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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코리아 합창 페스티벌>-관람 후기

여러 목소리가 악기가 되어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연을 관람하다

by Roman

https://www.lotteconcerthall.com/kor/Performance/ConcertDetails/260700

출연

Ewha Harmonia|이수연
코랄 TGY|양태갑
파이데이아 합창단|김호재
연세콰이어|방성현
아름다운 여성합창단|하찬송
밝은 빛 남성합창단|김성강

주최

한국일반합창연합회

주관

지클레프

후원

(사)한국합창 총 연합회, Choir&Organ


제대로 된 합창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한 것은 평생을 통틀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너무 여러 번 글로 썼던 것이라 다시 쓰기 민망하지만, 단복을 살 수 없어서 연습하고도 탈퇴한, 당시 다녔던 도곡국민학교의 혼성합창단이 경연에 참여해서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에 가서 펼쳤던 공연을 보러 갔던 것이었다.


그때 그 창단 첫 전국 국민학교 합창 경연 대회의 본선에 올랐던 합창단이 은상을 수상하는 순간을 보는 것은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다니는 학교의 명예를 높였기 때문에 좋고 뿌듯했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으론 슬펐다. 가난은 화려한 영광 앞에 장애물일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이 두 번째의 공연은 그런 가슴 아픈 가난의 추억과는 거리가 있는 경로로 보게 된 것이다. 39년 만에 처음 여러 합창단이 모여서 "연주"를 하는 것을 보게 된 곳은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에도 속하면서 동시에 "연세콰이어"에도 속해 있는 여성 단원분이 오고 싶은 이들에게 표를 주겠다고 했고, 그러자마자 바로 달라고 해서 한 장 받기로 한 뒤에 "보이즈" 멤버 두 분의 신청도 도운 것이었다.


가게 된 공연 장소도 으리으리한 롯데월드타워의 8층에 있는 "롯데콘서트홀"이었다. 한국일반합창연합회가 주최한 것이므로 참석한 합창단도 물론 전문적인 직업 합창단원이 아닌 말 그대로 "일반인"들인데, 맞춰 입고 온 의상도 화려한 무대에 어울리게 화려하고 저마다의 색감과 멋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반 합창단 하나하나의 실력이 무대의 설계 자체가 공명이 잘되고 음향이 잘 들리도록 되어 있는 것을 떠나서 일사불란하고 통일성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취미라고 할 수준을 넘어서서 직업 합창단 수준에 필적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고, 저마다 선정한 곡이 저마다의 색다른 개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누가 더 잘했다가 아니라 모두 잘했다고 느꼈다.



누가 더 잘 부르는가로 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합창 연주는 누가 더한 개성과 청중의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했는가로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적지 않은 곡에 악보 없이 한치의 오류도 비전문가로선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고 실수 없이 잘 부른 각각의 합창에서 기억에 남은 곡은 쉽게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게 될 정도였다. 아카펠라도 능숙하게 소화했다.


독보적인 "디바"급의 여성 단원이 고음부나 단독부를 부르게 해서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높은 경지를 맛보게 하는 팀들도 있었고, "디보"의 강력한 남성미를 뽐내게 한 팀도 있었다. 아프리카의 언어와도 같은 이국적인 언어와 의성어, 춤 동작을 지닌 곡을 부른 팀도 있었다.


뮤지컬 영웅을 테마로 한 뮤지컬과도 같은 구성으로 대형 태극기를 중심에 깔고 늘어서 "디바"와 같은 뮤지컬 배우 같은 느낌의 여성 단원이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부르고 남성만으로 구성된 합창의 음색에 변주를 준 팀은 무대를 압도했다.


특징적인 것은 서구의 성가곡 등이 합창곡의 원조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기에 수준 높은 곡은 통상 외국곡이기 마련인데, 한국 가요와 민요, 뮤지컬을 편곡해서 분위기를 보다 한국적인 것이 더 수준이 높은 것으로 느껴지게끔 편성을 한 거였다.


마지막 연합합창 시에도 그런 한국색을 강조한 밝은 빛남성합창단의 김성강 지휘자님이 전체 지휘를 맡아 민요를 가공한 곡에 꽹가리도 치며 전래 신랑신부복을 입은 두 젊은 남녀가 서양식 왈츠 댄스를 추는 장면 등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수준 높은 공연을 보고 나니, 내가 속한 합창단도 이런 수준급의 "일반합창단"의 궤도에 언젠가는 오를 수 있겠다는 희망과 동시에 의욕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물론, 많은 장애물이 산재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림이 더 또렷하게 그려지는 것 같아 더 힘이 난다. 적어도 완벽한 프로의 경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경지 정도에는 닿아야 일정 수준을 가진 합창팀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기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수준 높은 전문 합창팀의 공연만 주로 보다가 그와 비교해서 큰 손색이 없는, 직접 공연장에서 일반 합창단 중에 높은 실력을 지닌 분들의, 공연을 보니 목표가 생긴 셈이다.


시간과 노력의 문제겠지만, 결국엔 가닿을 것이다. 직업이 따로 있고 전공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이가 해낸 것을 우리가 못해낼리는 없다. 취미이자 후원활동이지만 수준이 높지 말란 법은 없고. 그리고 난 다행히도 지금 가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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