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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n 12. 2016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왜 써야만 하는가?

이유조차도 어쩌면 없다. 무조건 쓰라. 무일푼 막노동꾼의 글쓰기

이 책은 그 어떤 책 보다
좀 더 즉각적으로 내 행동의
변화까지 일으키고 있다.


가끔 와이프가 사 온 책을 들고 읽는다.

내가 필요해서 사달라고 하는 경우가

이전의 상황이었다면 어느샌가

마치 인공지능 에이전트라도 된 양

내가 필요로 할 것 같은 책을

와이프가 주문해서 집에 도착해있고

이를 집어서 자연스럽게 읽는 것이

최근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물론, 자기 능동적인 자율성 없이

골라주는 책만 읽어서는

내가 바라는대로의 나만의 스토리를

써 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내 글쓰기의

화두는 제대로 된 진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오래 같이 살다 보니 이제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할지도 아는 것 같고

어쩌면 취향이 비슷해진 양

딱 들어서 읽어나가기 좋은 책이

한 달에 서너 권 집에서 눈에 띈다.

감사한 일이다. 결혼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읽게 된 책 중에

이 책은 그 어떤 책 보다

좀 더 즉각적으로 내 행동의

변화까지 일으키고 있다.


이제는 시간이 생길 때

일 그 자체를 하기보다

먼저 글을 써서 어떻게 하면

일을 제대로 잘 해낼 것인가

그 일을 어떻게 좀 더 고양되고도

성공 가능성 높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좀 더 생각한다.

글쓰기를 통해, 이것이 가능해진다.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매일매일의 마음가짐과
실행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지속시켜 준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무일푼에 막노동꾼인

저자가 매일매일 글을 써나 가면서

얻은 깨달음과 몸으로 겪은 현상을

여러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글을 쓰면 어떤 긍정적인

현상이 벌어지는가를 그 이상

솔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써나 간 글이다.


여러 차례 자신은 발표하기 위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여러 출판사에 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보낸 것은

두 가지의 이유였으리라 생각한다.


1. 정말로 글을 쓰면 좋다.

2. 다른 사람도 쓰게 되길

간절히 원한다.


대기업에 다니다 일순간 퇴사

그러고 나서는 정신 못 차리는

잘못된 사업의 실패로

무일푼에 실패한 가장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살아갈 힘을 주고

자신의 삶을 바꾸도록

만든 것이 글쓰기였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여러 변주로

바꾸어서 쓰고 있다.


'알았어요 알았어.

나도 잘 알아요.

나도 이렇게 쓰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만 말하고

덮기엔 내가 잊고 지내온

글쓰기의 진정한 마력을

떠올려 주고 왜 이렇게

게으르게 띄엄띄엄 글을

쓰고 있는가를 채근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잔소리가

그냥 무시할만한 소리로는

들리지 않는다.


최근에 들어서는 달에

한두 편, 많아야 세편의

블로그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나도 중고등학교

대학교, 초기 직장 생활 중에

거의 매일 글을 썼었다.


취미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거는 상사가 있었던,

말 그대로의 글로벌 초기업,

이른바 거대 기업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난 직후 일정기간

매일 글을 다시 써 보았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회사에

이전 경력과는 전혀 다른 산업에

아는 사람도 없는 바닥이었지만

공채에 지원해서 합격하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과 경합했지만

왜 내가 뽑힌 사람중에 하나였을까?

자문했을 때 내가 다른 부분은

글을 쓰고 있다는 데도 있다고

믿게 되었다.


매일매일 책을 읽고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그중에 일부는 블로그에 싣고

이 과정을 통해서 진심으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충분히 느꼈었고,

삶도 변화해감을 깨달았다.

글을 쓰게 되면 명상이 일어나고 자신 안에 헝클어진 생각들이 정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 글쓰기 전의 삶과

매일 글 쓸 때의 삶이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지

안다.


다만, 최근에는 매일 쓰지

않는 관계로 자세히 뭐가

다른지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회상하고 나서야

다시금 매일매일 글쓰기가

나에게 어떤 강력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다시 쓰기를 좀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국민학교 2학년 때

이혼하고, 어머니가 중 3 때

미국으로 가버리고,

경제적으로 계속 불운했던

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절망감에 빠져 살아갈 때


매일매일 글을 쓰게 해주었던

(2009년도에 생의 끝을 맞은)

그 친구 덕분에 나는 글쓰기의

마력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긍정적인 삶을 향해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 친구는 내가 그냥

절망 속에 가라앉아 있기보다는

계속 글을 써보기를 권유했고,

자신도 더불어 계속 글을 써서

서로 교환해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 내가 쓴 글은 물론

조악하고 형편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에는

중편 소설도 한 편 뚝딱 써내릴

정도로 일취월장했었다.


물론, 작가가 될 만큼의 역량이나

엄청난 수준의 독서량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쓰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큰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나만이 그것을 깨달을

특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도 알았다.


그 친구와 글쓰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 같은 것은 갖지

못했을지 모르고

나름의 성과들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글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을 보다 또렷하게

내 눈 앞에 떠올려 보여주고

무엇이 보다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줄 뿐 아니라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매일매일의 마음가짐과

실행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지속시켜 준다.


그 때문에 중년으로 접어든

지금에도 내가 변화할 수 있고,

더욱 더 긍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쓸 때마다 진실로 믿을 수 있다.


긍정적으로 달라지고 싶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로또를 사는 것보다는

오늘이라도 당장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방법이다.


정해진 형식이나 더 잘 쓰기 위한 방법

타인이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글쓰기

취미를 잃어버린 것은, 또한

독서의 취미를 잃어버린 것은

그것을 재미없는 억지로 해야 할

일로 만들어버린 이 사회의

잘못된 교육에 있다.


일기를 쓰고 매일 검사를 받고

독서 감상문을 써서 검사받는

이런 재미없는 일들을 유소년기에

반복하다 보니 우리나라는

책을 읽지도 않을 뿐 아니라

글도 쓰지 않는 나라로 정평이

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당장 이 두 가지를 시도하는 것은

언제라도 현명한 선택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제 읽더라도

이 중요한 메시지를

당신이 이해하기 쉽도록

내부에 깊이 던져준다.


그가 쓰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가 썼을지도

모르는 책이라 생각해 보니

이 책의 의미는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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