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정은 작은 단위의 사회나 큰 단위의 사회에나 어디든 벌어지는 것
전날에도 단톡방에 SNS등에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에서 있었던 내용을 올리는데 대한 가이드라인이 주어졌다.
개인정보가 나와선 안되고, 나오는 사람의 동의 없는 사진이나 영상이 올라가선 안되고, 합창단이나 유니세프의 내부 보안 정보가 나가도 안되고 등등의 회사에서 교육받는 것과 크게 다름없는 유의점이 나왔다.
여기가 후방인 줄 알았지만, 완전히 전쟁터를 벗어난 것은 아님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연습이 끝나기 전의 공지사항으로도 나와서, 연습기를 작성하고 있는 내 글에 대해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언급한 내용이 혹시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공포감 같은 것이 엄습해 왔다.
그래서 브런치 페이지를 모바일 폰에 열어, 들고 가서 "유니세프의 팀장님"과 공지를 전달한 "총무님"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내용 잘 알겠으며, 보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글이긴 하지만, 신경 써서 수정하고 글에서 개인정보나 회사 및 단체 관련 보안 사항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다 지우거나 블로 처리해서 이미 쓴 글부터 수정하겠다' 정도로 이야기했다. 그다음에 시간이 있을 때, 하나하나의 글에 들어가 작업을 했다.
1. 곡명이 나온 것을 이미 발표되고 연주되고 공연된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Twinkle, Twinkle, Little Star"를 빼놓고 지웠다.
2. 연습 내용 중에 상세한 수업법 등의 내용을 가급적 애매모호하고도 단순하게 수정했다.
3. 동영상 올린 것 중에 뒷모습만 나오면서 합창하는 것을 빼놓고는 모두 지웠다.
4. 그리고 이제부터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쓰지 않고, 배운 것에서 얻거나 확인한 메시지 중심으로만 글을 쓰기로 작성 방향을 정했다.
예전에 "브런치 무비패스 5기"에 선정되어서 봤던 사실 그렇게 재미있게 보지는 않았던 "쥴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논스톱"이란 영화에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한 작가가 베스트셀러인 자신의 책에 나오는 인물의 스토리를 주변의 실제 인물에서 가져왔고, 여기에 대해서 그 인물이 자신의 삶을 도용했다는 소송을 거는 내용이었다.
순수한 창작으로 실제의 인물과 전혀 상관없는 인물만을 상상해 내서 소설 등의 글을 쓰려면 결국 SF나 판타지, 무협, 코미디 등의 현실 반영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장르만을 창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안전한 세상으로 한국 역시 돌입하게 된 상황으로 보인다.
이미 "카프카"의 소설인 "심판"에서도 비유 및 상징으로 나오듯이 현대 서구 사회는 수많은 소송과 사회적으로 복잡한 규약으로 인해 옴짝달싹도 못하고 자기변호마저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도 잘 모르는 채로 법적인 심판을 받고, 이를 사회적 시스템에 의거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수행하는 세상에 들어가 있는지 오래되었다.
그 무거운 시스템의 무게가 계속 더더욱 무거워지다가 창조력마저 억눌러 더 이상 재미있는 창작물이 안 나오고 있는 것이 그들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디 사회적 계약이나 법률 등은 사회적 약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동시에 힘과 권력, 돈을 가진 자가 제멋대로 전횡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만들어진 면모도 있다.
그러므로 보다 복잡해진 인권보호에 관련된 법이나 규정을 이해하고, 비록 웹상의 일기장처럼 쓰는 중이라 거의 보거나 반응하는 사람도 드문 글이라고 하더라도 최대한 이를 유의해서 쓰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 보자면, 그런 것을 아차 잘못 실수해서 썼다가 소송 등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보다 현명한 것 같기도 하고, 한주 정도 쓰기로 한 회를 지연하거나 펑크를 내도 그걸 가지고 뭐라 하는 독자도 없는 글인데, 앞으로 안 쓴다고 해도 무슨 지장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드러낼 생각이 있는데다 의욕도 있고 에너지도 충만하며, 오랜 시간 습관이자 버릇처럼 써 온 게 나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이 쌓여온 "기억 자아"라는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저 두려움에 움츠려서 더 이상 "내"가 갑자기 아니고자 하는 것은 마치, '어차피 죽을 건데 열심히 살아서 뭘 더 할 필요가 있나'하는 패배감에 빠지는 것 같아 그러진 않고 싶다.
그냥 쓰기는 쓰되, 어깨의 힘을 더 빼고, 기억을 최소화하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만 글로 써서 남기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이 어쩌면 아주 예전부터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데는 나란 생체 컴퓨터에 쌓여 있는 데이터를 방출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제어하지 않는 시대엔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게 아닌 시대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처음 곡은 인생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곡이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이 언젠가는 지나가는 것이 인생임을 그려내는 곡이었다. 나 같은 블로깅이 취미인 이에게도 압박이 주어지는 게 인생이지만 움츠리고 버티면 이 또한 지나갈 것이겠지 싶었다.
그 곡을 연습하기 전의 발성 연습 때, 호흡을 계산하지 말고, 멈추기 전까지 최대한 뿜어내라는 훈련이 있었는데, 이 두 가지가 겹치면서, 결국 우리의 인생의 각 순간은 때론 계산된 만큼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더 최선을 다할 때 빛을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이곳에 대해서 더한 정서적인 집중을 위한 연관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인지, 우리 합창단이 연습하고 겪어 가고 있는 과정에 이 노래를 대입하면서 부른다면 좋겠다는 조언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좋은 연상이 떠오르면서 부르는 곡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좀 더 쉬워졌다.
그다음에는 그레고리안 성가 중 하나를 다시 연습했는데, 나만 열심히 다시 들었겠거니 생각했는데, 당시 연습했던 것을 몸이 기억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인지, 상반기에 오디션까지 보면서 연습했던 영향인지 예전에 연습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보다 더 나아진 듯한 느낌이 드는 합창이 이뤄졌다.
원래 앞 열부터 파트를 1과 2로 양옆에 나눠서 강당 끝까지 순서대로 배열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것이 아카펠라를 염두에 둔 자리 배치였다. 이제 거의 대부분 반주가 붙는 합창곡이므로, 빈자리를 최소화하고 서로 밀집되게 앉게 하는 동시에 파트 1과 2를 앞뒤로, 다른 파트를 양옆에 붙이는 방식으로 오늘 아침 자리를 재 편성하면서 소리가 집중되는 형태를 갖게 된 것도 영향이 있긴 했었다.
여기에는 생각보다는 잘했지만, 잘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평가가 있었고, 상황에 따라서는 각 파트별 2명씩을 선발해서 별도 중창팀을 만드는 것도 고려중이란 이야기도 있었다. 그만큼 합창단원 간의 격차가 있는 곡이라는 내용 같았다.
내가 두곡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는데 참조한 것은 "VOCES8" 8부 아카펠라 그룹이었는데, 이 그룹은 성가 등을 "뮤지컬 창법"에 가깝게 쥐어짜고 늘인 방식으로 부른 것이라 참조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도 있었다.
합창 위주의 형태로 된 곡을 듣고, 그 곡을 부르는 방식으로 연습하는 것이 맞으므로 앞으로 이 형태로 주어진 링크의 곡을 듣기로 했다. 나는 이곡이 좋지만 아닌 이도 있다.
그다음에 가족을 다룬 곡은 리드미컬하고 약간은 재즈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이어서 부르는데 또한 재미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는지, 다른 모든 단원이 이 곡 역시 빠르게 흡수했다.
오랜만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다시 불렀는데, 역시나 물 만난 고기 마냥 다들 즐겁게 감정을 살려서 잘 불렀다. 이렇게 되니 다시금 사기 충천한 상태가 되는 듯했다.
총 4곡을 한 번에 연습하면서 2곡은 새롭게 배우는 곡이었으니 속도가 빠른 편인데, 하반기 마지막 종강 시점 전까지 10회 정도만 연습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최소한 1시간을 소화하는 합창단이 되기 위해선 이미 배운 곡만큼을 추가로 더 연습해서 레퍼토리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라는 열변이 있었다.
한국어 가곡 등은 현재 합창단의 실력으로는 한 번에 2곡까지 파트별 음을 마스터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듯한데, 관건은 영어나 라틴어가 들어가는 곡을 배우는 데는 한 번의 강의만으로는 어려운 바가 있고,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서 각 파트별로 자습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합창곡의 특성상 자리에 모여 맞추는 것이 개인별 연습만으로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어 곡을 마스터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그러고 나서 강의가 끝나기 전에 모두 일어나 연습한 곡을 모두 이어서 한 번에 불렀는데, 과연 합창단 다운 음색이 일어나서 부르니 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모자란 것이 분명하겠지만, 언젠가는 훌륭한 합창단이라 부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인생은 마라톤이고 단기적으로 미리 모든 게 결정되는 게임을 하는 이는 극소수일 뿐이다.
이것이 또한 단 오전 반나절 동안 벌어진 인생의 우여곡절과도 같은 연습의 내용이었다. 다음 주에는 추석 연휴를 맞아 연습을 쉰다.
새로 들어온 남성합창단원만 모여서 점심을 같이 하고, 커피를 마시며 단복에 대한 의견을 서로 교환했는데 여기에서도 서로 간의 경청과 더불은 성숙된 토론을 통해 의견이 모아져 원만하게 모인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이 만들어졌다.
이 또한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이곳에 있다는 다행스러운 또 하나의 예제였다. 이 문화가 계속해서 긍정적으로 발전하고, 참여하는 이가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그것이 합창이 되든 그 무엇이 되든 값진 결과물도 과정 속에서 만들어 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