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역사적인 건망증에 빠진 때 나온 경고성 극화
(사진 출처: The New Public)
1920년대의 인디언 보호 구역에
머물러 있던 "오세이지족"의
비극을 다룬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내가 익숙한 표기법이다. 누군가는 스코세이지나 스코시지, 감독 자신은 스코세시라 한다)"이 만드는 영화라면 일단은 거장의 작품이니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경합한 작품 중에 하나인 "아이리시맨"으로 한국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킨 감독이기도 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복원하는 도움도 주었다.
그동안 본 그의 작품은 제대로 본 것만으론 6편 정도 된다(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케이프 피어, 갱스 오브 뉴욕,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 보지 않고 넘어간 작품이 더 많이 있다.
최근작인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Killing Moon)"은 "파라마운트"가 제작하고 "애플 TV"가 제작 및 배급사가 되면서 극장과 OTT양쪽으로 모두 나왔다.
3시간의 상영시간을 가진 이 작품은 "늑대와 춤을"같은 영화와는 또 다르게 1920년대의 인디언 보호 구역 같은 곳에 머물러 있던 "오세이지족"의 비극을 다룬다.
그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인데도 보는 이가 과연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파라마운트"가 이 거장의 작품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니로" 등의 그의 페르소나 배우 2명을 모두 출연시키다 보니 제작비가 너무 커서 포기할 때 "애플 TV"가 제작/배급을 맡으며 회생했다.
그만큼, "애플"이 명작을 자신의 오리지널 제작 작품으로 만드는데 더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개봉관에서의 흥행은 저조 하나 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수상 후에 역주행을 노릴 듯하다.
"애플 TV"내의 오리지널 영화 작품으로는 오랜 기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눈앞에 계속 어른거리다 보니 이렇게 슬쩍 찔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찔러본 바, 이 시대에 다시 지난 시절의 미국과 같은 국가의 불합리함을 돌아보고 이 시대에도 이 같은 불합리가 다시 나타나서 지속되지 않아야만 한다는 공감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스콜세지 감독"은 반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감독이 아니다. 그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의 최상위 등급의 카드를 광고하는데 나와서 이 카드로 결제하는 모습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감독이다.
그러나 부정부패와 잔인함, 참혹함, 배신, 폭력 등의 불의가 판치는 과거를 그려내는데 거침 없다. 그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인데도 보는 이가 과연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1. 벗어나야 할 편견: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로버트 드니로" 둘 중에 최소 하나는 선역일 것이다(X)
2) 작품성을 중시하여 길게 만든 작품인 만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X)
2. 플라워 킬링 문, 찔러 보기
"어니스트"역의 "레오나르도"가
한 연기로서는 "첫 어중간하고
어리석은 악인"이라 특별했다
1. 벗어나야 할 편견: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로버트 드니로" 둘 중에 최소 하나는 선역일 것이다(X)
이 작품에서 최소 이 중량급의 대형 배우 2명 중에 하나는 최소 선역으로 나오겠지라고 기대하는 이가 혹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둘 다 악역으로 나온다.
"레오나르도"의 극중 이름은 "어니스트"지만 이름 답지 않게 거짓말을 줄줄 늘어놓으며, 최후반부에 가서는 마치 순정남이나 가정을 중시하는 남자인 것처럼 개과천선하려고 해 보지만 구원받지 못한다.
"로버트"는 시작부터 최후반부의 후일담을 스탠딩 코미디 공연을 하는 듯한 "스콜세지 감독"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줄기차게 속임수를 쓰고 매수와 부정을 행하는 이로 일관되게 나온다.
2) 작품성을 중시하여 길게 만든 작품인 만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X)
내용이 어려워서 이 작품을 보기가 두려워질 이유는 없다. 시작부터 결말까지 관객과 시청자의 흥미로움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오세이지족"이 당하는 죽음과 비극, 사건의 해결이 스피디하게 나온다.
이 같은 비극을 만들어 내는 "윌리엄 킹 헤어(로버트 드니로)"의 탐욕스럽고 사이코패스 같은 모습은 삼촌인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퇴역한 취사병 출신의 군인인 "어니스트"의 무지함과 교차된다.
그가 죽여야만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아내인 "몰리"와 자식들에 대한 사랑 양쪽에서 갈팡질팡하는 "어니스트"역의 "레오나르도"가 한 연기로써는 "첫 어중간하고 어리석은 악인"이라 특별했다.
2. 플라워 킬링 문, 찔러보기
스코틀랜드계 이탈리안 이민자 출신인 "스콜세지 감독"이 미국의 역사 속에 벌어진 잔인한 "인종말살"의 예제를 보여주며 100여 년을 넘어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건망증을 지금 짚고 있다.
이미 잘 만들어진 원작이 있었던 덕에 사실에 대한 고증은 먼저 "원작자"가 해주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스콜세지 감독"이란 거장이 허투르게 재검증을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작품이 왜 설득력 있는 "인종말살" 이야기의 예제로 보이냐면, 100여 년 전의 미국인이 오클라호마 주에 정착하기로 한 "오세이지족"을 말살하기 위해 그들과 결혼하고선 잔인하게 죽이는 스토리에 미국에서 여러 의미로 가장 존경받을만한 입지에 있는 두 명 배우를 악역으로 썼기 때문이다.
이런 무지의 과거 시대 속에서 미국인의 아이콘화 된 두 명배우가 그 시대의 대표성을 가진 악당이면서도 다른 인종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이는 모습이 당시의 미국인의 대다수가 가진 인종차별적인 시선이었음을 드라이하게 연출해서 사실로 느끼게 했다.
수백 명에서 30여 명으로 줄어들 때까지 그들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는 정착지에서 석유가 시추되자 땅을 소유한 이들이 벼락부자가 되어, 그들과 결혼 후에 죽여서 재산을 뺐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오세이지족”이 죽어도 공권력은 침묵하고 백인은 방관한다.
초반부에 자신의 약점이 '여자를 색상(인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어니스트"는 살집이 있고 적당하게 이쁜 여자라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나중에 그의 행동이 정말 고구마 수백 개라도 삶아 먹은 느낌을 줄 정도로 답답한 것이, "몰리"를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내가 "당뇨병"에 걸리자 "삼촌"이 소개해준 죽음의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는 것이다.
"인슐린 주사"도 그들로부터 받아서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놓기도 하면서도 "삼촌"이 결국에는 "오세이지족"은 세상으로부터 사라질 것이고, 집안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는 아내인 "몰리"도 죽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건네는 정체불명의 약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 주사약에 섞는다.
사이코 패스급의 "킹" 삼촌조차도 이런 "어니스트"의 사랑도 아니고 탐욕도 아닌 중심 없이 갈팡질팡하는 무지함에 기가 막혀하는 장면이 하나 나온다.
계속해서 주는 "당뇨병" 인슐린 주사가 결코 "몰리"의 몸에 좋을 것이 없음을 잘 알고 있을 만했으면서도 주는 대로 투여를 했고, 아내의 몸이 날로 약해졌음에도 관계를 맺고 아이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아내"의 몸속에서 같은 해로운 약의 영향을 받아 태어났을 아이도 나중에 "어니스트"가 교도소에 있을 때 죽게 되고, 이 때문에 "어니스트"가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오긴 한다.
그것이 바로 그가 가장 어리석은 이임을 드러내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그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킹"과 자신이 그의 명령을 받아서 했던 모든 살인과 범죄를 법정에서 고백하기로 한 장면이라서 잠깐은 멋지게도 보인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아기를 죽이고자 했던 이였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아내를 사랑하고 살아남아 있는 다른 자식을 사랑으로 키울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면, 법정에서 이야기한 것 외에 제대로 "몰리"에게 솔직하게 답변해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었음에도 그는 하지 못한다.
범죄 드라마에서 멜로드라마로, 그다음에 법정 드라마로 갔던 3시간의 이 작품은 마치 "시카고"같은 뮤지컬 영화라도 된 것처럼 마지막에 "스콜세지"가 마이크를 잡고 극이 끝난 이후의 스토리의 설명을 마무리하는 랩 같은 대사와 악기 및 타악기 연주를 하는 밴드의 공연을 신선하게 배치했다.
어쩌면 제작비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이미 3시간 가까이 만들었는데, 여기에 더 시간을 덧붙이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선택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 후일담의 내용이 너무나도 답답한 그 시대의 현실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이 관객과 시청자가 듣기를 바랐으리라.
많은 "오세이지족"을 죽였음이 밝혀진 백인 중에 사형이 되었거나 장기 복역을 한 이는 없었다. 정치가 등을 매수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킹"은 감형으로 풀려나와서 다시 돌아왔고, '어니스트'는 즉각적인 사면을 기대한 "자백"을 했음에도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사면되어 돌아왔다.
수많은 타 인종을 죽였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던 그 시대의 씁쓸함을 장면장면으로 다 그려내기엔 그 어떤 나라의 관객이나 시청자보다 미국인이 받을 스트레스가 컸을 것 같다.
사족:
그런데 이건 그래도 같은 나라 안에서 "피부색"이라도 명확히 다른 이에 대한 차별과 "인종말살"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나마 반성해야 할 쪽이 누구인지라도 확실히 보여서 상대적으로 다행이다.
"한국"에서 같은 "한국인" 수십만 명을 "빨갱이"로 몰아 전쟁중에 적법한 절차 없이 죽였던 "독재자"를 영웅시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가 최근에 만들어져서 국내 개봉했다.
지금보다 더 무자비하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과거로 돌아가잔 캠페인 같다.
이것은 역사적인 "건망증"이 아니라 "치매"다. 오히려 제대로 파헤쳐서 만들어야 할 그 작품의 내용은 그 권력자가 많은 자국민을 죽이고도 아무 거리낌 없던 시대를 그려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