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승환,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 TOP77>
1. 투기
1년 전입니다. 세상이 난리였습니다. 미국은 연이어 금리를 올렸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죠.
마이너스 금리의 시대가 올 거라던, 현금은 쓰레기가 될 거라던, 지금이라도 안 사면 벼락거지가 될 거라던 말들이 쏙 들어갔습니다.
S&P지수도 쭉쭉 내려갔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아무리 봐도 이거 할인하는 것 같더라고요.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았습니다. 세일은 못 참죠.
"뭘 사지?"
주식, 공부한 적도 없습니다. 아예 몰라요. 해본 적도 없습니다. 연금저축펀드는 꾸준히 했지만, 그건 지수추종 etf로 했거든요. 개별 종목을 사 본 적이 없다는 거죠.
[평소처럼 etf 사기 vs 개별 종목 사 보기]
etf는 뭔가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세일을 하는데, 리스크를 적게 가져가는 게 아쉬웠어요. 개별 종목들이 50%, 100%씩 오를 때 etf는 끽해야 10%씩 오르잖아요. 그래서 뇌절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래, 개별 종목을 한 번 사 보자! 내가 자주 쓰는 기업이 뭘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삼성전자, LG생활건강, 맥도날드였습니다. 근데 이건 재미없어 보였어요. 뭔가 좀 더 화끈할 걸 원했습니다. 그러다 퍼뜩 떠오른 게 있었죠.
'쿠팡!, 그래 쿠팡이야!'
알뜰살뜰을 표방하는 제게, 쿠팡은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네이버나 다나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이 있었거든요. 토요일에 주문한 게 일요일에 도착했습니다. 게다가 가장 저렴했어요. 최저가 찾아 헤멜 필요가 없었죠. 너무 편했습니다.
이 기업이 대한민국 물류를 압살할 것 같았습니다. 마침 주가 그래프를 보니 충분히 빠진 것 같더라고요. 얻어 터질 대로 터졌으니, 이제 반등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았습니다. 주린이는 그렇게 투기꾼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사지?"
종목과 사랑에 빠졌겠다, 이제 도박금을 정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묻고 더블로 가' 정신으로 파산핑이 될까도 해 봤지만, 뭔가 찝찝하더라고요. 그래서 정한 금액은 3천만원입니다. 그 정도는 0원이 되어도 타격 없을 것 같았거든요. 1년 정도 아껴 모으면 복구할 자신도 있었고요.
종목도 정했겠다, 금액도 결정했겠다, 남은 건 하나였습니다. 매수버튼이었죠. 물론 도박장에 돈 넣는 것도 쉽진 않았습니다. 미국주식을 사려면 절차가 좀 더 있더라고요. 환전도 해야 했고, 매수도 밤에 해야 했죠. 게다가 우대수수료라는 게 있었습니다. 전화 한 통 걸었을 뿐인데 95% 혜택을 받더라고요. 암튼, 그렇게 도박장에 발을 들였습니다.
"가즈아!"
2. 초심자의 행운
사고 나서 좀 오르더라고요. 사이버머니가 100만원 증가했습니다. 나름 기분이 좋았습니다. 역시 이 맛에 도박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러다 주가가 점점 떨어졌습니다. 미 연준이 금리를 무섭게 더 올렸거든요. 한국은 경기침체를 우려해서인지 따라가기 벅차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차는 더 벌어질 것 같았죠.
그런데 환율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400원을 우습게 뚫었죠. 나라에서 비축해 놓은 안정자금 같은 게 있는데, 그걸 투입한다는 뉴스도 떴습니다. 암튼 환율이 오르니 미국 주식인 쿠팡도 원화 환산 가격이 오르더라고요.
주가 자체는 좀 떨어졌는데, 환율에 따라 사이버머니가 더 올랐습니다. +500만원이라고 빨갛게 적혀 있더라고요. 3천만원 넣어서 3,500만원 된 거면 빼야 하나요? 이 판단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도박이잖아요. 투자가 아니고 투기잖아요. 이게 수익권인지 아닌지 가늠이 안 됐죠. 그냥 멍청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3. 철퇴
생각 없이 투기하는 넘은 철퇴를 맞아야 합니다. 저 말입니다. 두들겨 맞았습니다. 시원하게 패 주시더라고요.
환율은 금세 안정되었습니다. 당국이 시장을 못 이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1450원 정도까지 갔던 환율은 다시 1300원 언저리에서 보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환전했던 가격으로 돌아온 거죠.
이제 수익률은 주가에 달렸습니다. 근데 이게 웬걸요? 제가 샀던 주가에서 더 빠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실이 있었죠.
사이버머니를 봤습니다. 3천만원은 2100만원이 되어 있었죠. -900만원이 찍혔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이드id를 만나게 됩니다.
(철퇴 전) 3천만원, 없는 돈이라 생각해야지~
(철퇴 후) 마이너스 900? 와.. 이 돈이면 자동차세 내고, 보험료 내고, 화장실 타일 깨진 거 수리하고, 느그 서장이랑 사우나도 가고, 다 할 수 있는 돈인데!!! 내 소중한 돈 으앙!!!!!!!
워런 버핏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비웃었는지 알겠더라고요.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봤던 문구도 생각났습니다. '주식은 남는 돈으로 하는 거다'라는 명언이요.
저에게 3천만원은 남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생활비였어요. 한 푼 두 푼 아껴서 모든 돈이었거든요. 남들 차 타고 출퇴근할 때, 뚜벅뚜벅 버스로 출퇴근하며 만든 돈이었어요. 그걸 그렇게 도박장에다가 박았으니, 아이고 이 녀석아!
4. 주식을 하는 이유 = 원금회복
이제 제 목표는 바뀌었습니다. 수익 창출이 아니었어요. 원금 회복만 바랄 뿐이었습니다. 평균매입단가를 낮추기 위해 물타기를 하기도 했죠.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더 넣을 돈이 별로 없었거든요. 아, 이래서 '분할매수' 하라고 하는 거구나.. 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3천만원 그냥 한 방에 다 꼬라박았(?)거든요..
추웠던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과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폭주하던 미 연준도 숨고르기를 하더라고요. 시장은 한 발 앞서 반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부터 시작해서 한국까지, 증시가 다시 반등하네요?
사이버머니가 점점 회복되었습니다. -900에서 -600, -300, -100!... 마이너스 100만원이 되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도박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손실을 봤는데 기쁘더라고요.
그러다가 다시 플러스 구간에 진입하기도 했습니다. +150, +300 이렇게 찍힐 때가 있더라고요. 근데 참 웃기죠? 사람이 간사합니다. 저의 이드id가 다시 등장에서 속삭이더라고요.
'야 ㅋㅋ 너 이거 150만원 벌려고 그 맘고생을 했냐? 꼴랑 10% 벌려고? 너 이거 etf에 넣었으면 13% 수익이야. 근데 개별 종목 사놓고 10%? 아이고 웃긴 녀석이네 ㅋㅋㅋ'
이드의 힘은 강력했습니다. 다시 버텼죠. 더 오를까 봐요. 그리고 또 2차 철퇴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반복입니다. +100, -100, +150, -150... 깔짝깔짝, 왔다 갔다... 으아 이제 이거 그만하고 싶어요!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주세요!
5. 지옥 탈출
얼마 전, 결국 탈출했습니다. 그 지옥에서요. 그냥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구간으로 돌아서는 순간 다 팔아버렸습니다. 수익은... 2%였어요. 은행 예금보다도 못한 짓을 한 거죠.
그래도 많이 배웠습니다. 1년 동안 주식 공부를 좀 했거든요. 책도 읽고, 칼럼도 보고, 강의도 좀 봤습니다. 그리고 결론 내렸죠.
"이거 내가 할 게 못 되는구나. 그냥 연금저축펀드 지수추종 etf만 하자. 개별 종목은 건드리지 말자.."
e마트 시가총액이 2조인데, 쿠팡 시가총액이 38조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투자하기 전에 그런 거 봐야 한다더라고요. 그런데 투기꾼한테 그런 게 어디 있나요? 그냥 냅다 주가랑 그래프만 보고 샀죠.
6. 깨달음
1년 간의 온탕과 냉탕 끝에 깨달은 내용은 이겁니다.
1. 주식은 남는 돈으로 하자.
근데 나는 남는 돈 없다. 언젠가는 상급지로 이사도 가야 하고, 재산세랑 보험료도 내야 하며, 예기치 못한 경조사비도 대비해야 한다. 지금 당장 안 필요하다고 해서 그게 여윳돈인 건 아니다. 30년 동안 건드리지 않아도 되는 돈만 '남는 돈'이다.
2. 개별 종목은 하지 말자.
그냥 지수추종 eft만 하자. 결과를 봐라, S&P500에 묻어 놓은 연금저축펀드 수익률은? 13~15%잖아. 바깥세상에서는 SM이니, 에코프로니 하며 난리지? 그건 다 열심히 공부해서 '투자'한 사람들의 몫이지, 너처럼 '투기'할 녀석 것이 아니다. 그러니, 공부 안 할 거면 eft만 해라. 급하지 않게, 천천히, 온돌 전략으로 말이다.
3. 다른 사람 돈 빌려서 하지 말자.
대출이든, 대여든, 멘탈 다 나간다. 누가 그랬지 않는가? '부동산은 풀레버리지, 주식은 노레버리지'라고. 주식할 거면, 니 걸로 해, 니 걸로. 빌려서 하지 말고. 아참, 계산 잘해라. 3천만원 모은 걸로 주식 산 다음에, 나중에 다른 데서 목돈 필요하다고 마통 3천 당겨 쓰면? 아이고 그게 무슨 니 돈으로 주식하는 거니? 남의 돈으로 하는 거지. 플러스 마이너스 계산 잘하자.
7. 주식 책
암흑의 시기에서 주식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책 도움을 많이 받았죠. 주식을 잘 모르는 저에게 딱 맞았습니다. 저자분께서 초보자의 눈높이에 딱 맞춰 주셨더라고요.
인적분할, 물적분할, 이평, 유상증자, 이격도, 자본잠식... HTS앱과 경제신문에서 보던 용어가 죄다 들어있습니다. 그게 뭘 뜻하는 건지도 자세히 적혀 있었죠. 수박의 겉을 핥아 보니 등골이 서늘합니다. 이렇게 전문적인 분야를... 제가... 맨몸으로... 뛰어든 거예요?(날 잡아 잡수시오)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미래의 제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요. 이 고통을 잊어버리고 뇌절 시즌2를 자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현재의 제가 한 말씀 남겨 봅니다.
"야, 이 책 다시 읽고... 남한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소화할 수 없으면? 주식 개별 종목 사는 거, 손도 대지 마! 손모가지 날아가붕게"
아참, 쿠팡은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ㅎㅎ;;(이제 주주는 아니지만.. 망하지 말아줘요!)
사진: Unsplash의Maxim Hop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