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안내장의 비밀
"절취선은 자르라고 있는 겁니다."
절: 끊을 절
취: 가질 취
선: 줄 선
설명서대로 하면 된다.
1. 선에 맞춰 자른다.
2. 윗부분은 가진다.
3. 아랫부분은 담임교사에게 제출한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안내장 회수해 보면 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취선을 이용하지 않는지 말이다. 그냥 A4용지 모양 그대로 제출한다. 안 자르고 통째로 낸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
"윗부분에 중요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 안내장을 다시 보자. A4용지 모양이다. 윗부분에는 간단한 인사말이 있다. 이건 관리자(교장, 교감)의 취향을 탄다. FT아일랜드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섬과 섬 사이의 간극만큼 넓다. F형 관리자의 인사말은 길다. 잠시나마 김춘수 시인에 빙의해야 한다. T형 관리자를 공략하는 건 수월하다. 인사는 짧게 하고 바로 본문 적어버리면 끝이다.
조금 더 아래를 보자. 여기부터가 진짜다. 학교 행사에 관련한 내용이 적혀 있다. 참고로 공공기관은 무조건 이 순서를 지킨다. "일장대내" 그냥 외우자. "일장대내" 신규 때부터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지켜야 한다. 이게 뭐냐고?
1. 일시
2. 장소
3. 대상
4. 내용
뭔가 익숙하다고? 맞다. 그거다. 바로 육하원칙!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학창시절 마법처럼 외웠던 그것이다. 이것만 잘 챙겨도 빵꾸는 안 난다.
좀 더 아래를 보자. 드디어 절취선이 등장한다. 그 아래엔 '참가 신청서', '개인정보 동의서' 같은 게 있다. 이걸 받아야 담임이 일을 할 수 있다. 신청자를 파악하고 개인정보를 확인해서 행사를 진행하는 거다.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다시 정리해 볼까?
윗부분: 보호자 참고용
(보호자가 가지면 됨)
-------절취선---------
아랫부분: 담임 참고용
(담임에게 제출하면 됨)
드디어 비밀이 풀렸다. 절취선이 있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이제 밤 늦게 담임에게 전화할 필요가 없다. 마음 편하게 일정을 확인하자! 야호
"아이고 어머니, 그거 알림장 윗부분에 다 적혀 있는데.. 혹시 못 보셨을까요?"
"아이고 아버님, 일정과 준비물은 안내장에 다 적어두었습니다. 앱 푸시알림으로도 알려드렸는데, 혹시 못 보셨을까요?"
아쉽게도 저는 못 알려드립니다. 밤 10시에 준비물 궁금해서 전화하셔도 소용 없어요. 왜냐고요? 저는 9시 전에 자거든요...