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Freedom plus

2025년의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 송년회

시간이 없어 길게 씁니다. 우리는 무서우리만치 고독하여......

by Roman

이미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 참여기"라는 브런치북은 30화를 꽉꽉 채워서 쓴 지 오래되어서 더 이상 써서 끼워 넣을 공간이 없다.


그 이후에 생긴 합창단에 관련된 내용은 우선은 매거진 "Freedom Plus"에서 인큐베이팅을 하고 나중에라도 다른 브런치북을 만들게 된다면 이곳에 이식하겠다.


이 글을 쓰고 난 후 1~2월은 합창단의 방학이다. 그래서 수시 모임이 혹 있다면 한두 편 정도 쓰겠지만, 매주 쓸 일이 생기려면 2개월은 지나야 한다.




'25년 12월 27일 토요일, 연습과는 상관없이 총회라는 것이 열려서 운영 위원과 집행부를 선출하는 내용과 더불어 이뤄진 송년회 성격의 회의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열렸다.


각각 마니토 형식으로 불특정 상대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오도록 되어 있었고, 대략 40여 명 정도가 오면서 각각 하나씩의 선물을 가져왔다. 공식적인 총회 후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은 빠듯했었다.


아침에야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상가의 옷집에서 바로 눈에 들어오는 분리된 형식의 얼굴 위양옆을 확실하게 감싸주는 하얀색의 니트 후드를 하나 사갔고, 립밤을 받아왔다. 그 과정은 몹시 빨랐다.


받은 사람이 나가서 한 마디씩 이야기를 하라고 해서 맨첨이라 "헤르만 헤세의 서시"라고 착각하고 암송 중이었던 시를 읊었다.


좀 전에 뒤져보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우리는 두려우리만치 고독하여"였다. 아, 이제 내 어린 기억의 몇 퍼센트까지 내가 믿어야할지를 다시 돌아봐야겠다.


시대착오적인 시낭송은 왜 하고 싶었을까? 나잇살이 두터워져인지 그러고도 부끄럽다는 느낌이 올라오진 않았고, 지금도 복기하면서도 딱히 부끄럽진 않다.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 참여기"에 이미 합창단에 관련된 회고를 대부분 적었기에 정작 한 해를 마무리하는 그 자리에선 이미 30번가량 나눠서 써온 내 이야기가 지루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로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인간적인 다양한 대화로 합창단으로서의 짧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냈단 거였다.


덧붙이자면 합창을 제대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풍파를 겪었지만 이를 이기고 공연을 마쳤단 내용을 아주 짧게 그 시만큼 효율적으로 이야기할 방법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이후에 다른 단원분들이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감동에 가득한 목소리와 더불어 그동안의 회고를 잘 풀어냈다. 그 말 중에 토요일마다 연습을 오는 것이 너무 기뻤다는 말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을 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계속 이야기로 나와서, 이 송년회의까지 참여한 단원들의 애정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그 뒤에 또한 단원이신 뮤라클 작가님이 나와서 나를 벤치마킹 한다고 하시며, 기억나는 시를 하나 읊어주신다고 하면서 약간의 계면쩍음을 날려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했고, 이를 하이파이브로 알려줬다. 어느 하나 소외감 느끼지 않도록 서로서로 신경 써주는 이런 공동체는 지금 세상에선 희귀하다.


회의 직전에 지난 1년여간 수고했던 유니세프의 팀장님도 그동안 고맙다는 내용과 더불어 짧은 인사를 하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자기 자리를 떠나야 하지만 어떻게 적당한 시기에 떠나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개인적인 내용도 처음 여럿 앞에서 이야기하며 약간이나마 오고 갔던 인간적인 교감이 있었음을 알려줬다.


1년간의 최신 회계 장부를 모든 단원에게 엑셀파일로 보내고, 12월 14일 자로 요약된 내용과 대조를 하며, 우리가 낸 회비와 단원 개개인과 외부로부터 받은 찬조금, 유니세프 측의 지원 등의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그동안 회계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회계"일이 제대로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밀하게 합창단의 살림을 챙긴 조용한 회계님의 물심양면 능수능란한 능력에 조용히 보이지 않는 감탄이 번지는 느낌이었다. 통상 이런 이를 숨은 실력자라고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전직 경찰 서장님이셨던 합창단장님께서 바로 그다음의 고령자이자 내겐 위로 띠동갑인 현직 교수님이자 알토 파트장님에게 단장직을 넘겼다. 만장일치와도 같은 진행이었다.


이미 2026년도의 사업 계획도 지휘자님과 논의를 하여 만들어서 단원들 앞에서 브리핑을 하셨으니 모든 것은 총회 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었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만한 근거는 없었다.


그만큼 대부분의 단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철들지 않은 유머 감각"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닌 고령자로서의 잔잔한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총무직을 3년간 해왔던 유능한 여성단원분이 더 이상 연임을 하지 않기로 하고, 소프라노 파트장님이 적임자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면서 경합 상대도 고사를 하면서 새로운 총무로 선출되었다.


알토 파트장님이 단장이 되고, 소프라노 파트장님이 총무가 되는 것이니 환상의 호흡을 기대해도 좋을 것으로 보였다.


10년의 합창단 역사상 처음으로 "감사"를 뽑는 자리에 "보이즈"의 멤버이자 7기의 회장님이 선출되어서 이분이 가진 존재감과 영향력이 커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쉽지 않은 일이다.


전 합창단장님에게도 경합에 참여하게끔 추천이 있었지만, 방학을 맞이하듯이 쉬고 싶다고 하시며 고사하고, 다른 여성 분도 고사를 하면서 일을 맡게 되었는데, 무난하게 잘하리란 믿음을 실은 것이다.


먼저 주고 또한 베풀고자 하는 마음과 바른 언행 등이 구성원의 신뢰를 연쇄적으로 낳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장점은 항상 겸손하고, 먼저 듣는 자세, 유연한 사고방식 등 다채로운 분이라 자격이 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새 단장님께서 (신입) 7기가 많이 도와줄 것이라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시며, 이제 러시아로 파견 가는 1인이 빠진 보이즈 멤버 3명을 독려했다.


그래서 "루돌프(들)가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같은 말씀을 산타 옷 비슷한 걸 입고 말하신다고 하고선 같이 웃었다.


다음 연도는 금년도보다 더 다채로운 일이 생길 것으로 기대되지만, 직장인의 운명이란 것이 어찌 될지는 당장 다음 주도 예상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순항만을 예상할 순 없다.



그렇게 오후 1시까지 서둘러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뒤에 이제 내년이면 러시아로 떠나보낼 한 명을 제외한 3명의 보이즈 멤버가 점심을 같이 하러 갈 장소를 찾았다.


아쉬움에 찬 몇 명이 모여서 같이 점심을 하려는 움직임이 혹 있지는 않을까 했었지만, 마포문화원 근처에 모두가 떠난 뒤에 남은 단원은 우리 셋뿐이었다.


잠시 생각을 돌려보니 7기의 점심 모임을 할 타이밍을 놓쳤고, 이제 내년이면 출국할 한 명의 멤버에 대한 환송식을 할 타이밍도 놓쳤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보이즈 4인이 처음으로 같이 모여서 가성비 높은 점심식사를 했던 "이연복 참치"를 떠올려 시작했던 곳에 가서 다시 한해의 끝을 마무리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을 해서 모두 동의하여 갔다.


추운 날씨에 4월처럼 회덮밥을 시킬 타이밍은 아니었으므로 대구 지리를 같이 시키고 정갈한 맛을 같이 음미했다. 그동안 올라간 음식값에 비교해서 단가 변화가 없어, 가성비는 극에 달할 정도였다.


그럼으로써 한해를 다시 복기하는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오늘 일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테너 단원분이 단톡방에 있는 모두에게 고맙게도 Compose의 아메리카노를 쏴주는 대범함을 발휘해 주어서, 이를 마시러 공덕역 근처의 Compose로 이동해서 따아를 시켜 마시며,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이 성실함과 이 따뜻함은 여러 의미에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는 왜 이분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을까? 이분들과 나의 공통점은 예체능계에 속한 자제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꿈과 재능을 아끼는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쩌면 같은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자리에서 내가 보았던 통계를 이분들에게 보여줬다. 우리나라가 처한 관계빈곤이라는 상황은 OECD에서 자살률 1위나 노인 빈곤율 1위를 차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위험 상황이다.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을 오면서, 이미 앞 서의 회의를 마치고 진행된 서로 간의 회고 내용에서, 서로 이곳에 와서 소속되어 있음을 자발적으로 기뻐하고 있는 이 중에 적지 않은 이는, 이곳에서 다른 곳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이해득실 여부를 덜 염두에 둔 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가 아닐지 물어봤다.


새롭게 "감사"가 되신 분께서 다른 대부분의 모임에서는 물론, 그런 이해득실 관계가 도드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의견을 주셨다.


이런 통계를 들이밀고 고등학교 때 친구가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연말연시 인사도 없는 분위기를 탓해봤지만 그곳 역시 계속해서 냉랭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아직 그런 분위기까지는 가지 않은 연배의 두 분은 그 분위기를 조금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만큼, 이것을 일반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 연배 근처부터 내 가족, 내 벌이, 내 소속, 내 취미, 내 이해득실 관계 외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비록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라고 해도 이해의 폭이 협소해지고 같이 나눌 대화의 폭도 좁아진 것이 분명 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단중장기적인 언론 플레이와 모바일/디지털/인공지능 문명에 의해서 이뤄지는 현상이라면 아마도 다시 돌이키긴 매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약간은 시대착오적인 시공간에 속한 나는 아래의 시를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의 연중 회고를 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읊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듣거나 말거나 시 내용에는 인간 존재를 관통하는 시대불멸의 절규가 들어 있고, 그것은 지금의 시대에도 유효한 인간성에 대한 함축된 시구다. 단 하나 암송하는 시로써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이것이 잠시간이라도 기대가 되었으면 좋겠는 것이.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이란 소속은 이 관계 빈곤의 시대에 태어난 불우한 세상의 아이를 돕는 동시에 각 단원에게 사회에서 급속도로 사라져 가는 인간적인 관계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곳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합창 공연이라는 명확한 과제를 떠난 관계를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그런 인간관계는 이곳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급속도로 사라져 갈 것이다. 인간관계가 안 중요해지는 시대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우리는 무서우리만치 고독하여"의 공식 번역 원문이다.


우리는 무서우리만치 고독하여 서로서로 의지하고 있다.

말이라는 것은 방랑하는 우리 앞의 벽과 같은 것.

우리가 피어나는 꽃 속의 그리움일 때

우리의 의지는 우리를 몰아치는 바람일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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