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양동이 속 개구리는 몇 마리였을까. [ 8 ]

by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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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와 산책


방과 후 해가 질 무렵, 학교 교문을 나오면 좁은 입구 양옆으로 솜사탕 아저씨와

달고나 아줌마가 서 있다. 두 사람은 경쟁이라도 하듯 현란한 말 솜씨로 아이들을 끌어모은다.

너나 할 거 없이 뛰어나와 서로 먹겠다고 달려드는 친구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그저

창피하게만 보였다.


그런 것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무시하고 후문 쪽으로 걸어 나온다.

후문에도 신기한 요술 지팡이를 판매하는 아저씨가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고 그 옆에는

병아리를 상자에 가득 채워 팔고 있는 아저씨가 가만히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역시나 나는 관심 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걸어간다.

정문이나 후문이나 어느 쪽으로 나와도 내가 사는 반지하 집은 가까운 편이다.

정문 쪽 호객꾼들이 보기 싫어 후문으로 왔더니 같은 상황에 적잖게 당황했지만

그런 유치한 것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당당히 걸어 집 근처에 도착한다.


도로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집인데 이번에는 노상에서는 처음 보는

무언가를 보고 그만 시선이 빼앗겨 버렸다. 이 길만 건너면 집인데…

마지막 관문에서 난 무너졌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작고 동그란 녹색의 생명체였다. 옹기종기 모여 꼬물꼬물대는 게 너무 귀여웠다.

사각 스티로폼에 가득 찰 정도로 들어가 있는 살아있는 관상용 미니 거북이였다.


그 당시 애니메이션 닌자거북이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거북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순간,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여기까지 왔는데 작고 귀여운 거북이 앞에서

내 의지는 결국 녹아내렸다.


순수하고 감성적이었던 나는 거북이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슬플지도 모르겠지만 닌자거북이의 게임 오프닝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항상 달빛 아래에서 맨홀 뚜껑을 열고 나온다.


그런 닌자거북이를 보며 나는 나 자신을 떠올렸다. 내가 매일 반지하에서 밖으로 나오는 모습과

거북이들이 맨홀 뚜껑을 열고 하수구에서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거북이들은 언제나 영웅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나에게 거북이는 특별한 존재였다.


나는 쭈뼛대며 거북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나처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이 한 무리다.

무리의 모서리 쪽에 자리 잡고 서서 거북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신기한 것도 잠시, 내 영웅들이 좁은 상자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 말고는 말이다.

이 거북이들을 모두 산다고 해도 키울 수도 없을 뿐더러 어디 좋은 곳에 놓아줄 수도 없었다.

마음이 한구석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한숨을 쉬면서 천천히 주저 앉아 가만히 거북이를 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상자를 넘어 밖으로 천천히 내가 있는 쪽으로 기어나왔다. 순간 아저씨에게 말하려다가 멈춘다.


난 아저씨의 눈치를 본다. 아저씨는 다른 아이들에게 거북이를 팔기 위해 정신없이 말을 하고

있었고 점점 더 많아지는 아이들 때문에 그곳은 더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두 손으로 감싸 들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 쪽으로 걸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면서 얼굴에서는 열이 오르고 등에서는 땀이 난다.

목소리도 떨리고 손도 떨린다. 거북이를 감쌌던 손에서는 거북이에 묻어 있던 물인지 아니면

나의 땀인지 알 수 없는 물이 흥건하다.


골목 코너를 돌아 천천히 감쌌던 손을 열어본다. 등껍질 지름이 5cm 정도 되는 작은 거북이가

고개를 주욱 뽑아 두리번거린다.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도둑질을 한 나 자신을 자책한다.


머릿속이 멍하다. 내가 왜 그랬지? 이건 잘못된 짓이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거북이를 바라본다.


( 너 가고 싶은곳 있어? 다른건 못해주지만 동네 한 바퀴는 돌아줄 수 있어.

이 근처는 내가 잘 알거든.


어떻게 그곳에서 나올 생각을 했어? 그냥 나온거야?

너 진짜 대단하다…


그렇게 나와 버리면 위험해. 누가 널 밟을 지도 모르잖아. )


대략적으로 거북이를 보며 이런 혼잣말들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일방적인 질문을 하면서 동네를 40~50분 정도는 돌았었다.

이 녀석을 집으로 가져가면 엄마한텐 뭐라고 하지?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키우게 해주실까? 이 거북이는 오히려 나보다는 아저씨에게 있는게 더 나았을까?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팔려가는게 더 나았을까?


내가 이 거북이를 가져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거북이에게 더 나은 결정을 해야 하는데…


천천히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내가 한 행동을 솔직히 말하면 아저씨가 믿어줄까? 경찰서에 가는게 아닐까?


두려움에 가득 차서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다시 거북이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거북이는… 거북이는 나에게 있는 것 보다 본래 있던 곳에 있는게 더 나을거야…)


나는 이 거북이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멀리서 그곳을 보니 아직까지는 아저씨가 모르고 있는거 같아서 부지런히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아이들 사이에 앉아 팔만 뻗어 거북이가 있던 곳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는다.

아저씨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고 내 눈은 붉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 잘 있어. 나보다는 그곳이 더 나을거 같아…)


그날은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서 거북이만 생각했다.

누가 사갔을까. 아니면 다시 어두운 상자 속에 포개져서 다음날 다른 학교로 갈 예정이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나랑 있는거 보단 나을지도 몰라.

그렇게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모든 정을 줘버린 나는 혼자 책상에서 이별 인사를 했었다.


다음날 그리고 일주일 이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그 거북이 장수 아저씨를 볼 수 없었다.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의 선택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보다

국민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은 내가 그 작은 동물을 책임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했다는

사실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때보다 훨씬 나이가 든 지금, 나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그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그러니 그때의 너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