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준-주언규, <인생은 실전이다>
물어볼 행님이 없었다.
당연히 첫째라서 형이 없다. 남동생만 있을 뿐이다. 내가 말하는 건 친형이 아니다. 멘토를 뜻하는 거다. 고민 상담, 궁금증 질문, 도움 요청을 할 수 있는 그런 행님 말이다.
아버지는 어떨까? 글쎄, 당신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바로 "골 아프다"이다. 아버지는 머리 아픈 걸 싫어하신다. 당연히 문제 해결 능력도, 의지도 없다. 여태까진 어머니가 하드캐리하셨다. 물론 어머니는 1년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처리하시던 과업들이 나에게 내려왔다. 이제 내 골이 아프다.
친형도 없지, 아버지는 고라파덕에서 골덕으로 진화 중이시지, 친척 네트워크도 딱히 없지. 그냥 나 알아서 해야 한다.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자본주의시대다. 돈으로 어떻게 만회가 된다.
유료 강의를 신청한다. 현장에 가기 전에 강사가 쓴 책을 읽는다. 궁금증을 미리 적는다. 강의 시작 2시간 전에 도착한다. 운 좋으면 강사를 일찍 만날 수 있다. 그때 속사포를 쏘아댄다. 강사님께서는 어리둥절하시겠지만, 나는 절박하다. 책을 들이민다. 싸인을 부탁드린다. 궁금했던 걸 여쭤 본다. 눈빛이 강렬하다. 요새 말로 맑은 눈의 광인이다. 이런 녀석은 조심해야 한다. 친절하고 자세한 답변으로 진정시켜야 한다.
물론 이 짓도 자주 하면 현타 온다. 나도 고상하고 싶다. 당연히 해결책이 있다. 돈을 더 쓰면 된다. 고수들에게 유료상담받으면 된다. 아, 그렇다고 '뭐 사면됩니까?'같은 건 질색이다. 그런 컨설팅 말고, 내가 고민했던 질문에 대한 통찰 말이다. 암튼, 유료상담은 답변의 질과 양이 정말 후덜덜이다. 돈은 정직하다.
하지만 내 지갑은 얇다. 초등교사 지갑 얇은 거 요즘 다 소문났다. 우리 반 애들도 안다. 그러므로 '고상함과 우아함 카드'는 자주 쓸 수 없다. 이럴 때면 간사한 생각이 든다.
'나도 하드캐리 해주는 행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공짜로)'
친형, 당연히 만들 수 없다. 재차 말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새장가를 간다고 달라질까? 어후,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복행님과 맨 정신에는 대화 못할 거다. 소주 각 2병씩은 먹어 줘야 얘기할 수 있을지도. 암튼, 혈육은 이제 가망 없다.
피 안 섞인 사람을 찾아본다. 오, 주변에 좋은 행님들이 꽤 있다. 고민 상담, 인생 조언 등 다양한 거 잘 도와준다.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게 있다. 내가 원하는 걸 속 시원히 해결해 주는 행님은 아직 못 만나봤다.
도교육청 공모사업 계획서 쓰는 법, 좋다. 행님들께 물어보면 금방이다. 거의 어벤저스다. 수업 대회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툭 던지면 탁 나온다. 자판기가 따로 없다. 행님들 완전 능력자다. 하지만 내 고민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학교 밖도 궁금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블로그 일일 방문자 1~2,000명 만드는 방법은 알겠는데, 이걸 하루 10,000명 넘게 만드는 방법은?
-그걸 합법적으로 수익화할 수 있는 방법은?(인사혁신처 및 교육부 규정 지키는 범위에서)
-내가 가진 자원을 어떻게 팔아먹을 수 있는지
-세금 신고는? 절세 전략은?
-악플 대처는 어떻게? 슬럼프 극복은? 롱런하는 방법은?
-그리고,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것도 여쭤보고 싶다. 근데 입이 안 떨어진다. 나도 안다. 내 주위 사람들은 이런 고민 자체를 안 한다는 걸. 샘들 중에 이런 거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술자리에서라도 이런 얘기했다간 바로 외계인 각이다.
아주 가끔, 은둔 고수 선생님을 만날 때가 있다. 조심스레 자문을 구해 봤지만, 만족스럽진 않았다. 라포가 형성되지 않아서 그런지, 패를 다 보여주시진 않더라. 역시 세상은 녹록지 않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창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말이다. 주언규(구. 신사임당)라는 글자만 보고 바로 샀다. 바로 읽은 건 아니다. 책장에 꽂아 둔지는 꽤 됐다. 그러는 사이, 봄에 그 사태가 터졌다.온 세상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훨훨 날아다니던 그는 초심으로 돌아갔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안다. 난 뒤늦게 그의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읽는다. 후덜덜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 그에 대한 답이 줄줄 적혀 있었다. 꿈에 그리던 행님을 만난 것이다. 밑줄 죽죽 그으며 읽었다. 와.. 와... 감탄하며 봤다.
올초 유튜브를 뜨겁게 달궜던 그의 에피소드, 딱히 궁금하진 않다. 표절러든 아니든, 진실이 뭐든 간에, 일단 나에게 도움이 되면 그걸로 됐다. 정의구현은 나 아니어도 해줄 사람 많다.
구 신사임당, 주언규, 그는 모를 것이다. 이름 모를 동생이 생겼다는 걸. 평생 만날 일이 있겠냐만, 인생 치열하게 산 행님 덕분에 궁금증 많이 풀렸다. 앞으로도 고민이 생길 때면 간간히 들춰봐야겠다.
나: 행님, 이거 우째야 됩니까? 거저먹을 순 없습니까?
그: ...니 실력부터 길러^^
나: (힝...)
사진: Unsplash의juan pablo rodrigu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