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전부 믿지는 않지만 허허,
결혼한지 한 달하고 열흘이 지났다.
연애때의 장점은 더 잘보이고, 단점도 더 잘보이며,
이 사람의 놀라운 점 까지 새로 발견해 나가는 시점인 것 같다.
우리 둘은 다른사람처럼 이성과 감성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한 사람은 이성이 더 특화 돼있는 듯하고,
또 한 사람은 감성이 더 강한 면을 지닌 것 같다.
아침에 약을 먹다가 사레가 들려서
약은 넘어갔는데 물만 뱉어냈다. 목이 따끔했다.
아일랜드 식탁에서 먹다가 개수대로 달려갔는데
순간 큰일나면 어쩌나 하면서 켁켁 거렸다.
다행히 약이 마른 목에서 넘어간 걸 알고 한숨을 내쉬었는데,
다시 식탁으로 와서 돌아보니 남편은 태연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상했다.
그 와중에 필터를 한 번 거치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생각의 회로를 나름 다듬은 다음에 결연하게 말했다.
"자기야 나 방금 큰일날 뻔했어. 멀뚱멀뚱 가만히 있는거야?"
남편은 무심코 뚝뚝하게 나를 쳐다보더니
"목에 약이 걸렸다고 말했잖아. 계속 쳐다보고 있었어"
나는 이어서 다소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무 말이 없어서 내가 말을 한거지, 아니 그냥 쳐다만 보고 있던 것 아니야? 좀 냉정한거 아니야?"
남편은 대답했다.
"나한테 반응을 강요하지마. 무슨일인가하고 그래도 계속 쳐다보고 있었어."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은 너무 길고, 싸움을 걸 것이 확실해 보여서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다.
"계속 쳐다볼 바에야 좀 무슨일이냐하고 물어보던지 좀 와봐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큰 일이 나지 않은건가 와서 봐줘야하는 것 아닌가. 내가 너무한건가.
그래 하긴, 연애 때도 비슷했다. 출근하는 사람에게 힘든 감정을 주지말자"
뭔가 애매하게 씁쓸함이 남았지만 알겠다고 하고,
나도 마저 샌드위치를 한 입씩 크게크게 먹었다.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얼굴을 싹 정리하고
웃는 얼굴로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했지만, 그는 어딘가 모르게 축 쳐져보였다.
오늘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그런건가, 나 때문에 기분이 상한건가,
오만 생각에 잠겼다. 티를 내지 말 걸 그랬나.
아 나 되게 성격 피곤하구나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머쓱했다.
여러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은 그 시점에
문득 아침에 남편이 나에게 건넨 말이 떠올랐다.
"왜 거실 바닥에서 자고 있어?"
나는 잠결에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거실에서 자는 이유는......."
어떻게든 그 이유를, 내 입장에서의 설명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나도 안방에서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데
침대 위에 큰 대 자를 그리며 자고 있어서
옆으로 비키라고 하기가 뭐해서 우물쭈물 거리다가
거실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꼬꾸라져서 잠이 든 것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이 아니었기에 못내 미안했다.
하지만 다시 찝찝한 기분이 올라왔다.
저녁에 이걸 다시 말해야하나 넘겨야 하나를
네다섯번은 고민했다. 그냥 넘기기로 했다.
요새 부쩍 예민하게 구는 스스로가 느껴졌기 때문에
잠시지만 그런 선택을 했다.
결혼 전에 재미삼아 MBTI테스트를 해본적이 있었다.
나는 INFJ, 남편은 ISTP가 나왔다.
결과에 기반했을 때는 내향형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 다르게 나온 것인데,
우리의 일상생활을 돌아보면, 주말의 쉬는 모습,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
다퉜을 때의 모습, 일치하는 것이 거의 드물다.
나는 아주 일찍 일어나서 집을 치우고, 책을 보는 등 집 안에서도 계속 움직이지만
남편은 집 안에서 흡사 나무늘보와 굼벵이를 연상하듯 침대와 물아일체가 돼있다.
물론 그걸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되도록이면 내버려둔다.
외출할때도 우린 성향이 다르다.
동반 외출을 해야하거나 약속이 12시라고 치면
나는 9시부터 슬슬 준비를 하고 쉬다가 나가는 편이면
남편은 11시부터 씻기 시작해서 거의 타이트하게 준비를 마친다.
살아온 환경도, 장남과 차녀인것도, 술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것도,
물을 많이 마시지 않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그러고보면 다양한 면이
다르거나 비슷하지, 일치하는 면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와 결혼을 한 이유는,
이 사람이라면 결혼을 해도 될 것 같았고,
더없이 풍파가 들이닥칠 이 세상에서 더 강인한 내면과
튼튼한 나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남편의 여러 모습들을 되새겨 보며,
저녁에는 좀 더 싹싹한 와이프로서 퇴근할 때 인사를 건네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제 저녁엔 엄마네서 얻어온 찹쌀이 가득한 닭백숙을 줬더니
맛있다고 참 좋아했다.
나는 "자기가 장모님 복은 좋은 것 같아. 우리 엄마가 손맛이 있어. 요리도 잘하고.
물론 잔소리도 많이하고..... 맛있게 먹어"라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또렷하게 난다.
오늘 저녁에는 어제 남은 백숙의 국물에 죽을 끓여주기로 했어서
찹쌀을 조금 씻어서 물에 불려놨다.
조용히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끓여서 건네야겠다.
내 뾰족해진 마음도 좀 불려서 둥글게 만들어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