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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Oct 17. 2023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타임 패러독스

1980년부터 2022년까지 이룬 소설 속 "나"의 정체성 통합의 드라마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책을 읽은 뒤에 뭔가 미진함이 남은 분이 읽기를 추천합니다.


이 소설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 번쯤 보면 좋을 영화가 있다.



1980년에 발표한 중편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1985년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세계의 끝"부분으로 확장해서 등장했다. 그 소설은 그전까지의 "하루키 소설"의 엄청난 도약과 스케일의 확장, 첨단화된 시대 흐름을 넘어선 뇌 속에 데이터를 품고서 움직이는 "계산사"와 더불어 파격적인 소설 작법을 이 세계에 처음이라 느껴질 정도로 놀라운 방식으로 가져왔다.


이 장편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끝에 "하루키"가 쓴 "작가 후기"가 있다. 그 진일보한 충격을 가져왔던 소설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란 작품은 "세계의 끝"이란 소설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란 소설 2개로 터널의 양 끝쪽을 파고 들어가서 결국에는 운좋게도 중간에서 만나는 쾌거를 이룬 것임을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표현"으로 일면 뿌듯해하면서도 겸손하게 적었다.


그런데, 습작 수준에 불과하지만 소설을 몇 편 사춘기 시절부터 띄엄띄엄 써봤던 "나"같은 사람은 안다. 그 작업이 그렇게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임을. 치밀한 구상과 더불어 양 소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양쪽의 스토리가 서로를 보완하고 유사한 흐름을 지니게 만든 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양쪽의 화자가 "나"로 나오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세계 속에 있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의식과 현실 속의 두 곳에서 리드미컬하게 춤추듯 스텝을 밟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소설이었다면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란 소설이 1부로서 선행하고 끝난 이후에 "세계의 끝"이 2부로 나왔겠지만,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각장마다 선후행하면서 동시간 대의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양쪽 챕터를 오가다가 "세계의 끝"으로 통합된 스토리의 결말을 맺는 스타일에 매료된 독자가 엄청 많았다.


그 끝부분에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계산사"인 "나"가 자신의 의식을 잃어간다. 그렇게 의식을 읽어가던 "나"가 "세계의 끝"에서는 자신의 의식 속 세계의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갇혀서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낸 채로 "죽은 생명체의 오래된 꿈을 읽는 일"을 하는 "나"였음이 명확해진다.


그 도시와 의식의 바깥으로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도망가려 하다가 "그림자"만이 외부로 나가는 결말은 당시의 독자 중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결말이었다. 그 신선함을 말하는 당시의 중학생 독자였던 나는 일종의 살떨림마저 다시 되살려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한참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 한번 더 읽을 때도 만족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지금 한번 더 읽어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것이 틀림없으리라 생각할 정도다.


그런데, 그 작품의 일부분이 다시 다른 형태로 하나의 완결성을 가진 작품이 되었다니! 나오자마자 바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독서평을 간추리자면, "하루키"는 이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글 속의 인물과 자신을 오랜 시간을 거쳐서 하나로 통합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소설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 번쯤 보면 좋을 영화가 있다.


그것은 "에단 호크"가 주연으로 나온 "타임 패러독스"다. "나"가 "나"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남편이자 아내고, 할아버지이자 할머니이며, 손자이자 손녀이고, 아들이자 딸이다. 여기에 더해서 "나"는 "나"를 쫓고 있으며, 죽이려 하기까지 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는 그 영화 속에서 하나의 완전히 폐쇄된 고리처럼 통합된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도 다른 양상이기는 하지만 그러하다. "나"와 "나의 그림자"가 하나이듯이 "나"와 "옐로 서브마린 셔츠를 입은 소년"도 하나이며, "나"의 "아니마"이자 "불감증"에 걸린 것 같은 "너"와 "너의 그림자"와 카페 주인은 또한 하나이면서 동시에 "나"와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현실 세계"로부터 추출하여 만들어진 "나"의 내부 세계 속에 세워진 곳이며, 그것은 총체적으로 "나"이다.


"나"와 "소에다"씨, "엘로 서브마린 소년"과도 간간이 대화를 하는 이미 죽은 자인 "고야스" 전임 도서관장은 이 3명을 제외한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죽은 존재다. 동시에 합리적인 이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이란 존재가 "영혼"인지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그것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허깨비"다. "현자"내지는 "무당"이나 "신녀"같은 영험적인 존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의 소설 속의 상징적인 캐릭터가 몇 가지 변주되면서 종합되어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란 작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이 작가가 쓴 산 자와 죽은 자가 그대로 한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설이 화자의 대사를 빌어서 "하루키"가 오랫동안 써온 소설에서 죽은 자가 현실 속에 등장하는 내용을 쓰게 된 중요한 모티브를 주었음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또한 현실과 다른 세계를 오가는 인물을 그리는 작풍은 "저자의 글"에서 "호세 루이스 보르헤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직설적으로 언급한다.


"하루키"는 "나의 소설 속에서 나오는 모든 인물과 설정, 공간은 결국 내 안에서 창조된 것이며, 나 자신 그 자체다."라고 허위 없이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소설 속에서 독특함을 선사했던 생과 사 뿐만 아니라 현실과는 동떨어진 전혀 다른 세계가 현실에 연결되는 스토리의 원조 작가가 누구였음을 밝힘으로써, 그가 처음부터 온전히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시작한 작가는 아니었다는 겸손함을 남긴다.



"하루키"란 작가 자체가 바로
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그가 70세가 넘어간 지금까지 붙잡기는 어려운 소재의 소설 형식이었던 모양이다. 2010년의 "1Q84"에서도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풍의 스릴러나 탐정소설 또는 누아르 같은 느낌이 묻어 있었다. 2017년의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그 느낌은 나름 살아 있지만 여기선 엷디 엷은 편이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과연 그런 느낌이 배여서 살아 있는 것일까? "세계의 끝"부분에서 느꼈던 것과도 같이 "정"적인 스타일로 쓰일 것인가? 이 궁금함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출판되었음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사게 된 또다른 이유였다. 그런 궁금증으로 보다가 계속 정적인 줄로 믿었을 때 갑작스럽게 동적인 형태로 바뀌기도 하고, 그럼 계속 동적으로 가겠지 싶을 땐 정적인 스타일로 변하는 변주에 휩쓸리듯 읽었다.  


본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썼을 때의 약간 불가사의함을 느끼게 하면서 끝을 내린 "세계의 끝"까지 확장되었던 내용은 38년간 잠들어 있었다. 이것을 여러 각도로 틀어 변형시키면서 충분한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진 “그 도시”가 만들어진 이유와 화자가 겪고 있는 자신의 의식 속의 "판타지"를 제대로 드러내면서 확실하게 깨웠다.


이 작품은 "72세"의 노령 작가가 쓴 것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사춘기의 화자와 40대 중반의 화자의 현실감을 생생히 드러내며, 여러 가지 소설 속 장치가 재기 넘치게끔 잘 배치되어 있다. 불가해한 스타일의 유머도 여전히 나온다.


하나 아쉬운 점은 이 시대가 그렇게 변해서 쫓아간 것인지, 아니면, 글에 기괴하거나, 터부시되거나, 여러 의미에서 파격적이고도 관능적인 "성교"를 종종 끼워 넣다가 받게 된 지적에 지쳐 버린 것인지, 남녀 간의 신체 접촉에 관련된 내용은 최소화되었다. 마치 수줍은 청년이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적은 것처럼.


반면 17세의 소년과 16세의 소녀의 대화와, 그 둘 간의 설레임 가득한 느낌을 묘사한 글은 또한 70대의 노인이 어떻게 이런 것까지 세세히 기억해 낼 수 있고 상상해 낼 수 있는 것일까란 의문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소년이었을 때의 시간과 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유지한 채로 생생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하루키"란 작가 자체가 바로 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읽으면 좀 더 흥미진진해진다.


"나"와 "그림자"를 이분화하는 것처럼 "세계의 끝"이 쓰였었지만, 이 책에선 "나"가 "그림자"가 되고 "그림자"가 "나"가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자신의 "페르소나"를 통해서 만들어낸 자신의 가면이 본질인 채로 살아갈 수도 있고, 원래의 자기 자신의 본질을 내세우며 살아갈 수도 있는 복합적이고도 변화무쌍한 정체성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인"인 "우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도 같다.


한때, "가면"을 쓴 우리는 자신을 숨긴 채 "무간지옥"에서 살아가야 하는 불행한 존재처럼 여러 매체와 장르에서 그려져 왔다. 하지만 "하루키"는 우리가 "가면"에 더 많은 무게를 실으면 "가면" 그 자체가 본질인 것처럼 살아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행복한 얼굴의 가면"이라는 내가 쓴 글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서 관심이 갔다.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약간은 슬프기도 하고, 하루키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노년 중에 노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나온 문장이긴 하겠지만, 그는 소설가가 평생에 걸쳐 쓸 수 있는 스토리의 패턴은 몇가지로 한정된다는 이야기를 "작가 후기"에 적었다. 이것이 그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다시 끄집어 내서 쓸 수 밖에 없었던 변명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 이야기를 일부 수긍하면서도 믿고 싶진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완전히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끔 차별화된 또다른 극화를 담은 소설이 그로부터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는 토로인 것처럼도 들렸다. 주변의 7~80대를 경험해 온 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그런 일반적인 "노인"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란 증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진정 위대한 작품이 생의 정말 끝에 만들어질 수도 있는 법인데. 그건 그조차도 미리 재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105세 소설가 폴록, 125번째 책 출간 앞두고 별세, '하루키씨 이 안에는 기사문 링크가 들어 있어요. 제발 읽어 주세요. 아직 40년 더 쓸 날이 남아 있을 수도 있잖아요. 마라톤 계속 하고 계시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줄거리 요약(스포일러 덩어리이므로 감상만을 보실 분은 여기서 멈추면 됩니다.)


1. "나"와 "내가 사랑한 소녀인 "너"가 등장하는 소설로 바뀌면서 "세계의 끝"에서 "그림자"만이 현실로 다시 돌아간 끝부분의 내용이 확장되었다. "그 도시"로부터 세상에 나온 "그림자"가 "자신“이라고 말하는 "너"를 사랑한 "나"는 "그림자"의 생명이 짧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도시의 이야기를 듣게 된 “나”는 그곳에 "너의 본체”가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 "너"가 갑자기 풍랑을 만난 배가 갑자기 침몰하듯이 사라진 뒤에 "나"는 오랫동안 그저 이런저런 관계를 만들면서 살아갔지만, 누구도 진심으로 깊고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다. 그러다 "너의 본체“를 만나러 "그 도시"에 가기를 원했던 "나"는 어느새 40대의 중년에 이르러 갑자기 커다랗게 패인 공간에 떨어진 이후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 도시의 입구에 도달하게 된다.


3. 도시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문지기"는 "나"와 "나의 그림자"를 떼어내서 "나의 그림자"를 도시 밖에서 살게 하고, "그림자"는 자신의 주거지에서 이 "도시"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꿈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물리적인 상처를 눈에 입게 된다.


4. "나"는 원했던 대로 "너의 본체"를 "도시의 꿈을 읽는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었고, 죽은 일각수의 꿈을 읽는 일을 마칠 때마다 "너의 본체"를 바래다주게 된다. 하지만 둘 간의 관계는 "현실 세계"에서의 "나"와 "너의 그림자"만큼 가까워지지 않는다. "너의 본체"에게 "너의 그림자"를 만났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은 "너의 본체"에게 그다지 커다란 인상을 주지 못한다. "너의 본체"의 나이는 사라진 16세 그대로이고 "나"는 "40대의 중년"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5. "나"의 본체로부터 떼어진 그림자는 결국 일찍 죽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나의 그림자"는 점점 쇠약해져 가고 "나"와 "그림자"는 도시의 주민이 두려움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있는 깊은 웅덩이가 현실 세계로 돌아갈 통로임을 깨닫게 된다.


6. "나"는 결국 "너의 본체"가 "너의 그림자"와는 다른 존재임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나의 그림자"와 함께 깊은 웅덩이까지, 마치 생명체처럼 둘을 뒤쫓는 "도시의 벽"을 뚫고서 도착하게 된다.


7. 그곳에서 "나"는 "세계의 끝"이란 소설과 같이 "이 도시"에 남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나의 그림자"만이 웅덩이로 들어가 외부 세계, 곧, 현실을 향해 가게 된다.


8. "나"는 그림자가 붙어 있는 채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그림자"가 "나"가 되고, 아직도 "그 도시"에는 "나의 본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잘못되어 그냥 "나"와 "나의 그림자"가 함께 돌아오게 된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9. 출판 유통업에 종사하던 "나"는 다시 그 일로 복귀하지만, 어느 날 꿈속에서 자신이 현실 세계 속의 "그 도시"와 유사한 형태의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 비교적 긴 길이의 현실과도 같은 꿈을 꾸다 깬다.


10. 그의 꿈에 나온 현실 속 도서관을 찾아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며, 자신의 회사의 후배를 통해서 그 꿈의 도서관과 같은 곳에 취업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다.


11. 외진 한 마을의 도서관 한 곳으로부터 "도서관장" 제안을 받은 "나"는 그곳에 이르러서 자신이 꿈에서 보았던 "베레모"를 자신을 면접하던 "전임 도서관장"인 "고야스"씨가 쓰고 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신임 도서관장"이 되기로 결심한다.


12. 자신과 마찬가지로 외지로부터 남편과 같이 이 마을로 온 "소에다"가 유능하게 도서관 일을 대부분 다 하고 있고, "고야스"씨가 때때로 방문해서 가르쳐 주는 조언으로 충분히 자신의 일을 하던 "나"는 "고야스"씨가 이미 자신이 오기 전에 죽은 사람이었고, "잔존 형태"를 구성해서 찾아오는 "귀신"같은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13. "고야스"씨의 비극적인 가정사를 보고, 그가 도서관에 갖고 있는 집착을 이해한 "나"는 그가 "귀신"의 형태로 계속 나타나는 이유가 강력한 사명감 같은 것임을 감잡는다. 그리고 오직 "고야스"씨만이 배려하고 이해하고 몇 마디라도 말을 나눌 수 있었던 "자폐아"에 가까운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나"의 관심을 끈다.


14. 비상한 기억력과 계산 능력을 갖고 있는 그 소년은 가끔 주변 사람에게 생년월일을 묻고 그 날짜가 무슨 요일인지를 알아맞히며, 도서관에서 멈춤 없이 다종의 책을 읽고서 그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이였다. 그런 그의 특징은 마치 "그 도시의 도서관"같은 곳에서 "꿈을 읽는 일"을 하기에 적합한 것 같다.


15. "고야스"씨의 무덤가에 찾아가 꽃을 두고 자신의 넋두리인 "그 도시"에서의 이야기를 모두 몰래 들은 "그 소년"은 들은 그대로를 하나의 지도로 그려서 "나"를 찾아와 보여주고, 약간의 수정을 가해서 돌려준 이후 "그 소년"은 "나"에게 자신을 그곳에 데려가 달라고 이야기한다.


16. "고야스"씨가 완전히 소멸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를 묻는다. "고야스"씨는 "그 소년"이 굳이 이끌어 주거나 데려다주지 않아도 그곳에 알아서 갈 것임을 알려주고 사라진다.


17. 그동안 외지에서 이 마을에 와 있다는 이유로 동질감을 느꼈던, 유려한 몸매를 지닌 이혼녀 "카페 여주인"과 "나"는 가까워진다. 여러 차례 만난 뒤에 육체적인 관계를 갖고자 하지만 "카페 여주인"이 "성관계"시에 고통을 겪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고, 그 때문에 바람을 핀 전남편과 이혼하게 된 사연을 알게 된다.


18. "그 소년"은 어느 순간에 자신의 부모가 있는 집에서 모든 문이 집 안으로 잠겨 있는 밀실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그 소년"의 아버지가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가 이야기한 "상상 속 도시"에 대해서 "그 소년"이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려주지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19. "그 소년"의 두 형이 "카페 여주인"과 "나"를 찾아와 상담을 하지만, 그 둘 역시 "귀신이 데려가서 사라진 것이 아닐까"란 추정을 할 뿐, 과연 "그 소년"이 어떻게 사라진 것일지 더 깊이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바쁜 현실 때문에 그 마을을 떠나 다시 현실 세계의 도시로 가게 된다.


20. 그 이후 "나"는 “그 도시”가 있는 세계 속에 다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너의 그림자"와 "카페 여주인"이 같이 너와 "성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맺을 수 없는 어떤 상황에 처해진 같은 불모의 존재임을 은연중에 알게 된다. 또한 다른 꿈속에서 오두막집에 허물처럼 벗겨진 "그 소년"의 나무인형을 찾은 뒤에 이 인형에게 귀를 세게 물린다. "꿈을 읽는 도서관"에서 "너"로부터 치료받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는다.


21. "나"는 자신이 꿈을 읽고 "너"를 바래다주러 다니는 길에 "그 소년"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소년"은 "나"를 은밀한 공간에서 만나게 된다. 다른 쪽의 물리지 않은 귀까지 깨무는 의식을 행하면서 "나"의 안으로 들어온 "그 소년"은 "나"의 안에서 대신 "꿈"을 더 명확한 의미를 파악하면서 읽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소년"이 "나"이며 "나"가 "그 소년"임을 깨닫는다.


22. "꿈을 읽는 일을 그 소년에게 줄 수 있게 된 나"는 이제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있음을 듣게 된다. 잠시 더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리겠다고 한 "나"는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는, 오로지 현재만이 있는, "그 도시"에서 얼마든지 오랜 시간 생각할 수 있단 "그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방안을 비추는 촛불이 꺼지기 전에 나가기를 원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안 다음, 곧, "촛불"이 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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