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민신문고를 자주 이용합니다. 아, 그렇다고 악성 민원인인 건 아닙니다. 혼내줘요, 불편해요, 바꿔줘요는 제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이용하냐고요? 자체적 '국민질문고'로 활용 중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제가 규정을 검토해 보니 이렇게 해석이 되는데, 제 해석이 맞나요?"
처음부터 이렇게 활용한 건 아니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알아볼 생각도 안 하고 질문했었죠. 흔히 말하는 '입만 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법령과 규정을 찾아보는 건 너무 귀찮았으니까요. 어떤 법령을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지도 헷갈렸습니다.(과거의 나야 왜 그랬어...)
관련 부서로 전화를 해 봤습니다. 일단 연락이 잘 안 됩니다. 담당자까지 가는데 한세월입니다. A부서에선 B로 연락해 보라고 하고, B에선 C를 연결시켜 주더니, C는 다시 A로 연결해 줍니다. 그런데 어쩌죠? 그 사이에 A부서 담당자께서 장기출장을 가셨다네요!
어렵게 담당자와 통화연결이 되었습니다. 조심스레 질문을 합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옵니다. 답변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게 통화는 종료됩니다.
지금 보면 다 제 잘못입니다. 일단 그 담당자분의 루틴을 방해했습니다. 다른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걸 깼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질문이 두루뭉술하니, 답변도 두루뭉술합니다. 두 사람 모두 시간만 날렸습니다.
제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일단 업무 중에 불쑥 전화를 드리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분들께 여유를 드려야 했습니다. 자료를 검토하고 답변을 할 수 있게요. 그래서 국민신문고로 질문해 봤죠. 하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질문의 수준이 아직 엉망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진짜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법령, 시행령, 규칙 등을 샅샅이 찾아봤습니다. 처음엔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읽고 또 읽었습니다. 시간도 엄청나게 걸렸습니다. 귀찮아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되돌리기엔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끝까지 해봤습니다.
수십 번쯤 읽고 또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외계어 같던 것들이 친구같이 느껴집니다.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합니다. 이제 다시 질문을 할 차례입니다. 국민신문고를 다시 켰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질문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예전: 교사가 밤 12시 넘어서 개인 SNS에 콘텐츠를 탑재하면 규정 위반인가요?
-지금: 제가 찾아본 바로는, 00법률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00시행령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인사혁신처 자료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고, 교육부 자료에는 저렇게 적혀 있습니다. 교육부에 문의하니 인사 관련 사항이라 소속 교육청에 질의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질문드립니다. 제가 해석하기엔 자정 이후 교사의 콘텐츠 업로드가 금지인데, 제 해석이 맞나요?
얼마 뒤, 명쾌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짜 말 그대로 O인지 X인지 확실히 말씀해 주셨죠. 만약 예전처럼 질문했으면 어땠을까요? 글쎄요, 똑같은 답변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두루뭉술한 원론적인 메일을 받았을 것 같아요.
저는 이런 과정이 서로에게 윈윈이라고 느낍니다. 우선 질문자인 저에겐 공부가 됩니다. 사전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관련 용어를 숙지합니다. 답변을 들었을 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답변을 해주시는 담당자께도 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국민신문고는 답변 기한을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2~3주 동안 충분히 살펴본 뒤 양질의 답변을 줄 수 있습니다. 한창 업무 하는 중에 걸려온 전화를 응대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물론 답변은 상급자에게 결재를 받아야 하기에, 조금 더 품이 들 수는 있겠지만요.
가끔 서면답변 전에 전화를 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하나 같이 얼마나 친절하신지 모릅니다. 이쪽 규정과 저쪽 지침을 속속들이 알려주십니다. 제 해석에 대한 답변도 명쾌하게 해 주시죠. 질문 내용 외에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럴 때 보면 우리나라 공무원분들, 서비스 하나는 정말 최고입니다. 아, 가끔 "충분히 답변이 된 것 같아요! 민원은 제가 알아서 취하해 놓겠습니다!"라고 말할 때도 있는데요. 대부분 좋아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책, <세이노의 가르침>은 두꺼운 책입니다. 700쪽이 넘죠. 제 나름대로 한 줄 요약 해봤습니다.
"본인 일은 본인이 알아보고 해결하라."
수도꼭지가 고장 나면 일단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금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관련 법령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겠죠.
법적인 다툼이 있을 때 전속 변호사보다 더 많이 공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공부는 귀찮습니다. 남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맨입으로 그게 되나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당연히 돈이 듭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 돈 많아? 아, 돈 주고 사람 써서 시간을 벌겠다고? 그럼 남은 시간에 뭐 할 건데? 뭐? 넷플릭스? 말을 말자.."
(실제 책은 훨씬 매운 맛입니다)
수많은 법을 클릭 한 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내가 해석한 것을 교차점검할 수 있는 플랫폼(국민신문고)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답변을 해 주시는 수많은 공무원 분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진: Unsplash의Simone Se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