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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an 01. 2022

<타이탄 그리고 번개 도둑>-그리스 신화의 변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초대장


타이탄 (2010) Clash of the Titans


위의 영화와 이 아래의 영화는 같은 소재에 대한 두 개의 다른 변주이다.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2010) Percy Jackson and the Lightning Thief


트로이 (2004 / 미국, 몰타, 영국)


트로이를 시작으로 한 때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그 모티브로 하는 대작 영화가 종종 만들어졌었다. 트로이에서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스의 남성적, 영웅적 매력을 한껏 빛나도록 만들면서 영웅을 다룬 영화적인 장관을 이루어냈었다면,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은 한껏 귀여워지고 현대화되고 또한 도시화된 신화를 그려내고 있었고 타이탄에서는 데미갓이라는 신과 인간의 중간에 낀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인간의 의지, 인간의 존재 의의라는 주제를 살짝 건드리고 있었다.  


트로이와 나중에 만들어진 페르세우스의 신화를 공통의 소재로 깐 두 영화 간의 간극은 리얼 스토리로 신화를 이해하는가 아니면 신화 그 자체로 상상하는가의 차이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신화가 메말라 가는 세상에 신화 그 자체의 판타지를 그리는 것이 보다 의미가 있는 작업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르세우스에 대한 타이탄과 번개 도둑의 해석은 각각 다르다. (물론 번개 도둑에서의 퍼시 잭슨은 정확히는 페르세우스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영화는 정확히 페르세우스 신화를 그 모티브로 하고 있다.) 


1. 태생 : 타이탄에서는 바람둥이 제우스의 아들로 그리고 있지만, 번개 도둑에서는 포세이돈의 아들로 그려지고 있다. 포세이돈의 아들이 된다면 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고, 제우스의 아들이라면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뒤에 후광처럼 깔아둘 수 있다.


2. 신들 간의 위계질서: 번개 도둑에서는 제우스로부터 그 아래의 신들 모두에게 온전하게 갖춰져 있다면, 타이탄에서는 하데스와 반목하는 제우스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권력을 위한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3. 신적인 능력에 대한 주인공의 자세: 반신반인으로서의 데미갓이 가진 신적인 능력에 대해서 번개 도둑에서의 페르세우스는 이를 남용하고 즐겨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타이탄의 페르세우스는 (결국에는 사용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단지, 자신이 인간의 편이고 인간을 위해 싸울 것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4. 같은 편의 구성 : 번개 도둑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같은 이들은 데미갓 아르테미스와 반인반 염소 인간 사피루스 그리고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로 그야말로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동료들이다. 타이탄에서 주인공을 돕는 이들은 아르고스의 병사들과 숲의 정령, 그리고 아름다운 반신반인의 여성이다. 


5. 주인공의 인간 가족 : 번개 도둑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주인공을 신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악취를 가진 남편을 맞이하여 온갖 고생을 감수한다. 타이탄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이미 죽어 버린 상태이고 주인공을 양육했던 인간 부모와 여동생은 하데스의 공격을 받아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6. 주인공의 적: 번개 도둑에서 주인공의 적은 제우스와 제우스와 포세이돈 사이를 이간질해서 전쟁을 일으킨 또 하나의 데미갓이다. 타이탄에서 주인공의 적은 제우스를 뛰어넘어 최고의 신이 되고자 하는 하데스와 하데스의 심복인 크라켄이다.  두 영화에서 주인공의 공통의 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메두사이다. 우마 서먼이 연기한 번개 도둑에서의 메두사는 살짝 불쌍해 보이지만, 타이탄의 메두사는 CG로 만들어진 관능적인 매력을 제외하고는 온몸이 뱀처럼 생긴 탓에 동정심 같은 것은 잘 생기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저주받은 신화 이야기를 듣는 중에는 잠시 동정심이 생기기는 해도)  


CG나 그래픽의 측면에서 번개 도둑은 타이탄에 비견할만한 영화는 되지 못한다. 단지, 현대화된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인정해 줄 만하겠지만, 그 이상 더 특별히 인정해 줄 만한 부분은 없다. 타이탄은 이 시간 현재 국내 최고의 흥행작인 동시에 번개 도둑을 보았던 잔영 같은 것이 살아남지 않도록 압도적인 스케일의 화면을 선사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3D로 못 보았던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타이탄을 그냥 2D로 보았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샘 월딩턴이 만든 아바타에서의 이미지가 다시 타이탄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페가수스라는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나는 모습은 아바타에서 나오는 익륭같은 생김새의 새를 타고 나는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마찬가지의 혼동은 내가 인간인가 아니면 다른 존재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동. 터미네이터 4에서도 샘 월딩턴은 내가 사람인가 아니면 로봇인가의 혼동을 겪는다. 결국 정체성 혼동을 그려내는 전문 배우로 그의 존재 가치가 정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자기 복제의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이러한 연기 외에 다른 연기를 하는 모습은 언뜻 상상이 되지 않는 배우가 되어 버렸다. 만약 이러한 소재의 영화가 없다면 그는 출연할 작품을 찾기가 힘들게 될 것이다. 


타이탄을 보고 나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야말로 만점의 영화 감상이라고 하겠다. 번개 도둑은 아마도 그리스 로마 신화 원본을 보고 싶다는 욕구까지 관객을 유도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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