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수, <100만 클릭을 부르는 글쓰기>
어어? 거기 아니야. 그렇지, 조금만 더 왼쪽으로! 조옿았어! 그대로 지그시 눌러봐. 별로 힘들지 않아. 살포시, 부드럽게 힘주면 돼. 옳지, 다 왔어! 이대로 진행시켜!
[딸깍, 조회수가 1 증가하였습니다.]
글쟁이는 압니다. 조회수의 가치를요. 브런치든, 블로그든, 인스타든, 스레드든 마찬가지입니다. 트래픽이 곧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천 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하는 역작을 내더라도 소용없습니다. 조회수가 0 이면요.
그러므로 똥을 싸야 합니다. 특히 제목 짓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하죠. <황소개구리와 우리말> 같이 지으면 바로 나락입니다. 뭐라고요? 그거 무려 교과서에 실린 글이라고요? 글쓰기로 국내 탑이신 최재천 교수님을 무시하는 거냐고요? 아닙니다. 전혀 아녜요. 그건 그분이니까 되는 거죠. 저 같은 피래미가 제목 그렇게 지었다간 굿바이 마이 프렌드입니다. 뼈도 못 추리고 조회수 0이에요.
전쟁터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브런치스토리 메인 화면에도 있고, 다음 인기글에도 존재하죠. 총성은 없지만 유혈이 낭자합니다. 사람들의 간택을 받으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야전 병원으로 밀려나죠. 이긴 녀석은 훈장을 받습니다. '체류 시간'과 '조회수'라는 포상도 함께지요. 그러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철퍽. 하늘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습니다. 제목을 볼까요? <100만 클릭을 부르는 글쓰기>랍니다. 젠장,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이거 몰랐으면 평생 몰랐지, 한 번 알아버린 이상 돌이킬 수 없어요. 무조건 열어봐야 합니다. 100만 클릭이라니? 그게 가능해요?
눈을 의심했습니다. 혹시 꿈인가 하고 볼도 꼬집어 봤어요. 이게 뭡니까? 은둔 무림 고수가 알려주는 비장의 초식들이 가득하잖아요? 아오! 이걸 이제야 보다니. 후회막심입니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아냐, 좋게 생각하자. 지금이라도 만난 게 어디야. 너무나 사랑스러운 책아! 지금이라도 나에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의 뽀뽀를 받아 줄래? 쪽쪽쪽
수많은 초식들, 씹자마자 바로 삼켜버렸습니다. 탈이 나든 말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망한 글들이거든요. 조회수 얼마 나오지도 않은 녀석들입니다. 모두 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했어요. 링겔이든 몰핀이든 뭐라도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부 다 바꿨습니다. 뭘 수정했냐고요? 제 브런치의 기존 글 제목들을 바꿨죠. 싹 다요.
[황농문, <몰입> 서평 제목]
1. 기존: 명상만 했는데 고수가 된다고?
2. 변경: ○○만으로 세계관 최강자가 된다고요?
[에세이]
1. 기존: 일부러 두 정거장 늦게 내리다.
2. 변경: 아뿔싸, 못 내렸다. 어쩌지?
[ktx 승하차 관련 에세이]
1. 기존: ktx 승하차는 1분밖에 안 걸린다.
2. 변경: 역시 대한민국 자네야, 1분 만에 이걸 해내다니!
어때요? 훨씬 낫죠? 울트라 하이퍼 극강 초고수의 비법을 버무린 제목들입니다. 물론 제 소화력이 부족해서 어딘가 좀 삐걱거릴 순 있어요. 아빠 양복 몰래 입은 초등학생 아들처럼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전 옷이 거적때기였는데요. 사이즈가 안 맞더라도 옷 입는 게 낫죠. 헤헤.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다음 포털과 브런치 메인 화면 노출 원리를 알겠어요! 제목들이 토 나오게 경합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전문 꾼들이 온갖 연장을 들고 싸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다 공식이 있던 겁니다. 헐, 제가 여태까지 이런 전쟁터에 맨몸으로 뛰어든 거였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정말.
자, 이제 게임은 달라질 겁니다. 저도 연장 하나 챙겼으니까요. 장도리인지 짱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들고 전장에 뛰어들 겁니다. 그 누구도 제 앞길을 막을 순 없어요. 비켜요 비켜! 글쓰기 스킬로 무장한 구구샘 나가십니다! 가로막으면 크게 다칠 거
퍽퍽퍽
투닥투닥
슈우웅, 쿵
끄아, 여기가 어디죠? 저 살아 있나요?
삐비, 삐비, 삐이이이이이.....
사진: Unsplash의Oscar Ivan Esquivel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