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양동이 속 개구리는 몇 마리였을까. [ 7 ]

by Quartz

7

자식은 죄가 없다.


어머니 집에 이사 온 지 7개월쯤 되어 간다.

임신 사실을 아직 알리지 않은 상태라 어머니에게 병원을 갔다 왔다는

티를 내지 못해 아내와 나는 눈빛만 교환한다.

병원을 세 번이나 다녀오고도 임신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한 이유는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무언가 확실해져야 말할 수 있는 성격이라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몇 주가 흘렀고, 결국 한 달이 넘도록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자식을 가질 거라는 이야기조차 어머니께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아이를 갖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아이를 가지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다른 집은 명절만 되면 어른들의 잔소리가 이어진다지만, 우리 외가 쪽 어른들은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다. 오히려 처가 쪽에서 몇 번 들었을 뿐이다.

이제는 정말 아이를 갖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일도 없겠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식사를 하다 문득, 내가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해졌다.


: 아이를 갖는 게 좋겠어요?..

어머니: 글쎄… (한참을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지금은 네가 결혼을 해서 옆에 아내가 있지만

그래도 네가 자식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 …….왜요?


당신의 결혼 생활이 고단했기에 내게 결혼을 권한 적이 없는 분이다.

그 삶의 기쁨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여긴 어머니가, 자식에게 같은 길을 쉽게 권할 수 있었을까.

문득 예전에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눈물을 흘리며 하셨던 그 말은 어린 내 마음에 깊고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어머니가 나에게는 더 당당하게 삶을 헤쳐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화가 났다.

그 감정을 나는 오랫동안 가슴 깊이 묻어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 … 그래도 너희를 낳아서 버틸 수 있었어. 결혼하지 않았다면 너희를 낳을 수 없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눈물도 함께 올라왔다.

고개를 숙인 채 밥을 삼켰다. 다행히 어머니는 눈치를 채지 못하신 듯했다.

식사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그때는 아직 어머니의 혼인 관계가 정리되지 않았던 시기라 가슴 한켠에

40년 동안 풀리지 않은 걱정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응어리는 더 오래되어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로 공통의 걱정을 갖고 있지만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는 분명 다를 것이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을까.

동생을 잃은 큰아들의 마음을 어머니는 알 수 있을까.


어머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늘수록,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은 자주 부딪혔다.

어머니의 사소한 말투와 행동에도 이유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도 많았다.


어릴 적 화목하지 않았던 우리 집. 방과 후 집 풍경은 항상 조용하고 어두운 분위기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머니는 몸이 아파 누워 계셨다. 매번 그렇게 계셨던 건 아니지만

자주 그렇게 계셨고 그 모습은 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조용한 집이 싫어 방 한켠에 앉아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고

어머니가 아프셔서 하지 못한 집안일을 나와 동생이 대신했다.

그 행동은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칭찬해 주길 바라서 했던 행동들이었다.

걸레를 빨아 다 합쳐 12평도 안 되는 집안 바닥 곳곳을 닦고 다녔고 설거지도 했었다.

서로 경쟁하며 놀이하듯 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어머니의 부업도 함께 도왔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였는지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피자나 햄버거 같은 음식을 비슷하게 만들어 주셨던 기억이 남아 있다.


내가 기억하는 집은 늘 어둡고, 누워 계시던 어머니의 그림자만 선명하다.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무리하시면 피곤해서 누워 계시곤 하는데 나는 그런 모습이

너무나 보기가 싫었고 그런 모습을 보게 될 때면 애써 눈을 돌려 화장실이나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는다. 내 기억을 30년 전, 그러니까 아파서 누워 계시던 어머니의

등 뒤를 바라보던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아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 사정으로 들어와 살게 된 어머니 집에서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서럽고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다 싫어진다.

언제까지나 이런 그늘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어머니와 내가 풀어야 할 문제였다.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노력을 해서라도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머니와 대화를 하다보면 항상 싸움으로 이야기가 끝이 났다.

어느 날 아버지라는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연락이라고 해서 통화를 한 것이 아니라

집 현관문에 글을 적어 붙여 놓고 가버린 것이다.

기억에서 잊힐 만하면 찾아와 어머니의 실패한 결혼 생활을 상기시켜 준다.


대충 서로 협의이혼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길고 긴 악연을 끊을 작정으로

마음먹고 있었던 어머니는 다음 날 단번에 법무사를 찾아가셨다.

결단 이후, 생각보다 쉽게 이혼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한 달이 흐르고, 서류 정리까지 보름이 더 걸렸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것을…


그동안 내 속을 짓누르던 답답함과 불안감이 사라져 갔다.

어머니는 체증이 내려간 듯 밝은 얼굴을 하고 계셨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작은 아들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그날 새벽 어머니 방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동생이 사무치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의 죽음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부모라는 존재에 화가 났다.


자식은 아무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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