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도 벌써 지나서 사흘째에 접어들었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는 어느새 석달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홀 오픈 준비, 홀서빙, 설거지, 고객응대 등 정직원들이 하는 조리와 신선재료
세팅 이외에는 모든 일을 해내고 있다.
일은 힘들지만, 동료들의 인품이 훌륭하고
으쌰으쌰하자는 분위기라 크리스마스, 연말, 특히 더 바쁜 날도 잘 넘길 수 있었다.
이 글로 빌어 다시 한 번 함께 일하는 동료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또 다른 정직원 한 명이 잠수 퇴사를 했다.
그 전 금요일 퇴근할 때 본 것이 마지막이었어서,
주말 출근을 하지 않는 나는 그 분의 퇴사는 매우 뜻밖이었다.
다들 예상 못했다고 아수라장이었지만,
내게는 설마 그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드는 일이
그 얼마 전에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이틀 전쯤 그 분이 부탁한 일을 묵묵히 하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내 옆으로 와서 "제가 시키는게 뭐 같나요?"라는 말을 내게 건넸다.
(뭐는 아시다시피 욕이라 글로는 적을 수가 없다)
무언가 기분이 안좋아서 저러시나 싶다가도, 적잖게 당황을 했다.
그래도 나한테 저런 말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교차했지만
순간 마음을 가다듬고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시키실 만한 것을 하셨고, 저는 불만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대답은 꽤나 머리가 얼얼한 말이었다.
"애써서 착한 척 할 필요없어요. 나는 매일매일이 퇴사하고 싶으니까.
저는 맨날 여기서 일하면서 뭐같아요. 하하"
종종 기분대로 말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감기몸살로 출근해서 힘들었지만 유독 가시처럼 박혔었다.
내 성향이 대놓고 받아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그 공간에는 둘만 있었어도, 매장 전체에는 대여섯 명의 직원이 더 있었다.
일단은 "그래 일이 정말 힘들면 사람이 그럴수도 있지"라고 되뇌이며 넘겨버렸다.
유독 진상손님도 많아서 버거웠어도, 마인드컨트롤을 수없이 하며 버텼지만
그날은 퇴근 전에 그 말을 듣기도 했고, 멘탈이 오랜만에 가루로 갈려버린
느낌이었다.
그 일을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함께 사는 남편에게만 그 날 저녁에 밥을 먹으면서 살짝 털어놨었다.
남편은 짤막하게 내 이야기를 들은 후 그런 말을 했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 스트레스를 푼 것 밖에 더되나. 혼자 힘든 것도 아닌데..
나였으면 그 정도로 안 끝났어. 어딜 누구한테 함부로 말하냐"며 얼굴이 시뻘개졌다.
다시 크리스마스 출근으로 돌아와서, 출근시간에 나에게만 그 난리를 친 줄로만
알았던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다른 직원들의 연락을 모두 받지 않았다.
하루에서 긴 시간을 함께 일해온 정직원들은 충격에 휩쌓였고, 나는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한 사람이 빠진 채로, 일하는 곳은 대목을 맞이했고,
모두가 최소 1인 3역을 하며 버텨냈다.
그런데 이후 굉장한 반전이 일어났다.
12월의 마지막 출근 겸 금요일에 퇴근을 해서
남편과 커피를 한 잔 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택배 기사님으로 생각을 하고 받았는데,
멀리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 xxx 입니다."
말없이 사라진 그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랑은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적이 없지만,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냐고 묻지도 않았고, 의아했지만
뭐라고 이야기하는지나 좀 들어보고 싶었다.
혹시 밖이냐고 물어서, 남편에겐 무언의 손짓으로 양해를 구하고
그렇다고 말한 후 혼자있고, 5분 이내로 통화가 가능하다고만 말했다.
수화기 너머 낮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오기 전에 직원 비상연락망에서 보고,
번호를 적어서 나와서 전화드렸습니다.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해요.
정말 계신 동안 간식도 따뜻한 말도 잘 나누어주셔서 감사했고,
일이 힘들어도 웃으면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이 없는 저로서는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맛있는 밥이라도 한 번 사드리고 싶었는데, 조금이라도
이르게 저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시길래 나는 차분하게 생각 정리를 해서 그 말을 이어갔다.
굳이 원망을 하거나 짜증을 내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전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기에 되도록 좋은 면만 짧게 정리하기로 했다.
"xx님, 그렇게 봐주셨다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한테 미안해하진 마세요.
퇴사는 남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본인만 생각하고 가는거죠 뭐.."
모든 진실과 속마음을 말할 수 없었지만 최대한 간결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분은 짧고 굵은 통화 내내 나에게 미안해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그냥 짠했다.
통화 말미에는 다른 직원들에게는 자신에게 전화가 온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그 부분에서 살짝 헛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가 그럴거라고 믿고 전화해주셨을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어딜가서 무얼하든 씩씩하게 잘 지내십시요."
마지막은 그 분의 말로 마무리가 됐는데
통화를 끊고 내 얘기를 들은 남편은 꽤나 짜증을 냈었다.
그 사람이 그 말 안해도 우리는 그러고 살건데,
진짜 끝까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은 "나중에 꼭 예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즐겁게 사세요.
항상 응원합니다!" 였었다.
기분이 묘했다. 분명 기분이 진짜 좋아야하는데 두루뭉술해졌달까.
그래도 마지막 그 말에는 악의가 없다고 믿고 싶고,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저장을 하지 않고 통화 기록은 바로 삭제를 해버렸다.
자격지심과 배려, 후회에 대해 많은 것을 정리하고 마무리한 한 해였고,
그것을 재정비해서 한 해를 다시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든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가실 수 있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저녁에는 남편이 떡만둣국을 먹고 싶다고 해서
사골국 베이스에 김치만두와 떡국떡, 파와 후추를 넣고
계란물을 풀어서 만들어 먹었는데 함께 먹으니 더 맛있었다.
발목이 뻐근하지만 일이 피곤했던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살짝 나니까
살살 외투를 입고 밤산책을 다녀와야겠다.
모두 따뜻한 밤 되시고, 다시 한 번 새해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