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원작을 보지 않은 자유와 원작을 읽은 것이 해가 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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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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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르네 고시니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펴냄 | 2000.02.23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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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책 소개
말썽쟁이 실수투성이 그래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꼬마 니콜라를 만나다! 온갖 말썽은 다 피우지만 결코...
자기가 창출한 히어로 상에
대한 부정을 담고 있는
매우 반 히어로적인 영화이다
원본 소설이나 만화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그것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영화를 보는데 유리한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인 경우가 있다. 나열해보자면,
1. 원작과 영화 양쪽 만족
원작(좋은 작품)
==> 영화(원작과 동등 내지는 그 이상)
2. 영화의 한계에 화남
원작(좋은 작품)
==> 영화(원작보다 떨어짐)
3. 역시 감독 또는 영화 자본의 힘은!
원작(별로인 작품)
==> 영화(원작보다 훨씬 좋음)
4. 둘 다 구제할 길이 없구나 T.T
원작(별로인 작품)
==> 영화(원작보다도 떨어짐)
이 네 가지 경우 중에
본 게 도움이 되는 경우는 1번과 3번이다.
곧 청출어람이 되었을 때,
영화가 원본을 능가할 때 원작을 본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반대로 원작보다 떨어지는
영화를 보았을 때는 원작을 보았다는
그 자체가 아쉬움과 후회의 도가니로
나를 몰아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기타의 요소들도 많다.
원작의 캐릭터들보다 영화 속 캐스팅에
매료되어 작품성 따지지 않고
그 영화를 원작보다 더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기타 음악이 좋아서라든가,
감독에 대한 신봉이라던가
작가에 대한 신봉.
원본 창작물을 손상시켰다는 데에
대한 분노 등등이 여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한다.
너무나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음에도,
이를테면 "왓치맨"같은 경우는
원작의 심오함과 비주얼을
굉장히 섬세하게 따라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거의 보지 않은
관객들은 그 영화에 열광하지 않았다.
(내심 영화의 원작인
세계 최고의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원본을 밤샘 비행기 속에서 뜬 눈으로
흥미진진하게 보았기에
흥행에 기대를 많이 했던 나는
매우 안타까웠다)
원작도 훌륭하고 영화도 웰메이드여서
그에 못지 않았기에
원본을 봤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영화를 즐기는데
어느 정도는 도움을 주었지만,
문제는 캐스팅된 배우들이
지명도가 너무도 없는 배우들이었던
것이 영화의 흥행성을 잠 재운
큰 이유가 되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감독을
편애하기에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나오는
찬사 받지 못하는 히어로들의 성격상,
유명 배우가 역할을 맡는다는 것도
모순이었으니, 결국 원작 자체가
그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의 흥행을
가로막는 성격을 내재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왓치맨은 슈퍼맨, 배트맨 등의
히어로 만화의 원화와 스토리들을
만들어온 작가가 야심찬 기획을 갖고
그린 작품 중 하나로써 깊이와 다양함을
갖춘 주제와 꼼꼼한 설정들을 갖추고
평행우주의 색다른 미국과 냉전상황,
히어로 상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가진
매우 반 히어로적인 영화이며, 어두운
히어로물의 거의 기원을 이룬 직품 중에
하나이다.
마치 예술가가 자기가 초기에 창작한
작품들에 대해서 매우 미숙하고
어설플 작품이라 생각하며
전면 부정하고 있는 듯한 내용이
다름 아닌 이 영화의 내용이다.
히어로가 실제로 현실에 살아 있다면,
사람들은 정말로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필요성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을까?
히어로가 지구상의 악의 문제를
처단하기만 하면서 이른바 정의롭게만
살아갈 수 있을까?
만약 히어로들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힘이
없다면 히어로보다 약한 자들을 위해
정말로 의롭게 히어로들이
그 능력을 사용할 것인가?
이런 의구심과 질문들에 대한
매우 촘촘히 꾸며진 대답이
이 원작이었기 때문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수준이
아직도 유년기의 팽창된 에고를
만족시키는 것에 머물러도
이에 열광하는 관객들에겐
왓치맨은 너무 앞 서 나온 영화였고,
진지함과 위기감이 가득했던 80년 대의
냉전 상황이 사라진지 오래인
현재의 세상에는 어쩌면 너무
늦게 나온 작품이기도 했다.
원작과의 연결고리가
없는 채로 아주 자유롭게 영화
그 자체에만 빨려들 수가 있었다
반면에 꼬마 니꼴라는
원작을 읽어본 바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본 영화였기에 더더욱 아기자기한
영화의 재미가 몰려들어왔다.
프랑스 문화권에 대해서는
몇 권의 불문학 소설들, 영화들과
프랑스 혁명사, 로마사에서 언급된
갈리아 지역의 역사, 프랑스 왕정과 관계된
몇 가지 비사에 머물러 있는 나에게
이 꼬마 니꼴라라는 유년기에 이르른
프랑스 아이들의 매우 엽기스러운
천진난만함을 담은 작품으로
상당히 참신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원작의 느낌을
영화 속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세심하게 도입부에서
직접 종이로 만든 비주얼 세트를
갖추어 배우들과 스텝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화면에 공을 들였는데,
이 도입부를 통해서 꼬마 니꼴라를
원작으로 본 사람들은
영화 속의 세계로 이물감 없이
들어오는 효과를 받았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세트에 공들인
영화 제작자 및 감독의 세심함에만
감동했을 뿐. 원작과의 연결고리가
없는 채로 아주 자유롭게 영화
그 자체에만 빨려들 수가 있었다.
배우들과 실제 원작의 인물들의 싱크율을
높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 흔적들이
군데군데 나왔지만, 이전의 프랑스 영화들과는
다른 그 섬세함과 아기자기함,
세계 보편적인 웃음의 장치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아마도 원작을 보았다면
나는 자동적으로 원작의 세계와
영화의 세계의 불일치점과 일치점을
찾으려다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부분들을
놓치거나 부정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관객이 될 분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작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 왓치맨은
되도록 보지 마시길 바라며,
원작을 보지 않았더라도
꼬마 니꼴라 보기는 포기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꼬마 니꼴라는
왓치맨보다 많은 관객을 모을 가능성이
높은 영화로 돌변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라는 태생이
이 영화의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영화의 개봉이 한국에 가져온 흥행은
책 판매량이 더 늘었다는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