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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an 01. 2022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3D가 무용한 영화

3D 그래픽이 없어도 좋았을 것 같은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0) Alice in Wonderland


기대를 많이 하고 본 영화가 실망스러우면 이른바 돈이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 비싼 돈 내고 3D로 보지 않고 GS 마켓에서 저렴한 할인권으로 2D를 보았던 탓에 다행스러웠다는 말을 하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2010년 당시). 팀 버튼의 작품에 대해서 수많은 마니아들이 존재하고 마치 감독의 페르소나처럼 등장하는 조니 뎁 같은 추종 배우 세력까지 있을 판이지만 난 이번으로 두 번째, 수년여의 세월을 거쳐서 다시금 팀 버튼의 영화를 걷어차는 글을 쓰게 되고야 말았다. 20년 전에 쓴 혹성 탈출 비방의 글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팀 버튼은 최근의 영화들을 통해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오로지 언제 개봉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배트맨 1과 2를 만들 때의 팀 버튼은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감독이었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물론 흥행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한 수가 높은 것으로 보이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배트맨 더 비긴스"와 "다크 나이트"가 무참히 팀 버튼이 만든 1, 2편에 대한 기억을 뭉게 놓았지만, 크리스토퍼 놀런 버전의 베트맨과 팀 버튼 버전의 배트맨은 표현주의냐 사실주의냐 또는 판타지냐 리얼 소설이냐의 큰 차이점이 있기에 판타지 영화의 제왕으로서의 팀 버튼의 위업은 그대로 존중해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배트맨 (1989)


배트맨 2 (1992) Batman Returns


슬리피 할로우, 찰리의 초콜릿 공장, 스위니 토드, 유령신부, 빅 피시, 크리스마스의 악몽 등의 영화에 대해서도 사실 난 박수를 아직도 치고 있는 관객이다. 다만, 욕을 하면서 "왜 이렇게 밖에 못해? 더 잘할 수 있으면서?"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혹성 탈출, 화성 침공 그리고 오늘 와서야 나온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이다. 


혹성 탈출 같은 경우에는 이 리메이크작을 만들 기회를 그에게 떠넘긴 제작자가 팀 버튼의 세계관이 가져올 원작과의 커다란 균열을 미리 감잡지 못한 것이 더더욱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오늘의 나지만, 이번 영화는 이제 정말로 팀 버튼은 더 이상의 독창적인 판타지를 제조할 수 있는 불굴의 능력을 상당수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들 정도였기에 뭐라 변명해줄 말도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현실의 범용한 감독들과 타협해서 이제부터는 난 튀지 않을래라고 굳게 다짐하고 영화를 만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엘리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일종의 경이감이나, 해소감이라든가 지루하고 답답한 현실을 대체하는 판타지를 보는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엘리스는 이전에 꾸었던 꿈을 현실로 경험하게 되었지만, 이 꿈이 현실로 경험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은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다. 팀 버튼은 도덕적인 훈계나 교훈을 영화로 주고자 하는 성향의 감독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는 상상력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미국 국민들에게 훈계조로 말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어서 결국 이 마지막 장면에 와서 나는 열 받는다. 그따위 흔한 말을 다시 듣자고 당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게 아니야......  


그냥 극단에 가 닿는 것 같은 기묘한 그의 상상력이 자유롭고도 괴기스럽고 신기하게 와닿아야, 이게 팀 버튼표 영화야라고 감탄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적당한 정도의 상상력과 적당한 정도의 흥분감, 적당한 정도의 연출력, 적당한 정도의 세트, 적당한 정도의 판타지만을 디자인해서 우리가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결말을 향해 너무도 뻔한 곡예를 하며 달려간다. 


아바타를 보고 난 후의 관객들이 웬만한 판타지에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된 것이 결국에는 문제인 걸까? 3D로 개봉되기를 희망하여 만들어졌건만, 2D를 보면서도 든 생각은 이게 3D여도 그렇게 환상적이고 재미있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이른바 최신의, 색다른 영화적 시도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본 햄 카터의 머리 크고 몸 작은 모습이 최신의 영화적 기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그게 없다면 팀 버튼만의 색상, 그의 배우들만의 색깔이 나타나야 하는데 본 햄 카터의 기괴스러움과 앤 해서웨이의 자뻑스러운 모습을 빼놓고 조니 뎁의 이전 영화에서 나타났을 뿐인 자기 이미지 복제와 주인공 여배우의 이름마저 궁금해하지 않게 만들 정도의 평범함이 영화 전반을 지루하게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을 말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 저렴하게 또는 IPTV의 무료 영화를 찾아 보던지,  큰 기대는 품지 않고 조용히 특별한 사람보다는 조금 평범한 관계의 사람과 함께 조용히 보다가 이제 시간 되었으니 다른 일 하러 나가자 하는 기분으로 보는 게 아쉬움이 최소한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물론 팀 버튼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의 수작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영화가 팀 버튼 영화를 보는 최초의 작품인 분이 있었다면 추천한다 배트맨 1과 2를 다시 찾아보시기를. 그렇다면 이 감독이 가진 진정한 재능의 흔적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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