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기와 인생 보기의 차이점
(사진 출처 : Ars Technica)
취향이란 것을 너무 디테일하게 정해놓고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선택지는 매년 줄어드는 쪽으로 간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재미있게 볼 영화의 숫자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같이 볼 일도 없어진다.
그렇지만 완전히 취향을 배제하고 이 영화 저 영화를 보겠다고 오랜 시간 "찔러 보기"란 것을 하다 보니 이 역시 딱히 꼭 추천할만한 보는 방법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 제목 아래 본 영화의 상당수는 결국엔 "취향"에 부합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그 범위 바깥으로 아주 많이 나간 것은 없다. 그렇지만, 직업적인 이도 아니면서 좀 더 넓힌 것은 맞다.
그럼으로써 인생을 좀 더 넓어진 안목과 깊어진 이해와 더불어 살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의도에 100% 는 아니었더라도 77% 정도 부합하긴 했던 것 같다. 보기 위한 각도를 약간 틀었다.
그럼 왜 이번에 연 새로운 연재의 제목은 "돌려 보기"인가?
이전에 한번 보았지만 내가 살아온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한번 더 보게 되면 그 의미가 달리 보이는 영화가 분명히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생각하고 이해했던 내용이 새롭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예전에 본 영화라도 혹 다시 보게 되면 슬그머니 넣어서 쓰기로 하고 연재 제목도 이렇게 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화를 찾아보는 빈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래도 "찔러 보기"가 아니라 "돌려 보기"인 것은 자세히 들어서 이리저리 살피는 것처럼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수박을 들어 겉면만 슬쩍 돌려 보고 맛을 감잡듯이 그렇게 "돌려 보기"하려 한다.
어차피 직업적인 전문가도 아닌데, 이모저모 잘 따져서 세세하게 써봐야 끝까지 읽을 이도 드물다. 그렇다고 전문가가 아닌데 길고 세세하게 쓰고 독자도 조회수도 높은 분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자각이라고 봐주면 되겠다. "있어빌리티"를 장착해 봐야 의미가 생기는 글이 내가 쓰는 글이 아니란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글에 의미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의미는 영화를 취미로 삼아 오랫동안 보아온 "일상인"이 겪는 "인생 보기"와 "영화 보기"간의 차이점이나 공통점 같은 것을 발견해서 그를 통해 글을 쓰다 보면 발견될 것이라 막연하게 믿어본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쓰는 두 번째의 글은 아래와 같다.
"아마존 프라임"에 들어서면 솔직히 뭘 봐야 할지 막막한 느낌이 꽤 오래 번진다. "반지의 제왕" 외전 시리즈도 있고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착실하게 거의 모두 올려놨다. 하지만 없는 게 너무 많다.
넘치도록 많은 것은 이미 예전에 봤던 고전급에 준하는 개봉 영화 히트작과 "인도"와 그 주변 국가의 영화다. "한국어" 번역 자막이 나오는 영화 편 수도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다가 "오웬 윌슨"과 "셀마 헤이엑"이 나오는 작품인 "블리스"가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 각각 내 취향에 부합한 연기를 해온 유명 배우이고, 감독 "마이크 카힐(Mike Cahill)"은 아주 유명한 블록버스터 감독은 아니지만, "선댄스 영화제" 등에서 반응이 좋은 저예산 독립 영화 내공을 가졌다.
내용에 대한 설명이 원래 "병행 세계"나 "이공계", 다른 세상의 존재를 그려내는 판타지나 SF 작품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내 관심을 끌었다. 두 남녀 주연 배우 배역이 가상현실을 오가는 내용이다.
이런 종류의 작품을 좋아하고 잘 찾아보는데 혹, 내가 원하는 작품이 안 나오면 내가 만들겠단 마음도 있다. (그 마음으로 SF 소설도 쓰고 있지만, 역시 원하는 대로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상담 센터에서 나름 직위가 있는 "그렉 위틀"은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풍경과 사람을 그림을 그리는데 사로잡혀 있다가 사장에게 해고 통보를 직접 받는다.
"통보"를 받다가 벌떡 일어나 "사장"을 들이받았는데 그가 뒤로 넘어지면서 후두부를 테이블에 강력하게 부딪치며 갑자기 죽게 된다. 좀 어이가 없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몸싸움도 거의 없었고.
그는 다른 이가 자신에 의해서 사장이 죽게 된 것을 모르도록 만들기 위해 창문의 잠금장치 손잡이 걸이 2곳에 사장의 양 팔소매를 걸어 고정시켜 창밖에 서있도록 만들고 회사 밖으로 나온다.
이 장면이 연출이 좀 듬성듬성이라서 "아이디어" 대비 디테일이 떨어지거나 제작비의 문제로 인한 한계가 많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매트릭스"류의 그래픽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극의 끝까지 보게끔 이끌었던 것은 내용 안에서 과연 이 두 사람의 남녀주인공이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에 있는 것이 확실한지가 모호해서 헷갈리고, 가상 세계라 불리는 곳에서 인연이 된 "그렉"과 그의 딸인 "에밀리", 아들인 "아서"의 관계가 거짓임에도 영향을 미쳐서다.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임금 노동자의 처우가 너무 나빠서 길거리에서 "최저 임금 확보"를 위한 투쟁과 데모가 넘쳐나는 "미국 사회를 그려낸 가상현실"은 답답함과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답답한 현실은 사실 지금의 "미국"의 일면을 제대로 드러낸 장면 같은데, 이 안에서 "그렉"을 술집에서 만나 "FGP(Fake Generated Person)"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만으로 넘어뜨리고 폭력을 가하는 "이사벨 클레멘스"는 "자신"과 "그"가 "영혼의 짝(Soul Mate)"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 세계 속에서 "그렉"이 겪은 실직과 이혼 등의 내용까지 포함한 힘든 사회의 모습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서 "책임"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한다.
오로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짜라고 이야기하고 이 세계를 벗어나면 진짜만이 있는 세계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현실 속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사벨"은 매춘도 하고, 현실을 지배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목걸이와 그 안의 신비한 약을 먹고 초능력을 발휘해도 "그렉"은 믿지 않는다.
계속 그의 마음을 그 가상현실 세계에 붙들어 메고, 나중에 가상현실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현실을 확인하고 그곳에서만 남아 있기를 바라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다시 가상현실로 돌아온 "그렉"은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이 좀 더 거대한 예산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군데군데 발생하는 이야기의 결락과 인물 간의 동기의 모호함 등이 보다 세련된 화면과 연기, 배우에 의해서 상쇄되고 더 재미있게 만들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두 배우의 연기가 극을 주도한다고 해도, 커버를 칠 수 없는 수준으로 "갈팡질팡"하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두 배우를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감독이 치밀하게 연출할 능력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둘의 연기를 떠나서 꽉 막힌 듯이 보이는 재미없는 구간이 몇 군데 있다.
그렇지만 "가상현실 세계"를 다룬 영화를 찾아서 보는데 열심인 분이라면, 여기 하나 더 수집할만한 영화가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2021년작으로 이 작품 이후에 나온 각각의 자신의 "블록버스터급" 영화에서 두 배우는 이 작품에서보다 훨씬 더 관객에게 어필하는 연기를 해냈고, 큰 매력을 보여줬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그렉"의 생각이 극 중 후반까지 아무리 "이사벨"이 많은 증거와 초능력을 보여줘도 자기가 사는 세계가 현실일 거라 믿었다가 그 믿음이 깨져서 돌아오기 싫어했지만 돌아온 뒤에 그 세계 속에 "이사벨"과 자신의 딸인 "에밀리" 양쪽을 위해 잔류하기로 결정하는 반전이다.
그러나 그 장점 때문에 극이 진행이 보다 밀도 높고 치밀하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다. 계속 헤매기만 하다 극이 끝나버린 느낌이다. 그리고 인간의 인생에 대한 반추나 현실과 가상현실 공간에서 혼동을 느끼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시사성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감독이 "시나리오"에 있는 아이디어를 살려내는 것 자체에 심혈을 기울였을 거라 생각한다. 굳이 영화가 교훈 있는 메시지를 선사해야 한다던가,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것을 던져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이에겐 이 영화가 줄만한 불편함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겐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