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갈등이 시작되기 전 파격적인 설정의 고요함
(사진 출처: Korea Times)
아무도 추천하는 작품이 없을 경우엔 직업적인 영화 전문가도 아니고, 여러 OTT 채널이나 개봉 영화 등의 시사회에 초대받을만한 자격을 가진 것도 아닌 나는 뭘 볼지를 결정 못하는 장애를 마주한다.
개봉 영화 한 편을 통신사 할인으로 보려고 해도 집안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육아와 가사 분담에 확실히 할애되어 있는 "나"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얼마 전에 아이폰 15로 기기를 변경하면서 3개월 정도 애플 TV를 무료로 보던 짧은 호사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인데, 이걸 보고 쓴 글이 돈이 될 가능성은 낮다.
앞으로 돈이 될 가능성도 낮아 보이는 취미를 계속 연장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나님의 눈치를 더 이상 보기도 어려우니 시간이 지나면 이 OTT 두 가지도 가정 경제 내에서 사라질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개봉 영화든 OTT작품이든 더 볼 방법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암울하다.
아무리 돈을 벌어오더라도 잘 나가는 남과 비교하면 항상 적은 돈이고, 아이가 하나뿐이지만 너무 어려서 조금 삐끗해서 직장을 잃는다면 교육 비용 지출이 힘들어질 것을 먼저 걱정하며 소비를 가능한 최소화한다.
아이 하나를 대학까지 보내는데 평균 4억원 가량이 든다. 둘이라면 8억원이다. 그런데 AI의 본격적인 등판에 따라 기존 교육 과정 이후에 직업 전선에 대한 예상은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고 나라 살림은 보다 거세진 권력자의 탐욕으로 망가지고 일본에 예속화 되면서 국가경쟁력도 맹렬히 추락하고 있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 외에는 아무 돈도 쓰지 않고 아무런 문화적 잉여 생활도 하지 않는 상태로 살아야 하는 지상과제를 갖고 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오디오북 등으로 책을 보는 취미를 기르고 있다.
받는 용돈 이상의 지출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공박을 당하는 상황에서 퇴직 이후의 급여를 마련할 길을 가급적 빨리 찾아보라는 종용도 받고 있다.
취미를 포함한 사회생활에 쓰는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만혼에 이어서 노산으로 낳은 아이의 육아를 위한 비용 축적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이 압박감을 무릅쓰고서 아이를 낳는 게 지금의 부부다.
겨우 경제적인 보금자리를 갖춘 뒤에 육아라는 사회적 과제를 앞에 둔 부부에게 스폿성의 정부 출산 유인책이나 주택 구입 시의 인센티브 등은 사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안다.
상대적 경쟁에서 우위나 최소한 동등한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여기저기에서 사정없이 쓰다 보니 물가 상승률을 홋가하는 사교육비 상승률을 경신하는 사회는 낳으면 낳는 대로 더 힘들어지는 가계 살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입신양명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오랜 역사적 전통으로 내려오면서 여러 형태로 더 강화되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남이 잘되는 것을 몹시 싫어할 정도로 나와 내 가족만 잘되야 한다는 욕심이 강한 사회에서 살아왔고, 아이를 키우며 출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알게 모르게 주입하고 있다. 성리학적 세계관이 짙게 남아 있는 국가다. 그리고 아무리 성공해도 부모나 자식간에 만족감이란 없다.
가족 구성원이 인정받지 못할 취미 따위에 쓰는 돈은 항상 너무도 몹시 아깝고 남에게 과시할만한 자식의 교육적 기능적 성취에 비용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행복이 그것에 달려있다.
그래도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인력의 소중함이 반영된 급여의 상승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생기는 것처럼 보였던 사회안전망 차원의 복지는 그래도 아이를 낳아서 키워볼까라는 입장을 강화할 수도 있었으련만. 그렇게 키운 아이와 청년이 죽건 말건 권력자는 신경 안 쓰고 복지는 뒷전이다.
그러고서 애를 낳으라고 하니 어불성설일 따름이다. 둘째를 낳지 않는 결정을 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정부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국가 경쟁력을 위해 아이를 더 낳으라 하지만 더 낳고 나면 더 불안한 경제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뻔한데 왜 위험을 무릅써야만 할까?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굉장히 벌이가 신통치 않은 직장에서 위태롭게 일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른바 30대기업 내의 회사에서 나름 배테랑이라고 자부하고 업력에 따른 내공도 갖고 있다.
그렇지만, 항상 위태위태해질 상황이 언젠가는 찾아올 것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다. 퇴직하는 순간부터 아마도 직장 내 동료와 거래처 등 사회적 인맥과의 연락은 대다수 냉정하게 끝날 것이고, 이후의 직업이 내게 어떤 수준의 급여를 허락하게 될지, 내 연금은 제대로 나오기나 할지 아직 잘 모른다.
마나님은 들어오던 돈이 있었어도 그리 살갑지 않았던 분인데, 급여가 아예 안 들어오는 시기가 길어지면 아마도 "카프카"의 "변신"이 다룬 것처럼 풍뎅이로 변한 내게 사과를 던질지도 모른다.
아이도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있다. 회사에서 월급이 들어올 때에도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고 불만이었던 녀석이 더 안 사준다고 물정 모르고 짜증부터 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한 가장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가장이 노년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안정적으로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최소한 사회 복지를 통해서 아이 교육이라도 마칠 수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행복 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사는 것을 감사히 여기기로 한다면 뭐 어떻게든 견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려면 이 사회에 왜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일까?
정치적으로 우파로 불리던 좌파로 불리던 사회 복지에 대해서 한국의 두 정당은 간신히 숨만 쉬고 살아갈 수준을 추구해야 할 복지로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양상은 달라도 같은 곳을 보고 있다.
우파는 복지 예산을 최소화하고 복지의 종류를 줄이는데 열심이다. 좌파는 사회복지업에 종사하는 사업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고 거의 수익을 내지 않고 사업을 하도록 수익을 최소화시킨다.
그렇게 사이좋게 열심히 복지 최소화 정치를 해서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나 노인 빈곤율 등의 복지 열악 국가로서의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최소한 유지하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율은 그 과정에서 고맙게도(?) 던져진 덤이다. 양 정당이 서로 국민을 강하게 만들어서 소수 정예만 남겼다고 자랑하고 다닐만하다.
이런 현실 앞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의 싸늘한 "헬조선"에 제대로 기대어져 만들어진 "데스 게임"류의 작품은 높은 성공 확률을 지니고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이 이런 쪽으로 더 많이 다양한 작품을 내놨지만 그렇게나 큰 글로벌적인 반향은 낳지 못했다. 충분한 수준의 지옥이 아니라서인지도 모르고, 국민이 자신이 사는 곳이 지옥인지도 모르고 있거나.
"오징어 게임"의 빅히트 이후에 "오징어 게임 2"가 바로 나왔을 만도 한데 금년 말로 넷플릭스 상연 일정이 정해져 있고, 기다림은 어느샌가 기대와 유리된 상태가 되어버린 것만 같을 정도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한재림 감독"의 "더 에이트 쇼"가 "오징어 게임"의 아류작처럼 보이게 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오징어 게임보다 먼저 만들어져서 웹출판된 "배진수 작가"의 "머니게임"과 후속작인 "파이게임" 2개의 웹툰 작품을 혼합해서 만들어져 넷플릭스 드라마로 나왔다.
그 1편을 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직장의 동료가 하나 이 작품을 꼭 봐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8층 중에 몇 층에 속해 있는 사람인가를 평가해 보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이 궁금함을 끌어올렸다. "오징어 게임"은 비참한 밑바닥 층에 속하게 된 이들이 "데스 게임"에 끼어든 뒤에 거의 대부분은 무차별적이고 평등한 조건 상에서 게임을 수행했고, 이것이 보는 이로부터 이 사회의 매콤함을 제대로 캡사이신을 뿌려 먹는 느낌으로 증폭했다는 반응을 낳게 했다.
"더 에이트 쇼"는 1번부터 8번까지의 참여자가 최고층인 8층부터 1층까지 각기 다른 번호와 더불어 차등이 있는 금액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받게 되고, 시작부터 금수저와 흑수저 층으로 확연하게 다른 선상에서 출발한 게임을 진행하는 것으로 설정이 나와 있다.
"오징어 게임"만큼의 대중적인 반향을 낳기는 조금 어려운 설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 작품의 설정이 실제 현실 사회의 설정을 더 제대로 반영했다는 느낌을 제공한다.
확실한 차이를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한 적도 없는 상태에서 커다란 차등이 생겨서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은 때로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겪고 있는 불평등함 앞에 무력감을 느끼게도 만든다.
"유준열"이란 연기력에 대한 호평과 더불어 외모에 대한 혹평, 연애사에 대한 시기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흥행 배우와 문제 배우 양쪽을 맹렬한 속도로 오가는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고 있다.
그 캐스팅이 이 게임의 의미를 좀 더 리얼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 같다. 누가 보기엔 현실에선 그가 8층 8번 같을 수 있다. 극 중 외모나 가진 능력으로는 3층 3번 정도의 배역이 맞더라도 말이다.
가난하고 추레한 동네를 벗어나서 제대로 떵떵거릴 수 있는 삶을 찾아보겠다는 분수에 넘치는 소망을 품었던 젊은이가 투자에 대한 바람을 불어넣은 선배에게 속아서 9억이나 되는 돈을 사채까지 털어서 투자금으로 넘긴 다음에 빚 지옥에 빠져 허덕이는 장면은 만화나 무성 영화 방식으로 편집했다.
그것이 실사 영화보다는 보다 만화 같았던 만큼, 이를 극복할만한 게임 한판에 모든 것을 걸고 참여하는 그의 모습이 꽤 설득력 있어 보였던 것 같다.
실제의 그 배우라면 그런 게임에 위험을 무릅쓰고 참여할리가 없고, 아무리 빚이 많더라도 섣불리 생명을 던지거나 할리가 없다.
그러나 그런 일사천리로 압축해서 그리는 사회 속에서 막다른 길을 맞아 살아보고자 애쓰다 안되니 다리에서 투신하려고 했던 주인공이 게임에 참여하라는 문자를 매통 100만 원씩 받으면서 보다가 게임에 참석하게 된다는 내용은 이 극에서 리얼리티와 신선함을 잠시 무너뜨리는 장면이다.
물론, 이 작품은 소름 끼칠 만큼의 리얼리티를 발휘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극화다. 다큐멘터리에 준할 만큼의 리얼한 상황을 구현했다가는 실제로 이런 비극의 게임이 기획되고 실행될 수도 있으니까.
이제 1편을 보았을 뿐인데, 제멋대로의 매력을 어필하고 있는 외계 생명체 같은 별종의 역할을 전매특허처럼 맡곤 하는 "천우희 배우"와 지능적인 역할에 걸맞은 "박정민 배우", 이 두 명의 배우가 "유준열 배우"보다 더 씬스틸러처럼 잘 보인다.
그런데 더 주의 깊게 봐야 할 극화의 관련자가 있다. "비상선언"으로 "전체주의자" 프레임을 쓴 상태로 고증마저 엉망진창인 영화를 찍었다고 공박당하고 추락했던 "한재림 감독"과 음주 운전 사건으로 가진 모든 이미지를 망치고 추락, 칩거했던 "배성우 배우"가 패자부활전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이 두 사람이 이 작품을 통해서 부활을 했던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에도 관람 포인트가 있다. 이미 8편이 모두 올려져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이야기는 줄인다. 2편은 기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