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뇌과학자는 피곤할 때 절대 안 한다는 이것

개리 마커스, <클루지>

by 알뜰살뜰 구구샘

1. 만 원의 행복

치킨을 먹고 싶습니다. 배달앱에 들어갑니다. 배너에 할인쿠폰이 많습니다. 어? 어떤 곳은 1만 원을 깎아준답니다! 오늘만 이 가격이래요. 가슴이 뜁니다. 오늘은 얘로 정했습니다. 마케팅 정보제공, SNS 팔로우 같은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무려 50% 할인이잖아요?


다 먹었습니다. 배가 터지겠습니다. 소화도 할 겸 근처 마트로 갑니다. 그러고 보니 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청소기죠. 아버지께서 부탁하셨습니다. 이왕 사는 거, 좋은 걸로 알아봅니다. 100만 원이랍니다. 그런데 할인을 받을 수 있대요. 1만원이랍니다. 미리 쿠폰을 인쇄해 왔으면 된답니다. 고민합니다. 겨우 1% 차이입니다. 갑자기 귀찮음이 몰려옵니다. 그냥 할인 안 받고 결제합니다.


...저는 산수를 못 하는 게 틀림없습니다.(똑같은 만 원)




2. 휴대폰 홈 화면

앱과 위젯이 가득합니다. 날씨, 알람, 갤러리 같은 건 터줏대감입니다. 폰을 바꿔도 걔네들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 정도면 문화재입니다. 하지만 홈 화면은 너무 좁습니다. 추가로 설치되는 앱은 서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위로 스와이프, 폴더 클릭, 오른쪽으로 두 번 스와이프, 찾았다 요놈! 이 앱은 하루에도 몇 번씩 씁니다. 근데 실행 한 번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온갖 과정을 거쳐야죠. 늦게 다운받은 죄(?)로요.


다시 홈 화면을 봅니다. 지울 앱이 없을까요? 날씨.. 무조건 필요합니다. 버스 타는 뚜벅이에게는 필수입니다. 알람? 당연히 못 뺍니다. 이거 잘못 건드렸다간 파멸입니다. 눈떠보니 10시? 안될 일이죠. 어라? 근데 이 녀석은 뭔가요?


'방역패스'


... 너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거야? 왜 네가 거기 있니? qr코드 없어진 지가 언젠데, 생명력 보소.. 일단 너는 아웃이다.




3. 빨간펜

신규 시절에는 맘이 급했습니다. 업무를 최대한 빨리 쳐내고 싶었죠. 그래서 출근하면 바로 교무실로 갔습니다. 관리자분들께 초안을 드렸죠. 그러면 보통 빨간펜 첨삭을 받습니다. 아주 많이요.


10년 차인 지금은 그렇게 안 합니다. 그냥 몸으로 알아요. 오전 칼날은 매우 날카롭다는 걸요. 오후는 다르냐고요? 그럼요. 꽤 차이 나죠(뇌피셜입니다). 일단 관리자 분들께서 점심식사 하셨죠? 뭔가를 드시면 기본적으로 근육이 이완됩니다. 게다가 퇴근 시간 얼마 안 남았죠? 무의식에 즐거움이 침투합니다. 그때 제 초안을 들고 가면? 당연히 빨간펜을 받겠지만, 오전보단 좀 덜할 수 있죠. 발간펜 정도랄까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랍니다. 클루지도 그 맥락이래요. 책에 낱말의 뜻이 나오는데요, 인용하자면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매번 똑같은 퍼포먼스를 내기 힘듭니다. 컨디션이나 기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그랬나 봐요. 같은 만 원 할인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홈 화면에 방역패스 앱을 방치합니다. 결재 맡을 때 잔꾀를 부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의 마지막 부분엔 몇 가지 전략을 추천해 줍니다. 그중 제 맘에 가장 와닿았던 건


"피곤하거나 흥분상태일 때,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라"


세계적인 뇌과학자가 얘기하니 신뢰감 뿜뿜입니다.

피곤하면, 일단 자야겠습니다.




아,

만성피로인 걸 깜빡했는데.. 어쩌죠?



사진: Unsplash의Kate Stone Matheson

keyword
알뜰살뜰 구구샘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구독자 260
매거진의 이전글머리카락 버릴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