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라벨 분리의 극단적인 형태, 극도로 소외된 노동을 이야기하다
(사진출처: IMDb)
"세브란스"는 과연 예감했던 대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걷잡을 수 없이
끌려 들어갔다
이 작품을 애플 TV에서 계속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마치 오래 전의 "맨 프럼 어스"를 오랜 세월 동안 꺼리다가 결국에는 보게 된 것처럼, 망설임에 망설임을 거듭하다가 결국 보고 말았다.
시리즈물의 드라마는 가능하다면 손을 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러 편을 보기 위해서 써야 하는 시간이 다른 것을 해야 할 시간을 확실히 잡아먹기 때문이다.
생업과 관련된 야근과 학습, 그리고 생활에 관련된(육아 및 가사 분담, 운동, 영화 보기 및 감상문 쓰기, 소설 쓰기, 책 읽기, 서평 쓰기, 음악 듣기, 친구나 지인 만나기 등) 시간을 확실하게 줄인다.
기회비용의 문제를 생각하자면, 가급적 드라마 시리즈를 보지 않는 것이 생활의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은 들인 시간만큼 아웃풋이 나오지만 생활은 그게 확실하지 않다.
그러다 한편 보고선 그대로 사로잡혀 들어간 드라마가 최근에 "슬로 호시스 시즌 1, 2, 3"와 "김씨네 편의점" 등이었고, MCU가 만든 "완다 비전", "What if...?", "로키 시즌 1, 2", "에코" 등이었다.
정말 재미없고 기분 나쁜 일본국뽕 잠수함 전쟁물 "침묵의 함대"는 바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세브란스"는 과연 예감했던 대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걷잡을 수 없이 끌려 들어갔다.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드라마는 무조건 2배속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것을 모두 마친 심야 시간과 지하철 통근 시간, 밤산책하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시즌 1의 최종 9화까지 대략 270분가량(4시간 30분)을 사용했다. 다 보는데 1주가량 걸렸다. 시즌 2가 궁금하다 싶은데, 제작이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확인했다. 금년 중에 나올 것 같다.
특히 산책을 할 때는 음악만을 듣다가 휴대폰을 들어 이 작품을 보니 산책 중에 최대 3편까지도 볼 수 있고, 그만큼 산책 거리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어, 문화 소비와 함께 건강증진도 가능했다.
생업과 생활의 균형에 관련된 생각을 하면서 "세브란스:단절"을 봐 왔다는 것이 정말 드라마의 주제와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기에, 이 생각 자체가 잡담 같지만 감상의 일부를 확실히 이룬다.
개인도 "일과 삶의 균형"을 부르짖고, 회사도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한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과 인적 자원 확보를 추구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워라밸이 중요해진 이 시대 상을 색다르게 조명한 수작이다.
1. 보기 전에 지워야 할 선입견
1) 연세 세브란스가 떠오르는데, 혹시 메디컬 드라마인가?(X)
2) 일과 삶을 양립시키지 못하는 사회 제도 문제를 다룬 드라마인가?(△)
2. 세브란스:단절 시즌 1, 찔러 보기
좀 더 심층적으로 사회와 기업,
개인의 문제를 다루려는 듯하다
1. 보기 전에 지워야 할 선입견
1) 연세 세브란스가 떠오르는데, 혹시 메디컬 드라마인가?(X)
우리나라에서 "세브란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연세 세브란스 병원"이다. "세브란스"라고 적혀 있는 드라마 제목을 애플 TV에서 본 적지 않은 시청자는 이것을 "의학 드라마"일 거라고 오해할만하다.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세브란스"라고 적힌 제목 글자 옆에 ":"을 찍고 "단절"이란 단어를 덧붙였다. 이번에는 "연세 세브란스"의 뜻이 단절과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란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연세 세브란스"에서 "세브란스"의 의미는 "연세 의과대학 병원"과의 분리되었던 역사와 다시 연합하게 된 역사를 모두 의미하는 "분리와 연합"의 2중 의미를 지닌 동시에 기부자의 성씨도 딴 것이다.
이 드라마는 "메디컬 드라마"와는 큰 관련이 없는 SF 스릴러 판타지 드라마다.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지긴 어려운 뇌수술을 통한 "일과 생활"의 분리가 가능해진 세계를 그린다.
2) 일과 삶을 양립시키지 못하는 사회 제도 문제를 다룬 드라마인가?(△)
이 작품은 일과 삶을 분리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수술법을 만들어낸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동시에 창업주 집안 대대로 직원에 대한 엄청난 지배력을 발휘해 온 회사 "루먼"의 비밀을 밝혀가는 내용이다.
SF 판타지 스릴러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각각의 과정이 보다 미스테리어스 하게 그려지면서 매편 흥미를 성공적으로 자극했다.
미국의 대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7년간 일했던 바, 세뇌를 하듯이 직원을 교육시키고 경영자를 영웅시하며, 자발적으로 일할 동기를 끌어내는 그 과정이 전통적인 미국 기업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제시간에 퇴근하더라도 일에 얽매여 있고, 주말에 한 일에 대한 수익성을 검토하란 말이 교재에 나와 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드라마가 미국 기업 중의 일부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하게 "워라벨"을 제대로 지키자는 수준의 도덕적으로 뻔히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심층적으로 사회와 기업, 개인의 문제를 다루려는 듯하다.
2. 세브란스:단절 시즌 1, 찔러 보기
포스터 사진부터가 시선을 확실하게 끌어당긴다. 주인공인 "마크 S(애덤 스콧)"의 머리의 윗부분이 잘려 나가 있고, 그 안에 작은 피겨 같은 모습으로 책상 위에서 또 다른 "마크 S"가 일하고 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단절된 상태에서 뇌 속의 일하는 구획 속에 갇혀서 끝없이 일만을 하게 되는 존재가 있을 것이란 메시지가 그대로 잘 드러난다.
극화가 시작하기 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서 나오는 내용도 드라마 속의 상황이 복잡하고 미스테리어스 하며 괴기스러울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최초의 장면에서 회의실의 긴 탁자 위에서 정신을 차리며 등장하는 "헬리 R(브릿 로워)"는 이같이 일 바깥의 "생활"의 영역에서 사는 "아우티(Outee)"와 회사인 "루만"에서 일하는 "이니(Inee)"가 분리되는 "단절 수술"을 한 뒤에 깨어나는 신입 수습사원이다.
이 드라마가 계속해서 충격적이고도 미스터리어스 한 내용으로 계속 시청자를 끌고 들어가게 만드는 일종의 "기선 제압"이 제대로 여기에서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마지막화에선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냐면 통상 자기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는 스토리에서 많이 나온 "납치되고 취조당하는 클리셰"가 나오는 듯하다가, 사실은 그에게 질문을 하는 직원도 "루만"에게 하대 당하는 약해 빠지고, 가치 없는 듯한 존재로 취급되는 같은 "단절 수술"을 마치고 회사에 있는 이들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매뉴얼에 따라서 정신을 차린 "단절 수술"을 받고 처음 온 이에게 질문을 하는 일을 할 뿐인데, 그 매뉴얼의 내용이 어떤 효과를 갖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가 교육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여러 방식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회사"가 마치 축적된 인간 관리 기술을 가지고 직원을 관리하고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것처럼 하고 있지만, 과연 그게 제대로 된 게 맞냐는 비아냥이 느껴진다.
"루만"은 여러 미국의 가족 경영 대기업이 하고 있는 창업주와 그의 후손을 영웅시하고 어록이나 교재를 만들어 구성원의 마인드를 지배하고, 이를 어길 경우 관용 없는 처분을 하는 여러 기업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처럼 만들어진 가상의 업체다.
"단절 수술"을 하게끔 만든 뒤에 회사밖의 "아우터"와 분리된 기억을 가진 "이니"를 과도하고도 잔인한 노동환경에서 통제하고, 이를 비난하는 외부 세력에게 이 획기적인 수술을 통해서 "워라벨"을 확실하게 갖게 된 인간이 더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왜곡된 정보를 세상에 뿌리는 장면이 끔찍하다.
"코벨(패트리샤 아퀘트)"과 "밀칙(트라멜 틸만)"같은 다소 전형적인 악당 관리자 역을 맡은 2명은 단절되지 않는 기억을 가지고 일하는 단절층과 외부를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이니"를 억압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은 채로 내용 파악을 하는, 보고만을 듣고, 결정 내린 내용은 보고 레벨이 다른 직원을 통해서 전달하는 "이사회"도 현실 거대기업의 부조리를 모사한다.
가장 오래 극 중 주요 팀에서 근무한 선임 직원인 "어빙 B(존 터투로)"가 다른 멀찍이 떨어진 팀의 마찬가지의 최고 연장자이자 팀장인 "버트 G"간의 동성연애적인 감정을 갖는 장면은 이제껏 주류 드라마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나이가 꽤 많은 두 남자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런 관계도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의 일부로 그려내는데 "애플 TV"의 수장이자 커밍아웃을 한 "팀 쿡"의 존재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PC를 제대로 그려낸 것으로써 의미가 있어 보였다.
"매트릭스"와 "인셉션"과 같이 자신의 실제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과학적으로 주입당하거나 현실감을 다른 방식으로 왜곡시키는 내용을 적절하게 가져와서 새로운 형태의 미스터리를 만들어 냈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화가 있었지만 시즌 1의 마지막 9화에 이르면, 모든 화에서 시청자에게 뿌린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면서 긴장감과 동시에 시즌 2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 치밀함을 제대로 드러내면서 완결성 있게 매편의 극화를 만들어내는 드라마 시리즈를 본 적이 드물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매편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지 거의 예상을 하지 못했다. 이 정도의 극본을 만들어 연출하고 배우와 조화를 이루어서 재미있는 극화를 만들려면 엄청난 팀 플레이가 필요하다.
직장인에게 이만큼 흥미진진함을 오래 동안 제공할 수 있는 "미국 직장을 다룬 드라마"는 이 이전까지 이만한 품질의 극화로 나왔던 적이 없었다. 더구나 이것이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것은 거의 기적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