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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Feb 26. 2024

침묵의 함대, 찔러 보기

오랜 침묵을 깨고 결국 실사화되어야만 했을 극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다

(포스터 출처: amazon.com)


그 과정에서 원작자가 "국뽕"에 호응한
자국중심주의 작품을 만드는 이임을 찾아냈다


2015년 11월 28일에 써서 올린 이 실사 드라마화 된 작품의 원작 만화에 대한 감상문은 그동안 써온 내 브런치 글 중에 462편 중에 42번째의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


한 독자분의 "좋아요"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글에 대해서 피드백받은 것은 전혀 없다. 그 작품의 제목 그대로 누가 읽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침묵" 상태로 7년 이상 남아 있는 글이다.


1988년~98년도에 발표되고 완결된 이 만화는 그 이후에 다른 후속작을 낳지 않았고, 유사한 수준의 작품도 나타나지 않았다(참조: <침묵의 함대>-독립하라 https://brunch.co.kr/@rpyatoo/67 ).


그런데 최근 2월 중순부터 새로 써서 올리는 작품에 대한 조회 수보다 이 글에 대한 조회수가 더 높아지는 현상이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아마존 프라임"에서 "침묵의 함대" 드라마를 올린 거다.


그리고 "침묵의 함대"로 브런치 내에서 검색을 해본 바, 이 작품에 대해서 뭔가를 말해보려고 한 글이 별로 없었다. 그 과정에서 원작자가 "국뽕"에 호응한 자국중심주의 작품을 만드는 이임을 찾아냈다.



이 위대한 작품의 반열에
확실히 올라와 있는 "침묵의 함대"를
 만화 완결 26년 만에야 실사화한 것이다


이 작품의 원작에서 읽어 냈던 중심 주제는 "독립하라"였다. 그때의 "일본"은 "미국" 등 열강으로부터 경제 및 군사적으로 "독립"하려 했다.


국력도 있었고, 사고도 더 진보적인 흐름을 가졌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및 조선 후기 무렵의 사대주의에 근접하는 방향으로 퇴행하고 있듯이,


"일본"도 "미국"과 “중국” 등의 강국에 머릴 더 깊이 조아리며 국격을 추락시키고 있다.


진보적인 흐름이라는 것은 무조건 좌경화된 "사회주의"와 맞물리지 않는다.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뒤쫓아가며, 한 나라로서의 긍지를 충분히 가질 수 있을 만큼 발달하고 부강해지는 흐름이 더 중심이 된다.


그런데 "형님"으로 모실 나라보다 더 부강해질 기회는 기본적으로 찾지 않거나 막고, 과학 기술이나 시스템의 발달로 국력을 더 높일 생각도 없고,


나라가 썩어 문드러지고 망해가도 자기와 자기 주변의 몇 명만 잘 먹고 잘살겠다가 국가 경영 목표가 되다 보니 쇄신을 추구하면 "빨갱이"라며 침묵시킨다.


이런 풍경이 그래도 잠시잠깐씩 변화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에 비해서 정권이 그냥 왕조처럼 고정된 상태로 고여 흘러온 "일본"은 잃어버린 30여 년 이상의 불황기와 추락기를 겪으며,


이 위대한 작품의 반열에 확실히 올라와 있는 "침묵의 함대"를 만화 완결 26년 만에야 실사화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웹툰작가의 성공작이었거나 우리나라 감독 중 누군가 실사화할 생각으로 판권을 구매했다면,


"인랑"처럼 크게 실패했더라도 이미 10여 년 전쯤에는 영화나 드라마가 나왔을 거다.


그런데, OTT 중에 "인도"를 제외한 다른 국가에선 왠지 유명무실해 보이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드라마로 나왔다.


8편 모두를 다 보고 나면, 분명히 주저리주저리 적을 말만 늘어나고,


수많은 이가 바로 이 페이지를 0.05초 만에 떠날 것이라. 1화와 2화만 보고서 글을 쓴다. 3화부터 8화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1. 벗어나야 할 선입견

 1) 30년 전 만화 원작이라 시대에 안 맞을 것이다(X)

 2) 실사화되기 어려운 잠수함 액션이라 그래픽 등이 어색할 것이다(△)

2. 침묵의 함대, 찔러 보기



제작비도 우리나라보다
높지 않은 일본의 현실을
고려하자면 그럭저럭
참을만하다


1. 벗어나야 할 선입견

1) 30년 전 만화 원작이라 시대에 안 맞을 것이다(X)

우려했던 바다. 거의 모든 것이 인공지능화 되고 사람이 조종하는 영역보다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비중이 커져 있을 시대에 천재적이고도 엄청난 "조함전술"을 가진 "가이에다"가 통할 수 있을까?


작품의 초반에 내가 놓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990년대라고 하는 시대를 명확히 시대적 배경으로 넣고, 패러렐 월드 정도로 해서 작품을 만들어 갔다면 좀 더 자연스러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최근에 만들어지는 일본 만화보다 오히려 더 세련되고, 아이디어도 탄탄한 정치 경제 사회적 역사 배경과 인간 심리에 대한 해박한 이해 위에 만들어져 있어, 뒤떨어지진 않는다.


시대에 안 맞을만한 부분은 액션의 속도가 좀 느리고 진행이 충분히 빨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 정도다.


제작비도 우리나라보다 높지 않은 일본의 현실을 고려하자면 그럭저럭 참을만하다.


2) 실사화되기 어려운 잠수함 액션이라 그래픽 등이 어색할 것이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한때 줄줄이 뽑아냈던 1990년대의 "붉은 10월"과 "크림슨 타이드"와 "K-19 위도우 메이커"부터


최근 "미션임파서블 데드레코닝" 최신 시리즈에서 나온 잠수함 액션을 떠올리자면 사실 일본 특촬물 "고질라"급에 언뜻 더 가까워 보이는 그래픽이긴 하다.


아직 보지 않았지만, "침묵의 함대"의 영향을 받아 "박인권 만화가"가 "핵잠 유령"이란 잠수함 만화를 만들고, 여기에 영향을 받아 나왔던 한국 영화 "유령"의 그래픽과 비교해보고 싶어 진다.


최소한 "최민수 배우"와 "정우성 배우"가 출연했던 그 영화가 원작의 작화에 더 근접했단 생각이 들어서다.


"가이에다"를 맡은 주연배우 "오오사와 타카오"가 프로듀싱에도 참여하면서 적극적으로 "광기"에 빠진 천재 함장의 연기를 5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열적으로 연기하고는 있지만, 닮지 않았다.

(출처: 좌/Japan Times, 우/Amazon Prime)

원작을 봤던 사람이 이 작품을 끝까지 보려고 한다면 봤던 원작 만화와 드라마 간의 넓은 불일치를 뛰어넘기 위해 의식적으로 또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미 제7함대와 맞붙은 상태에서
광기를 보이고 있는 "가이에다"의
모습은 그냥 "국뽕 마초 주인공"에
불과해 보였다


2. 침묵의 함대, 찔러 보기

"박인권 만화가"가 자신만의 그림체는 충분히 살렸지만, "침묵의 함대"의 골격과 설정을 대부분 가져와서 마찬가지로 "국뽕"에 적극적으로 빠진 작품을 만들어서, 이 역시 재미있게 봤었다.

(출처: S 시리즈)

그때는 여러 면에서 한국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그만큼 수준이 떨어지니 가져와서 베끼고 비슷하게 만들고서 좀 더 감정자극해서 돈 벌 수 있으니 "자국중심주의"로 흐르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군국주의"를 대놓고 옹호하는 작품이 아닌 것처럼 "가이에다" 함장이 하는 말이나 생각하는 논리 등을 꽤 세련되고 중립적인 "무정부주의자"같은 모습으로 묘사했던 원작과는 많이 다른 이 실사화된 작품을 오늘 2편이나 꾹 참고 본 것이다.


이 실사 작품에 참여한 이들이나 "박인권 만화가" 등 "핵잠 유령" 관계자와 독자 여러분에겐 미안한 이야기이긴 한데, "박인권 만화가"의 작화 수준으로 퇴행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광기"에 빠진 얼굴로 각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음에도 서로에게 사용하지 못하고 사방 5km 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바로 역사와 세계 정세의 축소판이다라고 말하며,


미 제7함대와 맞붙은 상태에서 광기를 보이고 있는 "가이에다"의 모습은 그냥 "국뽕 마초 주인공"에 불과해 보였다.


원작의 약간 양성적이면서도 치밀한 자기 관리에 나이를 많이 봐도 40대 초반 수준이었던 "가이에다"가 광기 어린 마초에 50대 중반에 뱃살이 나온 상태로 뻣뻣하게 등장한 것이다.


이후 다른 회차에서도 이게 계속 반복될 것 같아서 힘이 빠진 탓에 3화부터 보는 것은 몸의 체력과 의식의 여유가 생기는 때를 기다려서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


투자를 결정한 "아마존"이나 기획과 제작, 출연을 결정한 이 드라마와 이미 극장용 영화로 개봉하는데 참여한 관련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수익을 내야만 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원작자도 세련되기 그지없었던 "침묵의 함대" 이후의 작품에서는 일본인의 뜨거운 "국뽕" 감정을 자극하면서 "자국중심주의"가 농후하게 담긴 작품으로 판매 부수를 늘리는데 최대한 집중했다.


이 시대에 균형 잡힌 사고와 더불어 정의와 불의의 구분은 "수익성"과 "조회수"가 결정하는 것은 혹시 아닐까? 정치인은 그 모든 가치보다 "지지율"과 "당선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건다.


직장인은 잘리지 않고 보다 오래 다닐 수 있는 기준이, 자영업자는 사업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기준이 저마다의 생각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 올바른 기준이란 것을 이젠 누가 따지는가?


"침묵의 함대"원작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순수하고도 속 깊은 통찰로 던진 듯했던 대사인 "독립하라"는 그저 그 작품 속 버전의 "가이에다"에게만 있었던 1회성에 가까운 내용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관객과 시청자가 "침묵의 함대" 실사판 드라마를 볼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 봤던 일본 애니나 만화가 너무 좋아서 이를 실사로 구현한 것을 보고 싶다가 나의 이유였다.


일본이 대동아 경영을 할 수 있을 만큼 초강대국이 되어서 주변 국가를 우리나라까지 포함해서 지배해 주면 좋겠다는 판타지가 누군가에게 있다면 그에겐 그보다 더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다.


최근의 "일제 강점기"가 다시 돌아와 있는 듯한 사회 분위기를 보자면 이 두 번째 이유인 판타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다닐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끔찍한 일이다.


잠수함처럼 실제로 매일매일 가라앉고 있는 나라를 받들어 모시고 있다니. 미친 사랑이나 신앙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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