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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Jul 14. 2023

오늘 저녁은 보금자리에서 집들이!

모든 선택, 결과에는 운과 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하루


오늘은 한 달전쯤 부터 미리 약속을 잡아둔

집들이를 하는 날이다.


남편 전 회사 동료였던 분, 남편 회사와 바로 옆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의 남자친구인 커플이 우리집에 놀러오기로 했다.


두 분 다 선남선녀에 인상도 좋으시고,

무엇보다 우리 남편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신다는 점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분들이다.




오늘은 나는 그분들을 두번째 만나는 자리다.


우리 부부는 집 청약과 관련해서 결혼 넉달 전에 

이미 혼인신고를 했고, 같이 살기 시작했기에

결혼 전에도 서너번 미리 집들이를 했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 지방에서 일했을 때

기숙사에서 1년 여 정도 살아본 경험이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결혼 전에 쭉 부모님과 같은 집에

살았기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독립을 한 케이스다.


그런데 나보다 자신의 집이 생겨서 훨씬 좋아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이제 꽤나 여보와 남편이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뒷목에 닭살이 돋고 정수리가 쭈뼛거려서 혼났는데,

습관을 들이니 제법 편해졌다.



우리는 경쟁률이 90:1에 달하는 곳의 예비 70번대 번호였지만 

운이 좋게도 나보다 몇 번 앞에 사람이 최종계약파기를 했고,

내 앞에 몇 사람은 갑자기 연락이 온 것에, 또 계약금과 기타 조건이 맞지 않아 

계약을 포기해서 내 순서가 돼 연락이 온 것이었다.


꽤나 뷰가 괜찮은 고층이었는데, 

그것은 내가 가장 처음이자 유일하게 넣어본 청약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청약을 넣고, 그 뒤에 여러 서류를 떼러 다니고,

예비번호여도 서류를 제출하러 다니고, 당첨되니 서류를 더 떼서 제출하고,

그 종이들 때문에 머리 아프고 가슴 졸였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행복한 시간들속에서 지내는 것 같다.




살면서 부족한 것과 겪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좌절과 고민들 틈에 둘러 쌓여 있지만, 

이전에 인생과 꿈을 포기하고 싶던 시간들에 비하면

아주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몇년 전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금새 눈물이 툭하고 떨어진다. (물론 지금은 울지 않았다.)


나의 남편은 출근을 1시간 늦게해도 되는 상황으로 바뀌었고,

오래 살고 있던 안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오던 날 남편의 표정을 기억한다.


가끔 어긋나는 의견으로 마음이 상하면, 그 표정을 떠올리면

회복이 금새 될 정도의 그런 표정이었다.





누구보다 이 집을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남편의 그 마음을

잘 느끼는 나였기 때문에, 손님들이 왔다 가시고 부러움을 말하거나

우리보다 더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것으로도 족했다.


손님들이 집에 오셨을 때 음식을 준비하고, 가셨을 때 상을 치우고

청소와 정리를 해야하는 상황들이 발생하니 많이 미안해하지만,


나는 그가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우리가 알게된 시간에, 사귄 시간들을 더해도

처음 봤기 때문에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몹시 신기한 일들로 가득하다.

흘러흘러 일상이 되고, 분, 시, 일이 모여 지나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러 사람 틈에 모여서 어색하게 인사를 잠시 나눴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성적인 감정이 생기고, 연애를 하고, 또 다투기도 하고,

헤어짐도 경험하며 절망과 실망을 느껴보기도 했고, 다시 만나서 결혼도 했고, 


이제는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서로의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이야기도 나누고,

티비도 보고, 음악도 듣고, 장도 같이 보러가는 나의 남편이 돼있다는 것이.




문득 오늘 집에 오는 커플이 지난 달에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물어봤던 질문이 떠올랐다.

"결혼하면 뭐가 좋아요?"


우리 부부는 동시에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봤으며,

나는 대답했다.




"만날 때 어디에서 몇 시까지 보자는 약속을 안해도 되고,

돌아보면 저 방이나 저 쇼파에 있고, 

어디 갈 때 만나서 안가고, 같이 출발하는 게 제일 좋네요"


근데 처음 한 두달은 좀 놀랬어요.

아주 걸어가면 닿는 가까운 거리에 돌아보면 저 남자가 있어서"



커플은 웃으면서 다 단점 아닌가요 라고 해서 또 가만히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장점이 아니라 느낀점을 말했나 싶다.





오늘 저녁에 준비하는 메뉴는

유부초밥, 골뱅이무침, 핫윙, 칠리새우, 버터구이오징어, 해물부추전이며

후식으로는 체리, 골드파인애플, 바나나, 귤, 델라웨어포도를 준비했다.


남편이 오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함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우리집에 와주시는 두 분도 맛있는 것을 많이 드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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