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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an 29. 2024

외계+인 2부, 찔러 보기

복고풍의 타임슬립과 액션, SF그래픽, 외계인, 코미디. 트렌드 역행작

(사진 출처: 국제 신문)

해외 개봉과 더불어
OTT 같은 스트리밍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거두어야만 한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블록버스터라고 하면 헐리우드산이던 국산이던 빼먹지 않고 보려고 애썼던 습관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개봉시점에 놓친 작품이 "노량"과 "아쿠아맨 2"다. "서울의 봄"을 본 것이 예외적이다.


그런 작품이 나와도 적지 않은 확률로 나름의 내상을 입고 끙끙대는 경우가 늘어나다 보니 절박함이라고 할지 필연성이라고 할지 "새롭고 화제가 될만한 영화"를 개봉 시점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렇게 습관이 사라지도록 이끌었던 작품 중에 하나가 사실은 "외계+인 1"이었다. 물론, 이 작품에 대해서 적은 리뷰에는 비난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찾아냈고, 2부의 개봉을 기대하는 내용을 남겼다(링크 : <외계+인 1부>-아직 힘을 다 쓰지 않음).


1부의 경우 "최동훈 감독"이 너무 저조한 흥행에 대해서 청문회라도 연 것처럼 질문 공세를 당하고 궁색한 변명이 있었다. 2부는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것이 위험해서 OTT로만 나오리란 예측도 있을 정도였다.


2부의 흥행은 1부보다는 더 나은 상황이다. 그러나 약 700억 원가량되는 국내 최대 수준의 제작비가 요구하고 있는 손익분기와는 아직도 거리가 있다.


1부와 2부가 현재까지 동원한 관객의 숫자는 대략 총 300만 명이 안된다. 각편당 700만 명가량 봤어야만 손익분기를 극장 개봉 수익으로 넘을 수 있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한국 영화계에 "더 문"과 더불어서 이제 더 이상 SF장르의 대작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란 선고가 내려지지 않으려면 해외 개봉과 더불어 OTT 같은 스트리밍 시장에서의 호평이 필요해 보인다.



세 가지를 버리고
내 관점과 생각을
회복할 수 있는 단서다


"찔러 보기"를 이 작품으로 한 이유는 흥행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내 개인적인 "취향"에는 잘 맞는 이 작품이 왜 이 시대에는 안 맞는 것일까를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벗어나야 할 선입견은 오랫동안 버리지 못한 나의 "영화란 것은 이래야 돼"같은 고정관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이렇게 변했어"라고 선언하는 고정관념이기도 하다.


"찔러 보기"를 통해서 얻은 것은 "과거로부터 온 내 편견"과 "시대에 대해서 갖고 있는 내 편견", "전문가가 쉽게 주입해서 장착된 편견" 세 가지를 버리고 내 관점과 생각을 회복할 수 있는 단서다.


작품을 감상하기 전과 중간, 이후에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함으로써, "타인"이 원하는 대로 영상 작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자 시청자인 내가 원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겐 가능한 영역이다. 직업적인 영화 관계자라면 자신이 원하는가 안 원하는가를 떠나서 작품을 만들거나 보거나 평가해야만 한다. 그와는 다른 특권이 바로 "찔러 보기"다.



"외계+인"은 1부에서 그 당시에 개봉되었던 블록버스터 작품과는 다른 보다 토속적이고 자생적인 한국 문화를 가지고 세계와 승부하겠다는 패기가 엿보였었다. 그것이 이 작품의 가치를 열어갈 길처럼 보였었다.


1. 외계+인 2부, 찔러 보기

2. 종결 이후의 내용에 대한 상상



1. 외계+인 2부, 찔러 보기

이미 집 근처의 극장에서 "아쿠아 맨 2편"과 "노량"은 사라져 있었다.


"외계+인 2부"를 보게 된 것은 1부에 대해서 쓴 글 때문이었다. 개봉한다면 꼭 보러 가겠다고 썼었다. 그 글밑에 누가 약속 지키란 댓글을 단 것도 아니고, 누가 그 글을 제대로 읽기는 했을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글을 읽지 않는 이 공간이 "일기장"정도의 효용만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나에게 한 약속을 어기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남에게 했던 약속은 종종 깨더라도 그렇다.


"최동훈 감독"은 1부에 관련된 기사에선 다소 복잡한 스토리이긴 하지만 보는 이는 결국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게 되니 시대 감각이 어긋난 것이 더 문제였다.


1) 시대와 멀어진 유머 감각

2부에 관련된 기사에선 완전성을 높이기 위해 수십 회 이상의 편집을 진행했다고도 했다. 그만큼 2부는 1부에 비해서 더 나은 품질이란 기대를 하게끔 이야기한 것이다. 그만큼 1부보단 나아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극적인 완결성이나 영상의 박력, 1부와의 연결성, 긴밀한 이야기의 구조 등등은 더 나아진 것이 분명했지만 시대와 한번 벌어진 간극은 2부에서도 메워지질 않았다.


시대를 뛰어넘는 불멸의 매력을 지닌 작품이란 것이 있다. 하지만 극의 진지함을 좀 부드러운 것으로 만들고 희극성을 강화하기 위해 투입한 캐릭터, 좌왕과 우왕, 2명의 신선 등, 의 코미디는 그만큼은 웃기질 않았다.


2009년의 "전우치전"은 이런 캐릭터가 보여주는 코미디가 아직 웃음을 유발했던 시대였다. 너무도 잘생긴 "강동원 배우"가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웃음을 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유머 감각이 왠지 모르게 이 시대와 동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듯한 이질감이 보다 도드라지게 느껴졌고, 그 이질감을 중화시킬 캐릭터나 배우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포츠 센터에 떨어진 두 명의 신선이 "트레드 밀(=러닝 머신)"에 붙어 있는 외계 죄수가 나오는 스크린 화면을 때려 부수고, 그들이 도망갔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선 냉랭한 공기가 느껴졌다.


이 두 명이 뛰는 기계 위에 올라간 뒤에는 멈추질 못해서 내려오지 못하며 지칠 때까지 뛰는 장면은 과거의 시대에서는 공중으로 수월히 떠오르는 경공술 등의 무공을 보이던 두 명이라 이해가 안 되었다.

(출처: 뉴시스)

2) 독창적이고도 토속적인 타임 슬립물의 가능성도 사라지다

어쩌면 시대와 멀어진 유머 감각은 다른 면에서도 연결이 되어 전반적으로 "한국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타임 슬립물"이라기보다는 뭔가 과거의 유물을 다시 끌어올리는 듯한 느낌도 불러들인다.


결국 이 작품이 지향했던 "타임 슬립" 스토리의 모델이 1985년부터 1990년대까지 만들어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백 투더 퓨처"였음을 깨닫게 된다.

(출처: 퀘이사존)

작품의 영문 제목조차 "리턴 투더 퓨처(Return To The Future)"다.


고려 시대로 가서 2022년 8월의 지구를 "트랜스 포밍"해서 탈옥에 성공한 외계 죄수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지 못하게끔, 과거에 가둬두려고 한 1부에서는 "독창성"을 경험할 수 있었지만 2부는"할리우드 타임 슬립물"에 근접하려는 노력이 컸다. 장점이 중화된다.


그런데, 이 호흡이 "백 투더 퓨처"의 1/2/3를 한 호흡에 다 일거에 어느 정도 흉내 내면서 따라잡고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도와는 다르게 "늘어지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 거대 흥행까지는 이르지 못하게 만든 장애물 같았다.


3) 액션의 스케일이 거대하긴 했다

시대와 약간 어긋난 작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려 시대에서 더 점화되고 밀도 높게 진행되는 무협 스타일의 액션의 향연과 카리스마 넘치는 "진선규 배우"의 "능파" 연기는 "이하늬 배우"의 "관세청 수사대 민개인"의 연기와 대대손손 조상과 후손으로 결합되면서 1부의 연결성을 합리화하면서 극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1부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빌런의 역할을 하던, 설계자를 몸속에 넣은 "소지섭 배우"의 "문도석"은 2부에서 간간히 모습을 회상씬 등에서 드러내는 정도에서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부재감이 약간 느껴진다.


"김태리 배우"의 "이안"과 "류준열 배우"의 "무륵"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로를 구해주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것처럼 얼핏 그려진다.


그런데 그 둘 간의 애틋함이 충분히 살아나지 않은 모호한 관계처럼 보이다 보니 한번 미래로 왔다가 과거로 돌아갔던 "무륵"이 다시 미래로 왔을 때, 감동이 없었다.


이 작품의 압권은 "'하바'(지구를 외계 죄수들이 사는데 문제없는 대기로 바꿔주는 폭탄)가 터지기 전“에 "가드"가 지니고 과거에 갔다가 주인공들이 구해서 가져온 "신검"을 찾아 외계 우주선에 꽃아 넣어 폭발을 멈추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펼쳐지는 극 중 짧은 시간 내에 벌어지는 사투의 장면이다.


우연이기라도 한 것처럼 "신선 두 명"과 "외계 죄수", "무륵", "이안"이 같은 열차에 타서 이동하는 중에 싸움이 벌어지고,


이미 소멸했지만 전투모드로 변할 수 있는 기능은 에너지화해서 남아 있는 "가드"의 슈트를 "무륵"이 입었다가 다시 "이안"에게 이전하는 것은 언뜻 "아이언맨 슈트"가 나노 입자로 체내에 보관되어 있다가 몸에 입혀지는 장면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기차가 "하바"를 실은 우주선이 있는 "가드"와 "썬더", "이안"이 같이 살았던 외곽의 공장 지대로 향하고 있었을 충분한 필연이 설명되었던 바가 없었던 것 같은데,


이 화물 기차가 난전 중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면서 탈선하여 기차 속 주요 인물이 모두 그 장소에 타이밍에 맞게 떨어지게 되는 것이 좀 어색하긴 했다.

(출처: 뉴스 컬처)


그러나 물량을 앞세우면서 밀도 높은 그래픽과 과거에서 가져온 마법이 깃들은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그런 스토리의 부실함에 대한 의아함을 굳이 불만으로 가질 새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여러 번 편집을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었던 완전성의 일부라고 보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내용을 상상이라도
해보는 것이 남아 있는
출구다 싶었다


2. 종결 이후의 내용에 대한 상상

상황이 다 종료되었을 무렵, 결정화된 고체 안에 "문제의 외계 죄수"를 모두 가두긴 했지만, 결국 이것을 깨고 나올 것을 우려한 "썬더"가 우주선을 몰고 지구 밖으로 나가 파괴시키며 같이 소멸되는 장면은 약간의 슬픈 감정을 우러나오게 한다.


1부에서 "이안"의 아버지와도 같았던 "가드"와 한 몸과도 같은 "썬더"가 희생하는 상황에서도 "이안"의 감정은 극도로 절제되어 울음 등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미 1부에서 "가드"는 결국 이같이 "Alienoid(=외계+인)"이 외계 죄수를 싣고 지구 밖의 우주로 날아가게 될 것이란 말을 했다는 부연이 이어져 이 같은 상황이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임을 떠올리게는 한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어쩌면 가장 많은 고생과 희생을 한 "이안"이 그 누구로부터도 자신이 잃어버린 "가드"와 "썬더"에 대한 위로나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무륵"이 설사 다시 돌아와 "이안"을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안"과 함께 이 영 다른 시대 속에서 어떻게 같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막막한 상상만을 남겨놓고 극이 끝났다.


그러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때, 2명의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여학생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서 서로 너무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를 하며 공감의 시선을 주고받는 것을 옆에서 듣고 봤다.


내 감상을 살짝 돌아봤을 때, 역시나 뭔가 선입견이 될만한 것을 충분히 버리지 않고 보다 보니 내 고정관념대로 이 영화를 평가했기 때문에, 재미있고 즐겁다는 느낌보단 불만이 남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늦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본 기억을 보다 즐거운 것으로 마무리하려면 극이 끝난 이후의 인물들의 이후 내용을 상상이라도 해보는 것이 남아 있는 출구다 싶었다.


1) "민개인"은 관세청 수사대에 자신이 경험하고 조사한 것과 여러 증거 자료를 제출해서 지구를 자신과 더불어 구한 이들의 공로를 인정받도록 만들고, "이안"도 이에 맞는 배상을 받게 하는 동시에 다시 미래로 찾아온 "무륵" 또한 생활을 가질 수 있는 길을 찾아 준다.


2) 우주로 나갔던 "썬더"는 분명히 소멸되었지만, 그의 기억은 우주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원래 "가드"와 "썬더"를 만들었던 "외계인"이 다시금 같은 Alienoid를 만들어 지구로 보내게끔 만든다.


지구에 온 그들이 처음으로 찾아간 이들은 결혼해서 생활을 꾸미고, 도술을 마술 화해서 직업으로 삼은 "무륵"과 "이안"이다.

(출처: Dall.E3)

3) 고려 시대로 돌아간 "두 명의 신선"은 "능파"와 더불어 다가올 미래 시대의 여러 국가적 위협에 대응하는 기술을 고안하고, 군사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꽃피우는데 기여한다.


이들의 기여가 결국 미래에 닿게 되고, 2022년의 한국의 서울은 실제의 서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상이 높은 첨단 문명과 문화로 번성한 도시가 된다. 대체 역사물로서의 스토리가 이들로부터 시작된다.

(출처: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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