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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Feb 12. 2024

백조의 노래, 찔러 보기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이 만들어질 경우의 진지한 상상

감독의 연출력과
참여한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
실수 없이 말끔한
그래픽에
끌려가면서
한숨도 쉬지 않고
보게 되었다


스쳐 지나가듯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백조의 노래(Swan Song)"에 대한 요약된 내용을 봤었다. 적지 않은 내용이 설명되고 있었다. 이른바 스포일러라고 불릴만한 결말만 나오지 않았다.


이미 다 본 것 같은 착시가 있었다. 그렇지만 내내 그 극화에서 나온 이야기의 여운이 관심을 끌었다. 애플 TV의 목록에서 이 작품을 봤을 때, 그 관심이 다시 돌아왔다.


미래 SF 등을 다루는 극화로써는 상대적으로 느린 템포의 작품이고, 아이디어 면에서도 어디선가 많이 나왔을법한 "복제인간"이 자신이 되어 가족과 함께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굳이 안 본다고 해도 영상 역사에서 수백 번이고 수천번이고 정말로 "복제인간"이 제대로 등장할 때까지 반복될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관심을 끈 이유는 죽어가는 이가 한가정의 가장이라서다.


잔잔한 가족 영화로 만들고 내용 속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언급하고, "백조의 노래"의 의미가 백조가 일생에 단 한 번만 부르는 그 노래를 그 가장이 부른다는 것이 짤막한 스토리의 요약이다.


초반부 느낌이 단순하고 장엄하고 숭고하다 보니 한자리에서 한 번에 다 볼 수가 없어, 스트리밍을 맥북과 아이폰, 스마트 TV로 돌아가면서 보면서 중간중간 다른 작품을 보거나 했다.


그러나 중반을 지나 신파로 흐르는 듯한 최후반부가 가까스로 감정을 절제하면서 나름 담백하고 단호하게 결말을 맺을 때까지는 감독의 연출력과 참여한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 실수 없이 말끔한 그래픽에 끌려가면서 한숨도 쉬지 않고 보게 되었다.



"넷플릭스"와 "애플 TV"를 오가면서 느끼는 차이는 좀 더 자극적이고 압축된 극화를 추구하는 쪽이 "넷플릭스"고 그보다는 약간 덜 자극적이고 내용이 보강된 것이 "애플 TV" 같단 것이다.

(출처: Apple Insider)

"백조의 노래"는 넷플릭스의 "블랙미러"나 애플 TV의 "어메이징 스토리(리메이크)"의 한 화 정도를 차지할만한 아이디어와 스토리로 그려진 것 같지만 내부의 디테일은 훨씬 더 섬세하고 수준 높다.


자극: 블랙>어메이징>백조

극밀도: 블랙>어메이징>백조

심리묘사: 백조>어메이징>블랙

총체적 디테일: 백조>어메이징>블랙


상대적으로 보다 짧은 시간 내에 좀 더 재미있게 보고 빨리 뇌를 전환해서 다른 것을 해야 한다면 대부분 "넷플릭스"가 옳은 선택이 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이야기를 음미하고 인생을 반추하고 뭔가 더 건져가고 싶다면 그 외의 채널의 작품을 검토해 볼 만한 것 같다. "애플 TV"의 오리지널 작품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드라마든 영화든 괜찮다.


이번엔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봤던 "백조의 노래"가 왜 괜찮은 작품이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1. 벗어나야 할 선입견 :

 1) 기존의 복제 인간을 다룬 영화와 유사할 것이다(X)

 2) 신파로 주인공의 희생을 미화할 것이다(X)

 3) 지루할 것이다(X)

2. 백조의 노래, 찔러 보기

3. 불치의 병에 걸린 주인공 캐머런이 당신이었다면?



과하지 않은 울음과 마찬가지로
과하지 않은 웃음이 흐른다


1. 벗어나야 할 선입견 :

1) 기존의 복제 인간을 다룬 영화와 유사할 것이다(X)

복제 인간 등을 다룬 영화는 꽤 많이 있다. 한국 영화에서도 "서복"이 있고, 오래전 할리우드 작품인 "아일랜드"와 "제미니맨", "AI",  "더 문(할리우드 작품)", "블레이드 러너", "레플리카" 등 넘친다.


이 작품은 그런 이미 나와 있는 작품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는 없겠지만 고유성을 확실하게 갖고 있다.


복제를 선택한 이유가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자기 자신" 대신에 가족을 돌볼 이다. 통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복제 인간"을 주문하는데 반해서 가족을 위한 선택으로 일관성 있게 나오고 있다.


여기에 실제로 자신의 실시간적인 기억과 느낌, 감각 등을 모두 지닌 채로 단지 불치병에 해당하는 요소만 유전자 분석으로 사라진 "복제 인간"과 마주해서 서로 대화하는 장면의 현실성이 충만하다.

(출처: Apple)

그리고 그렇게 아내와 가족을 사랑하는 이유가 충분히 작품에 모자람 없이 나온다. 각각의 유사한 아이디어의 작품이 "충분히 다뤄야 했지만 다루지 않았던 것"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 다뤘다.


2) 신파로 주인공의 희생을 미화할 것이다(X)

작품을 볼까 말까 주저하는 데 있어서 이 부분이 염려되는 시청자가 아마도 꽤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허셜라 알리"의 연기력을 혹 다른 작품에서 경험했고, 좋게 평가했다면 그 걱정은 접어도 된다.


극 중간중간에 그가 만들어 내는 유머는 작품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았다. 죽음에 다가가는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유머로 넘기려 하는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만들었다. 과하지 않은 울음과 마찬가지로 과하지 않은 웃음이 흐른다.


신파로 흐를 분위기를 걱정하는 동시에 인종 다양성을 고려한 때문인지 코미디언 출신의 중국+한국계 미국 배우 "아콰피나"가 딸과 어머니에게 "복제된 자신"을 보내고 죽어가는 "케이트"역을 맡았다.


3) 지루 할 것이다(X)

처음엔 조금 지루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근 미래 시대를 제대로 구현하는 디테일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좀 더 큰 화면으로 본다면, 장면 장면이 흥미롭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각각의 공용 차량으로 "캐머런"을 싣고 오가는 장면은 여러 번 반복되는데, 더 이상 사람의 운전이 필요하지 않은 세계가 바로 오늘 이곳에 와 있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기차에서 인공지능 로봇에게 초콜릿을 주문하고 받고, 끼고 다니는 컨택트 렌즈나 안경을 쓰고 책상 앞에서 일에 필요한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뚜렸하게 띄워서 작업을 하는 동시에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와 이거 대단한데 싶은 기술'이 이미 실용화되어 있고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평범한 느낌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연출의 세련미를 경험할 수 있으며 극 중 "복제 인간"도 잘 납득된다.



진행 템포를 늘어뜨리며
심리 연기에 집중해서다


2. 백조의 노래, 찔러 보기

미래 시대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미래에 나에게 현실의 나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미리 당부를 해 두어도 그때의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을진 미지수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무엇이 더 빠를지 지금 시점의 인간은 미리 알긴 어렵다. 작중 주인공의 "병"은 언제 그를 죽일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불치병이고 이미 손이 닿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왜 그렇게 불치의 병을 예방도 못하고 진단도 못한 채로 방치하다가 죽음 직전까지 갔는가가 극 중 잘 설명되고 있는 것도 이 작품이 가진 세밀한 차별성이다.


"자신과 아내의 관계의 균열"이 생기게 된 아내의 쌍둥이 남자 형제의 죽음은 자책감에 "아내"를 빠뜨리고 오랜 시간 육아를 위해선 서로를 마주 보았지만 밤만 되면 따로 잠에 들은 이야기가 나온다.


"누구 탓을 하랴" 싶지만 너무도 아내를 사랑했던 "캐머런"은 사실 이 냉각기에 자신의 건강을 살피는 것도 등한 시 했던 것이다. 미리 알았다면 서로에게 알리고 같이 치료할 방법을 찾았을 것을.


이 극의 빌런이 그렇다면 몸과 마음을 잠그고 남편을 대해 온 "아내"였던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빌런"도 "히어로"도 "복제 인간"도 모두 하나인 "캐머런"이다.


자신을 복제할 것을 관련 기관에 요청하며 계약까지 했다가 막상 자신과 똑같이 만들어진 "복제 인간"을 본 뒤에 기겁을 한다.


가족 모르게 복제 인간을 자신 대신 가족과 살게 하던지 아내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자신과 같은 복제 인간과 함께 살게 된다고 알려주던지를 선택하란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선택 없이 집에 온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망가지고 있는 몸과 아내와 나눴던 대화 중에 아내의 어머니가 복제 인간으로 살아 돌아온다면 매우 기쁠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첫아들에 이어 둘째를 임신한 소식에 고민한다.


그러다 가족에게 "복제 인간"을 대신 보내고 기관의 요양 시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케이트"를 알게 되고, 그의 "복제 인간"의 직장인 부동산 거래소를 찾아가


업무와 "딸"양육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케이트" 그 자체인 "복제 인간"을 보고 오게 된다. 이 부분이 대체에 대한 안심감을 제대로 주기 시작했다.


그의 심경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케이트"의 역할은 지대한데. 이를 "아퀴피나"같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가져올 것 같은 배우에게 맡기지 않았다면 역효과가 날 배역처럼 보였다.


물론, 이 작품이 볼만한 작품이 되는데 공헌을 한 것은 거의 모노드라마처럼 화면 전체를 장악하며 1인 2역으로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이 내외부의 모든 것이 복제된 자기 연기를 한 "마허셜라"다.


할리우드 역사상 전례가 없었을만한 연기를 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 연기가 더욱 빛이 났던 것은 기존의 수많은 작품에 대비가 될 정도로 장면 간의 진행 템포를 늘어뜨리며 심리 연기에 집중해서다.


기술의 발달에 앞서서 인간에게 소중한 것은 가족 간의 사랑과 행복이라는 이 평범한 주제를 다시 한번 잘 변주해서 수준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작품을 보는 동안에는 모두
필연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3. 불치의 병에 걸린 주인공 캐머런이 당신이었다면?

훌륭한 극화는 장르가 무엇이었건 간에 보고 난 이에게 질문을 남기는 법이다. 이 작품도 질문을 남겼다.


만약, 인류의 기술이 "완벽한 복제 인간"을 만들 만큼 충분히 발달하고, 그만큼 발달했으면 좋았을 의과 기술은 발달이 되지 않은 채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까?


나도 영화 속 "캐머런"처럼 내 아내와 아이를 몹시 사랑한다. 내가 지금 갑자기 죽는다고 하면 그들이 매우 슬퍼할 거란 사실도 알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내와 아들도 모르게 그저 나의 몸과 마음을 모두 똑같이 가지고 있고, 단지, 불치의 병으로 죽지 않을 것이다란 이유만으로 남 모르게 슬쩍 나만 사라지고, 복제된 나만 남기진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솔직하게 아내와 아이에게 말할 것이다.


"여보 그리고 얘야, 나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되거든. 그런데 다행히도 내가 갖고 있는 잠재의식까지 포함한 모든 내부적인 내용물과 몸이나 모든 것이 그저 나 자체인 인간을 하나 복제할 수 있게 되었어, 여기 있어. 이게 또 다른 나야"


불치병 인자만 제거되었을 뿐 나와 100% 같은 내가 이야기를 거들게 될 것이다.


"난,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야. 그냥 똑같은 당신의 남편이자 너의 아빠인 거야. 단지, 수명대로 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을 뿐이야.


죽어가고 있는 나도, 아직 더 살아갈 나도, 똑같은 나일 뿐이야, 불치병 걸린 나는 죽게 되면 장례나 사망 신고 없이 그저 죽어서 화장되어 뿌려지겠지만,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고, 안타까워할 이유도 없어. 하지만 죽어가는 내가 죽기 며칠 전까지만 함께 지내길 바라고 있어. 괜찮을까?"

(출처: Dall.E3로 그림)

어떤 답변을 아내와 아이가 할지 아직 불치병 같은 것에 걸려본 적도 없고 100%의 인간 복제가 가능한 기술이 있다는 이야기도 과학적으로 나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잘 예상은 안된다.


하지만, 영화 속의 기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내가 죽어가는 것을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그저 쓸쓸히 홀로 죽어 사라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일단,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제 인간을 만들어 놓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해서는 동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일단은 저질러 놓고, 그다음에 어렵겠지만 설명할 것이다. 작품 내용처럼 선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마허셜라 알리"같은 배우가 혹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도 높은 개런티까지 받으면서 스토리를 좀 다른 방향으로 만들자고 굳이 반대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역량을 발휘해서 제대로 연기했다.


스토리와 감독의 방향에 맞게 제대로 연기해 낸 배우의 연기력이 놀라운 것이었음을 이렇게 쓰고 보니 더 절절히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작품을 보는 동안에는 모두 필연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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