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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천 명

티모시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by 알뜰살뜰 구구샘

팬을 1,000명 만들랍니다. 그러면 뭐가 돼도 된답니다. 그냥 대충 좋아하는 사람이면 안 된답니다. 언제든 내 제품을 사 줄 사람이어야 한답니다. 그런 분 천 명이면, 무서울 게 없답니다.


저는 누구를 좋아하는지 떠올려 봅니다. 사실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유튜브 구독해 놓은 거 보면 됩니다.


-ITSub잇섭: 새 제품 사고 싶을 때, 대리만족

-슈카월드: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라도 알자

-호갱구조대: 세상에 사기꾼이 이렇게 많아?

-세바시: 출퇴근 시간, 밀리의서재가 지겨우면?


-충주시: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대신해 주는 갓무원

-지식해적단: 속세를 잊고 싶을 때 역사로 떠난다

-셜록현준: 건축과 인문학을 버무려 샥샥샥

-조승연의 탐구생활: 나도 이분처럼 살아보고 싶다


오래전부터 구독했던 채널이라, 저의 충성도는 높습니다. 하지만 '팬'이냐고 묻는다면 얘기가 좀 다르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물건을 사준다는 그거요.


-ITSub잇섭: 영상 보고 구매까진 이어지지 않음. 이번에 갤럭시워치6가 나왔다고 하지만, 그거 살 돈이 어디 있나? 공짜로 받은 기어핏 밴드로 만족하자

-슈카월드: 앞광고 영상은 잘 안 보게 됨

-호갱구조대: 뭐 팔긴 파시..나요?

-세바시: 세바시대학인가 뭔가 운영하던데, 그 정도까지 하드코어하게 좋아하진 않아요

-충주시: 공무원.vv끝.

-지식해적단: 인문학 학습 만화 냈던데, 내 돈 주고는 못 사겠는데요 엉엉


6개 채널 날아갔습니다. 남은 건 2개입니다. '셜록현준'과 '조승연의 탐구생활'이죠.


먼저 셜록현준을 볼까요? 이분은 건축가입니다. 제가 이분의 물건을 구매하려면? 건축의뢰 맡겨야 하나요? 당장에 금 간 화장실 타일도 교체를 못 하는 마당에, 이렇게 유명한 분께 의뢰를 맡길 여유는 없죠. 건축 의뢰는 패스입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분은 책도 많이 내셨거든요. <공간의 미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등,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신간이 나온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살 거예요. 도서관 말고요. 사비로 산다는 뜻이죠. 어떻게 보면 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건 <조승연의 탐구생활>입니다. 여기는 급이 다릅니다. 제 마음속의 1티어예요.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는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압니다. 세계 곳곳에 친구가 있습니다. 글도 잘 씁니다. 말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요? 표정도 항상 밝습니다. 눈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음악도, 패션도, 대중문화도 두루 즐길 줄 압니다. 이거 뭐 사기캐릭 아니에요?


당연히 그가 쓴 책은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하는 '앞광고' 제품도 샀어요. 와 이거 '알뜰살뜰' 타이틀 내려놔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 그가 LG전자의 협찬을 받았습니다. 식기세척기였어요. 근데 그걸 어떻게 풀어냈냐면, 역사를 한 국자 들이 부은 겁니다.


자기 집에 pd를 초대합니다. 호스트로서 음식을 대접합니다. 와인에 스테이크를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새 식세기를 보여줍니다. 이번에 후원받아 설치했답니다.


식기세척기, 세계적으론 역사가 오래됐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비교적 최근에야 각광을 받았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서양의 부엌scullery부터 우리나라의 집들이까지, 이제 광고인지 아닌지 헷갈립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아내가 식기세척기 노래를 부를 때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큰둥했죠. 어차피 설거지는 주로 제가 했으니까요. 스펀지로 문지르질 않는데 얼마나 깨끗해지겠어요? 기계가 인간을 이기겠습니까?


하지만 조승연의 탐구생활 이후로 저는 바뀌었습니다. "여보, 한 번 사 볼까?" 결국 삼대 이모님 중 한 분을 들였습니다. 영상에 나온 LG제품으로요.


저는 알뜰살뜰을 지향합니다. 물건은 웬만하면 안 사야 한다는 주의예요. '안 사면 100% 할인'이라는 말을 믿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팬심 앞에 장사 없더라고요. 바로 무장해제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내 제품이 비싸서 안 사는 거 아니다. 더 좋은 거 나오면 사려고 대기 타는 거다."


이 책에 그런 글귀가 나옵니다. 저에겐 '팬 1,000명 만들기'와 더불어 가장 감명 깊은 구절이었습니다. 팬심이 동원되면, 가격이고 뭐고 없더라고요.



저도 나름 꼼지락거리는데, 제 팬은 몇 명일까요? 그냥 좋아해 주시는 분들 말고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 제품을 구입해 주실 분들요.


만약 제가 책을 내면 어떨까요? 15,000원쯤 하는 거예요. 사비로 사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그때 사줄 분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대략 5명 정도 떠오릅니다. 현실지인 제외하고, 블로그나 SNS에서 저를 알아주신 분들요. 그분들은 15,000원 정도는 써주실 것 같아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요. 제가 식기세척기 샀던 것처럼요.


근거를 대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래도 느낌이란 게 있어요. 저도 그분들이 책 낸다고 하면 살 거거든요. SNS에서 같이 고군분투하는 동료애랄까요?


팬 1,000명 만들기. 이제 995명 남았습니다. 하다 보면 되겠죠?


(연말에 도교육청에서 지원받아 출간되는 책이 나올 예정인데, 그거 밑밥 까는 거 맞습니다 머쓱)



아참, 3대 이모님 중 식세기와 건조기는 들였는데, 로봇청소기는 썩 마음이 안 당기네요. 로봇이 청소해 봤자 얼마나 잘하겠어요? 저보다 낫겠어요?

(솔직히 식세기도 들여놓고 실망했어요. 인간보다 못하더라고요ㅠㅠ 건조기 이모님의 퍼포먼스 안 나오던걸요?)


하지만, 조승연의 탐구생활에 등장한다면? 흠,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는 걸로 하시죠.



사진: Unsplash의Anthony DELANO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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