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따라오는 통영의 풍경에 이어서 오는 맛
책을 많이 읽는 법을 찾아보다 보면 여러 가지 요령이 나온다. 그중에 "빌 게이츠"같은 거대 기업가나 "워런 버핏"같은 거대 투자자는 일주일에 대여섯 권 이상의 책을 보는 요령을 이야기한다.
그건 중요한 부분만 들춰보면서 책을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를 포기한 채로 읽는 것이다. "거인의 노트"라는 책에서는 필기를 잘하는 데에서 중요한 것은 핵심 키워드를 정하고 나머지를 잊는 것을 통해 자기화한 지식만을 읽은 책으로부터 남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만을 발췌하고 나머지는 잊는 것. 핵심 메시지를 파악하고 쓰인 중요한 내용 중에 자신에게 꼭 필요하고 자신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남기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독서법이다.
최근에야 이것을 절절히 깨닫고, 예전처럼 읽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을 경험한 책이나 영화 등에서 기억나는 대로 복기하는 일은 줄이고 있고. 주로 오디오북을 사용해서 들리는 것만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만큼은 그런 방식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이 작품을 쓴 분이 정말 오래된 죽마고우로서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거의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친구의 큰 누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나오고 있는 친구의 어머니와 아버지, 큰 누나, 둘째 누나, 막내아들인 내 친구 모두가 익숙한 사람이다. 다만, 그 가정 속으로 깊이는 들어가지 못했었기에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모두 흥미로웠다.
금년 4월 25일에 초판 1쇄가 나온 책을 4월 말경에 받은 뒤에 230여 페이지의 이 책을 오늘에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오디오북이라면 많아야 3~4일이면 다 읽을 분량이지만, 하나하나 세심히 정독했다.
왜냐면 그 하나하나의 문장과 챕터에 친구의 어머니에 대해서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내리사랑의 역사가 담백한 문장으로 나왔고, 그분의 고향인 "통영"의 풍경과 먹거리에 연결된 요리가 나와서였다.
친구의 큰 누나는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워서 늦깎이로 요리 전문가로서의 직업 인생을 다른 이보다는 늦게 시작했지만 점차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전문성과 아우러진 감수성 높은 글이 조화롭다.
평생 살면서 여러 가지 관심사를 하나둘씩 늘려가며 살아오고 있는 중에 하나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한 것이 "요리"인데, 글에 등장하는 레시피가 자꾸 시도해서 음식을 만들어볼 욕심이 나게 만들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레시피"를 쓰더라도 똑같은 "맛"으로 구현해 낼 수 없단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꼭 맛있는 음식이 아니게 되더라도 기억 속의 그 맛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가치 있어 보였다.
그리고 기억 속의 그 어머니가 주었던 사랑의 일부는 내가 받은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읽는 중간에 살짝 붉어지는 볼과 눈시울을 느꼈다.
지금의 시대야 많이 삭막해지고 무한 경쟁이 보다 고도화된 한국 사회에서 남의 집의 아이와 나의 아이는 전략적인 동반자이자 같은 동등한 급 미만의 친구는 좀 피해서 사귀면 좋겠을 사이로 변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7~90년대까지는 심지어 강남이라는 도심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었더라도 "공동육아"라는 전래의 우리나라의 문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도 이럴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는 모두의 어머니였고, 아버지는 모두의 아버지였다. 이웃의 아이를 돌봐주고 훈계하는 것이 모두의 몫이었던 시기였다. 어려운 살림에 아이를 낳아도 일면 안심되는 사회였던 것 같다.
나는 국민학교 2학년에 부모님이 이혼한 뒤, 외할머니에 의해 친할머니와 아버지, 작은 삼촌이 사는 아파트에 보내진 뒤에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아버지와 더불어 살았다.
같이 살던 아파트에서 내가 사는 가정과는 다르게 부모가 이혼하지 않고 아이를 화목하게 키워가는 친구의 가정은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외로웠던 외동아들인 나를 그 예전에 한때 유치원에서 알고 지냈던 기억을 공유했던 친구가 챙겨줬다.
그게 그 가정의 내리사랑으로 충만한 친구의 어머니와 아버지, 두 누나로부터 나 또한 약간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사랑을 충만히 받은 삼 남매의 삶을 증언할 증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친할머니도 닭죽이나 백숙 같은 특식을 만들어 내놓으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간장으로 비빈 맨밥이나 누룽지 등을 거의 매 끼니에 먹다가 1층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먹는 끼니는 훨씬 훌륭했다.
친구의 집에선 밥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었고 비벼서 먹을 수 있는 양념과 같이 나왔다. 당시엔 쉽게 먹기 어려웠던 참기름과 소금을 묻힌 김, 가락국수, 만둣국 등의 정성 가득한 음식이 떠오른다.
정갈한 음식과 뭔가 시대를 좀 더 앞서 간 듯한 집안의 인테리어, 온 가족이 입었던 그 시대에 비해선 한걸음 앞서 있던 의상 등이 전반적으로 이 친구의 집안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기억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그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지만, 같이 다녔던 교회에서 친구의 어머니는 당시에 대학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를 위해 장학금을 받아주셨다.
교회에서 가난한 집 아이에게 대학교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주지 않으려고 했었던 이유는 받은 뒤에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했지만, 대신 싸워주셨고, 결국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아니, 지금도 미안함을 갖고 있다. 나는 장학금을 받은 이후로 다른 이처럼 그 교회를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서다. 이후에 교회를 옮기셨다고 들었다.
아들의 친구를 위해서도 이처럼 솔선수범 사랑을 베풀어주셨는데,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셨을지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로 인해 그 자녀가 어려움을 극복할 내성을 가졌다는 말도 그냥 쉽게 책에 쓰이는 가식적이고 뻔한 문장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레시피처럼 삶의 레시피로 쓰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도움도 많이 주셨다. 단지, 아들의 친구란 이유만으로. 다른 도움주신 친구 부모님들이 더 있지만 이번엔 그분의 이 기억만 살리려 한다.
그리움을 그냥 그리움만으로 남겨 둔다면 그것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니지만 점차적으로 희미해져 가면서 상실의 아픔을 잊고 난 뒤에 다시 그리움의 대상을 떠올릴 단서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움의 대상인 "엄마에 대한 기억"을 삶을 폭넓고 깊게 되돌아보며 시대의 변화 사회적 변천을 조금씩 필요한 만큼만 담아서 각각의 챕터에 잘 맞는 레시피와 연결시켜 단서화 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부모의 부모가 되는 이와 부모 간의 사랑의 연결을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부모와 자신과의 사랑이 자신과 아들 간의 사랑으로 이어지면서 서로 간에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삶을 형상화했다.
책을 보는 내내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긍정적으로 변화하여 자신이 성장하리란 믿음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할 수 있으리란 "성장형 사고"와 "긍정의 심리학"을 내내 경험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책 속에 담겨 있는 "솔직한 인생 이야기의 힘"이 이 글을 읽는 독자를 실제로 행동하게 만들 것이란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독자로서의 우린 우리의 부모에게 한 번이라도 연락을 더하고, 기억을 확실하게 만들고, 단서를 더 많이 만들어 두려 하거나 자식에게 이 같은 사랑을 내리부어 주는 것을 실천할 것이다.
스토리와 맛있게 결부된 레시피를 들여다보다가 요리의 초짜이든 어느 정도의 경지에 있는 이이든 음식을 만들어 보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속에 담겨 있는 내리사랑의 맛을 경험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