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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Jul 02. 2023

일요일에 연남동

집돌이 남편에게 용기를 냈고, 그도 용기를 냈다.


지난 금요일은 한달 전 우리의 결혼식 이후,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직접 드릴 겸

오랜만에 남편의 동료들과 함께 저녁식사자리를 가졌다.


석달 만에 술을 먹은거라 즐거운 과음을 했으며,

숙취가 엄청 나서 토요일은 남편과 집에서

숙취음료만 먹고 하루 종일 드러누워 있었다. 


산 송장이 따로 없었다.




오랜만에 뵌 남편 상사분 와이프께서는 

신기한 점보사이즈 도시락라면을 주셨는데

사이즈가 무척이나 남달랐다. 


우리 2인 식구가 먹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조만간 친정에 가서 아빠, 엄마, 언니, 형부, 조카까지 모였을 때

식탁에 올려서 다같이 먹어볼 참이다. 




어제 굉장한 휴식과 숙면을 취한 덕에

오늘 아침은 기존의 나다운 아침형인간으로 돌아왔다.


설거지 해서 말려 둔 그릇들은 마른 행주질을 해서 차곡차곡 치웠고,

내일 할 분리수거도 미리 정리를 해두니 오전 7시가 좀 안된 시간이었다.



다 치우고 주방에 이어 거실까지 뭔가 조용해지니 

불현듯 연남동에 땅콩버터 브랜드인 '스키피' 팝업스토어가 생각났고, 

늦은 오후 전에 다녀오고 싶어졌다.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포스팅을 보니 같이 사진찍을만한 공간이 엿보였다.



평소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남편과 재미나게 

한 두장 남겨보고 싶어서,  누워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던 남편에게 

고민 끝에 정중히 부탁을 했다.




"여보. 정말 나 혼자 다녀오려고 했는데

같이 사진을 찍고 싶은 공간이 보여서,

같이 다녀와주면 안될까?"


남편은 내일이면 다시 출근을 해야하니

꽤나 망설이다가 "그래 가자!"




흔쾌히 수락해줘서 정말이지 무척 고마웠다.

평소 주말에 집돌이인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제안이었을텐데,

(물론 나와의 외출에는 크게 이견없이 먼저 따라나서주는 편)

너무 고마운 마음에 다녀와서 맛있는 점심을 한상 차려주겠노라

호언장담을 했다.




연남동에 도착해 팝업 전시가 시작될 때쯤에 들렀다가

빠르게, 샅샅이 구경을 무사히 마쳤다.


근처 와인샵에 들러서 파스타에 어울리는 

화이트와인 한 병을 사서 집에 오니 1시가 좀 안된 시각이었다.




우리는 오전 여섯시가 좀 넘은 시간에 바나나와 미숫가루, 아가베시럽을 넣은

주스 한 잔을 먹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서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 배고프다"라고 말했다.


나가기 전 마늘과 베이컨을 썰어두고 갔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요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선, 치킨스톡과 소금을 넣고 삶아낸 스파게티 면을 건져서 식혀뒀고,

그 다음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 다음 편마늘과 다진마늘을

넉넉하게 넣고 강불에서 중불로 줄여준 다음 마늘향을 만들어 냈다.


*후라이팬에 건져둔 면을 넣은 다음 ( 까먹고 면수를 챙겨두지 않아서 버터를 정해진 양보다 좀 더 두툼하게 잘라서 넣어줬다. ) 




버터, 베이컨, 페퍼론치노, 후추를 적당히 넣고 면과 기름을 잘 섞어준 다음, 접시에 담아내고, 파마산치즈가루 를 톡톡톡 무심한듯 넉넉하게 뿌려줬다. 


마무리로 그라파다노치즈를 치즈그라인더로 곱게 갈아서 올려줬다.


함께 구워놓은 버팔로윙에도 파슬리가루를 솔솔 뿌려서 식탁에 차린 다음, 

둘이 브런치를 즐겼다. 다행히 남편은 마늘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줬다.




*내일 저녁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순살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 가지볶음을 해줘야겠다.

외식도 전혀 안하지는 않지만, 물가가 너무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라서

가급적이면 8할 정도는 집밥을 행하는 초보주부라이프를 유지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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