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뻔하고 잘 알아먹게 쓰면 사라지는 애매모호함의 매력을 얘기하다
책을 보는 내내 계속 예제로 나오는 글이나 창작물의 공통점은 너무 확실하고 뻔하게 쓰인 글로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제공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ChatGPT, 생성형 인공지능이 나오는 시대에 우리가 문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그 내용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답변이 나오는 것이 우리 일상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을 현시점에서 극명하게 갈라놓는 가장 큰 차이는 자신의 무지를 제대로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측면 같다.
물론, 여러 면에서 "인공지능"이나 수많은 "검색 시스템"은 모르면 모른다라고 오히려 인간보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인정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무지를 인정한다기 보다는 답이 없다는 답에 가까워 보인다.
기계인 이상 확실한 답만을 추구하는 것이 "인공지능"의 본질이라면, "사람"은 하나의 그림에서 "오리"와 "토끼" 양쪽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삶 속의 "미스테리어스함"과 공존할 수 있는 존재다.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를 만듦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이 만들어진 내용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끝까지 끌려가고 반복해서 다시 접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스토리에 대한 해석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책을 통해서 하나 확실하게 들려온 메시지였다.
해석이 너무 뻔하다면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 기울이는 관심은 커지지 않고, 또 하나의 쉽게 머릿속에 저장할 정보를 인식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읽는 이와 듣는 이, 보는 이가 더 높은 수준의 관심을 기울여 기억하고 떠올리고 오랜동안 자신 안에 품을 수 있는 창작물은 보다 복합적인 해석의 여지가 있거나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기 마련이다.
"헤밍웨이"같은 작가 등등 수많은 글 쓰는 이가 일단 "간명함"을 강조하고, 짧게 만드는 스토리의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정말 의미 있고 필요한 것만 짧게 전달하는 것은 배려이기도 하고 지금의 시대처럼 사람의 뇌가 "팝콘"으로 변해버리고 인내심을 잃어버린 바 필수적인 창작자의 자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낸 창작물이 불확실하고, 이해가 미진하고, 더 알고 싶고, 의구심이 들고, 더 연결해서 해석할만한 여지가 전혀 없는 무작정 짧기만 한 것이라면,
그 짧음에는 매력과 의미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의미 있는 짧음"과 "의미 있는 긺" 양쪽을 충분히 고려한 창작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이 아닌 글을 써야만 한다.
쉽지 않지만 그런 글을 써보기 위해 노력한다. 7시 30분에 일어나 출근하며 30분간 오디오북을 듣고, 회사에선 8~10시간가량 일에 몰입하고, 퇴근하는 길에 30분간 오디오북을 듣는다.
집에 와선 남아 있는 육아와 가사를 돕고, 홀로 거실에 남아 30분간 종이 책을 읽고, 때때로 OTT의 영화를 30분 단위로 끊어서 보고, 기억을 복기하면서 상상을 하며 1시간 정도 글을 쓴다.
누가 재미가 있다고 하던 없다고 하던, 결국에는 써서 올리는 한 편 한 편의 글은 내게는 기적이다. 이 기적이 모여서 언젠가는 제대로 된 형상을 갖게 되고 지루하지 않은 글로 만들어지길 꿈꾼다.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쓰고 있다. 마치 영원히 춤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빨간 구두라도 신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