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 원작 "지구를 지켜라"와 비교하다

개인 이후 구조인 영화를 구조 이후 개인으로 바꾸다

by Roman

(출처: Entertainment Weekly)


"부고니아"는 고대에서 “썩은 소의 사체에서 벌이 생긴다”고 믿었던 자연발생설을 뜻한다. 영화에서는 부패한 시스템 속에서 음모와 광기가 필연처럼 발생한다는 은유로 읽힌다. 곧 그 부패를 그대로 놔두다간 우리 모두 죽습니다라는 경고인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볼 때 늘 뭔가를 과하게 가져다 붙이는 버릇이 있다.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되는데, 꼭 산업 얘기를 하고, 구조를 말하고, 자본을 끌어온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영화를 보는 건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건지 헷갈린다.


"지구를 지켜라"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좀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외계인이라니. 고문이라니. 주인공은 너무 과하고, 상황은 너무 극단적이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유치함이 오래 남았다. 마치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웃긴 사람처럼, 너무 미쳐 있어서 오히려 현실적인 영화였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저 정도 망상쯤은 허용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image.png (출처: KBS연예)


그 영화는 불친절하다.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다.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래서 흥행은 잘 안 됐다. 당시엔 실패작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문제작’이 됐다가, 어느 순간 ‘걸작’ 후보가 됐다. 이런 서사를 좋아한다. 시장에서 외면받았는데 나중에 가치가 올라가는 것. 약간 IPO 전에 투자한 기분이 든다. 물론 나는 그때 표 한 장 산 것밖에 없지만.


"부고니아"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는 덜 미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더 현실적이다. 예전에는 한 개인의 광기가 세상을 의심했다면, 이번에는 세상이 이미 이상하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느낌이다. "지구를 지켜라"에는 “저 사람 미친 거 아냐?”라고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어쩌면 저 사람이 맞는 거 아냐?”라고 뒤집혔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세상이 좀 이상하긴 하지”라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image.png (출처: 파이낸셜 투데이)


그래서인지 덜 충격적이다. 대신 덜 피곤하다.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 모르겠다. "장준환"은 날 것의 에너지가 있었다. 폭력도 거칠었고, 웃음도 거칠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은 훨씬 정돈되어 있다. 메시지도 정합적이고, 장면도 계산되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잘 만든 영화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서는 “조금 더 미쳐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아마 편견일지도 모른다. 나는 첫 작품의 충격을 기준으로 "리메이크작"을 재단해 버리는 나쁜 습관이 있다. 첫인상이 너무 강렬하면, 그다음은 늘 비교 대상이 된다. 마치 첫 프로젝트가 대박 나면 이후 실적은 항상 기대에 못 미치는 것처럼. 계속 같은 방식으로만 갈 수는 없을 텐데 말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둘 다 세상을 못 믿는다. 권력, 자본, 시스템.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진다. 누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가. 혹은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조종당하는가.


차이점은 접근 방식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개인을 극단으로 밀어붙여서 사회를 비춘다. 한 사람을 망가뜨려서 구조를 보여준다. 반면 "부고니아"는 구조를 먼저 보여주고, 그 안에 놓인 인간을 관찰한다. 전자는 폭발이고, 후자는 침전이다.


흥행 성적만 보면 비교가 좀 잔인하다. "지구를 지켜라"는 2003년 개봉 시 2~30만의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컬트가 됐다. 재평가를 받았다. 영화과 학생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됐다. 반면 "부고니아"는 훨씬 안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관객과 일정 부분 합의가 가능하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본다. 하지만 “이건 미쳤다”라는 반응은 적다.


"요르고스" 감독은 대신에 그 "미쳤다"는 느낌을 고어물화된 화면으로 구현하려 했던 것 같다. "테디"와 "게츠" 콤비가 "안드로메다 외계인"을 찾아 해부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시행착오로 인간을 죽이기도 했었지만, 이미 2명의 "안드로메다 외계인"을 죽였다는 정황이 나오는 충격적인 후반부의 마치 연쇄살인범을 다룬 것 같은 장면과 이후에 "테디"의 목이 폭파와 더불어 날아가는 장면이다.


평론가의 태도도 흥미롭다. 예전에는 장르 혼합의 파격성, 한국 영화계의 문제작 같은 수식어가 붙었다. 지금은 시대성과 메시지의 정합성을 말한다. 예전에는 “이게 뭐지?”였다면, 지금은 “이렇게 읽을 수 있다”에 가깝다. 감독도, 평론가도, 관객도 나이를 먹은 것 같고, 2003년 당시의 정의와 불의, 소수의 악독한 부자와 다수의 빈자라는 구도가 익숙했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싫지는 않다. 다만 조금 아쉽다. 왜냐하면 아직도 약간은 과장되고, 어리석고, 무모한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세련된 구조 분석도 좋지만, 때로는 그냥 소리 지르는 영화가 보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부고니아"가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의 현실에는 이런 식의 접근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말하는 게 급진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들 이미 알고 있다. 이제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됐다. "부고니아"는 그 질문에 가까이 가려는 영화처럼 보인다.


image.png (출처: Mashable)


결국 두 영화 중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지구를 지켜라"는 나를 흔들었고, "부고니아"는 생각하게 했다. 하나는 감정의 진폭이 컸고, 다른 하나는 온도가 낮다.


어쩌면 작품이 리메이크하며 변한 게 아니라, 나와 시대가 변한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세상이 미쳤다고 외치는 사람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미친 세상을 어떻게 견딜지 고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영화를 보게 되면 쓸데없이 많은 생각을 한다. 이게 산업적으로 성공할까, 이 메시지가 오래갈까, 시간이 지나면 재평가될까. 어쩌면 이런 태도 자체가 이미 조금은 편견이고, 피상적이다. 하지만 그게 AI가 아닌 나란 증거다. AI가 쓰면 나보다 훨씬 잘 쓸 글을 이렇게 못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좋다. 영화가 고민하게 만들었다면, 두 작품 모두 제 역할은 충분히 한 셈이니까. 고민 없이 흘러가는 정신없는 하루와 계속해서 이어지는 극화에 그냥 끌려가다 끝나는 하루는 아닌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AI는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거침없이 결과를 만들고 실수가 있다고 하면 다시 다르게 하다 정 안되면 안 된다고 손을 들뿐이다. 나는 고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획득하는 인간이다.



"엠마 스톤"은 악역에 많이 나온 배우는 아니다. "크루엘라"에서 악역으로 흑화 하기 전단계의 악역의 프리퀄을 보여주긴 했지만, 정확히는 악역을 연기하기보다는 매력적인 악동을 연기했었다. 야망으로 똘똘 뭉친 역할을 "The Favourite"에서 연기했다는 사실만을 검색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라라랜드", "버드맨" 등에서 사랑스러운 역할로 주로 나왔던 배우였다.


그런 배우였기 때문에, 이 작품은 연기의 변신과 더불어, 후반부의 낙차 큰 인물의 변화, 자신이 외계인임을 드러내고 알려주고, 아무런 두려움 따위 갖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요구하고 추구하는 인간을 넘어선 자의적인 악의로 가득한 존재를 연기하는 것에 욕심을 냈을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서 "백윤식"이 연기했던 "강만식" 사장의 연기도 이 극단적인 변신을 제대로 코미디와 슬랩스틱, 장르를 떠나버린 파격을 넘어서는 신기원을 보여줬지만, 그저 연기 그 자체로만 따지자면 "엠마"의 연기가 전체적인 시나리오와 스토리, 연출의 톤을 빼고서 보자면 더 강렬하고도 역겹다.


image.png (출처: Culled Culture)


그렇지만, "신하균"이 연기한 "이병구"와 "황정민"이 연기한 "순이"를 대치하는 "제시 플레먼스"의 "테디"와 "에이단 델비스"가 연기한 "도니"는 안타깝게도 "지구를 지켜라"를 본 희미한 기억에 근거한 것이지만 원작 쪽의 인물이 상대적으로 더 현실적이고도 마음에 와닿는 연기를 해냈다. 자폐스펙트럼도 앓고 있는 "에이단"의 "도니" 연기는 감정 이입이 불가하고, 돌발적 자살도 뜬금없었다.


image.png (출처: FandomWir)


우스꽝스러운 외계인 복장을 하고 있으면서, 최첨단의 과학이라기보다는 왠지 마계에서 찾아온 것 같은 마법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안드로메다인"은 인종도 여러 인종이 뒤섞여 있는, 할리우드 배우 채용 권고사항 같은 것을 지키고 있는 매우 모범적인 구성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 구성에도 감독이나 제작자의 조소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엠마 " 이전의 하이틴 스타배우인 "알리시아 실버스톤"이 등장해서 제약사의 임상실험에 참여했다가 죽을 목숨이 된 "테디"의 어머니 역을 연기한 이유는 세대교체의 의미를 살려내기 위한 캐스팅은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할리우드에서 자기 관리를 못해서 몸매 유지에 실패한 관계로 인기를 잃고 사라져 간 극 바깥의 스토리를 떠올리자면, 이 캐스팅은 쓸데없이 의미심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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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체의 인명경시 임상실험에 의해 치명적인 피해를 본 주인공의 어머니를 죽게 만드는 "엠마"가 연기한 "미셸"의 잔혹함을 경험하고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컸을 것이 뻔한 "테디"가 연거푸 속으면서 당하는 내용은 교육받지 못한 하층민에 대한 멸시를 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image.png (출처: Looper)


"지구를 지켜라"에서는 그 충격적인 반전 결말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묻어 있었다면, 사실 "부고니아"는 그런 희망의 출구가 완벽하게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관객과 시청자에게 묻고 있는 것은 이 그리스어 제목이 오히려 더 잘 드러내고 있다.


"부고니아"는 고대에서 “썩은 소의 사체에서 벌이 생긴다”라고 믿었던 자연발생설을 뜻한다. 영화에서는 부패한 시스템 속에서 음모와 광기가 필연처럼 발생한다는 은유로 읽힌다. 곧 '그 부패를 그대로 놔두다간 우리 모두 죽습니다'라는 경고인 것이다. 일루미나티 같은 민간전승의 음모론이 광기와 더불어 나타나 횡행하는 현실의 배면에는 실제 하는 부패가 확실하게 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