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대한민국 자네야, 1분만에 이걸 해내다니!
진주에서 창원으로 출장을 갈 땐 열차를 이용한다. 더 편하기 때문이다. 창원중앙역에서 내리면 도교육청까진 걸어서 갈 수도 있다. 시간도 덜 걸린다. 버스보다 승차감도 좋다. ktx가 좀 더 비싸지만, 어차피 운임은 실비처리다. 그러므로 ktx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가장 좋은 이유가 남았다. 바로 정시성이다. ktx는 웬만하면 연착하지 않는다. 딱 정해진 시각에 도착한다. 새마을이나 무궁화는 가끔 연착할 때가 있지만, ktx는 그런 경우가 적다.
코레일톡 앱에 접속한다. 기차 시간표를 확인한다. 각 역에 언제 도착할지 예상 시각이 적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제 출발할지도 적혀있다.
서울역에 도착한 기차는 2분 뒤 출발한다. 광명역에서도 2분이 주어진다. 밀양역에서는 1분이 주어진다. 창원중앙역은 1분일 때도 있고, 2분일 때도 있다. 어쨌든 1~2분 안에 모든 사람이 내리고 타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창원중앙역에 열차가 들어온다. 사람들은 노란 선 바깥으로 한 걸음 물러난다. 본인이 어떤 량에 탑승하는지 다 알고 있다. 헤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줄로 질서 있게 선다.
열차가 끼익 소리를 낸다. 푸쉭, 문이 열린다.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내린다.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다. 서울에서, 광명에서, 천안아산에서, 대전에서, 동대구에서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캐리어를 짊어진 사람도 있고, 꽃다발을 든 청년도 있다.
신기한 건, 그 많은 사람들이 1분 안에 내렸다는 사실이다.
자, 이제 모두들 내렸다. 탑승할 차례다. 길게 늘어섰던 사람들이 열차로 올라탄다. 하나 같이 같은 곳을 밟는다. 철컥, 철컥, 임시로 튀어나온 발판을 밟는다. 줄은 점점 짧아진다. 마지막 승객까지 올라탔다. 역무원이 플랫폼에서 좌우를 살핀다. 양팔을 휘적이며 기관사에게 신호를 준다. 출발해도 된다는 표시인가 보다. 푸쉭, 다시 ktx문이 닫힌다.
신기한 건, 이 모든 것도 1분 안에 끝났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사람에게 이게 뭐가 특별하겠는가? 당연한 일상일 수 있다. 1~2분 안에 승하차하는 거, 그게 별일일까?
나도 여태 의식하지 못했다. 그냥 기계적으로 타고 내렸다. 이 모든 게 1~2분 만에 끝난다는 사실을 인식조자 못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휠체어를 탄 사람이 추가된다면? 그때도 이 시간 안에 가능할까?'
ktx 안에는 휠체어가 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물론 그곳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는 걸 본 적은 없다. 역에도 휠체어의 승강을 도울 수 있는 기구가 비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사용하는 장면을 본 적은 없다.
작년에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도 15년 동안 휠체어를 탔다. 사실 마지막엔 거의 침대에서 호흡기만 끼고 계셨지만, 초반엔 휠체어 타고 장애인센터도 가고 그랬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타본 적은 없다. 인공호흡기 산소통 메고 휠체어 가지고 ktx를 탄다?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왜냐고?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니까'
상상해 보자, 인공호흡기 낀 환자다. 이동 시에 산소통이 필요하다. 그걸 들고 ktx에 탄다? 일단 30초는 기본으로 잡아먹는다. 게다가 휠체어까지 올려야 한다. 장비를 설치하고 해제하는 데 1분이면 가능할까? 어림없겠지? 게다가 어머니 한 명으로 인해 기다리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봐야 하나?
어머니가 겨우 탔다고 쳐보자. 아무리 빨리 한다고 했지만, 예정 시간보다 1분을 초과한 거다. 기차는 1분 연착하겠지? 그럼 어머니는 몇 시간의 피해를 입힌 걸까?
[1분 * 나머지 탑승객 수]
ktx 열차 하나에 500명이 탄다고 생각해 보자. 1분만 연착되어도 500분을 날린 거다. 모두의 시간을 합치면 그렇게 되니까. 무려 8시간이 넘는다. 그중에 부모님의 임종을 보러 가는 자식이 있다면? 회사 면접을 보러 가는 지원자가 있다면? 그런데 그 초과된 1분 때문에 그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어머니는, 장애인이었던 어머니는,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셨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하셨다. 그렇게 15년을 대중교통 한 번 타지 못했다. 그러다 죽어서야 버스를 타볼 수 있었다. 입관한 뒤에, 화장터로 가는 버스 말이다.
[서울에서 진주로 가는 ktx 열차는 3분 연착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짜증 났을 것 같은 이 문구가, 이제는 다르게 느껴진다.
몸이 불편한 누군가로 인해 1분
갑자기 배가 아팠던 누군가로 인해 1분
역 주차장에서 접촉사고가 난 누군가로 인해 1분
각자의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론 한 타임 더 여유 있는 기차를 예매해야겠다. 10분 연착돼도 괜찮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