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변주를 타고 영원히......
<2003년 12월 09일에 쓰고
2015년 09월 03일 퇴고>
사랑은,
그렇다.
사랑을 예찬하는 영화는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동물과 인간의 사랑, 사물과 인간,
인간 자체가 갖고 있는 무엇과의 사랑,
외계인과의 사랑, 상상 속의 존재와의 사랑.
그리고, 이제 가상현실을
사랑할 수 있는,
또는 기계문명이라는 것까지
인간의 확장된 개념으로
사랑하는 인간마저 나타났다.
블레이드 러너의 SF적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의 최 한계점까지
매트릭스는 다가간다.
프로그램이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인간이 프로그램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사랑하여 '희생'까지 한다.
이러한 종류의 숭고의 영역까지
다가갈 수 있는 인간의 의지,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흡수하여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그 무궁무진한 사랑의
소화력에 감탄한다.
인간이 태초에 인간성 그 자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우리라는 인류는
이 곳에 거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기계문명을 심화시키고,
그에 연관된 사유와 지식들을
끊임없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도 같은 인류와
우리를 둘러싼 금속조각들,
그리고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끊임없는 대화의 소재들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는 사랑하기에
이 모든 것을 만들어온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용의 공간으로부터
수많은 것들을 끄집어 내온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의 유용성을
발견해내는 다름 아닌 '사랑'의
힘을 갖고 있는 존재
그것에 다름 아니다.
메시지는 그렇게 이해된다.
네오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영화 속의 인류는 살아 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것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었을 것이지만,
네오에게 사랑이 있으므로 해서
프로그램에게도 사랑을 부어 넣고,
인간에게도 온전히 사랑하고
살 수 있는 조건을
찾을 수 있었다라는 메시지.
내 해석은 단순함의 극치이고,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담론 속에
놓여있는 영화를 이해하는
아주 유치 찬란한 시도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영화가 제공하는 유일한 안식처인
사랑이라는 메시지는
이 영화가 상업주의의 매트릭스에 갇혔건,
자기 논리의 붕괴와 상상력의 한계에
봉착했건 간에 소중한 소리로 들려온다.
그것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프로그램과 인간을 동시에 사랑하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영화사 속에서 반복되어온 메시지의
또 다른 변주를 한번 더 연주한다는 것이?
워쇼스키 형제는 영화사,
그리고 인류의 역사 속에
또 한번 알려주어야 할 주제를 이야기했다.
그 사랑이라는 주제를 잃지 않는
놀음이라면 놀음이라는 것을
쉼 없이 반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때때로
마치 통통 튀어 사라지는 요요 볼처럼
순식간에 우리 안에서 알게 모르게
꺼져 사라져버리거나
다른 것으로 변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는 사랑을 위한 놀음이었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이 영화를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으며,
이 영화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을
조금은 더 다정한 시선으로 쳐다볼 수 있다.
사랑의 맥박이 멈춰버린
망자처럼 사는 시간이 조금은 길었더라도.
매트릭스 3 - 레볼루션 (2003)
The Matrix Revolutions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쉬번, 캐리 앤 모스, 휴고 위빙
개봉: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 액션, SF | 2003.11.05 | 15세 이상 관람가 | 12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