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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y 21. 2023

<교섭>-원만한 영화

잘 만들었지만 관객의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영화를 원만하게 만들었다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황정민이 외교통상부 기획조정실장으로 현빈이 국정원 요원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우리나라가 2007년도에 겪었던 개신교 소속의 "샘물교회 선교단"이 당시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지역 여행에 대한 경계를 무시하고 입국하여 무리한 선교 활동을 하다 극단주의 테러 단체인 "탈레반"에게 납치당하고 일부 교인들이 살해당했지만 나머지는 결국 정부의 교섭을 통해 살아서 돌아오게 된 사건을 다룬다.


당시에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었는데, 이 같은 내용은 사실 집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이 사건을 다시 복기한 내용을 웹상에서 찾다 보면 "샘물교회"라는 단체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끌어 오르는 것을 잠시 느낄 수 있다. 이걸 끄집어냈으면 영화 제작사 측과 "샘물교회"를 포함한 개신교 측과 충돌은 벌어졌겠지만, 어쩌면 흥행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종교적 영웅주의나 무비판적 광신을 다루면서 들어가서 잡혀 있는 인질의 관점에서 심경이 변화해 가는 구조를 택하고, 이 구조에 맞는 배우를 투입해서 포커스를 두고,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와서 이들이 구조되는 방식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싶고, 그랬다면 감독의 장기가 제대로 발휘되었을 것 같다.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하지만 영화가 공격한 쪽은 당시의 한 방송사가 생방송으로 교섭 당시에 해당 단체가 "봉사" 단체가 아니라 "선교" 단체임을 방송하는 바람에 교섭 중 문제가 생겼던 부분과 제대로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 갑자기 투입된 고위 인사가 인질 구출 작전을 펴겠다고 하거나 협상 자체를 등한시하려고 했던 내용 등이다.


이 사건을 영화화할 때 당시에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주제가 무엇이었고 타국의 여론이 이에 관련된 협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여겼었던 것을 간과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 교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목숨을 아끼지 않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영웅들이 있었다는 것이 보여주고자 한 주제였겠지만, 그 부분이 실화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 수준까지 너무 전형화되었고, 감동을 주는 수준까지 관객을 끌고 가기에는 다른 영화에서 유사한 것을 너무 많이 봤다는 느낌이 극을 지배하고 있었다.


젊은 시기에 보다 용기 백배하고 사회 문제를 스크린에 보다 치밀하게 표현하기도 했던 "임순례" 감독에게도 관록이란 것이 붙어 있기 때문인지, "무리한 선교활동을 목적"으로 위험지역에서 활동하다 교인도 죽고, 국가의 위신도 실추되고, 협상을 위해 세금도 축났던 이 사건에 대해서 담담하게 팩트를 그리면서 그들이 무리한 선교활동을 했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았던 것은 영화 외적인 쓸데없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한 주연 배우 2명이 각기 성공했던 흥행작에서 맡았던 배역에 근접하게 영화 속에서 배우의 연기를 전형적으로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서 무난한 극의 진행을 추구한 것처럼 보였다. "황정민"이 "공작"에서 했던 "흑금성=박석영"역할이 떠오르고, "현빈"은 "공조"에서 나왔던 북한 특수부대 형사 "림철령"이 떠오르는 연기를 그대로 가져와서 했다. 아마, 감독과 제작사가 그대로 하라고 주문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흥행을 시켜야만 하는 한국에서는 "블록 버스터"급의 작품이었으므로 가장 실수하지 않을 방법을 감독 입장에서는 제작사와 같이 꼼꼼하게 찾아 챙겼을 거라 생각한다.


임순레 감독의 작품은 이 영화 전에 "세 친구"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두 개 밖에 보지 못했었는데,  "세 친구"란 작품에서는 이른바 천재성이 번득이는 것을 봤던 어렴풋한 느낌이 남아 있다. 그리고 "우생순"은 대중적인 센스를 제대로 발휘해서 만든 작품으로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당시 배우들과의 호흡도 굉장히 잘 맞춰졌을 거란 추측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서 보았던 다른 감독과의 차별성인 좀 더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방향에서 영화적 주제를 잘 만들었던 인상을 주었던 "임순례" 감독이 이 영화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송두리째 누르고 그럭저럭 망하지 않을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념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생길 정도로 그런 인상을 내보이지 않았다.


1. 사실 감독을 확인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보는 내내 누군가가 만들었는지 아무런 개성이 나타나지 않았고, 다 본 뒤에도 감독이 누구였는지가 궁금하지 않았다.


2. 그저 누구든 큰 문제없이 영화를 착수받아 작업했던 경력을 기반으로 상업적으로 뚝딱 적당한 수준의 영화 한편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럭저럭 경력 있는 감독 중 누가 맡아도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의 영화란 느낌을 받았다.


3. 개봉 시에 손익 분기점인 350만 명을 통과하지 못하고 164만 명 수준에서 내려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럴만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작품성을 선택해서 심오함이 있었다고 할 수도 없지만, 대중성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만큼 대중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닌 작품이었던 것 같다.


4. 칭찬할만한 부분을 떠올리자면 정말 "욕" 먹을 부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나온 외국인 배우가 정말 하나 빠짐없이 엑스트라급이 아닌 최소 조연급으로 인정받을 만큼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나온 듯 저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량을 보여줬다.


5. 초반부의 폭탄 테러를 받는 장면도 멀쩡했던 차량이 오가는 지역이 순식간에 참담한 폐허로 변하는 장면도 할리우드 액션 영화급에 준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고, "현빈"의 액션이 "공조"에서 나온 것처럼 화려하게 나오도록 오토바이 체이싱 씬이나 총격전 등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도록 잘 찍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기적으로 개봉하는 영화 중에 커다란 손해를 끼치는 작품이 적지 않게 나타나는 코로나 이후의 상황을 보면서 "겁"이 많아진 제작사와 흥행 실패 시의 커다란 후폭풍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이 고도의 두려움을 강박적으로 가지게 된 감독 등의 창작자들이 제대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다른 성공작들과 비교해서 차별화된 흥행 요소를 갖게 되기가 어려워진 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저 성공했던 전작의 스타일을 다시 복제하거나 그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에게 같은 스타일의 배역을 다시금 맡긴다. 영화 속에서 문제의식으로 제기했다가 역풍을 맞을만한 모든 요소를 배제한다. 결국 원만한 스타일의 동글동글하게 여러 성공작의 비스름한 무늬를 지닌 작품이 만들어지게 되고, 그것을 본 관객은 "기시감"이 드는 바람에 그 영화를 잘 봤다고 이야기하기가 힘들어지므로 다른 이에게 그 영화를 추천하지 않게 된다.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한 달 전쯤에 봤지만,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의욕이 지난 한 달 새 전혀 생기지 않을 정도였다. 봤다는 기억이 나타나서 그냥 써내리고 있는 것일 뿐이다. 감독과 배우, 제작사의 프로필에 아무런 특색 없이 얹어져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악순환에 처해져 두리뭉실하게 만들어져서 실패의 기로에 서게 될 영화가 비단 "교섭" 하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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