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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은 비싼 거 먹을래요

박종기, <지중해 부자>

by 알뜰살뜰 구구샘

<지중해 부자>에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는 지중해 부자고, 다른 하나는 글쓴이입니다. 읽다 보면 둘이 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암튼 등장인물은 크게 두 명입니다.


글쓴이는 부를 이루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지중해 부자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물론 바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진 못합니다. 그가 낸 시험을 통과해야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체력을 기르라'였습니다. 돈은 딱 체력만큼만 벌 수 있답니다. 운동하고 절제하랍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안 만나줍니다. 그동안 글쓴이는 정말로 체력을 길렀습니다. 몇 년 뒤, 둘은 다시 만났습니다. 1차 시험을 통과했기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죠.


다음 미션은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였습니다. 절제하고 소식하랍니다. 부자들은 다 절제력이 있대요. 음식이든 술이든 허리띠 풀고 먹지 않는답니다. 부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질병'이랍니다. 그래서 식재료를 직접 길러 먹는 사람도 많대요. 물론 관리는 고용된 직원이 하겠지만요. 암튼 음식은 좋은 재료로 만든 걸 먹으랍니다. 돈이 없다는 핑계는 대지 말래요. 그만큼 더 벌 생각을 하랍니다. 어떻게 더 버냐고요? 그것도 알려줬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래요.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랍니다. 그럼 돈은 자동으로 따라온답니다.


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말입니다. 이쯤 되니 지중해 부자가 실존하는 인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인 박종기 작가 본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미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는데, 자기 이름 걸고 잔소리(?)를 하려니 맘에 걸리셨을까요? 일부러 가상의 인물을 만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책들을 읽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부분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언젠가는 그들과 나란하게 된다나요? 저도 그걸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더라고요.


달걀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빽빽한 닭장에서 생산된 4번 달걀은 하나에 300원 정도 합니다. 반면 자유방목이나 동물복지로 키운 1, 2번 달걀은 하나에 600원 정도 하죠. 예전에는 무조건 싼 달걀을 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웬만하면 비싼 달걀을 고릅니다. 이 정도는 감당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외식 한 번 덜 하면 됩니다. 물론 하나에 9천 원 한다는 서울 모 레지던스의 달걀프라이에는 도전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이뤄도 그건 못 먹을 것 같아요.


근데 이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이 참 중독적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좋은 핑곗거리로 바뀌기 좋습니다. 먹는 것도 바꿨으니, 입는 것도 챙기고 싶습니다. 문득 신발을 보니 조금 닳은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발이 편해야 온몸이 편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부자들은 이런 데 돈을 아끼지 않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신발 한 켤레 정도도 감당 가능하다며 제 자신을 설득시킵니다.


다음으로 탈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10년째 열심히 굴러다니던 녀석입니다. 준중형이라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아닙니다. 당연히 승차감이 환상적이진 않습니다. 두 돌 지난 딸은 차만 타면 토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좋은 차로 바꾸면 조금 덜할까요? 갑자기 핑곗거리가 떠오릅니다.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이번에 신형 그랜저가 그렇게 잘 나왔다던데, 유튜브 영상을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뭘까요? 저 제대로 해석한 것 맞나요?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와 '부자인 양 소비하기'는 정말 한 끗 차이인 것 같습니다. 판단은 결국 제 자신의 몫이죠. 아직 그랜저는 무리입니다. 신발도 쓸만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달걀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깨 보면 느낌이 다르거든요. 이건 양보할 수 없습니다. 부자 못 돼도 상관 없어요. 달걀은 1번이나 2번란으로 먹어야겠습니다.


앗,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오늘 아침엔 뭘 먹을까요? 아, 간장계란밥 먹으라고요? 추천 감사합니다!




사진: UnsplashErol Ah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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