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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Jun 24. 2023

낮에 친정에 다녀왔다.

모처럼 아빠가 계셨다.


오늘은 답례 이바지 음식을 전해드리러 낮에 남편과 친정에 다녀왔다.


여기서 남편이라 함은,

바로 앞 글에서 언급했던, 작년 봄 헤어졌다 재회해서 다시 만난 남자.

나에게 갑자기 이별을 통보해 시련과 눈물을 안겨주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우리는 지난 3일 많은 하객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전 주에 먼저 엄마가 이바지 음식을 준비해줘서 시댁에 들러서 인사를 갔었다. 

여러모로 신경쓰고 배려해주신 시아버님 덕에 두 손이 휘청거릴 정도로 무겁게

귀한 떡, 과일, 대추야자, 생선, 고급술을 바리바리 챙겨갔다.


가기 전에 먼저 아빠가 낚시를 가셨을 것 같아서 확인 차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다. 


보통 토요일은 가게에서 퇴근하시고, 

자유와 휴식을 위해 예외없이 낚시를 떠나시기에.




다행히 가게에서 집에 들어오셨지만, 작은 아빠가 낚시를 안가신다고 해서

겸사겸사 집에 계신다고 하셨다.


사실 이제는 내 집이 있어서, 그 집은 어색해졌다.

30년 이상을 머물렀던 집이라 동선과 공간은 꽤나 익숙하지만,

언제 내가 여기서 이렇게 길게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오래 있기는 힘이 들고 어색함이 감돈다.


장인어른과 사위는 사이좋게 술을 한 병 씩 주고 받았으며,

나와 엄마는 꽤나 닮은 얼굴을 하고서는 농담과 걱정을 건네고 드렸다.


두 시간쯤 채 못있었나, 집에 부랴부랴 갈 준비를 했다.

엄마가 직접 만든 매실액기스를 챙겨주려는데, 아빠는 덤덤하게 말했다.


"좀 더 놀다가지 왜이렇게 빨리가냐." "오다 가다가 좀 들려라."




우리집에서 친정은 도보로 25분, 차로 8분 내외 정도의 꽤나 가까운 거리지만

우리가 자주 가는 편도 아니며, 부모님이 자주 오시는 것 또한 아니다.


내일 아빠 생신 기념으로 엄마와 가까이에 사는 이모네와 언니네까지 해서

저녁을 먹기로 선약을 해둔 것을 잊으셨나 생각했었다. 

"내일도 또 얼굴 볼건데 뭐..."


하지만, 이내 느낄 수 있었다.

내일 보는 것을 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아빠의 마음에 담긴

우리를 좀 더 자주 보고 싶은 소중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요새 아빠에게 가장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 잠들지 않았는데, 아빠가 내게 말을 건네는 것이 어색해서 

그냥 자는 척을 헀던 것"


사춘기 그 어느 여름 날의 기억 중 한 조각의 일부였으나 

꽤 오랜 시간 내 마음에 남아있는 그 장면.


그 누구보다 내 행복을 바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길 바랐던 아빠의 마음.

말 한마디 한마디, 시선 한 번 한 번에 속속들이 그대로 마음의 과녁에 꽂혔다. 


누군가의 딸이었던 내가, 누군가의 와이프가 되었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두려움과 기대감 속에 살다보니

특히 엄마가 왜 아직 나를 일곱살이라고 느끼는 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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