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은 더 선명하고 실재감도 강화되었고, 스토리는 조금 변주되었다.
(표지 출처: Avatar.com)
세 번째의 아바타를 보는 가슴이 조금 두근거릴 만도 한데, 들어버린 나이 때문인지, 너무 변화한 세상 때문인지, Sora 2와 제미나이로 이렇게 저렇게 동영상을 만들어보면서 영화감독이라도 되어버린 듯한 착각이 몸에 베여든 것인지 전혀 설렘이 생기지 않았다.
다만, 전작 1과 2편을 모두 보았기 때문에 생긴 효과가 있었다. 그래도 극장에서 보라는 뜻에서 커다란 화면으로만 봐야지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니 가야겠다란 생각은 생겼다.
12월 24일 수요일은 회사에서 지정 연차로 쉬는 날이었지만 아들의 농구 전국 대회 경기를 보러 가거나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 공연 연습 등으로 연차를 사용하다 보니 결국 반차로 줄이게 되었다.
원래 그 반차마저도 집에 있는 차를 정기 수리하기 위해서 사용할 시간으로 정했었는데, 오후 1시까지만 수리점이 일하고 있다고 확인한 뒤에 떠오른 것은 "아바타_불과 재"를 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앱을 켜서 우선 집 근처인 성신여대 CGV로 오후 3시 무렵의 관을 찾아보니 2개의 좌석이 남아 있어 클릭하고 들어간 순간, 장애인 좌석 하나만 남아 있고, 1개의 좌석은 찰나의 순간에 이미 사라졌다. 그만큼 경합이 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다지 멀지 않은 대학로 CGV의 거의 같은 시간의 상영관은 반 가량의 좌석이 비어 있었다. 아직 챗지피티나 제미나이 등으로 영화에 대한 반응이나 평가를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택가 밀집 지역의 극장은 연말 휴가나 이른 방학을 맞아 부모가 아동을 데리고 어렸을 때의 자신의 추억이기도 한 "아바타"의 3번째 이야기를 보러 근처의 영화관을 찾았고, 2009년에 시작한 시리즈를 봐왔던 중장년층이 혼자서도 집 근처 극장을 찾았기에 상영관이 꽉 찰 수도 있었겠구나.
하지만, 청년층이나 연인이 주로 모이는 대학로에서는 굳이 장시간(3시간 15분)이나 소요되는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았고, AI 등을 통해서 그래픽을 만들면서 영상을 즐기는 것이 오히려 더 즐거운 청소년 세대도 그저 대작이라고 해서 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극장에 와본바, 커플이 온 경우가 상당히 적어 보였고, 두서넛 명씩의 동성 그룹이 무리 져서 온 관객이 대다수로 보였는데, 눈에서 설렘을 읽긴 어려웠다. 뭐, 극장 산업 자체가 헐거운 것이 되다 보니 전체적으로 관객이 많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그런저런 잡생각을 치우고, 팝콘과 콜라 세트를 들고, 예매 과정에서 2천 원 정도가 더 붙는지도 엉겁결에 잘 모르고 눌러버린 MYBOX로 표기된, 양쪽으로 칸막이를 세우고, 그 칸 안에 양팔 받이를 더 크게 붙여준 좌석에 앉았다. 사람이 많지 않아 유명무실했다. 많다 해도 이런 좌석은 다신 안 살 거다.
우선 일반 2D로 보면서도 또렷이 나타나는 그래픽의 선명함이 바로 느껴졌다. 3D로 본다면 이란 상상은 전혀 하지 않았었는데, 아마도 그 역시 대단히 실재감이 넘치는 또렷하고 선명한 영상을 경험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 버전으로 만든다면, 이 세계의 실재감에 사로잡힐 것 같다.
1편에 대한 기억은 꽤 멀리에 있었지만, 우려를 딛고 2022년에 개봉한 2편 "물의 길"은 당시 최고 흥행작이자 역대 월드와이드 3위 등의 기록을 남기면서 당시 "카메론 감독"의 위대함을 모든 이가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3편은 과연 이 같은 기록 경신이 가능할까 하는 점에서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2편은 서사가 1편으로부터 더 확장되고, 진일보하면서, 배경도 숲과 고공에 뜬 여러 산과 계곡 등의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의 풍경이 더 드러남과 동시에 바다와 바닷속 풍경도 확실하게 진보한 그래픽 기술로 충격을 주면서 그 둘 간의 상승효과가 대단했었기 때문에 성공이 가능했다.
3편은 물론 그래픽에 있어서만큼은 대단한 진보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서사는 약해 보였다. 이 약해진 서사를 지탱해 준 것은 씬 스틸로서의 "우나 채플린(찰리 채플린의 손녀)"의 그래픽 처리된 화면을 넘어서까지 강렬한 이미지와 느낌을 전달해 온 "바랑"의 존재감이었다.
"바랑"이라는 빌런이 없이는 3편은 1과 2편의 위기의 재탕(지구 측의 반역자인 제이크 설리 체포와 지구의 고래를 비유하고 있는 톨쿤을 무리하게 사냥)과 극복 반전 재탕인 "에이와" 협조가 뒤따랐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은 꽤 그럴듯한 표현을 굳이 쓰고 싶지 않지만, 자연의 여신인 "에이와"가 아무나 찾아와 빈다고 말을 들어주거나 아무나 죽을 고비에서 살려주는 것도 아니지만, 충분히 고생하다가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빌면 결국 들어준다가 서사의 반복되는 패턴인 것이다.
물론, 언제 봐도 어렵지 않고, 가슴이 조마조마한 것도 일정 수준까지만 있고, 적당한 수준에서 속이 후련한 결말을 유도하고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오랜 전통과도 같은 흥행 전략 이어왔다.
그런데, 이게 텀이 좀 길게 1과 2편처럼 13년을 돌아와서 다시 반복되면 그럭저럭 통할 수도 있지만 한 3년 만에 다시 같은 게 나타나니 그 효과가 예전 같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 위기의 신호로 등장하는 것은 인간인 "스파이디"가 아바타 행성의 환경에서 살기 위해 마스크를 차고서 입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는 중에 마스크의 전력이 다 떨어져서 죽을뻔하기도 하는 데서부터다.
"제이크"가 의붓아들인 "스파이디"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가족처럼 같이 살아왔지만 "하늘상인"을 통해서 인간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곳에 보내야 한다고 결정을 내리자 그의 아내인 "네이티리"를 제외한 아들 "로아크", 딸 "키리"와 "투크"는 모두 반대한다.
그간 절대적인 매력도를 발휘했던 "토르크 막투"를 타고 전체 행성의 "나비족"을 규합하여 지구에서 온 군사대형회사와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막대한 리더십과 권위를 지녔던 "제이크"는 극 중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어떤 결정을 밀어붙이려고 할 때마다 극 중 강력한 저항을 맞아 약해진다.
남녀평등과 여성인권신장이 세월을 건너뛰면서 많이 진행되어 온 세계에서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강력한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고 많은 동료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면서 전쟁을 벌이는 캐릭터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기에 그 캐릭터의 카리스마가 이전 같지 않게 약화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안타깝게도 아바타 시리즈의 어쩌면 매력일 수도 있는 강력한 영웅 서사의 매력을 약화시킨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처럼, 우주 행성의 평화와 자연을 지구인의 탐욕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지구의 반역자가 지구에 원주민과 함께 대항하는 영웅이 된 이 신화는 3편에서 많은 힘을 잃었다.
그래서 그 신화를 다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마치 "동정녀 마리아"에서 나온 "예수"처럼 어머니의 몸에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 "에이와"가 직접 점지한 생명체인 "키리"의 신적인 존재로서의 신화가 2편에 이어서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키리"의 신적인 면모를 강화하기 위해서 그와 맞수가 될 적으로 나타난 것은, 극 중에서는 "네이티리"와 싸우며 호각세를 보이기도 하고, "쿼리치"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부족에 대한 절대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지닌 빌런 "바랑"이었지만,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말도 못 하게 초라해진 모습으로 "키리"에게 압도당하며 도망간다.
"망콴족"을 이끌고 약탈과 살육을 지휘하는 "바랑"은 호전적이고 파괴적이며 권력욕과 지배욕으로 똘똘 뭉친 존재로 나오는데, 이 행성에서 "에이와"가 자신의 부족이 화재라는 위기를 맞았을 때 아무리 애원해도 도와주지 않고 부족의 멸절 상태까지 방치했다는 이유로 증오하며 그 대극에 서 있다.
그럼으로써, "에이와"라는 자연의 신에게 대항하는 "지구군사업체"와 손잡을 충분한 동기를 갖고 있는 빌런이 이 서사에서 "제이크"가 빠져나가고 "키리"와 대적하는 스토리가 잘 나와야만 4편에서는 서사적인 면에서 제대로 된 극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급격한 영상 기술의 AI에 의한 진보를 겪고 있는 인류에게 어쩌면 이제 이 작품은 더 이상의 경이감을 선사하기엔 어려운 작품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관객이 같이 봐야 할 이유는 지구 환경과 자연을 훼손하는 기업 자본이 정신 차리고 지구를 지켜라라는 메시지를 공유해야 하는 것일 터인데, 더 이상 미국이 지구를 지켜내는 영웅 행세를 하지 않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관객에게 그런 메시지는 '22년에 들렸던 것과 '25년에 들렸던 것이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권력과 명예, 돈을 위해서 그것을 뺀 그 나머지는 거의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이를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자리에 뽑아서 올려놓은 미국인, 미국 기업이 만든 미국 영화의 메시지가 이제 얼마나 더 제대로 관객에게 다가가 울림을 느끼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들었다.
이 작품과 매칭이 되기엔 거리를 가진 작품이지만 금년에 개봉한 "슈퍼맨('25)"은 그 전작(맨 오브 스틸)에 비해서 미국 내에서의 흥행 수익은 더 높았지만 해외 수익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미국 중심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더 호응하는 관객이 늘어날 수 있었겠지만, 그만큼 해외는 미국식 영웅 놀이에 염증을 느끼는 관객이 한 30%가량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결과는 봐야 알겠지만, 흥행의 관점에서나 영화적 완성도의 측면에서 이 작품은 더 풍부한 영상미와 화려한 볼거리, 보다 복잡해진 서사 구조와 인물 간의 예상치 못한 스토리 전개가 있어 다채로운 자극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작보다 더 좋은 흥행 성적을 낳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역설적으로 내겐 '29년에 개봉할 4편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왜냐면, 그 부족해 보이는 면들을 보충할 이야기가 4편으로 미뤄져 있다는 심증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에도 눈과 귀, 팔, 다리 건강하여 모두 극장에 가서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환경 보호의 메시지가 계속 유효하게 이 시리즈를 통해서 전파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