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걷기는 성찰의 시간이다. 길에서 만나는 사물이나 생명체는 지나치기만 해도 산소같이 나를 살린다.
나이 듦은 무엇일까? 나이 듦은 성숙의 무게로 생각하였는데 걱정의 무게였던 것이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 아닌 것들인데 머릿속이 지끈거릴 만큼 스트레스가 되어 두통을 가져온다. 삶의 편린들이 부딪치며 잘난 체한다. 혼자서 걱정거리를 실타래처럼 묶어놓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의 유희는 그 진실성을 몰라 상처를 받는다. 별거 아니라고 잊어버리면 좋을 텐데 자꾸 생각을 한다.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때부터인가 걷기를 하면서 생각정리를 하고 있다. 참! 신기하다. 실타래가 풀린다. 아마도 자연에서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한갓 작은 미물임을 알게 되니 이해도 되고 용서도 된다. 만보 걷기를 하면서 순간동안이라도 운동의 기쁨과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된다. 그래서 걷기는 일상이 되어 간다. 매일 빠짐없이 걸으며 주말에는 다른 지역으로 원정 걷기를 나선다.
토요일이 왔다. 충북 단양으로 향하였다. 낯선 곳에 대한 설렘은 삶의 활력소다. 자가용을 이용하여 약 3시간을 달렸다.
첫 코스는 단양 잔도길이다.
잔도길! 이름에서 느껴지듯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따라 걷는 길을 연상하였는데 벼랑아래 선반모양으로 데크를 달아 낸 길이라고 한다. 입구에 도착하니 '느림보 강물길'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남한강 따라 굽이 굽이 느린 강물을 보며 걷는 길인가 보다. 잔도길은 벼랑에 바위를 뚫고 6m 이상의 빔을 박아 나무데크와 연결하여 만들었다는 점에서 스릴감에 감탄하고 시공한 기술자들의 손길에 감사하게 된다. 길 따라 클래식한 음악이 흘러나와 마음도 따라 경쾌하고 기분이 흥얼거린다. 절벽에 데크를 달아 만든 길은 주변 산자락에서 자생하는 나무들을 보며 걷게 되어 있다. 길바닥은 투명창이 군데군데 아래를 볼 수 있어 다리가 후들거려 느림보 걸음으로 지나가게 한다. 데크는 단양을 조망할 수 있는 만천하스카이워크의 입구로 연결되어 있다. 스카이워크는 뱅글뱅글 길 따라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이 스릴 만점이다. 순식간에 산아래까지 스치듯 내려오는 집아이 어는 타지 않고 눈으로만 담았다.
다음코스로 단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담삼봉으로 향하였다. 단양의 상징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도담상봉은 남한강 상류의 3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섬을 뜻한다. 봉우리 옆에 아름다운 정자가 인상적이다. 조선왕조 개국 공신인 정도전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풍월을 읊었던 곳으로 주변 풍광이 멋진 곳이다.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한 것도 도담삼봉에서 연유하여 지역홍보에 일조한 덕분인지 근처에 동상까지 세워 높이 기리고 있다.
주차장을 지나 석문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나지막한 산을 따라 올라가면 남한강을 배경으로 뻥 뚫린 굴이 나온다. 석문을 배경으로 마고할미의 전설도 재미있다. 돌기둥을 떠받혀 만들어진 공간으로 강물이 보인다. 남한강의 물과 충주호의 물이 만수 될 때는 석양빛에 물든 강물이 매우 아름다워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설도 전해진다. 명소마다 그럴듯한 전설과 에피소드가 있다는 것은 여행의 맛을 배가시킨다.
우리는 바쁠 것이 없기에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마늘산지로 유명한 곳이기에 식당마다 마늘을 이용한 메뉴가 나그네의 군침을 자극한다.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갈비냄새가 호객까지 하니 이걸 어쩌나? 식당을 둘러보니 사람이 없다. 코로나상황이라 손님들이 없나 보다. 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입구에서 멈칫거리니 주인이 반갑게 빈 테이블로 안내한다. 단양의 특산물인 마늘을 이용한 떡갈비가 메인요리라 하여 주인이 이끄는 대로 주문하니 다양한 마늘요리들이 한상 가득하다. 음식을 음미하며 즐겨야 하지만 빠른 식사를 하고 나온다. 해가 어느새 뉘역뉘역하여 수양개빛 터널로 빛구경에 나섰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수양개빛터널은 지하시설물에 음향시설과 LED 미디어 파사드 등을 접목시킨 복합멀티미디어 공간이다. 선사유물전시관을 지나면 빛의 터널이 나온다. LED조명장치로 꾸며진 터널은 온통 조명으로 꾸며 멋진 스토리가 있다. 터널 안은 빛의 화려함과 움직이는 조명까지 음악과 더불어 춤을 추고 있다. 밖이 차가운 날씨라서 빛의 연출은 온기처럼 따뜻한 풍경이 되어 주었다. 조명길을 따라 오르막길은 발레리나와 프러포즈 공간으로 이어진다. 우리도 어색한 포즈를 취해본다.
자연을 인공미로 꾸민 곳이라도 자연과 조화를 이뤘다는 점에서 볼만하다. 어느새 허벅지의 기분 좋은 통증이 만보를 너머 두 배의 걸음수만큼 걷기의 목포를 달성하였다. 내일을 위해 발도 쉼을 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