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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Dec 23. 2023

뜻밖의 집들이 준비

주관한 자는 내가 아닌 것이 신박한 미스테리

올해가 오늘을 포함해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특히 이번 주는 추위를 독하고 더 독하게, 아주 지독하게 타는 나로서는

아주 역겨운 겨울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음식점에는 매일 매일 손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퇴근할 무렵에 나의 한숨과 피곤함도 점점 늘어가고 있는 듯 하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는 조촐하게 남편과 둘이 맛있는 것을 해먹거나

오랜만에 연극이나 공연을 보며 지내려는 찰나에,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는 내가 만든 김밥을 좋아하는데, 그 김밥에는 유부와 어묵을 포함한

다채로운 재료가 들어간다.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엄마의 가게는 우리집에서

꽤나 가까운 거리이므로 지난 주말에 몇 줄 김밥을 준비해서 건넸다.



김밥을 주고 난 후 걸려온 전화라서 별 이야기 아니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크리스마스를 겸한 모임을 제안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보다 내가 우리집에 오라고 하거나 자주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그렇다고 아예 냉랭하게 지내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에 민망한 웃음이 나왔다.




엄마는 다짜고짜 "23일이나 24일에 니네 집에서 니네 언니네랑 모이는 거 어때?"

나는 말했다. "크리스마스 전후는 이서방이랑 둘이 놀아야지~"

완강한 내가 민망했는지 엄마는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야 초대를 해줘야 놀러를 가지. 니네 형부는 아직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아뿔싸. 처제가 결혼한다고 최신형 TV를 선물해준 형부는 내가 독립한지 열 달,

결혼한지 반 년이 넘도록 가까운 거리에 사는 처제네 집에 한 번을 못와보셨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남편과 상의를 했고,

남편은 선뜻 우리집에서 갑자기 하게 된 송년회를 흔쾌히 승낙해줬다.



사실 친정 식구들은 다들 입맛이 다르기도 하고, 성격도 개성이 다들 강해서

결혼 전 한복을 맞추러갔던 것만 떠오르면 심장이 요동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각자가 어울리는 색보다 입고 싶은 색을 주장해서, 때마침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청첩장 모임을 매주 주말에 두 세개씩 몰아쳤던 나는 한복 집에서

저혈압이 몰려와서 쓰러질 뻔한 위기를 느끼기도 했었다.



지난 주중에는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이어서 퇴근을 하고 저녁 식사 겸 들렸었다.

일찍 퇴근한 남편은 처갓집이 오래된 코드 달린 청소기가 있는 게 마음에 걸려서

최신형 무선청소기를 구입해서 전해드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결혼 전에 더 오래된 낡은 청소기를 쓰시는 시부모님께 먼저 해드린 것을

꽤나 마음에 두고 죄송한 마음까지 가지고 있어서, 한사코 나중에 내가 사드린다고 했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엄마는 선물로 청소기를 준 것이 "다 쓸어버리라는 의미냐"는 고개가 갸웃해지는 말을 했고,

돈 좀 썼겠다. 쓸데없는 것을 샀다는 등 다른 소리를 했지만, 우리가 집에 가기전에 새 청소기로 

열심히 청소를 해보고, 기존 청소기가 찬밥 신세가 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안 사드렸으면 다소 일이 났을 같았다. 남편에게는 무한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여자의 언어보다 엄마의 언어로서 "고마워 잘 쓸게. 이거 좋은거네"로 알아듣기로 했다.)




그리 길지않은 시간, 일주일 만에 본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표정이 밝아 보였다.

많이 먹지 않으니 한 두 종류만 하라고 했지만, 가을에 점심 식사 초대를 해서 만든

차돌솥밥이 마음에 들었나본지 "차돌솥밥 그게 아주 대접받는 것 같고 맛있더라구"라고

말을 해서 이번 메뉴에 준비하기로 하였다. 


치킨과 피자를 좋아하는 언니네 부부, 양식이나 분식은 식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빠,

매운 것을 못 먹는 곧 여섯 살인 조카. 모두를 만족시키는 메뉴를 짜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나

여차저차 조금의 고민을 통해 모두가 먹을만한 메뉴로 준비를 했다.




드디어 D-1, 내일 개성이 강한, 입맛은 다 다른, 하지만 나를 가장 오래봤고 잘 아는

친정식구들이 온다. 남편의 오랜 친구들이 집들이 왔을 떄 만큼 긴장을 하는 중이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는 뜻밖의 집들이로 장식하게 됐다.

기왕 이렇게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있음에 감사하며.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모두 미리 크리스마스!

내일부터는 날씨가 봄날씨라고 느껴질만큼 풀린다고 하는데,

부디 건강 유념하시고, 감기 조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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