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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Oct 15. 2015

<이끼>-원작 배신

원작의 원 주제를 배신하다(스포일러 유의)

이 영화나 원작을 미리 보신 분이 아니라면 죄송하지만,

영화나 원작을 먼저 보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끼 (2010)

Moss

감독: 강우석

출연: 정재영, 박해일, 유준상, 유선, 허준호

정보: 드라마, 범죄 | 한국 | 163 분 | 2010-07-14


이끼. 1

저자: 윤태호 지음

출판사: 한국데이터하우스 | 2010-07-10 출간

카테고리: 만화

책 소개▶ 리뷰 [박석환의 만화방] 한국적 스릴러 새 場연 ‘독한 만화’...



원작 훼손죄라는 죄목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일단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을 보았던

네티즌들이 영화에 왜 그렇게 많이들

실망했었을까라는 주제로 잠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사실 영화 그 자체가 잘못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원작 만화인 윤태호님의 이끼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이 영화 자체로

잘 만들어진 미스터리 스릴러물이었으며,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시나리오도 수작이었으며,

콘티도 나름 방대한 스토리를 잘 압축해서

시간 순차적으로 이해를 빠르게 도우면서

진행할 수 있게끔 말쑥하게 꾸며져 있다.


박찬욱 감독님의 올드 보이라는 영화도

만화인 일본 작가의 올드보이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와서 복수라는 주제하에서

나름 매콤한 결말로 관객들의 흥분도를

극대화시키며 훌륭한 마무리를 지었다.

사람들이 올드 보이라는 영화를 평할 때,

또는 내가 그 영화를 평할 때 한 문장으로

표하자면 싱거운 원작의 결말을

매우 자극적으로 만들면서

제대로 마무리지었다라고

평가를 할 수 있었다면,


이 이끼라는 영화는 아주 매콤하게

결말을 짓기는 지었으되,

원작이 갖고 있는 주제 자체마저도

변환시켜 미스터리 스릴러물의

모호한 결론으로 마무리지은

원작 훼손죄라는

죄목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이 원작의 주제는 결국 부패한

"한국 사회"의 토양이 오랜 세월 만들어온

"이끼"와도 같은 부정부패에 대한

일갈이었으나, 이 영화는 그 무거운 주제를

거의 완전히라도 좋을 정도로 벗어난다.


주인공 유해국이 갖고 있는
부정부패를 참지 못하는 꼬장꼬장하고

자기 인생마저 망가뜨리는

강박적인 정의감이라는 미덕 아닌

미덕을 드러내 주지를 않는다.

그 미덕을 가져가 버린 사람은

검사역을 맡았던 박민욱 검사,

곧 유준상이었다.

박해일의 유해국은

주체적인 주인공의 역할보다는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상황에 갇혀

헤매는 다소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려지기 일수가 되어버린다.


결국, 부패한 한국 사회라는

주제의 일면은 박민욱 검사를 통해서

무화되어버리고 영화 속에서

실종되어 엷게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부패에 저항하는 관객들이

동화될 수 있었을 정의감에 찬

개인의 모습도 사라진다.


잘못된 공권력의 부패를

보다 정의로운 공권력이

해결해낼 수 있다라는 강우석 감독님의

감정적 해소로 끝나고 마는 투캅스와

공공의 적 시리즈의 주제가

그대로 변주되고 있을 따름이다.


결국 주제가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 커넥션에 대한

드러내기였음에도 이러한 커넥션에 대한

반발감을 이 영화의 마무리에서

떠올릴 수 있는 관객들은


원작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찾아내기 힘들어질 것이다.


나오는 인물 배역 캐스팅에 대해서

네티즌들은 100% 싱크로율을

박해일이 연기했던 주인공,

기타 조연들이 열연했던 인물들에는

적용했고 공감했었지만,


정재영이 맡은

천용덕 이장 역할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나도 원작과 달랐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누구 시더라?

정재영의 이장 역할 캐스팅은

영화의 주제가 변화된 상황에서는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공분을 가지고 증오하거나

혐오해야 할 인물이  필요했다기보다는

박민욱 검사와 유해국이라는

주인공 그룹에 맞춰 동일한 질감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급의 인물이

이 역할을 해줘야 영화 속의 미스터리

스릴러물의 긴장감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끼 원작의 이장은 작은 키에

튀어나온 이마에 혐오스러운 인상을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기괴한 외양을 지니고 있다.


바로 그 모습 자체가 부패한 사회 권력,

공권력과 결탁한 "악"의 모습이어야 할

필요가 만화 속에서는 있었음에도

영화 속에서는 상실되어 있다.


그러므로 엉뚱하게도 영화 속에서

가장 사악하고 무서운 존재로 결말 속에서

그려지게 되는 인물은 권력의 피해자 중에

피해자로 불릴 수 있을

가련한 처녀인 "영지"가 되어버린다.

굳이 여기에서 강우석 감독의 입장에 서서

변명을 하자면 부패한 권력이 제멋대로

피해를 끼친 "여성성"이라는 피해자가

오히려 부패 권력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스토리를 말하려 했다는 식의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적인 이상향을 추구했던

유해국의 아버지인 유목형의

동정심을 이용하고, 육욕을 해소하고자

하는 이장 그룹의 성욕을 이용하고,


유해국의 순진한 현실 이해마저도

이용하여 사건 해결을 하도록

부추키기기도 하는, 원초적인 "여성성"의

무기를 자신의 복수를 위해


정말 적절히 사용해온 "영지"의 모습은

전혀 그러한 변명에 일관성이나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영지"가 유목형을 죽이고

유해국을 끌어들여 이장과 그의 패거리를

몰살시킨 팜므파탈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래전 영화였던 "텔미썸딩"과

비슷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두운 틈 사이에서 서식하는 "이끼"라는

존재가 이장에서 영지로 전환되는 듯한

알쏭달쏭한 결말을 만들어내면서


강우석 감독은 이렇게 신선하고

미스터리 스릴러물다운 반전의 결론을

만들어내서 이끼 원작과는 다른 내용을

창출해내었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어찌 보면 창작자에 대한

아주 크나큰 배신행위를 해낸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는

이런 스토리 변경에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의도는 좀 더 이끼스럽다.


이 영화를 통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작에 관심을 갖게끔 했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진실한 작화의 "주제의식"을

사람들이 더 많이 보게 하고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좌익 영화 운운하는

비난의 소지를 줄이는데

동의했을 수도 있겠다.


그 이외에 영화와 만화 원작 사이에는

많은 디테일의 생략과 소재의 변경,

스토리의 변경이 소소하게 따르고 있다.


이 디테일들을 잘 잘라내는 잣대였을

솜씨 좋은 주제 변경이 낳은 효율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도,

원작을 먼저 본 사람으로서

씁쓸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끼"라는 제목을 달 수 있었을

아주 타당한 이유가 어찌 보면 사라져버린

극화의 재미를  극대화시켰다기보다는

사실은 찍어 눌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작 만화에서는 이 "이끼"로 불렸을

이장의 머리 속에서 나타나는 용그림

(부패로 만들어낸 부를 확고히 하는

완전 범죄라는 스토리)을 유해국을 불러

"화룡점정"을 찍어 마무리하고자 했다는

내용이 플래시백처럼 반복된다.

스토리가 바뀌었으므로

용 그림을 그렸어야 했을 사람은

이장이 아니라 "영지"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영지라는 존재를 반전의

소재로 삼고 싶었으므로,

이 화룡점정이라는 인상적인 내용도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극화의 매력을 30% 정도는

분명히 반감시키고 있다.


이것은 정재영 씨를 이장으로 씀으로 해서

얻은 효과를 거의 상쇄하고 나아가서

네티즌들이 환호했던 원작의 매력을

상당히 파괴한 수준이 아니었을까?


이로써, 또 한번 강우석 감독님의 영화를

욕하는 글을 하나 얹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이 없었다면,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 이준익 감독, 장진 감독 등의

메가급 버전의 감독들이 이 나라에서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영화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강우석 감독이 만든 실수처럼 보이는

부분들은 실상 강우석 감독이

만들었다기보다는 이 나라의 대중문화의

수준이 창작을 제어하고 만들어내는

만화경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강우석 감독의 진정한 우수성은

대중의 눈높이 아래에서 작품을 만들지만,
눈은 그래도 하늘을 쳐다보고,

인재를 발굴할 줄 아는 이른바 "덕"이라는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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