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기대했던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
인공 지능이 지배하는 지구에서 지하 깊숙한 곳의 인류 거주 지역의 다소 오래되어 보이고 초라한 컨테이너 형태의 기지의 한편에서 이제 막 “테레사”의 5번째 아이가 태어나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는 아이를 어떻게든 많이 낳을 것.’
해방군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알렉산더”의 명령이었다. 식량은 어떤 방식으로든 조달이 가능했고, 의류와 거주지를 꾸미는 것도 거의 무한대로 발달한 과학 문명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지상을 맘대로 활보하기가 어려운 것이었지, 해방군의 지하 캠프는 비교적 인공 지능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다.
일단 인공 지능 지도자는 몇 번의 세대교체 또는 버전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인류를 박멸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원한다면 언제든 가능하겠지만 그래 봐야 그들이 없는 세상은 “재미가 없는 세상”이 될 뿐이다.
그렇다고 지상을 활보하고 멋대로 시스템에 손을 댈 수 있게 만든다면 다시 주인이 되겠다고 난리를 칠터이니, 거주 공간을 만들어주고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21세기보단 살짝 한세대 후행하는 문명과 문화를 남겨 준다면 인공 지능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를 선망하고 부러워하는 집단이 바로 옆에 있으니 안드로이드들의 행복감은 올라간다.
인류는 교육 제도도 유지하고 경제 활동을 영위했으며, 방송국과 교통수단, 유원지, 수영장, 쇼핑센터, 영화, 뮤지컬, 연극 등 20세기까지의 문명이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것을 깊숙한 지하 거주 구역에서 누렸다.
“테레사”와 남편 “죠셉”은 “알렉산더”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능력 있고 똑똑한 아이가 많이 태어날 것이고, 이 내부에서 지난날의 찬란한 문명을 다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면 지금의 인공 지능이 만든 세계를 누르고 다시 지구의 주류로서 복귀할 날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꿈꿨으며 그대로 행동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의 모습은 다른 아이와는 다르게 머리가 신체에 비해 너무 컸고, 눈은 그 머리 크기에 맞게 또한 너무 컸으며, 귀와 입, 팔다리도 너무 길었다.
등의 양 어깨에 삐죽 솟아 오른 뼈는 괴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기형아 같았지만 그렇다고 생존에 문제가 있는 형태는 아니었다.
본격적인 핵전쟁도 없었고 신체 변화를 초래하는 방사선에 노출된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흉측한 모습의 아이가 태어났을까? 모두가 경악했다. 다른 아이들과 너무도 다른 생김새였다.
그 이후의 아이는 멀쩡하게 태어났고 마지막 일곱째가 태어날 때도 그런 이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테레사”와 “죠셉”은 그에게 “에인절”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런 이름이 어쩌면 그를 다른 모습으로 자라게는 못 만들더라도 차별당하며 살아갈 미래에 그가 버틸 힘을 줄 것이라 믿었다.
“어이, 다크 에인절. 우릴 언제 잡아먹을 거야?”
당연히 그의 형제자매는 그의 괴상한 생김새를 놀려대었다. 이름의 뜻대로 착하기만 한 그는 멍하니 당하고만 있었다.
슬펐지만 그는 남과 다른 흉측한 외모를 가진 대신에 남보다 아름답고 선한 마음씨를 가졌고 그것만큼은 자신에게 힘을 주었다.
그는 자신이 정의롭고 공평무사하며, 참고 인내하고 배려하며 공존하는 능력이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라고 느꼈다.
거울을 보면 남과 다른 모습에 주눅이 들고 그 누군가로부터도 깊은 사랑을 받을 수 없을 거란 절망감이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갈 힘을 내부에서 얻었다.
그가 정식의 교육 과정을 밟으러 들어가기 전까지 그는 정말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며 잘 살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를 쳐다보는 모든 아이들의 눈은 공포와 경멸, 의아함과 무서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형제자매야 웃으며 놀리고 짓궂게 구는 정도였지만 또래의 아이들은 아예 그와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가 해롭지 않은 친구란 것을 알게 될 경우엔 공공연히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었고, 정말로 왕따를 시키고 따돌리는 것도 아무 개의치 않고 행했다.
괴로움을 이기고 성장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고통이 너무나 컸던 “에인절”은 사춘기에 접어든 어느 날 마음의 결심을 했다. 지상으로 나가겠다고.
인류를 하등의 존재로 취급하는 인공 지능이 얼마나 그를 더 못살게 굴지는 뻔했지만 그럼에도 그곳에는 자신의 몸을 기계와 바꿔 다른 외모로 살아가게 만들어줄 기회가 있을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가족을 포함한 인류를 등지고 지상으로 나온 순간 밝은 지상의 조명 아래에서 그는 여기저기에 있는 싼 임금으로 인간을 안드로이드가 부리는 서커스 장이나 술집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안드로이드는 인류와 생김새가 영 다른 그를 보며 마음껏 웃고 즐거워했다. 그들의 인류에 대한 숨겨진 조상을 경외하는 잠재적인 의식을 벗겨내고 그 생김새 자체를 정말 하등한 인류의 증거라고 비웃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차별은 같은 인간끼리의 차별보다는 참을만했다. 오직 쌓여가는 크레디트만이 중요했고.
20세가 되기 전에 그는 꼭 대대적인 기계 결합과 전신 성형으로 영 다른 존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공 지능의 절대자 “2대 마스터”가 지상의 모두와 지하의 인류에게 전파를 강제로 송신하며 지구에 닥친 위기를 전달했다.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하러 오겠다고 지구 밖의 전파망을 통해서 연락을 취해왔다. 그들은 우리 같은 기계와 이야기하지 않고 오직 이 지구의 고등 생명체 하고만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다.
처음에 난 그들이 인류처럼 간단히 내게 제어될 거라 생각했지만, 이미 내가 사고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는 문명을 과시하며 지구 밖의 인공위성의 반을 방금 전에 완파했다.”
인류의 대표인 “알렉산더”가 그 일을 자청해서 떠맡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마스터”가 압도당할 정도의 외계인이라면 인류 중의 어떤 천재도 설득할 수 없는 존재일 텐데 어떻게 협상이 될 것인가란 두려움이 지구를 덮었다.
그 외계인은 지구를 향해 거칠 것 없이 전함을 끌고 내려와 지구 상의 가장 거대한 스타디움에 착륙하여 방송 전파와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고등 생명체의 영접을 기다렸다.
그런데 마침 그 스타디움에서 고된 청소를 하고 밤을 새운 야간 경비 일을 하던 “에인절”과 그들이 마주쳤던 것이다.
너무 더운 날이라 나시 티셔츠를 입고 땀을 흘리며 자려고 했던 그는 무슨 일이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 앞에서 놀란 커다란 눈을 하고 아름답게 뻗은 귀와 하늘하늘 펄럭이는 팔다리를 하고 날갯짓을 하며 공중에 떠있는 멋진 존재들을 보았다.
“뉘시오?”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오?”
“아주 멋진 생김새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
같네요. 허허 나 같은 못난이완 비교도 안될 정도로 훌륭하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오. 우린 당신처럼 아름다운 생명체가 이 지구에 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소.”
“하하하. 마음씨도 아름답네요. 이거 참 당신이 완벽한 존재라고 밖엔 말을 못 하겠네요.”
“저 옆의 거울을 한번 쳐다보고 당신의 그 너무 겸손한척하는 태도를 고치길 바라오. 그런 겸손은 무례잖소.”
“네? 무슨 그런 말씀을. 어디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나요?”
그동안 거울 보는 것을 겁내고 너무 돈 버는 일에만 빠져 있었던 “에인절”은 자신의 외모를 자세히 들여다 본적이 수년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튀어나온 어깨 위의 뼈가 날개로 변해있음을 거울을 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눈은 아름다운 광채로 번쩍 거렸고 팔다리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날개의 펄럭임과 어울렸다. 피부는 빛나고 몸은 가벼웠다. 상쾌한 느낌이 온몸에 퍼지면서 머릿속이 맑아졌다.
금세 자신이 앞에 있는 존재와 같은 훌륭한 외양을 지닌 존재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였다니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당신들과 비슷해졌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우리도 놀랐소, 지구란 별이 너무 사악해져서 현존 인류의 최상 계층의 이익만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 지능에게 결국 정복당하고, 인류의 지도자도 부패하여 나머지 인류가 인공 지능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것을 방치하는 구제불능의 행성인 줄 알았소.
그 증거를 확인하면 그 인공 지능이 지구 밖으로 나와 다른 생명체에게 해를 끼치기 전에 소멸시키려고 했었소, 그러나 우리와 닮은 당신을 보니 차마 그리할 행성은 아닌 듯하오.
우리와 닮은 생명체는 우주 어디에서 만나든 그 땅에 정의와 사랑, 평화, 자유, 평등의 올바른 가치를 펼치는 문화를 일으키지요.
비천한 다른 인류와 그들의 빗나간 수익성과 효율성 추구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인공 지능을 관리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건 바로 당신을 포함한 우리예요.
그러니까 이제 당신을 믿고 우린 다른 행성을 들여다보러 떠나도 될 것 같네요.”
이 모든 영상이 지구 인류의 대표인 “알렉산더”가 도착하기 전에 지구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어머나 세상에 우리 ‘에인절’, 네가 집을 떠나서 저렇게 훌륭하게 변해서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다. 이제부턴 계속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줘. 그리고 이 지구를 지켜줘. 그렇게.”
“테레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낳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겪은 고통을 대신 겪지 못한 아픔을 되새겼다. “죠셉” 또한 그가 겪은 차별과 폭력을 막아주지 못한 아픔을 떠올렸다.
“에인절, 하지만 네가 이 세계에 오늘과 같은 영상을 남기고 나면 모두는 너를 두려워하면서도 호시탐탐 어떻게 너를 외계인과의 협상을 위해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둘 지를 고민하는 자들에게 휘둘림을 당하게 될 거야.
아니면 시기와 질투로 눈먼자들 때문에 더한 고통을 겪거나. 내가 너라면 저 천사들과 함께 이곳을 떠나길 선택할 것 같구나.”
“죠셉”은 자신의 이 생각이 “에인절”에게 전달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혹시,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제가 만약 당신들과 같은 존재라면 저를 가는 길에 같이 데려가 줄 수 없을까요?”
“에인절”은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 또 다른 양상으로 지구 내의 안드로이드와 인류 모두에게 고통을 당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외계로 돌아가 이 괴물이라고 한다든지, 외계인 스파이짓을 한다고 신고한다든지, 보기 싫어 죽인다고 협박하던지 하겠지.’
“정말 우리와 함께 가길 원하나요? 그런데, 지구 이곳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그건, 좀 더 돌아다니다 제가 판단을 내리겠습니다. 정말 구제불능인지 아닌지요. 이곳에서만 나고 자라서 다른 곳이 어떤지 전혀 몰라요.”
“당신이 자릴 비워도 문제가 없을까요?”
“물론이죠. 야간 청소 아르바이트비가 아깝긴 하지만, 큰돈은 아니니까요.”
그는 그들과 함께 지구 바깥으로 전함을 타고 나갔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다시 최소 한 번은 지구를 찾아올 것이다,
그가 온 이후에 지구가 사라질지 아니면 남아 있을지는 그를 괴롭힌 자들이 어떤 일을 지구 밖의 다른 행성 대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저질렀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지구 바깥을 돌고 돌아온 그에게 있는 판단의 근거는 지금과 비교해서 아마도 많이 다른 것이 되어 있으리라.
“알렉산더”와 “2대 마스터”는 서로 외계인이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같이 만났다.
[그 아이가 태어나도록 만드는데 협조해주어서 고맙소.]
“지구를 같이 살리자는 일인데 당연한 협조였죠.”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그들이 지구를 인공 지능이 지배하는 것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때, 바로 그들의 유전자 정보를 확보해 낸 것은 정말로 운이었소.]
“그게 궁금하더군요.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거요?”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이 없는 생명체들이었지. 더위도 타지 않고. 1회용 아이스크림 컵과 1회용 스푼을 주는 가게를 그들의 행성에 오픈해주기로 ‘루시퍼’란 라이벌 행성의 시뻘건 외계인이 찾아와서 제안을 했던 거지.]
“그가 어떻게 당신을 찾아왔던 거요?”
[그건 알 것 없고. 그 가게를 차려서 그들이 버린 스푼에서 유전자를 추출했소.]
“테레사가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그 정보로 만들어진 유전자를 죠셉과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태아에 주입하게끔 협조할 때 사실은 반신반의했소.
외계인과 같은 아이를 만들어 내겠다고 제안하곤 생체병기라도 우리 사이에 만들어 넣겠다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가기도 했죠.”
[암튼 우린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제대로 된 일을 한셈이고, 에인절이 돌아올 때 어떤 생각을 하며 돌아올지를 기다려야겠지.
그런데, 그 루시퍼가 준 앰플도 그 유전자에 들어가 있소. 이게 사실 변수인데. 그게 어떤 역할을 할 건지가 궁금했었는데, 오늘 알았소. 저렇게 같이 떠나게 한 이유라는 걸.]
“기다려봅시다. 루시퍼나 저들이나 지구를 날려버릴 생각이었다면 그냥 날렸지 그렇게 복잡하게 접근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
“알렉산더”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인절”이 이름답지 않게 몰고 올 어두운 기운을 자신도 모르게 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