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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Feb 05. 2024

첩보 소설 제왕의 회고록, 찔러 보기

"존 르 카레"의 "The Pigeon Tunnel" 다큐멘터리

스파이물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직장 등의 내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소설이나 영화, 연극 등의 여러 극화를 경험하면서 살다가 어떤 창작가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것에 영향을 받아 그 사람과 유사한 성격이나 생각을 가진 인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


다른 경우로는 잘 모르던 작가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 원작 자체를 읽으면서 "이 사람 꽤 나랑 닮았는데"라고 느끼게 되기도 한다.


"존 르카레"는 후자에 속한 "위대한 스파이물 소설가"로 불리는 이다. 영국 첩보부에서 실제로 "스파이"로 근무하며 일을 했고, 신기하게도 상관에게 허락을 받아 소설을 써서 "필명"으로 출판하기 시작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가 출세작으로 1963년에 출판하여 1,200~1,500만 권이 당시 판매되었고, 일거에 미디어 등에 출연하는 유명인이자 전업작가가 되었다.

(출처: 에스24)

그의 여러 작품이 BBC에서 드라마화되거나 블록버스터급의 배우를 동원한 "개봉 영화"로 상영되어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이중에 내가 본 것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한 편이다.


화려한 캐스팅으로 유명한 2011년작인 이 작품에는 "게리 올드먼"과 "베네딕트 컴버베치", "콜린 퍼스", "톰 하디", "토비 존스", "마크 스트롱" 등의 영국 최고 남자배우가 쏟아지듯이 나왔고 작가도 카메오 출연했다.

(출처: 핀터레스트)

비록 이 작품 하나 밖에 보지 않았지만 화려한 액션씬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 스파이물이 주는 긴장감은 내내 집중해서 작품을 감상하게끔 만들었고,


하나하나의 선명하게 느껴지는 디테일은 왠지 모르게 이런 극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스파이물을 만들어보겠다는 내용이 아니라 직장 등의 내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의미 있는 경력을 충분히 쌓았고 그것으로부터 훨씬 더 사실적인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되기 전에 그는 제대로 된 "직업인"이었던 것이다.


"나"와 닮았다기보다는 어쩌면 "글"을 쓰는 것을 본업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속한 업에서도 기어이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서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이가 있다면 그와 닮았단 표현이 더 맞다.



하지만 그건 쉽게 부정당해서는 안 되는
우리 자신 그 자체다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 결국에는 이번에 사용하던 아이폰을 기기변경하면서 받게 된 3개월 무료의 "애플 TV"로 보게 된 다큐멘터리에서 어느 정도 근거 있는 느낌이었음이 밝혀졌다.


아니, 닮았다 안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은 나의 주관이니까. "존 르카레"는 "스파이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사실의 정확성 유무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만약에, 해안가를 걷고 있다가 차량이 한대 바다를 향해 달려들고 그것을 저와 당신이 같이 보았다고 합시다. 내가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그것은 저의 '주관적 진실'인 것이고,


당신이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그것은 당신의 '주관적 진실'인 것입니다. 실제로 벌어진 사실은 우리와는 다른 이나 다른 곳(다른 목격자나, 심지어 "신", CCTV 등)에 있는 거고요"


나는 "존 르카레"가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하고 노출한 인생 이야기를 보고 나와 닮은 면이 있다고 주관적으로 느끼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찔러 보기"도 내 입장에서는 "나의 진실"을 경험하는 "영화" 작품을 통해서 제대로 얻고자 하는 이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각자만의 "진실"이다.


영화의 전문가가 되었든 저마다의 다른 경험과 지식의 축적을 여러 방향으로 넓고 높고 깊고 길게 쌓아간 직업적인 전문가는 "가능하다면 그가 말했을 때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진실'"을 찾는다.


그런데, 그런 경험과 지식의 축적이 없다고 해서 우리 각자가 느낀 진실이 "삭제되어야 할 만큼 별 볼 일 없는 것인가?".


누군가의 판단으로 봤을 때는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쉽게 부정당해서는 안 되는 우리 자신 그 자체다.



스파이의 실제와 가공된 실제,
벌어진 실화는 다 다르다


이 다큐멘터리가 무겁고 답답한 내용이 될지 아니면 여러모로 흥미롭고 비밀스러운 일의 뒷면을 파혜치는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인 내용이 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존 르카레"라는 이름은 대다수의 한국 관객과 시청자에게 유명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그가 스파이물(=첩보물)을 써서 유명해진 작가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2020년에 돌아가신 이분의 다큐라는 것은 여러 선입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보는 내내 잠시라도 일어났었던 선입견은 계속 깨졌다.


스파이의 실제와 가공된 실제, 벌어진 실화는 다 다르다.


1. 벗어나야 할 선입견 :

 1) "007"같은 스펙터클한 액션 스파이물이 거의 모든 스파이 소설이다(X)

 2) 정보기관에서 일했던 이가 스파이물의 작가라면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할 것이다(X)

 3) 스파이물의 작가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X)

2. 첩보 소설의 제왕, 찔러 보기

3. 왜 유사하다고 생각했는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을
찾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1. 벗어나야 할 선입견 :

1) "007"같은 스펙터클한 액션 스파이물이 거의 모든 스파이 소설이다(X)

전형적이지 않은 스파이물은 종종 나타난다. 가장 대중적인 반향이 좋았던 것이 "007"과 "제이슨 본"같은 시리즈여서 착시가 생긴 것이다.


실제의 액션보다는 서류와 탐문, 여러 곳을 돌아보며 추정하고 발견하고 추리하고 교차 확인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진위를 파악해 가는 내용이 주가 되는 "존 르카레"의 스타일도 전형 중에 하나다.


2) 정보기관에서 일했던 이가 스파이물의 작가라면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할 것이다(X)

이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은근한 편견은 직설적인 "존 르카레"의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깨진다.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실 속의 생각을 솔직하게 다 드러내면서 그 이상 솔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하는 이였다.


오히려 그 같은 스파이물의 작가가 아닌 이가 더 위선적인 자기 포장을 하는데 반해서 최소한 이 다큐멘터리 안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작중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이를 괴롭힌 사기꾼 "아버지"도 밝혔다.


3) 스파이물의 작가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X)

짧지 않은 인터뷰 속에서 그는 자신의 본질이 결국에는 "텅 빈 존재"라는 "허무주의"와 "실존주의"를 철학적인 배경으로 깐 듯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경험한 것을 그대로 바로 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형해서 극화화 하는 것이 자신이며, 자기 자신이 "예술가"라고 선언하고 있다.


대중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그 안에서 창작자가 자신을 어떤 위상을 가진 존재로 의식하는가는 결과물의 질적인 차이를 낳는다.


그의 작품은 "이언 플래밍"의 "007"시리즈나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처럼 화려하고 판타지에 가까워 보다 많은 사람이 보는 흥행작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지닌 무게와 의미는 그 어떤 "스파이물"보다 더 가치 있고,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예술작품이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을 찾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존"과 같은 방법으로
시대에 맞게 승화시켜
성공하는 것이 더 멋져 보인다


2. 첩보 소설의 제왕, 찔러 보기

이 다큐멘터리의 원제는 "The Pigeon Tunnel"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비둘기 터널"이다. 그가 글을 써내리게 된 주요한 모티브가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를 첫 장면에서 이야기할 때 이것이 나온다.

(출처: Boris FX)

"데이비드 존 무어 콘넬(David John Moore Cornwell)"이 그의 본명이다. 그의 아버지는 "로날드 토마스 아키발드 콘넬(Ronald Thomas Archibald Cornwell)"로 내내 "로니"로 불리며 자주 나온다.


"로니"는 많은 수의 "비둘기"를 살던 집의 옥상에 사육하는 동시에 좁고 긴 터널을 통과해서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비둘기가 터널을 통과해서 날아오르면 총을 쏴서 잡는 것이 유흥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를 보면서 자란 "존 르카레(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여기서 데이비드로 이름을 바꾸는 것도 어색하기 때문이다)"는 이후의 인터뷰에서도 이 내용을 다시 거론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터널을 통과해서 날아 오른 뒤에 총을 맞고 일부 동료들이 죽어서 추락한 뒤의 비둘기 대부분은 다시 사육당하던 옥상의 새장 속으로 돌아왔다는데 "인간의 족쇄"같은 이미지를 발견한 듯했다.


그가 소설화시킨 스파이 극화는 굴레에 갇혀 쳇바퀴를 돌듯이 더 이상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상황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익숙함에 붙잡혀 최후까지 가는 인간을 그린다.  


"비둘기 터널"을 오가는 일에 갇힌 존재로서의 "스파이"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미지의 배경에는 "사기"가 주업으로 항상 남을 속이고 길가에 나앉게 만들어온 그의 "아버지", "로니"의 악행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가진 돈으로 성공적으로 일을 만들어 제대로 사업화한 적이 없었음에도 수많은 여자를 꼬셔서 애인으로 삼고, 여러 개의 사무실을 차렸으며, 여러 마리의 고가 말을 사서 소유했었다.


그와 형의 어머니는 어느 날 모두를 버린 채로 가족을 떠나버렸는데, 정상적인 방식으로 이혼을 하거나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임을 파악하고 "로니"가 수많은 여자와 만나는 것에 질려서였다.


뒤에 가면, 어머니와 제대로 재회해서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 본 적은 없었지만, 그가 가족을 떠날 때 챙겨간 고급 여행 가방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 듯한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가정사 속에서도 "존"은 "아버지"를 미워하지만은 않았고, 때로 그의 사기 행각에 가담해서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는 내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교육도 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좋은 학교에서 마쳤다.


학교를 마친 뒤에 일반적이고 안정적인 일을 하고자 했었지만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자신이 적합한 일이 "스파이"가 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적합한 특성은 "충성심"이 있으면서도 "남을 속일 수 있는 존재"였다.


MI5로 그 일을 시작했던 그는 그 기관과 맞지 않아 다시 옮겨서 MI6에서 근무했다.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최대, 최상, 최고의 정보를 갖고 있는 엘리트 기관의 드높은 위상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무용함이었다.


초기 그의 작품이자 출세작인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에서는 고급 정보기관으로서 묘사되어 압도적인 정보력 등의 능력을 보이는 전통적인 "스파이물"의 흥행 요소가 나왔었다.


하지만 이후에 그가 경험한 사실에 맞지 않는 그 내용을 부끄러워하며 실제로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정보 시스템과 사람들이 떠올리는 유능함과는 거리가 있는 현실적인 "스파이"의 진면목을 그렸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영국 정보기관의 최고 수장까지 했던 "킴 필비"를 극중 빌런 모델로 한 작품 중에 하나로써 "킴 필비"를 모델로 한 3부작 시리즈 중에 가장 높은 대중적 반향을 낳은 작품이었다.


그 작품에서 영국 정보 조직은 냉전 중에 자꾸 자신의 정보가 적국인 "소련" 등으로 넘어가는데 당혹감을 느껴 현조직 내에서 이중첩자를 발견해내지 못하자


이미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는 "존 르카레"의 페르소나인 "스마일리"를 다시 불러들여 배신자의 색출 작업을 맡긴다. 그리고 벌어지는 내용에 유능함으로 번쩍이는 "스파이"는 잘 보이지 않지만 군상극이 흥미진진하다.


이 다큐멘터리 작품에서 "존"은 조직을 떠나 전업 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했던 일 등을 기밀로 숨기고 살고 있다가  "킴"의 영국 정보원 전체 정보 공개노출로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의 "킴"에 대한 평가는 이미 젊은 시절의 인터뷰에서부터 확고하게 "이데올로기"나 "스탈린"에 경도된 "공산주의"자도 아닌 그저 "배신"을 즐기고 여기서 얻는 "스릴감"을 쫓는 본성부터가 나쁜 놈이란 것이다.


"킴"에 대한 이런 분노는 사실 사기꾼으로 평생을 살아간 자신의 아버지 "로니"에 대한 분노와도 연결된다. 자신이 작가로서 성공하여 큰돈을 벌게 되었을 때, 찾아온 대화가 압권이었다.


"로니"가 아들인 자신에게 들인 교육비를 언급하며, 그 같은 교육이 없었다면 지금의 "존"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존"이 가진 전재산보다 큰돈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업에 투자하라고 강권했던 것이다.


여기서 "존"은 자신이 그만큼의 돈을 줄 능력이 되지 않지만, 충분히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사주고 계속 돌봐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로니"는 그냥 먹고사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고 분노했다고 한다.


당시 그들이 만났던 고급 음식점과 그 일대가 떠나갈 정도로 고성을 지르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불러온 택시의 요금을 내는 것마저 아까워졌을 정도로 오만 잡정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속임수"를 통해서 큰 일을 계속 시도했으며, 때로 드물게 성공할 기회가 있긴 했었지만 놓쳤고, 그로 인해 길바닥에 나앉은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중에 하나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제안을 하며 아들인 자신에게도 다른 이에게 했던 것과 같은 작업을 걸고 있다는데 대해서 크게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 "로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일부는 "킴"을 이야기하는 것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 "아슬아슬함"을 즐겼고 "위험"에 중독된 이여서 그냥 평온한 삶에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영화의 리뷰를 쓰는 자리에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조금 부끄럽지만,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십 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도 한때 "로니"와 같은 류의 삶을 살았다. 항상 큰 일을 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고, 투자자를 모아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어느 순간엔 돈이 넘치도록 있기도 했지만,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았고, "위험"과 "아슬아슬함"에 중독되어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다른 것에 중독되었다.


그런 이가 많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런저런 변두리나 낙후된 국가에서는 아직도 그 같은 인물이 활개 치며 때로는 (그만이) 성공하여 돈을 벌고, 실패하면 그를 따르는 이들은 어김없이 길바닥에 나앉고 있을 거다.


자기중심적이기 그지없는 그런 이에겐 설사 가족이든지 연인이든지 그 누가 되든지 그가 누리고픈 스릴과 쾌락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다. 절대 그의 인간적인 "목표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런 이가 가족이 되었던 친구가 되었던 동료가 되었든 간에 곁에 있고, "그의 그런 본질과 본성, 습성"을 간파하게 된다면 미련 없이 그와 선을 그어야만 한다. 이런 삶 속의 깨달음을 다시 재확인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서로를 도구로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직업적이고 사업적인 관계만으로 만나기로 했다면 그런 계약적인 관계만을 유지하는 것이 바른 것이다. 여기에 더이상의 신뢰를 얹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런 이에게 겪은 고통은 꽤 오랫동안 당한 이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게 된다. 끙끙거리는 응어리로 안고 살아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존"과 같은 방법으로 시대에 맞게 승화시켜 성공하는 것이 더 멋져 보인다.

(출처: Film Authority)

물론, 이 시대엔 "창작자"가 되는 것만으로 큰돈을 버는 것은 극도로 독서 인구가 줄어든데다 원래 책을 잘 읽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좁아지는 "바늘구멍"이다. "승화"라도 될 수 있는데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승화를 위한 작업을 계속하게끔 하는 동기를 "존"이 오늘 주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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