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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an 14. 2024

연쇄 실연 17범의 고백 2-2

LOSER 17의 망가진 자기 반영

(사진 출처: Photo by Aimee Vogelsang on Unsplash)


2-2 LOSER 17의 망가진 자기 반영


"암튼, 얘기를 좀 길지 않은 방향으로 가져가면 어떨까? 그래 아버진 잘 나가는 최고위급의 공무원이었지. 같은 급의 공무원이었지만 집안이 너무 잘 사는 어머니와 결혼하려고 자신의 재력을 위조하려고 했어.


그건 불타는 사랑 때문이었지. 그게 없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을 거야"


"마스터"는 일사천리로 "LOSER 17"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 디지털 정보로 저장되어 있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해서 간략하게 3줄로 요약을 했다.


이미 둘이 "LOSER 17"을 낳고 나서 초급 교육 기관에 보낸 뒤에 1년이 되지 않아 이혼했던 내용까지 모두 확인했다. 과정에서 아마 돌이킬 수 없는 종류의 뭔갈 경험했으리라.


"그 사랑이 더 불탔던 것은 정황상 어머니의 엄마가 둘을 반대할 것이 뻔한 상황 때문이었어. 원래, 그 정도 차이가 나면 대부분의 평범한 남자는 알아서 '연애 상대" 정도만 하고서 그만 사이를 정리할 만도 한데,


아버진 누가 막아서면 그걸 뚫고 나아가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고 때로 그걸 위해 모든 걸 다 거는 스타일이었지"


"마스터"는 "LOSER 17"의 생각을 여기쯤에서 끊고 가야 할지 아니면 더 들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목표는 한국의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대표적인 샘플 하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LOSER 17"은 자신의 심리를 되돌아보기 위해 더 먼 뒤편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첫 대면을 한 순간 그런 아버지의 스타일이 외할머니의 호감을 낳았던 거야. 결혼을 찬성을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버지를 '1등 사윗감'이라고 불렀지.


'행운아'로서 '핸들러'라는 당첨직에 뽑힌 것부터 두 사람이 타고난 복을 갖고 있어서 최고의 궁합이니 하는 말을 남발했지"


"마스터"는 어찌 되었든 이 샘플이 제대로 다 토해내는 모든 내용을 듣는 게 유리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우선 수집해야 하는 것은 정보의 중요성이나 가치 등을 배제한 채로 그대로 다 흡수해야 하는 "빅 데이터"다.


여기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그다음의 단계다. 일단, 듣고 보기만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핸들러'에게 주어진 복지 혜택을 최대한 모두 사용해서 고를 수 있는 가장 큰 평수의 아파트를 '월세'로 받았어.


이 내용을 여러 채널로 검색하면 '구매계약'으로 변경된 상태로 조회되게끔 관련된 데이터 베이스 안에 '수치'는 그대로 뒤로 숨기고 '텍스트'로는 조작된 정보가 뜨는 처리를 해두었지.


'핸들러'가 국공립 기관이나 대형 민간 기업의 데이터 베이스를 해킹하려고 하는 해커를 상대할 때,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원 데이터를 보호하면서 접근해 온 상대가 빼간 정보로 실제로 어떤 해악도 끼칠 수 없게끔 만드는 '공작'의 한 방법이었어.


이걸 결혼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지. 조직은 너무 바빴던 탓에 이런 걸 지나쳤고.


자신의 집안은 가난했어도 자신의 누나가 거대한 '게임 회사'의 소유주와 결혼했기 때문에, 그 소유주의 데이터에 접근해서 재산을 자신의 집안의 것으로 보이게끔 조치를 했어.


그 외에도 자신과 조금이라도 친인척 관계가 되는 여러 사람의 데이터에 접근해서는 자신의 집안은 '본사', 그들은 '계열사'인양 연결했어.


그래서 종합적으로 '프리미엄 결혼 정보 회사'같은 곳에서 아버지의 정보를 조회하면 나오는 것이 '최고 등급'에 속한 남자란 것이었지.


그리고 파악된 모든 재산의 절댓값은 외할머니의 재산과 비교해서 약간 모자라긴 했지만, 미래 가치의 변동폭도 고려하고, 아버지의 당시의 젊음이 일부를 보충하니. 결혼 성사"

"마스터"가 내장된 윤리와 도덕, 법 등의 가이드 조항을 무시하고 해 보려면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제대로 견제받거나 감사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핸들러"가 그 당시에 누렸던 "치외법권"적인 지위가 무엇이었는가를 파악해 내기에 용이한 정보였다.


"마스터"가 "국회"의 "지도자 인공지능"으로서 진입하기 전에 일종의 알력 싸움을 벌이면서 누가 더 제대로 성과를 내고 주어진 역할에 맞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시뮬레이션과 더불어 실제 사례까지 비교해서 경합도 한 조직이 있었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마스터"에게 "기능 위양"이 이뤄지기까지 저항했던 조직이 바로 "핸들러"였다.


아직도 "복권"을 받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고 있지만, "LOSER 17"이 해준 증언을 근거로 이 시도를 차단하는 것은 보다 쉬워질 것이다.


무선 백업 데이터에도 잘 누적 저장하면서 "핸들러 전횡 예제 8907"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분류 라벨링도 해두었다. 이런 자동적인 기능은 인간이 흉내내기도 어려운 경지였다.



"결혼도 엄청난 재력의 소유자의 딸과 했고 직업도 한국 최상의 위치에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둘이 헤어졌던 걸까? 그게 잘 이해가 되질 않아. 누가 잘못을 해서 헤어지기로 결정을 했던 거야? 도대체?"


"LOSER 17"은 자기 자신을 쪼개서 역할 놀이를 하는 상황임이 분명하고, 자신이 자기의 독백을 끌어내기 위해서 질문을 잘 꺼내고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의식의 목소리와 또다르지만 같은 목소리가 동일한 데이터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단서가 하나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사가 잘 풀리고 재력도 문제없는 수준을 초과해서 지니게 된 이에게 종종 찾아오는 스트레스 가득한 '밤' 시간이 문제였지. '사탄'이나 '악마', '마귀', '유령'. '도깨비' 등등.


보이지 않는 형체를 지닌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사악한 존재의 끝판왕 두목은 '어둡고 사악한 밤'일 거야. 다른 단어의 원본이던지"


"마스터"가 보는 영상 속에 나타난 형편없이 구겨진 상하의를 입고 일그러진 풀린 눈의 소유자가 입에서 침을 흘리며 집 안으로 들어와


"LOSER 17"의 30대 중반의 어머니와 어린 7세의 소년인 "LOSER 17"을 걷어차고 때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뭐지? 아버지에게 다른 망나니 형제라도 있었던 건가? 빚쟁이라도 있어서 집에 쳐들어온 건가? 도대체 이건 또 뭐야?"


"술에 취한 아버지의 모습이지. 이혼 소송 중에 눈앞에 나타났던 이혼 사유에 적혀 있는 '알코올 중독자'이기도 하고.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버진 일과 가정 밖에 챙기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어. 낮엔 그 이상의 바른 인간은 없는 것 같은 인상이 느껴졌지. 말도 재미있게 잘했고.


하지만, 밤이 되면 그는 몇 명의 동료와 더불어 술을 마시는 다소 긴 시간을 가졌던 거고. 야근의 시간이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주량을 넘겨서 마신 술이 '이성의 끈'을 사정없이 끊었어.


멀쩡히 출근했던 지킬 박사가 미친 하이드로 돌아와서 집안을 박살 내는 것이 악몽 같은 매일이었던 거지"



AI가 한국을 지배하게 된 상황에서 자신의 아들이 AI에게 붙잡혀간 그날, "LOSER 17"의 아버지는 자신이 오래전에 자신의 신분을 조작했던 데이터가 바로 추적돼서 발각될 것을 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조작했던 데이터로 자신의 삶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상황조차 아니었으므로, 그런 일까지 겪을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숨겼던 것이다.


가정 폭력으로 인한 이혼 뒤에 그는 아들과 단 둘이 살아왔다. 장모는 딸이 "LOSER 17"을 일주일에 한 번 만나고 용돈을 주는 것을 허용했었다.


하지만 이혼 소송 과정에서 술을 마신채로 집에 찾아와 자신을 때렸던 그의 아버지가 위험하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뇌리에 각인되었고, 딸의 아이라고 해도 손자가 같은 사람이 될 거라 유추했다.


이혼 이후의 어느 날 "장모"는 새로운 사업을 "캐나다"에 차리겠다는 계획하에 "딸"에게 투자이민 개념으로 큰돈을 투자해서 사업체를 차리게 했다. 그곳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LOSER 17"의 어머니는 화상 통신 등으로 계속 연락을 하고 용돈을 보냈지만, 유년기와 사춘기 내내 "엄마"가 가장 필요했을 아들의 곁에 잠시동안도 머물러있지 못했다.


음주 후 급변하는 그를 겪은 사람은 하나 빠짐없이 저녁 시간의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추락의 원인이 "알코올 중독"과 "분노 조절 장애" 같은 정신적인 문제라고 인정을 했다면 치료의 길이나 증상을 경감시킬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저 "술"을 마시고 취한 순간 자책감과 잘못한 기억을 잊으려고만 했다.


방음이 잘 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울려 퍼지는 소음은 외부 주민에게 들리지 않았다. "LOSER 17"의 얼굴과 신체에는 멍이 있었고 때로 목이 졸린 손자국이 목에 남아도 남들은 몰랐다.


아들은 한없이 친절하고 배려하고 올바른 계도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낮의 아버지"를 그를 사정없이 때리는 "밤의 아버지" 때문에 신고할 순 없었다.


밤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LOSER 17"을 때린 아버지는 아침이 되면 미안하다면서 "때리는 내 마음이 더 아프다"라며 "내가 때리지 않도록 네가 잘못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무방비하게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LOSER 17"은 점차적으로 무기력해져 갔다.



그 무력감은 겪어보지 않았거나 비슷한 상황 속에 처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는 성격의 감각이다.


왜 인류에게 "노예제"가 있었을까?


자신과는 신분이 다른 존재가 어떤 폭력을 가하든 간에 잠자코 당하고 살았던 인구가 예전에 그렇게나 많았던 것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사책"과 수많은 "영상물"과 "소설"은 부족하다.


지금도 노예가 있다.


누군가는 "LOSER 17"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게 "바보처럼 맞고 산 네가 폭력의 빌미를 제공한 원인 제공자였다고".


그게 "노예제"를 오랜 세월 찬성해 온 논리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 등의 제국주의 식민지 역사를 옹호하는 "노예제"를 공고하게 이 첨단의 시대에도 뿌리려고 노력하는 "다른 신분을 추구하는 이"의 논리다.


하지만, 밥을 줄 인간이 당신이란 "애완동물"을 산 주인이고, 당신이 주는 밥과 제공한 공간이 없다면 이 겨울 길바닥에서 얼어 죽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상상을 한번 해보자.


주인의 심기를 거슬렸다간 집 밖으로 쫓겨나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런데 뭔가 주인의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당신이 하면 막대기나 손바닥, 주먹으로 당신을 부술 것처럼 때린다. 처음에 당신은 저항도 하고 주인의 손이나 발가락을 물어뜯는 시늉도 해보고 짖기도 한다.


그것이 아무런 타격이나 신호도 되지 않고 주인은 "마음에 안 들면 때리고 굶기다, 마음에 들면 쓰다듬고 이뻐하고 밥을 준다". 당신을 인간 이하로 본다.


이런 일이 하루이틀, 한 두 주, 한 두 달, 일 이년, 십수 년 반복되면 어느 순간 당신이 코끼리만큼 커져도 주인이 때릴 때마다 충성을 다하며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 경우 "노예"가 되어버린 "당신"이 잘못한 것이고 지속적인 폭력으로 "노예"를 만들어버린 "주인"이 잘한 것인가?


"당신"을 "노예"로 만든 "주인"이 "당신"이 "인간"이라면 외부 기관에 처벌이나 보상을 청구해야 마땅한 대상이다. 현대의 인권에 관련된 논리적인 해석이다.


처벌이나 보상을 요청할 생각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 안된다면 그것이 바로 불합리한 비극인 거다.



그렇게 두드려 맞고 터진 입술로 잠을 청하던 어느 날 밤, "LOSER 17"은 어두운 밤하늘이 보이는 창문에 자신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그 얼굴은 멀쩡한 낮에 자신의 부모와 다른 사람들이 귀엽다고 하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전혀 그런 얼굴로 떠오르지 않았다.


심각하게 망가진 마음속의 그의 모습은 마치 모기 인간처럼 변해 있었다. 두 눈은 모기의 눈이었고, 입술은 대롱처럼 뻗어 나와 있었다.


타인을 물어서 피를 빨 수 있을 만큼의 이기심도 무너져 있어서 그 입술은 자신의 몸의 어딘가를 찔러서 피를 빨고 있다. 팔다리는 가늘고 어깨는 굽었으며 하체는 너덜거렸다.

그렇게 "자기 반영"이 파괴되면서, 그는 자신이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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