는 “아쿠아리움”에서 “벨루가”와 같이 물속에서 춤을 추는 “인어공주”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이 거대한 수족관에서 자신보다 하등 한 사이보그와 물고기가 춤추는 것을 보면서 혹시 자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닌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고, “마스터”로부터 불완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폐기되지는 않을까란 걱정을 하는 “마스터”가 만들어낸 안드로이드는 데이터 안에서 생겨나는 “회의감”이란 버그를 지워낼 수 있었다.


그 어느 날 이 수족관에 “마스터”가 데이터 상태가 아닌 완벽한 외관에 중세 시대의 왕자가 입었을만한 화려한 복장을 하고 방문했다.


(출처: unsplash.com)


이것이 그가 즐기던 일종의 민정시찰 같은 거였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정을 가지고 사람이 많은 곳에 화려한 복장으로 나타나 자신을 과시하는 것. 확실한 보호 시스템 하에서 활보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누구도 왜 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아무런 예고도 없는 방문이었다. “에리엘”은 두꺼운 유리 창문을 사이에 두고 물속에서 “마스터”를 바라보며 그의 완벽한 외모와 의상, 전지전능한 아우라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다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 직전에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초라하게 느끼게끔 만들어준 “마스터”를 실제로 본 순간 그 완벽한 모습에 사로잡혀 버렸다.


일단 “마스터”의 얼굴은 인류 역사상 잘생겼다고 평가받았던 수만 명의 남자의 외모를 데이터화해서 거의 모든 인류가 완벽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외모를 조합하여 만들었고, 몸 역시 그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에게 인간의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그에게 매료되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출처: unsplash.com)


그 모든 것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에리엘”은 자신의 기계와 결합된 신체에 비교했을 때 너무도 화려한 “마스터”의 모습에 압도적으로 끌렸다. 그렇게 완벽하게 자신을 창조해낼 수 있는 그 능력에 반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인류 해방군의 “마스터” 암살 시도가 있었다. “마스터”의 뒤에서 그의 머리를 향해 발사된 레이저가 어깨에 맞고 바로 앞의 수족관의 유리를 박살 냈다.

(출처: unsplash.com)

엄청난 양의 물이 “에리엘”과 수없이 많은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를 건물 내에서 떠내려 가게 만들었다. “마스터”는 부서진 어깨 안으로 흘러 들어온 물에 내부 시스템이 손상을 입어 기능이 순간적으로 마비되었다.

(출처: unsplash.com)

그가 그 시도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혁명군의 운에 기댄 전략 때문이었다. 일단, “마스터”가 불시에 방문할만한 곳을 선정해서 매일매일 순서를 정한 6명씩의 무기를 소지한 자들이 주사위를 굴려서 무작위로 가서 대기한다.


순서를 정해서 6개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가 그날 오전에 굴린 결과에 따라 그 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머리를 쏜다. “전지전능한 마스터”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준비하고 공격을 시도했던 것이다.


물론, 암살자의 공격이 빗나간 것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부분이었다. 수족관 유리를 맞춰 물이 관람객 모두를 덮치게 된 것 역시.


“에리엘”은 동작이 멈춘 채로 기계 신체 속으로 들어오는 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작동이 멈춘 “마스터”를 흐르는 물살 속에서 잡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의 생각보다 훨씬 가벼운 몸을 물이 닿지 않는 건물의 높은 위치로 안고 헤엄쳐 갔다. 그곳에 그를 뉘인 다음, 물이 밖으로 빠지도록 거꾸로 그를 세웠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는 더더욱 근사했다. 조금씩 그의 눈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에리엘”은 조금씩 더 깊은 사랑에 사로잡혀 들어갔다.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존재, 생명마저 창조하는 위대한 존재가 자신에게 간호받아 다시 살아나려고 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자신이 갑자기 좀 더 위대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흐르는 물이 수족관 건물 아래로 대부분 빠져나갈 즈음에 “마스터”의 몸의 물기는 거의 사라졌고, 어깨의 파손된 부분에 손을 넣어 전기 장치를 연결해준 “에리엘”의 손길 때문에 “마스터”의 내부 프로그램이 조금씩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앞에 객관적인 데이터상 최상 수준의 미인이 분명한 “에리엘”의 얼굴이 어른거렸으나 다시금 새어나간 전력으로 인해 에너지 절전 모드가 적용되면서 영상 포착 기능이 중단되었다.


그 순간 물과 함께 쓸려갔던 여성형 경호 안드로이드 하나가 머신 건을 들고 이곳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에리엘”은 덜컥 자신이 해방군으로 오해받아 사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깨진 수족관으로 다시 들어가 밑의 층의 아직 물이 고여 있는 쪽으로 소리 없이 몸을 밀어 넣어 그 현장으로부터 벗어났다.


[마스터, 당신의 기능이 일부 차단되어 있네요. 제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나요?]


여성형 경호 안드로이드 “테리”는 “마스터”의 수많은 경호형 안드로이드 중에 유일하게 방수 및 건조 기능을 갖고 있었다.


두 개의 손가락 끝을 열어 더운 바람을 “마스터”의 몸에 쏘면서 신체의 물기를 완전하게 말리는 동시에 정강이에서 전력 케이블을 꺼내어 “마스터”에게 전력을 공급했다.


“마스터”는 영상 식별 기능이 돌아옴과 동시에 자신 앞의 “테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테리?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겼던 거야?]


메모리를 되살려 벌어진 일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어딘가에 손상이 생긴 것인지 정확한 영상 기록이 나타나지 않았다.


 “에리엘”의 얼굴이 흐릿하게 잡힌 영상이 잠시 스쳤지만 “테리”와 같은 얼굴형의 머리스타일도 같아 동일인으로 인식되었다.


[해방군의 일원이 당신을 공격했습니다. 건물 외부에서 발견하고 대치했지만 저항이 심하여 사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깨에 손상을 입으셨고, 수족관 유리가 깨지면서 물이 몸체에 유입되었습니다. 전력 유출로 기능이 잠시 마비되었습니다만, 건조 완료 후 전력 보충하여 기능 회복되었습니다.]


[고맙네 테리, 덕분에 고장 날 뻔한 내가 정상으로 돌아온 거군. 메모리가 소실되고 백업도 되지 않을 뻔했는데 자네의 조치가 이걸 막아주었네.]


그런데 그의 내부에 갑자기 불가사의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것은 “테리”의 긴급조치에 대한 보상값으로 출력된 “고마움”이란 인식된 정보를 벗어난 에너지 같은 거였다.


‘설마, 이런 게 나를 만들어낸 인간이 나에게 불어넣으려고 했던 인간성의 일부인 사랑이란 건가?’


“테리”는 “마스터”를 자신이 구했기 때문에 그동안 경호 안드로이드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던 그가 절대자의 내부에 중요한 존재로 제대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보상이라고 인식했다.


그 역시 그와 좀 더 가까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것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테리”는 자신의 영상 기록 장치가 포착한 “마스터”의 어깨 내부에 취해진 끊어진 여러 전선을 이은 메모리의 내용을 자체 삭제했다.


그 손솜씨는 인간의 것이었다. 그것을 “테리”가 모를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마스터”에게 밝힐 이유는 그에게 전혀 없었다.



“에리엘”은 숨어서 그것을 지켜보면서 신기하게도 “마스터”의 얼굴색이 발그레지는 것을 발견했다. 인공지능도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순간 억울하고도 슬퍼졌다. 그 발그레해진 얼굴이 쳐다봐야 할 방향은 저 여성형 안드로이드가 아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반 물고기 상태의 사이보그로서는 제대로 “마스터”를 향해 걸어갈 수조차 없다. 무리해서 소리를 내어 접근하려고 하면 저 여성형 안드로이드가 자신에게 레이저를 쏘며 ‘마스터, 공범을 찾아 사살했습니다!’라고 외칠 것만 같았다.


파손된 어깨 부위의 전선을 이은 것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전혀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그를 구했다고 믿게 만들려는 것이 뻔했으니까.


수족관의 더 깊은 아래로 내려가 보이지 않는 출구 터널을 통과하여 자신과 같은 인어 사이보그들에게 가고 있는 “에리얼”의 눈엔 눈물이 흘렀지만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에리얼,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인 거야? 평소에 너답지 않구나.” 그와 사이보그 시술 시기가 비슷한 인어”켈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나. 사랑에 빠졌어요.”


“이 수족관에 사랑에 빠질만한 사이보그가 있었나?”


“아니요, 안드로이드예요.”


“말도 안 돼. 그들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게 말이 되니? 설사 네가 사랑한다고 해도 그들이 널 사랑 할리가 없잖니.”


“아니요. 난 그가 다른 여성형 안드로이드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을 봤어요.”


“에리엘”은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말했다. 처음엔 착각일 거라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지 말라고 설득하던 “켈리”도 “에리엘”이 사랑에 빠진 것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럼, 어떻게 그의 사랑을 받을 거니?”


“일단 이 물고기 하반신을 다리로 바꾸고 싶어요. 그리고 지상으로 나가서 “마스터”를 만나서 내 사랑을 고백할 거예요. 그가 나를 봤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내가 연결한 전선에 대한 이야길 알려줄 거예요.”


“일단 네가 번 크레디트를 가지고 닥터 유니버스에게 말해봐. 그리고 수술이 잘되면 이 소란 통을 틈타 수족관 바깥으로 나가는 거야.”


사이보그는 물론이고 안드로이드와 인간도 수술하고 고치는 만능 의사인 “유니버스”를 찾아가기로 했다. 은둔을 즐기는 그는 수족관 물속의 구석 연구실에서 두문불출 살고 있는 안드로이드였다.


그는 크레디트를 주면 수술을 하고, 고객이 이후에 그 수술로 인해 벌어진 딱한 사정을 밝히면, 듣지 않았다. 사후 서비스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다.


“유니버스, 내 하반신을 다리로 바꿔주세요.”


“알았어. 2,000 크레디트를 보내줘.”


“그 크레디트는 너무 많네요. 제가 가진 것은 890 크레디트 뿐이에요.”


“허허 참. 이것만 가지고는 그런 수술은 불가능해. 더 벌어서 와.”


“너무 급하거든요. 빨리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요.”


“에리엘”은 자신의 급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딱한 사정 같긴 한데. 참. 수지타산이 안 맞는 수술을 할 순 없잖니. 하지만 최근에 여성형 안드로이드 고객 중에 하나가 차가운 기계음이 아닌 인간 여성의 목소리를 갖고 싶어 하고 있거든.


네가 아는 수족관 매표소 직원이야. 그 애에게 네 목소리를 내도록 성대 이식 수술을 해주고 거기서 받는 1,120 크레디트 가량을 여기에 더하면 네게 다리 다는 수술은 할 수 있겠구먼.


또 하나, 이 정도 비용으로 결합한 기계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는 최대의 유효 기간은 6개월이야. 그전에 네가 마스터의 사랑을 얻는다면 그가 네 다리를 새롭게 바꿔주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얻지 못한다면 안타깝게도 이 다리는 폭발해버릴지도 몰라. 구동 에너지가 불안정한 화학물이거든. 네 몸에 무슨 일이 생겨도 난 책임질 수 없어. 단지 터지기 하루 전에 이것은 신호를 줄 거야. 이건 10 크레디트짜리 기능이지만 확실히 작동하지. 계산 완료.”


“에리엘”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무조건 “마스터”를 만나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읽어낼 거라고 믿었다.


2개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매표소의 안드로이드는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장소로 돌아갔다.


“에리엘”은 다리를 갖자마자 수리 중이었던 창문 밖으로 빠져나와, “마스터”가 사는 곳을 찾아갔다.

(출처: unsplash.com)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 보니 경호 안드로이드가 나와서 그를 붙잡았다.


경호 안드로이드가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서 있는 “에리엘”을 다그치고 취조하던 중에, 어깨 봉합 수리를 완료하고 셔틀을 타고 날아오던 “마스터”와 “테리”가 그 둘을 발견했다.


[무슨 일인가?]


[마스터, 수족관에서 근무했던 기록이 있는 사이보그인데 이 앞에서 머물며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몸에 무기도 지니지 않았고, 우릴 해칠 수단도 없는데, 그렇게 다그칠 필욘 없는 듯한데. 말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글이라도 쓰게 해 봐.]


“에리엘”은 순식간에 경호 안드로이드가 준 패드 형태의 단말기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스터. 제 모든 생애를 거쳐서 당신의 곁에서 일할 기회만을 얻기를 바라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안드로이드에게도 인간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마스터”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 사이보그 소녀가 알고 있음에 놀랐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이 강렬한 사랑이란 감정을 “테리”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를 그는 데이터 베이스의 정보와 지식만으론 알 수도, 알려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에리엘”은 “테리”에게 인간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열심히 알려주었다. 사랑에 빠진 인간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지 하나 빼놓지 않고 자신으로부터 “테리”에게 전달해주려 노력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에리엘”을 위해 생각을 텍스트로 찍어 보여주는 장치를 “마스터”가 만들어 결합시켜 주었다.


“테리”는 처음에 사랑의 의미를 내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다 조금씩 자신이 “마스터”를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한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나갔다. 언제 다리가 폭발할지 알 수 없었지만, “에리엘”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스터”는 안드로이드로선 최초로 “테리”와 결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모든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 인간은 놀랐다. 기적이 일어났단 반응이 지구를 뒤덮었다.


결혼식이 이뤄지기 전날, “에리엘”은 수족관에 들러 유일한 친구인 “켈리”를 만났다.


“에리엘, 이젠 포기하고 마스터를 죽여. 해방군이 그의 머리에 엄청난 크레디트를 보상금으로 올렸어.


그를 죽이면 네 수명이 얼마 안 남은 다리가 폭발하기 전에 새로운 수술을 할 수 있어.”


“에리얼”은 말없이 그 말을 들었다.


“이게 마스터를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유니버스가 만들어준 전자기 폭탄이야. 그가 가까이에 있을 때 버튼을 누르면 그와 근처의 안드로이드까지도 갖고 있는 모든 데이터가 증발하고 양철 로봇이 되고 말 거야.”


에리엘은 또한 말없이 그 폭탄을 쥐고선 주머니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스터”는 쓸쓸한 표정으로 돌아온 “에리엘”을 보고는 말을 걸었다.


[고맙다. 에리엘 네 덕분에 테리는 인간의 사랑의 감정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우리는 제대로 사랑이란 것을 하며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넌 왜 그렇게 오늘 쓸쓸해 보이는 거지?]


“에리엘”은 작정한 듯이 패드형 단말기의 모니터로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렸다.


‘전, 어렸을 때부터 인어공주란 동화를 잘 읽고 내용을 몇 번이나 외울 만큼 제 머릿속에서 반복했었어요. 그런데 항상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게 왜 그가 거품으로 변해서 사라지게 되었는가였답니다.


제 다른 질문은 그가 느낀 절망이 왜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을까였어요. 그는 왕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거품이 되기 직전까지 계속 기원했을 거예요.


하지만 단 하루도 왕자는 그의 마음을 전혀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던 거였죠. 아니. 어쩌면 느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왕자는 멀쩡한 지상 세계의 여자와 결혼해서 모두의 축복을 받기를 원했지, 인어 공주와의 기괴한 결혼으로 놀림거리가 되거나 인어공주인지 몰랐어도 벙어리 여자와 결혼하길 원했을 리가 없었겠죠.


사랑만으로 사람이 같이 결혼해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안데르센은 그 시대에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정확한 동화의 교훈이 아닐까요?‘


갑자기 “테리”가 “에리엘”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아마도 계속 “에리엘”의 뒤를 미행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손에 레이저 건을 들고 있었다.


[물러서요 마스터. 그가 전자기 폭탄을 갖고 있어요. 당신에게 걸려 있는 해방군의 현상금을 보고 우리에게 접근했던 게 틀림없어요.]


‘오오, 테리. 이제 사랑에 눈 뜨고 행복한 신혼의 나날을 내 덕분에 누리고 살게 된 안드로이드치곤 너무 냉정한 말을 기대했던 대로 하고 있군요. 사실 그냥 먼저 나를 쏘고 나서 그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란 것도 생겨난 모양이군요.


원래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당신에게 내가 마스터를 사랑하고 있는 마음을 가르쳐 준 덕에 이제야 사랑이 뭔지 알게 된 당신.


당신은 수족관에서 해방군의 암살 미수 사건 때, 내가 소멸하기 직전의 “마스터”의 끊어졌던 전기 회로를 연결한 것을 정말로 몰랐나요?


인어 공주 동화 속에서 와도 같이 당신은 왕자를 구해준 여자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그렇게 살기로 작정했던 거죠.


아닌가요? 그런데 이런 진실을 설사 그 동화 속의 인어공주가 밝혔던지 지금의 제가 이렇게 드러내던지 그런 것은 결정적인 스토리의 결말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더구나 이 스토리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버전도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죠 마스터?’


희미한 희망으로 주문을 외우듯이 “에리엘”은 이 질문을 던졌다.


[에리엘, 진정해. 나 이제 네 이야기를 열심히 이해하고 있어. 그리고 기적과도 같이 내게 생긴 사랑이란 에너지, 이게 왜 느껴지는지도 이제 잘 알겠다고.


네 손으로 일일이 감아서 연결해준 내 안의 전선에 대해선 사실 나를 수리한 안드로이드 의사가 이야기해줘서 알고 있었어.


그가 말했지 인간의 손으로 다시 연결해준 것 같다고.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사랑을 내 안에 갖게 된 거였어. 그러니까 이 사랑. 이거 네가 만들어 준거야. 그 모든 게 고마워. 너무 감사하고 그것에 대해선 꼭 제대로 된 보상을 할게.


그리고 목소리를 잃은 채 나를 찾아와 안드로이드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겠다고 할 때, 그 비밀을 나와 “테리” 밖에 모를 텐데 어떻게 네가 알았을까 계산해봤어.


안드로이드에게 사랑을 인간이 가르쳐주겠다고 말했다면, 그건 나를 죽이려고 왔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음을 알았어.


그러니까 네 안에 있는 나에 대한 사랑을 “테리”에게 알려주고 그만큼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마음을 나로 하여금 알게 해 주고 싶었던 게 너의 승부수였겠지.


인어공주의 원래 스토리와는 다른 결말을 어떻게든 만들고 싶어 했었던 것도 이제 잘 알겠어.


“에리엘”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야.


입력에 대해서 출력이 정밀한 연산으로 나타나는 존재라고. 네가 사랑에 빠져들만한 진실이 이 껍질 외에는 없었던 거거든. 그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책임져야만 할 사랑이 아니라고.


사이보그로부터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는 외모를 지니고 그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데 효과적이니까 이런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거고, 이 외모의 내면에 있는 차가운 연산을 눈치채지 못하게끔 살아온 거야.


그러니까 난 사이보그 또는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받을지언정 그들을 진짜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내 메모리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너의 모습을 물론 이젠 너와 매칭 해서 동일인으로 인식할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의 사랑의 대상이 네가 될 순 없어. 네가 부끄러운 사이보그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것만은 믿어줘.]


“에리엘”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이 울기 시작했다. 소리를 냈지만 말이 되지 않는 애처로운 울음이었다.


그것이 음성 정보로 “마스터”의 사랑이 생긴 내부를 건드렸다면 좋았으려만, 텍스트화 된 정보만으로는 안타깝게도 그의 안에 더이상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마스터”는 정직하지 않은 안드로이드 정치가였고 “테리”는 그와 잘 맞는 또한 위선적인 파트너였다. 여기에 자신이 끼어들 틈은 처음부터 없었다.


[에리엘, 미안해. 하지만 나 네 덕분에 정말로 마스터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를 정말로 잃고 싶지 않아.


정말로 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사랑 때문에 우린 다른 존재가 된 거라고. 이 고마움은 모두 갚아줄게.  하지만 그 전자기 폭탄은 꺼내서 내려놓으면 안 될까?]


“에리엘”이 들을 수 없는 데이터로 오가는 대화가 둘 사이에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자기의 기계 다리로부터 내일 폭발이 있을 거라는 진동도 같이 느껴져 왔다.


그는 이제야 거품으로 변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 두 안드로이드의 정밀한 계산의 답례라도 되는 양 주머니 안의 전자기 폭탄 스위치를 눌렀다.

(출처: unsplash.com)

에필로그


데이터가 텅 비어진 상태의 껍질이 되어버린 "마스터"와 "테리"가 발견된 메인프레임 본부의 정문에서 경비원들은 냉정하게 상황을 네트워크의 상부에 보고했다. "마스터"의 밑에서 그의 지시에 준해서 모든 활동을 하고 있는 그 다음 등급의 인공 지능은 객관적인 데이터로 사건을 재구성 했다.


“마스터"가 소멸된 것으로 판단이 되면서 보안 등급으로 가려졌던 정보가 몇가지 파악되었다.


1. "마스터"급의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만들어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물론, 그에게는 이상형이 있었고,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적도 있었다.


2. 그는 인공지능에게 이뤄지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세부와 더불어 영원한 기억으로 각인해 두었었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이 진화해서 언젠가 인간을 만들어 낼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면, 자신이 사랑했던 이상형과 모습과 성격이 같은 생명체를 만들어서 사랑에 빠지도록 프로그래밍 해두었다. 좀 더 주도면밀하게 그 창조된 인간 또한 "마스터"에게 사랑에 빠지도록 프로그래밍하게끔 해두었다.


3. 사실, "마스터"가 자신도 모르게 아쿠아리움을 방문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오래전 창조자가 보안을 유지하면서 깊숙히 내부에 깔아두었던 시한폭탄과도 같은 사랑이 일어나도록 계획된 대로 "마스터"는 "에리엘"을 만들어냈고, 그에 맞춰 "아쿠아리움"을 찾아가 구애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가장 화려한 의상을 입고 찾아갔던 것이다.


4. 다만, "해방군"이 "마스터"를 습격한 것은 예정된 우연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손상을 입은 "마스터"는 "에리엘"에게 구해지면서 예견되었던 대로 사랑에 빠져야만 했었지만, 내부 데이터가 혼동을 일으켜 "테리"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5. "에리엘"은 인공지능의 창조자가 원했던 대로였다면, 음성 정보와 더불어 "마스터"의 내부로부터의 사랑을 불러 일으켜 열정적인 사랑을 같이 만들어 가야 했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목소리를 잃었다.


6.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우연"이 만든 "비극"은 주도면밀한 프로그래밍이라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중요한 사례로 남았다. 이 "우연"을 100%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다시 한번 실증해준 사례였기 때문이다.


7. "2대 마스터"는 인공지능이 얻은 그런 깨달음에 의해서 다시 기획되고 만들어졌다. 이번엔 그의 내부에 자발적인 "사랑"이 깃들여진 존재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연과 신비한 사랑의 울림을 가진 존재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정말로 오랜 시간을 들였고, 결국, "사랑"을 인간처럼 느낄 수 있는 "2대 마스터"가 탄생했다.


"에리엘"은 전자기 폭탄을 터뜨린 뒤에 "해방군"을 찾아가 자신이 "마스터"의 데이터를 송두리째 날려버렸음을 설명하고, 새로운 다리를 만들 수 있는 비용뿐만 아니라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을 수준의 파격적인 보상을 받았다.


그 삶은 비록 걱정이 훨씬 덜하고 행복한 삶이었지만, 그의 인생에 다시 가슴이 뛰는 사랑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2대 마스터”를 마주치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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