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잡히는 일정에 맞춰 점차적으로 연습곡이 쌓여가고 있다
상반기에는 그레고리안 성가 2곡을 배우는 것에 적지 않은 단원이 고난도의 곡을 소화해 가는 과정에 대한 고통과 답답함, 어려움을 토로했었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지휘자님이 한국어 가곡과 가요, 팝송을 추가하면서 1시간 정도 분량의 단독 공연을 위한 과제곡을 여러 곡 연습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따라서 상반기에 배운 곡보다 더 많은 곡을 하반기에 배우는 것이 현재의 연습 방법이고, 오늘은 총 5곡을 연습했다. 우선 오전에는 가요를 편곡한 새로운 곡을 연습했는데, 익히 잘 아는 멜로디에 변주부도 원래의 가요로부터 많이 벗어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수월한 연습이 이뤄졌다.
다만, Bass가 Tenor, Alto, Soprano와 같이 불러야 하는 멜로디라인은 약간 버겁게도 느껴지는 바가 있었고, Soprano는 원래 남자곡으로도 고음역 대에 속하는 멜로디를 부르면서 더 높게 불러야 하는 부분도 있긴 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곡의 분위기는 그런 고충을 사라지게 했다.
깨닫게 되는 바는, 진지한 곡이든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이든 새로운 곡을 배울 때 생각보다 더 많은 단원의 호응을 낳는 곡은 긍정적인 가사로 된 밝고 희망 찬 곡이라는 것이다. 그 곡의 가사가 가진 긍정적인 기운이 부르는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 의욕으로 전환하는 바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전체 연습 시간의 반을 새로운 곡 한곡에 쏟고, 이전에 배웠던 곡을 4곡 연달아 부르면서 각 파트별로 잘 안 맞는 부분을 다시 복기하며 연습하면서 연휴 동안 듣기와 따라 부르기를 며칠간 쉬었던 여파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정상출퇴근 시마다 산책 때마다 듣던 루틴을 쉬었더니 그랬다.
직장인이자, 육아를 같이 하는 입장이다 보니 오로지 합창 자습만을 위해 쓸 시간이 온전히 주어지는 경우는 전혀 없다. 하지만 단 3~40분이라도 배운 각곡의 Bass음만을 먼저 한 번씩 듣고, 합창곡을 들은 뒤에 주말에 유튜브에서 찾은 합창곡을 틀어 놓은 상태에서 한 번씩 불렀던 루틴을 2주가량 하지 않았더니, 전전 주에만 해도 매끄럽게 부를 수 있었던 음이 안 들리고 안 불려졌다.
그것이 일이든 취미든 운동이든 루틴을 며칠 이상 쉬면,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면 그 효과는 당장에라도 좋을 정도로 바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는 작업의 과정에서도 나만의 루틴이 생기고, 끈질기게 이 루틴을 유지하다 보면, "뇌의 가소성(Plasticity)"에 따라서 새로운 뉴런이 작동하고 기능이 생기는 것이므로, 멈추는 동안 "뇌"에서 생성되는 활동이 멈추거나 사라져서다.
통상적으로 하나의 습관이 생성되거나 사라져서 익숙해지는 상태가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8주에서 12주이고, 국가에서 시행 중인 금연 사업에 관련해서도 금연 보조제를 무료로 제공하는 기간은 12주까지이며, 이 정도 기간을 금연했다면, 습관화된다는 과학적 근거를 기준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의료 부문에서 그 근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합창단 오디션에 붙어서 합창 연습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가급적 빠짐없이 참여하는 동시에 나만의 루틴을 가지고 배운 것을 복기하는 이유는 뇌의 노화작용을 최소한 지연시키고, 새로운 곡을 연습하거나 배웠던 곡을 연마해서 더 낫게 만드는 과정에서 내 몸에 새로운 습관이 배여 들게끔 하여 궁극적으로는 계속 배움의 과정을 멈추지 않는 존재로 나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직장과 집, 교회 등을 오가는 일상적인 활동에만 침잠해 있어서는 직장과 집, 교회 등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속해 있는 각각의 사회에 더 도움이 될 새로운 것을 배울 길은 줄어든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보면서 각종의 정보를 새롭게 흡수하고 있다는 착각에 절여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흡수하고 있다기 보다는 자극적인 정보를 찾아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안에서도 크게 힘들지 않게 원하는 정보를 찾아 이해하기 쉽게 가공하는 AI를 사용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인생을 크게 노력하지 않고도 쉽게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다. 이제 인간의 온전한 가치로 전환되고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은 제대로 타인에게 설명하거나 교육시키긴 어렵지만 우리의 몸에 체화되어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암묵지"에 있다.
그래서 소수의 곡을 완전하게 소화하기 위해서 그것에 집중해서 배우는 것을 더 낫고 안전하고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이렇게 폭포수처럼 여러 곡을 연습하는 과제를 받아서 일상을 쪼개서 루틴을 실행하는 과정에 보람을 느끼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을 해내기 위해서 쓰는 시간이 업무와 육아에 대해서도 도움이 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쓰는 시간은 원래 하던 일에서 배울 수 있는 능력도 향상시키도록 만드는 시간이다. 더 나아가서 이 새로운 사회에서 내가 다시 익히고 있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대인관계법이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