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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Apr 09. 2022

재회, 그릇을 새로 빚는 시간

3주만에 만나서 술잔을 기울였다.



3월 21일 저녁.

나는 너에게로 부터 이별을 통보 받았다.



이유는 "잘해줄 자신이 없고, 일과 여러 생각들로 힘들다." 였다.

전날까지 우리 둘의 연애, 그 온도는 다소 미지근하더라도

나쁘다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대와 나는 눈물을 조금 보였지만, 이내 인정하고

각자 신호대기에서 반대쪽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나는 집에와서 멍하니, 또 우두커니 있다가

그래 마지막으로 한 번 연락을 해보자 하고 전화를 했을 때


상대방은 울면서 

"그동안 잘해줘서 고마웠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왜 눈물이 나지.

시간을 좀 줘.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단호함에 결의에 가득찬 목소리는 내게 절망감을 안겨주기에 부족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틀을 멍하니 집에서 나가지 않았고, 

이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어서 구직에만 전념을 했었다.

그러나 수시로 흐르는 눈물을 막기엔 내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딱 이틀이 지나고 나서, 쉬었던 운동을 다시했고, 운좋게 새로운 직장에도 

바로 들어가서 열심히 일했다. 머리와 몸, 모두를 쓰는 직업이 필요했다.



입맛은 돌지 않아 점심 한끼만 제대로 먹었고, 운동을 매일 갈 때보다

눈에 띄게 살이 빠졌고, 서서히 친구들과 동료들과의 대화를 하며 잊어가나 싶었다.


하지만 곳곳에 흔적이 너무 많았고, 연상될만한 소재와 추억은 흘러넘쳤다.


"그래 생각이 나면 어쩔 수 없지."하고 열심히 일상을 살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가면서 아쉽고 마음이 저린 느낌은 있었지만, 

그냥 그런대로 살았다.


그런데 어제 sns를 오랜만에 둘러보니, 상대방과 함께 게시물 알람을 설정했던

이모티콘 작가님의 계정에, 상대가 좋아요를 누른 것이 보였다. 시간은 그 당일

이었다.


문득 "아 이 사람은 잘 지내고 있나 보구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나를 다 잊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났지만, 괜한 오지랖일 수 있으니 마음을 접고 접다가, 폈다가 접었다가, 고민하다가 이틀 전 저녁, 그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상대방은 퇴근 후 자고 있었지만 통화가 가능하다고 했고, 

잘 지내냐는 나의 물음에 못 지내고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 일주일은 내 생각이 날 시간 조차 없었지만, 점차 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고, 해주지 못한 아쉬운 것만 생각이 나서, 밥도 제대로 못먹고 많이 

울면서 지냈다는 말이 돌아왔다.


덤덤하게 전화를 걸었던 나 역시 눈물이 흘렀고, 상대방도 울었다.



4년 가까이를 만났지만, 서로 힘든 것에 대해 온전히 또는 꽤 많이 기대는 것만큼은

상대가 부담을 느낄까봐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의 무뎌진 감정과 이별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야기 끝에 약속을 잡았고, 헤어졌던 장소에서 어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사귈 때도 쉽게 못했던 고민들과, 최근의 근황을 나누었다.


조금 엇갈린 모습들이 있었지만,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이 사람이 아니라면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일치했고, 마지막에 그는 나에게 물었다.



"오늘 왜 나온거야? 나랑 다시 만날 수 있겠어?"

그냥 얼굴만 보러 나온거면 난 안나왔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너는 어때? 무슨 마음으로 나오게 된거야?"

내가 다시 되물었다. 


나는 그냥 이제 잘해주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고,

묵은 체증이 한 번에 사라지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재회는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는 게 아니라 그릇을 다시 만드는거라더라."


책과 수많은 영상에서 봤던 말을 그에게 건넸다. 끄덕이면서 같이 그릇을

다시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우리는 각자의 고민과 현실에서 모두 놓고 싶었던 마음을,

각자 잘 다져나가고, 서로를 위해 한 발씩 내딛기로 약속했다.


나 역시 연애에 있어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걸 내려놓기로 했고,

상대 역시 권태로움과 안일함을 보였던 것에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 설렜던 것도 사랑이지만, 어느 정도 만나면서 익숙해지고 편해진 것도 사랑이라고. 하트 모양은 꼭 우리가 아는 모양이 정답이 아니라, 사람과 상황에 따라

동그라미, 세모, 네모, 별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닳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동안 못해주었던 이야기들과 소소한 선물들을 나누며

일상을 살아야겠다. 그가 내 과거로 남지 않은 것이 그저 행복하고 안도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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