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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an 28. 2024

연쇄 실연 17범의 고백 3-1

브레이킹 셸의 아프락사스

(출처: Dall.E3로 그린 아프락사스)


3-1 브레이킹 셸의 아프락사스


자기 자신의 이익에 관련이 없다면 누구라도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전반적으로 퍼져 나가 있었다. 정치 공학에 밝은 머리 좋은 이들이 SNS만큼이나 지속적으로 "만인과 만인의 투쟁"을 잘 부추겼다.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면, "남성성"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권력과 사회적 이점을 잃게 된다는 면을 강조하면서 "여성 혐오"를 불러일으켜 지지 세력으로 삼았다. 반대로 "남성 혐오"도 수월히 잘 일으켰다.


"국민의 안전과 더불어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면, "생명은 자기가 알아서 지키는 것", "안전사고는 운 나쁜 이에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폄하하고 이를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를 무지한 이로 몰아가는 데 성공했다.


"조화와 평화"를 이야기하면, "꼰대가 옛날 생각하면서 폼 잡는 것", "약하고 어리석은 이가 조화와 평화 속에 자신의 약함을 묻으려 하는 것"이라고 희화화하고 분열과 이기심을 추구하는 이를 상수로 묘사했다.


가난한 노인과 부유한 노인을 극단적으로 정치적 의견이 다른 집단으로 나누는 등, 사회적으로 분화된 갈등을 수많은 언론 채널을 통해 만들었다. 의견이 나뉜 이는 서로 말과 눈빛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낳는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도 돈과 인적 세력이 있다면 주류 종교 세력 못지않게 자기편으로 포섭하고, 그들의 사회적인 폐해를 거론하는 이를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는 이로 몰았다.


출산율 저하로 계속 인구가 줄어 가기에 해외 이주민을 받아들여 최소한 노동인구의 절대적인 숫자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당면 과제가 있었지만,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 당장 필요한 지지세력 확대만 추구했다.


한때 10위권 내외를 오가는 선진국의 수준에 가닿았던 적이 있었지만, 그런 기록과는 무관하게 주변 강대국이 바라는 대로 흔들리기를 반복하는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주권 없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더 만족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니 그런 혼란을 추구하면서 계속 정치적으로 성공하는 세력을 추종하는 이나 그와는 다른 편에 선 이나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이어서 더 무서운, 거부감이 생겼다.


"나라가 극단적인 분열과 혐오로 얼룩진 데다,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이나 긍지가 하등 중요하지 않고, 심지어 생명조차 나라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왜 여기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아야 할까?"


어느 순간엔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같은 질문을 갖게 되었다. 집권하겠다는 정치 세력이 "말세"를 쉼 없이 거론하면서 당장의 지지세력의 표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다른 세력에 속한 이를 수많은 퍼즐 조각처럼 효과적으로 갈라버린 탓이었다. 

(출처: Dall.E 3로 그림)

 "커피색 머리"는 "마키아벨리"의 현명한 가르침에 따라 냉정하고도 현실적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치열하게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이미 유년기부터 "군주론"을 펼쳐 읽어주는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그는 "군주론"을 너무 좋아하고 열렬히 읽고 추종했던 관계로 인문학 서적으로선 그 이상의 서적은 없다고 믿을 정도였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에 덜 주저한다"를 믿었다.


너무나 이성적으론 냉철하고 감정적으론 냉담한 이가 아버지였기에, 항상 갈증을 갖고 살았다. 어머니는 독일계의 혼혈이었고 마음과 외모 모두가 아름다운 이였다. 하지만 순종적이었고, 항상 희생해야만 했었다.


그의 남동생은 이런 집안의 분위기에서 "아버지"가 원하는 인재 상에 먼저 가 닿을수록 인정받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누나보다 먼저 감잡은 영리한 이였다. 시간이 갈수록 "커피색 머리"는 집이 싫어졌다.



"도대체 왜 "커피색 머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 따위가 나와야 하는 거지?“


"기억을 복기하려고 하다 보니 떠오른 거야. 이런저런 집안 사정이 없었다면, 그 애가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될 큰 이유는 없었던 것 같거든. 어렸을 땐 그런 게 한눈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눈에 반하기 위해서 그전에 벌어졌을 수많은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 그걸 하나씩 기억해 내고 이해하는 것이, 이 아픈 기억을 다시 돌려볼 때 그나마 얻을 수 있는 지혜라고 생각해."


"마스터"는 "LOSER 17"이란 샘플이 자신이 기대한 대로의 이야기와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급식을 받으러 학교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커피색 머리"와 "LOSER 17"은 단 둘이 있었다. 이 이전까지는 매번 의미 없는 잡담만이 오가고 있었지만, 뭔가 다른 대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아프락사스, 알지?"

약간은 뜬 듯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커피색 머리"가 이야기했을 때, "LOSER 17"은 시뮬레이션 게임 속의 자신의 게임유저명을 그가 부르고 있는 거라고는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잖아"


"지금 밥 먹으러 가면서 공부 이야길 할린 없잖니?"


잠시 생각을 해보니, 그렇다. 얘도 그 게임에 들어오는 애였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였을까? 베르사체? 전우치? 알버트? 아르테미스?


"너, 지금 혹시 '브레이킹 셸'이란 게임 이야길 하는 거야?"


"그래, 맞아. 네가 이 교실에서의 너와는 전혀 다른 '아프락사스'로 나오는 게임"


"그런데, 그게 '나'라고 생각할 이유가 따로 있니?"


"그럼. 네 성적이 반에서 거의 바닥인데도 가끔 어려운 문제의 답을 맞히더라, 정작 쉬운 건 몰라도......"


"이제 알겠다. 구제 불능의 바보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어 보였던 거고, 맞춘 문제가 있었는데, 아주 쉬운 문제는 아니었고, 네가 우연히 들어가서 했던 게임의 유저도 맞췄다는 거지?"


"그래, 맞아. 인상적이었어. 공립학교에서 이런 걸 맞추는 애가 있으리라 기대했던 적이 없었어"


"되게 재수 없네"


공립학교 운운하는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까지 관심을 가져준 그 애에게 살포시 빠져들까 했다. 하지만 신분의 벽을 세우고 저편에서 보고 있으리라 생각한 순간 이 귀족과는 선을 그어야 하지 싶었다.


"커피색 머리"는 순간 얼굴을 좀 붉히면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 게임이었지만 네가 훌훌 날아다니듯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 이름도 끝내 주는 '아프락사스'고"


"미안해? 정말 미안하기는 하니 너? 정말 미안하다면 말이야. 마님, 불갈비 세트 하나 정도는 사달라고!"


"당연히! 대신 그 게임 잘하는 법 좀 배우자, 고급 유저님. 난 '메피스토텔레스', 중급 유저야"


그 이후로 "커피색 머리"는 계속 "LOSER 17"에게 매일매일 음식을 사줬다. 단지, "LOSER 17"이 "아프락사스"이기 때문에서였을까?

(출처: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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