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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Jun 26. 2023

장고끝에 딩크해제

얼마나 고마운지 너는 알까.


글을 하도 안쓰다 오랜만에 작은 일상 글이라도

다시 시작해보니 손 마디마디가 굳어버린 느낌이다.


요새 가장 크나큰 생각들은

아이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 마음가짐을 다듬는 것이

가장 많은 범위와 면적을 차지한다.


사실 스무 살이 되기전까지는 비혼주의자였고, 

서른 일곱까지는 예비딩크족이었다. 


내 인생에는 아이는 가질 일도 낳을 일도 없다고 

수도 없이 다짐하고 공언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이 바뀔 줄은 꿈에도, 꿈 넘어에서도 몰랐고

미래의 아이를 위해 오래 몸에 퍼부었던 커피를 단칼에 끊어버릴지도 몰랐다.


폭식과 직장스트레스로 엉망이었던 몸상태는

일 년여의 시간 동안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정상체중의 궤도에 들어와서 현재 유지중이다.


좀 더 감량을 할 것이며, 꾸준히 탄탄한 몸을 만들기위한 마음으로 살아갈 줄은.

정말 몰랐다.



어릴 때 표현에 인색하지만 학구열이 높았던 엄마,

일로 밤낮 바빠서 나를 많이 믿어줬지만 신경쓰지 못했던 아빠의 딸로 자랐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눈칫밥의 레벨은 만점에 가깝게 가까워졌지만

정작 스스로를 향한 눈치는 없어서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고, 배신 당하고, 바보취급 당하고..



나 역시도 타인과 인간관계에서 서툰 면모를 보여왔어서

나를 조금이라도 닮은 아이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에

결혼해서 부부 둘이서만 행복하면 됐지라는 마인드로 살았었지만.




연애 당시 어느 겨울날, 

그러면 아이를 가지고 싶은 이유를 말해달라는 내게,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님의 일로 큰고모님과 사촌 형누나들과 

몇 년 정도 지내본 경험이 있는 남편은 나지막히 나에게 말을 건네왔다.


지금 남편의 말들은 내 인생의 틈새 속 많은 가치들을 바꿔주었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아이에게는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서 전해주고싶어."

"그게 누나와 함께라면, 누나가 우리 아이의 엄마라면 

 더 열심히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도

내가 가지지 않은 탁월한 이성적인 판단, 솔직한 감정표현이

감성으로 많이 채워진 내게는 부족하거나 없었어서 

더없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랜 시간 연애하고, 그만큼 오고가는 이야기들도

보다 심층적이게 되면서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부모로부터 받지 못했던 부분, 내가 성인이 되면서,

학교와 직장들을 거쳐 받았던 상처들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임신과 출산을 통해 겪을 감정 변화와 신체 변화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지만

감당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래 이 사람이랑 결혼은 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었다.


한참 덜 익은 호두와 코코넛의 단단함보다도 몇 천 몇 만배 더 단단했던

나의 마음은 서서히 신기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 사람이랑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나도 최선을 다해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알려주는, 

현명한 엄마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오면 해물과 굴소스를 넣고 볶음우동을 해주기로 했다.

좋아하는 가쓰오부시도 왕창 올려줘야겠다.


어제 남편은 장인어른과 형님이 건넨 술을 받아 마시긴 했는데, 

그렇다 하여도 오늘 뭐 크고 작은 예외는 없겠지? 코웃음이 나지만

퇴근 후 시원한 술이 목에게 가져다 주는 쾌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좀이따 마트가서 맥주좀 사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시원하게 해놔야지.


아마 우려와 격려가 담긴 잔소리와 말소리보다

시원한 맥주 한 잔, 우동 한 그릇이 남편의 마음을 데워줄 수 있길.




너는 얼마나 내가 고마워하는지 알까?

이 고마움은 우리를 닮은 아이가 세상 밖에 나와서 

새로운 가족의 모습으로 함께일 때, 

다시 말로서 전할 수 있게, 


더 안팎이 단단해진 그런 여자이자 와이프로서 하루를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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